•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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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의 전설' 58세 여배우 "28년전 성폭력 당했다"…소송 제기
    ▲지난 2016년 8월 3일 NBC유니버설 행사에 참석한 배우 줄리아 오몬드. AP=연합뉴스 '가을의 전설' 58세 여배우 "28년전 성폭력 당했다"…소송 제기 영화 '가을의 전설'로 유명한 영국 출신 배우 줄리아 오몬드(58)가 전 세계적으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불러일으킨 할리우드의 옛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71)에게 28년 전 성폭력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4일(현지시간)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오몬드는 와인스틴에게 1995년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소장을 이날 오전 뉴욕 법원에 제출했다. 소송 대상에는 당시 자신이 소속돼 있던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 CAA와 와인스틴의 영화제작사 미라맥스를 자회사로 뒀던 월트디즈니가 포함됐다. 와인스틴의 이런 행위를 방조했다는 이유에서다. 성폭행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확산한 지난 6년여간 와인스틴을 상대로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1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관련된 회사들까지 제소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버라이어티는 전했다. ▲'미투' 촉발한 할리우드 옛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AP=연합뉴스 소장에 따르면 오몬드는 1995년 당시 와인스틴이 영화 제작 건으로 사업상 만남을 지속해서 유도했고, 어느 날 회의 명목으로 자신이 머물던 숙소로 들어와 옷을 벗긴 뒤 성행위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CAA와 디즈니가 와인스틴의 이런 성범죄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몬드는 "이 유명한 회사들은 와인스틴이 너무 중요하고 너무 많은 돈을 벌어다 줬기 때문에 그가 여성들을 성폭행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몬드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지금 이 얘기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방조자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사건 직후 자신이 와인스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회사 측이 강하게 만류했으며 이후 자신에게 일거리를 제대로 주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오몬드는 1994년 '가을의 전설'에 브래드 피트 상대역으로 출연해 스타 반열에 오른 이후 영화 출연이 뜸해졌다. 오몬드는 자신이 와인스틴에게 문제를 제기하려 하자 와인스틴이 보복성으로 자신의 활동을 막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오몬드가 주장한 혐의에 대해 와인스틴은 단호하게 부인했다고 버라이어티는 전했다. 그는 2020년 뉴욕 법원에서 일련의 '미투' 재판으로 2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도 이탈리아 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올해 2월 징역 16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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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06
  • 조갑출 TV 녹화장에서 만난 전설의 드러머 조갑출과 가수 장미화 씨
    ▲조갑출 TV 녹화장에서 조갑출 씨가 말하는 동안 초대 가수 장미화 씨가 진행자 조갑출 씨를 쳐다보고 있다. ▲'조갑출과 25시'가 오래 전에 발표한 앨범. SIDE 1에는 1.안녕 안녕 2.그리움 3.내기분 4.님이여 5.달무리가 SIDE 2에는 1.춤을 춥시다 2.작은소리 큰소리 3. 때가 4.지나간 날 5.우리는 대한국군이 실렸다. ▲유튜브 '동두천의 음악가들'에 올라온 조갑출 씨의 인터뷰 영상 캡쳐. 자신이 미8군 무대와 동두천 미군부대 등에서 연주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동영상이 담겼다. 조갑출 TV 녹화장에서 만난 전설의 드러머 조갑출과 가수 장미화 씨 미8군에서 활동할 때부터 인연 맺어…거의 반세기를 알고 지내는 우정 돋보여 <1> 조갑출, 그는 누구인가? 조갑출은 1965년 미8군 무대에 서는 것을 시작으로 생음악 살롱, 고고 클럽 등 밤부대와 신중현과 액션스, 조커스 등의 그룹 사운드를 거치면서 그룹 사운드계의 ‘보스’ 또는 ‘마당발’로 통했다. 조갑출은 1967년 신중현이 결성한 블루즈 테트(Blooz Tet)에서 드럼을 담당했고, 라틴 사운드를 표방했던 조커스(Jockers)에서도 드럼을 맡았으며, 죠커스 해산 후 ‘조갑출과 25시’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당시 멤버는 조갑출, 함형진, 김명규, 김정수였다. 그랬던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작품 25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갑출은 자신이 결성한 그룹 사운드 이름을 ‘조갑출과 25시’로 내걸고 1973년부터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전, 그러니까 1972년까지 조갑출은 조커스(Jokers)에서 드럼 연주를 했다. 조용필도 1971년 김트리오 해산 후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조갑출과 25시’에 잠깐 합류해서 부산의 극동호텔에서 같이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조갑출과 조용필은 형·동생이라고 호칭하며 지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그만큼 조갑출은 대한민국 그룹 사운드의 드러머 계보상으로도 대접 받는데 부족한 점이 없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조갑출과 25시’의 첫 출발 무대는 오비스 캐빈과 코스모스 살롱이었다. 조갑출은 팀의 리더였지만, 보컬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모든 노래는 다른 팀원들에게 양보했다. 한 음악 평론가는 “현악과 브라스를 동원해서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었던 그룹 사운드 조갑출과 25시는 소프트 락과 트로트의 적절한 조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평했다. ‘조갑출과 25시’가 언제 해체되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꽤 오랜 세월 동안 하와이에서 생활하면서 후배 뮤지션들을 돕거나 후원 내지는 지원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러나 워낙 입이 무거운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것 같고, 음악활동과는 무관한 것이기에 아예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조갑출은 지난 2019년 11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제평화와 봉사국민대포럼’ 시상식에서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인물 봉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런 그가 금년 6월부터 ‘조갑출 TV-연예가 25시https://www.youtube.com/channel/UCjSUJ_RBapgNAa0r2erBDYg?app=desktop)를 내보내고 있다. 8월 말까지 이철식과 딕 훼밀리 보컬 조태복(1회), 장재남(2회), 김상배(3회), 그리고 자신이 미8군 연주생활을 했을 때 인연을 맺은 후배 가수 장미화(4회)까지 내보냈다. ▲가수 장미화 씨가 '조갑출 TV'에서 진행자 조갑출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수 장미화 씨가 부를 노래 도입부 반주가 나오자 다소곳한 표정으로 반주기를 만지는 진행자를 지켜보고 있다. <2> 밝은 성격만큼이나 열정적인 가창력 발산한 가수 장미화 조갑출(79) 전한국연예인협회 연주분과위원장과 종로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옛날 옛적에 내가 생활했던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타코마에서 몇 주 간 머물었던 적이 있는 조 회장님(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나를 동생처럼 아낀다. 조 회장님은 60년대 미8군 공연단체 쇼 밴드 출신으로 그룹 죠커스와 ‘조갑출과 25시’ 리더로 국민가수 조용필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취입하도록 강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이든 뮤지션들 사이에 ‘불멸의 레전드 드러머’로 통하는 그는 포용력과 친화력이 뛰어나다. 조 회장님과 만난 호텔 커피숍에는 ‘안녕하세요’의 가수 장미화 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장미화 씨 역시 나를 동생처럼 대해주시는 분. 그녀는 옆에 앉는 나를 향해서 특유의 활달한 표정과 억양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잠시 후 조 회장님을 따라 우리는 ‘조갑출 TV' 유튜브 방송 녹화를 할 곳으로 갔다. 미8군 가수 출신인 장미화 씨는 ‘조갑출 TV’의 게스트 싱어였다. 반세기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조 회장님과 현재 미8군 출신의 뮤지션들의 모임 ‘예우회’ 회장인 장미화 씨는 서로 오빠·동생으로 통한다. 녹화장에서 미8군 시절에 활동했던 당시 등을 회상하는 대담을 나누는 사이사이에 장미화 씨는 자신의 힛송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에서 ‘서풍이 부는 날’ 등 여러 곡을 불렀다. 올 해 77살인 그녀의 터질듯 한 성량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녀가 들으면 한마디 할지 모르지만, 나이에 못지않게 그녀의 거침없는 화술은 노래보다 더 뛰어났고, 넘치는 노련미에 순발력까지 돋보였다. 기자는 그녀가 워싱턴주 한인그로서리협회 행사에 두 차례 초대되어 왔을 때, 그리고 한국에서 여러 번 그녀의 공연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후배 가수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녹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누군가와 통화를 나눴는데, 상대방에게 “살다보면 그런 일을 겪는 게 어디 한두 번이냐”며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대범하게 넘기라”고 했다. 통화가 끝난 후 그녀는 “후배 가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의 PD가 갑질을 해서 속상해서 하소연하면서, 선배인 나한테 조언을 구하는 전화였다”고 했다. ▲가수 장미화 씨의 다소곳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 새 마치 한마리의 호랑이(?)가 포호하는 듯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녹화장이 떠나갈 듯 만들고 있다. ▲가수 장미화 씨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앉으나 서나 똑같았다. 그녀의 그같은 열정적인 가창력은 평소의 몸에 밴 활달하고 밝은 성격도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제 그곳에서 평소에 생각했던 장미화 씨의 또 다른 면을 보면서, 마냥 즐거웠다. 장미화 씨는 2004년부터 매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사랑 나눔 바자회’ 바자회를 통해서 모금된 기금을 소년소녀가장을 비롯해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원래 올 해로 18주년이 되는데, 해마다 이어오던 중에 코로나로 인해 3년여 동안 갖지 못하는 바람에 15회 째가 된다. 올 해도 역시 매년 개최 장소였던 서초구청사 공원에서 9월25·26일 이틀 간 뜻 깊은 행사를 갖는다고 했다.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사랑 나눔 바자회’ 취재 왔던 게 3년 전이었지? 올 해는 9월25·26일이야. 기억해뒀다가 꼭 와야 해!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조갑출 TV' 녹화장을 떠나던 그녀는 나를 향해서 한마디 던지고 가는가싶었는데, 다시 고개를 돌려 활짝 웃으며 “Bye!!!” 한마디를 더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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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1
  •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멤버 니셸 니콜스, 89세로 사망
    ▲2017년 9월 19일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멤버인 니셸 니콜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첫 상영 행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A/AP뉴시스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멤버 니셸 니콜스, 89세로 사망 흑인 여성에게 제한적이었던 할리우드 역할 장벽 깨 NASA에서 소수 인종, 여성들의 취업 장려하기도 할리우드에서 흑인 여성들을 가로막던 장벽을 깼다는 평가를 받은 배우 니셸 니콜스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대표작은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로 우후라 중위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따르면 니콜스의 아들 카일 존슨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니콜스가 미국 뉴멕시코주 남서부 도시인 실버시티에서 자연사했다”고 전했다. 존슨은 “그의 빛은 우리와 미래 세대가 즐기고 배우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 남아 있다”며 “그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될 것”이라고 어미니를 기렸다. ▲200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GLAAD 미디어 어워드에 ‘스타 트랙’의 조지 타케이와 여배우 니콜스가 공동 출연했다.(AP) 니콜스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우후라 중위를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평생의 대표작을 얻게 된 순간인 것과 동시에 흑인 여성이 맡을 역할을 제한했던 영화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계기가 돼 주목을 받았다. 올해 5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스타트렉의 프리퀄 ‘스타트렉: 스트레인지 뉴 월드’에서 우후라 중위를 맡고 있는 셀리아 로즈 구딩은 트위터에 “니콜스가 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고 추모했다. 니콜스는 1979년부터 ‘스타트렉: 더 모션 픽처’를 시작으로 영화로 제작된 6편의 스타트렉 스핀오프 작품에도 출연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리크루터로 일하면서 소수 인종과 여성들을 NASA로 데려오는 일을 도왔다. 니콜스가 1967년 스타트렉 출연을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그를 말리기도 했다. 니콜스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킹 목사가 ‘당신은 텔레비전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고,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꿨으니 그만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니콜스는 80대가 되어서도 스타트렉 컨벤션과 행사에 참석했지만 2018년 아들이 그가 중증치매를 앓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대외 일정이 제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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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1
  • ‘벽추’‘노송도’… 올 가을, 靑영빈관서 한국화 정수 펼쳐진다
    ▲서세옥‘백두산 천지도’ ▲허건의 ‘노송도’. 그림의 기품을 중시한 남종문인화의 대가인 허건은 늙은 소나무 가지마다 연륜의 공력을 입혔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벽추’‘노송도’… 올 가을, 靑영빈관서 한국화 정수 펼쳐진다 靑소장품 첫 특별전… 거장 20여명 작품 40점 관객 만나 이승만 ~ 문재인 정부 수집품 총600여점 중 회화 270여점,나머지는 판화·도자기·공예 문체부, 전문가와 도록작업중 “전시가치있는 작품은 300점”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에 무슨 작품들이 나오나. 소문만 무성했던 소장 미술품 전체 규모는 얼마나 될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올가을에 청와대에서 전시회를 여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그 전시 내용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총 600여 점 중 전시 가치는 절반 정도”=이승만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대 정권이 수집한 청와대 소장품은 총 600여 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회화는 270여 점이며, 나머지는 판화와 도자기, 공예 작품들이다. 문체부는 현재 전문가들과 함께 미술품 조사를 하며 도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고 권력 기관에서 소장했던 것인 만큼 거장들의 걸작이 많지만, 미술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적지 않다는 게 문체부 관계자 전언이다. “전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작품은 절반인 300점 정도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의 소장품에 수준 미달 작품이 포함된 것은 정권마다 일부 인사가 권력의 배려를 받기 위해 청와대 동의 없이 선물로 보낸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 권력자와 친분이 있는 화가 모임의 작품을 대통령실에서 사들인 탓도 있다. 김영삼 정부 이후로 청와대 소장품 목록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일부 작품 도록을 만들고 청와대 사랑채에서 ‘함께, 보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전체 소장품의 도록이 제작되거나 공개된 적은 없다. 이번에 문체부는 작품 목록을 총정리하고 도록을 제작하는 한편 국민에게 공개하는 전시를 몇 차례에 나눠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전시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화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20여 명 40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양과 서양의 건축 미학이 섞인 영빈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최근 침체된 한국화에 부흥의 기운을 불어넣고자 하는 뜻도 있다는 게 문체부 설명이다. ▲김기창‘농악’ ◇허백련, 허건, 이상범, 배렴, 김기창, 장우성, 서세옥 작품 나와=현재 전시가 검토되고 있는 작가들을 확인해보니, 역시 한국 미술사의 큰 산맥을 이루는 인물들이다. 우선 담백한 필치를 특징으로 하는 남종화 거장인 허백련(1891~1977)의 ‘벽추(碧秋)’가 눈길을 끈다. 작가의 만년작으로 골기(骨氣)가 느껴지는 선묘가 압권이다. 역시 남종화 대가인 허건(1907~1987)의 ‘노송도’는 늙은 소나무 가지마다 연륜을 입힌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서예가이기도 했던 허건은 시·서·화에 모두 능했던 허유(1808~1893)의 손자이자, 화가 허형(1862~1938)의 아들이다. 허백련이 일가였던 허형에게 화법을 배웠으니 남종화 역사를 일군 인물들의 인연이 흥미롭다. 이번에 청와대를 개방하며 관저에 허백련의 손자 허달재(70) 화백이 그린 병풍화 ‘백매’가 있는 것이 확인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근대화단 거목인 이상범(1897~1972)의 ‘산수’도 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 ‘무릉도원도’가 포함됐던 이상범은 김은호(1892~1979)와 함께 20세기 초 전통화의 양대 봉우리였다. ‘산수’는 그의 필력이 가장 좋았을 때인 후기작으로 풍부한 농담을 뽐낸다. 그의 제자인 배렴(1911~1968)은 금강산 그림으로 유명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스승의 작품과 같은 ‘산수’를 선보인다. 김은호 제자인 김기창(1913~2001)은 1950년대 작 ‘농악’으로 관객을 만난다. 농부들의 동작에서 음악 소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역시 김은호에게서 그림을 배운 장우성의 작품은 ‘난죽도’ ‘매화’ ‘운봉’ ‘송암도’ 등 4점이 있는데, 이 중 1점을 전시한다. 재작년에 91세로 타계한 서세옥 화백의 ‘백두산 천지도’는 한국화의 현대화를 이끈 작가의 필력이 오롯이 느껴진다. 박대성(77) 화백의 ‘천지’도 이번 전시에 나온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박 화백은 한국화의 호방한 멋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송규태(88)의 ‘십장생도’는 문재인 정부에서 영부인 접견실 문 앞 벽면에 걸려 있던 것이다. ‘일월도’ 등이 청와대 소장품에 포함돼 있는 송규태는 민화의 숨결을 오늘날 되살린 거장으로 불린다. ◇원형 보존하며 문화복합공간 활용 과제= 청와대 활용 방안과 관련해 문체부는 미술관·공연장 등 문화복합공간이, 문화재청은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좋다며 이견을 보인 바 있다. 정부 내 조정을 통해 문체부 안으로 정해졌으나, 문화재청 노조와 문화재위원회 등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청와대 활용 안을 차분히 추진하지 않고 정권 홍보를 위해 급하게 밀어붙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는 비판이 문화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 문화재청이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원형 보존’을 원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와 관련, 문체부 관계자는 “청와대 공간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차원에서 미술관,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지만, 건물의 역사성을 지키며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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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31
  • ‘歌王’ 조용필 대표 명반 4장, 한정판 LP로 나온다
    ▲한정판 LP로 출시되는 '가왕' 조용필 앨범. /유니버설뮤직 ‘歌王’ 조용필 대표 명반 4장, 한정판 LP로 나온다 ‘가왕(歌王)’ 조용필의 대표 명반 4장이 한정판 LP로 출시된다. 19일 유니버설뮤직 등에 따르면, 한정판으로 선보이는 앨범은 16집 ‘이터널리(ETERNALLY)’와 17집 ‘앰비션’(AMBITION),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19집 ‘헬로’(Hello)다. 2013년 한정판 LP로 발매됐던 19집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 음반이 LP로 제작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집 이터널리는 1997년 발매됐다. 1990년대 조용필 음악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바람의 노래’, ‘그리움의 불꽃’, ‘마지막이 될 수 있게’ 등이 수록돼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원숙하고 세련된 조용필 사운드의 정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앨범이다. 17집 앰비션은 1998년 나왔다. 조용필의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이다. 조용필은 1968년 록밴드 앳킨스의 일원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IMF 시대를 겪으며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악’이 목표였다고 한다. 대표곡은 ‘친구의 아침’, 기다리는 아픔’, ‘소망’ 등이다. 18집 오버 더 레인보우는 ‘록 가수’ 조용필의 정체성을 재차 일깨우는 앨범이다. ‘도시의 오페라’, ‘일성(一聲)’ 등이 주요 곡이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신세계로부터) 2악장에 가사를 붙인 ‘내일을 위해’도 숨은 명곡이다. 19집 헬로는 조용필이 10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다. 발매 한 달 만에 20만장 넘게 판매됐다. 버벌진트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헬로’는 대한민국을 휩쓸며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독차지했다. 당시 2030 세대에서는 “조용필이 왜 가왕인지 알겠다”는 말이 나왔다. 수록곡 바운스는 11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와 ‘최우수 팝 노래’로 선정됐다.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는 “팝, 소프트록, 하드록, 클래시컬 크로스오버, 얼터너티브록, 일렉트로닉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와 가왕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라며 “모든 음반을 LP 특유의 재생 특성에 맞춰 리마스터링했고, 한정판인 만큼 앨범 재킷도 소장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한정판 LP는 19일 오후 2시부터 8월 2일 정오까지 핫트랙스, 인터파크, 신나라레코드 등 각종 온라인 음반 사이트와 교보문고, 홍대 널판 등 오프라인 예약처에서 예약 주문할 수 있다. 음반 4개를 동시에 구매하는 경우 함께 보관할 수 있도록 별도의 박스가 제공되며, 한정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번호도 매겨진다. 예약 주문을 한 이들은 10월 말쯤 음반을 받아볼 수 있다. 유니버셜뮤직 관계자는 “조용필 한정판 LP는 프랑스에서 제작돼 수입되며, 전 세계적인 LP 열풍과 물류 대란으로 생산·유통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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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9
  • 한국, '외국인 살기 좋은 나라' 52개국 중 40위
    한국, '외국인 살기 좋은 나라' 52개국 중 40위 하위 항목 '의료'는 대만에 이어 2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낮은 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민자와 같이 모국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단체인 '인터네이션스'가 해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가 '엑스패트 인사이더(Expat Insider) 2022'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종합 순위에서 한국은 52개국 가운데 40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59개국 중 47위였는데, 평가 대상국이 줄어든 것을 고려했을 때 순위의 큰 변화는 없었다. 이번 조사는 177개 국적 1만1천97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주요 설문 항목은 크게 삶의 질, 개인 금융, 근무 환경, 정착 편의성, 기본 요소 등이었다. 한국은 전체적인 순위는 낮지만, 삶의 질은 9위를 기록해 52개국 중 10위 안에 들었다. 이 같은 결과는 삶의 질의 하위 평가 항목인 '의료 체계' 덕분이었다. 한국의 의료는 대만에 이어 2위에 올랐고, 이 밖에도 여행은 4위, 안전은 20위, 레저는 23위로 나타났다. 정착 편의성은 41위의 낮은 순위에 머물렀습니다. 근무 환경은 31위, 개인 금융도 35위에 그쳤다. 디지털 생활, 주거, 언어 등을 종합한 기본 요소는 42위였다. 하위 평가 항목이었던 급여·고용 안정성과 디지털 생활은 16위로 높은 편이었다. 외국인을 환대하는 문화나 언어 등은 대개 40위 안팎이었다. 한편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 1위를 기록한 국가는 멕시코였다. 그다음 살기 좋은 나라로는 인도네시아가 뽑혔고 3위는 이 조사에서 3년 연속 1위에 올랐던 대만이 차지했다. 4~5위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최하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쿠웨이트였다. 다음으로 순위가 낮은 나라로는 뉴질랜드, 홍콩, 키프로스, 룩셈부르크, 일본이 있었다. 보고서는 외국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뽑힌 멕시코에 대해 "멕시코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정착 편의성과 개인 금융에 만족하고, 지역 주민도 우호적이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또 "인도네시아는 집을 얻기 편하며, 대만은 안전하고 금융 체계가 안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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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실시간 기사

  • 즐거운 목회를 위한 지침
    즐거운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한 비법을 구장회 목사(내덕교회 원로목사)가 제시했다. 출판사인 비전사(대표 엄문용 박사)는 최근 구장회 목사가 저술한 책 '목회는 행복하다'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행복한 목회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하는 책으로 최근 화제에 오르고있다고 한다. 구장회 목사는 일제시대에 조선의 독립과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던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순교한 할아버지 구연영 목사와 한국전쟁 때 피난 중에도 복음을 전하다가 병으로 별세한 아버지 구종서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의 삶이 어려운 것임에도 기쁜 마음으로 목회에 평생 노력하다 은퇴한 목사로서 100년 이상의 역사가 축적되어있어 오직 진실만을 담은 것이라고한다. 구 목사는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인 목회는 행복하고, 즐거운 것임을 이 책에 강조해놓았다. 구 목사의 증언 외에도 여러 목회자들이 이 책을 추천함으로서 목회는 즐겁고, 영광된다는 것을 보증했다. 박도훈 목사(은파교회)는 저자인 구 목사와는 오랬동안 교분을 쌓았다면서 이 책의 원고를 읽어보니 즐거운 목회를 하는 방법에 대한 제시가 깊이와 확신, 공감이 있었다면서 일반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말함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확신과 공감이 없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그런 한계들이 없었다고 밝혔다. 노영근 목사(태평교회 담임)는 구장회 목사가 이 책을 저술함에는 집안에서 3대째 목회자요 그의 아들은 4대 째 목회자라는 점에서도 충분하지만 그보다는 그런 형식적 차원을 넘어서서 저자 자신이 일평생 목회라는 십자가의 길을 행복하게 걸었다는 점을 본인이 직접 봤기 때문에 확실한 것임을 강조했다. 특히 오늘날 현대교회의 위기라는 말들이 있지만 이것은 이 책의 6장에 나온 소명받은 목회자의 책임일 뿐 교회와 복음사역의 문제가 아님을 짚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는 큰 귀감이 되는 책임을 설명했다. 저자는 목회가 행복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일이기 때문이며, 보람된 일이고, 사랑으로 일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부분을 서론에 담았는데 위와 같은 원인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목회자 자신이 어려움을 즐기고,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열매를 보람으로 여기는 등의 사고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목회와 신앙의 생활을 단순히 은혜롭다고 말할 수 있지만 평생 즐거운 목회를 경험한 구 목사가 실제로 행복함을 경험한 이유와 방법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담았다는 것이 후배 목회자나 목회자 지망생에게는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공: 한국교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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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27
  • CBS, '신은 죽지 않았다 3' 개봉
    한용길 CBS사장은 좋은 기독교 영화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면서 다양한 기독문화컨텐츠로 복음을 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미 기독교음악만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CBS JOY4U를 개국하고, 이어서 좋은 기독교영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CBS시네마'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사장은 안타깝게도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영화들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어린 자녀와 가족들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의 영화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안을 CBS가 제시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CBS는 오는 7월 경 영화 '예수는 죽지 않았다 3: 어둠 속의 빛(감독 마이클 메이슨)'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약 104분간의 러닝타임으로 상영되는 이 영화는 모 주립대 내 위치한 교회는 동 대학보다 역사가 훨씬 길고, 상징하는 바가 크지만 효율성과 학생복지만을 내세우는 이사회에 의희 쫒겨날 위기에 처한 데다가 사고로 인해 화재로 인해 교회당이 전소하고, 부목사로 임명받은 목사가 사망하는 등의 문제가 벌어지면서 내용이 진행된다. 담임목사 데이빗 힐(데이빗 A.R. 화이트 분)의 형 히어스 힐(존 코베트 분)은 오래 전에 신앙을 버리고 불신자가 되었으며, 교회에 출입하는 키튼 힐(사만다 보스카리노 분)은 하나님이 계시는지 의심중이며, 키튼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한심해 지하실에 벽돌을 던졌다가 가스폭발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흑인 부목사님이 사망하는 등의 얽힌 문제가 벌어진다. 동 영화의 화면은 그 전작인 1편(2015년)과 2편(2016)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영상미는 일반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품질을 갖고 있으며, 상당한 몰입도를 지녔다고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인간들고 하나님의 은총 및 섭리하심을 시각과 청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제공: 한국교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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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8
  • 윤동주 시인, 독립정신과 신앙심 깊어
    ▲홍성표 박사가 윤동주 시인의 신앙과 문학, 당시의 사회상황을 강의했다. ▲김옥경 동주산책길발굴기획단 회원은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를 낭송했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가족이 실제로 거주했던 공간은 현재 언더우드가기념관으로 사용되고있다. 동주산책길발굴기획단은 윤동주 시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제치하의 시절에 어떤 신앙생활을 했는지,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떤 마음을 썻는지에 대한 논의를 했다. 홍성표 박사(연세대학교 연세학풍연구소 전문연구원)는 동주산책발굴기획단의 초청으로 지난 6월 1일 윤동주 시인이 학창시절을 보냈을 연세대학교 경내에 언더우드가기념관 소강당에서 윤동주시인이 1925년 학업을 시작하고 난 이후의 시기에서 조선과 만주에서의 '윤동주의 신앙'에 대한 발제를 했다. 주최측은 '동주이야기 #3'라는 제목으로 류양선 교수(5월 25일)를 초청해 '시의 길, 시인의 길', 홍성표 박사(6월 1일)를 초청해 '윤동주의 신앙, 만주와 조선의 기독교', 윤인석 교수(윤동주 시인의 장조카, 6월 8일)를 초청해 '종시를 따라가는 동주의 등굣길' 등의 내용으로 연속강연회를 진행하고있다. 홍 박사는 윤동주 시인은 학업의 과정에서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화려는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강요의 상황에서 자신이 다니던 민족학교들이 무너져 나가고, 교회들이 신앙적으로 무너져가던 아픔의 시기를 온몸으로 받아내야했지만 여전히 강건한 신앙의 소유자였고, 능동적으로 조국독립을 갈구했던 문학가였다고 강조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 알려는 우리 후세들은 고인이 작품 말고는 남긴 것이 없어 당시 가족이나 지인들의 입을 통해 이해할 수 밖에는 없고, 때로는 독립에 대해 피동적인 입장이라거나 그리스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대한 조명이 부족한 것은 그를 전한 사람들이 일종의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한 방직으로 그를 이해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크기에 객관적인 조명을 할 필요를 강조했다. 윤동주는 1925년 명동학교 소학부에 입학해 1931년 3월에 졸업했는데 동 학교는 애국인재들을 배출한 간도지역 대표적 기독교민족학교였고, 이를 눈엣 가시로 여긴 일본정부는 1920년 10월 불태워버렸고, 학교의 재건과정에서 이뤄진 친일적인 결탁에 학생들의 반발로 동맹휴학 등이 벌어지고, 1929년 경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교회와 학교의 운영을 분리하자는 빌미로 주도권을 빼앗아가는데 이른바 인민학교화하는 것은 종교와 신앙읠 분리함으로서 신앙생활을 강제하는 것을 배격한다는 것일 뿐 공산화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홍 박사는 설명했다. 윤동주가 소학교를 다니던 시기는 조선민족에게 수많은 변화가 있듯이 윤동주를 둘러싼 환경도 그랬는데 명동교회와 명동학교의 관계단절 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족교육은 실시되었고, 일본정부의 의지대로 화룡현 교육국은 1930년 4월 저녁 학생들이 귀가 후 전격 학교봉쇄를 단행해 5개월 뒤에 재개교하고, 민족교육에 충실하려던 명동학교는 일제의 토벌 후 기독교민족주의에서 기독교로 중심이 옮기고,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 민족운동을 주도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춘원 이광수는 1917년 11월 '청춘'에 교회의 문제는 계급적이고, 교회지상주의, 교역자의 무식함, 미신적이라는 지적을 했다고 설명함으로서 당대 대다수 교회들의 태도를 추측케 했다.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동 학교가 북간도의 대표적 민족학교였으나 당대 사회분위기가 사회주의적인 사상이 영향이 컷던 만큼 학교도 마찬가지였고, 신앙이 있는 학생들은 공산주의적 학생들에게 멸시를 당하던 중 철저히 신앙적인 숭실학교로 편입했지만 이 또한 신사참배불복과 관련해 숭실학교가 폐교하게되고, 친일적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게된다. 윤동주가 편입이 상급학교로 진학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숭실에 그대로 있었더라도 실제로 폐교는 아주 나중에 이뤄지기에 폐교와 관계없이 졸업이 가능했으며, 사실 그의 편입은 기독교신앙을 지키는 것이 포함되었고, 더불어 상급학교도 진학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을 홍 박사가 했다.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목사는 조선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고자하는 목적을 갖고있어서 타 기독교학교들이 입학생을 그리스도인에 한정할 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인재라면 교육의 기회를 부여한 학교문화가 있다고 한다. 당대 선교사들은 대다수가 교회설립과 복음전파에만 주력했을 때 언더우드 목사는 실질적으로 충분히 복음적인 활동을 했지만 행정상 조선의 민족지도자 양성의 설립취지대로 전도사업과 교육사업을 분리해 진행해 신사참배에 대해서는 여유를 갖고 대응을 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운동주는 연희전문입학 당시에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이며, 교파는 장로교,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학적부에 기술했을 정도로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홍 박사는 설명했다. 명동교회의 주도층이 중국으로 떠나게 되는 것도 지켜야할 것이 많은 기득권층이었고, 교회에 남은 자는 지킬 것이 별로 없는 계층이었다는 것을 보아 당시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3학년 때 그거 처한 말과 글을 빼앗기고, 껍데기 였던 성과이름마저 일제의 억압으로 빼앗기는 상황을 보면서 신앙적인 회의가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ㅇ'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조선민족의 상황과는 무관히 지역적으로 한인들이 몰리는 장소였기 때문으로 홍 박사는 평가했으며, 이 교회에 목사로 부임한 ㅁ 목사의 사모는 이 때가 자신의 전성시대이며, 교회가 잘 된 것은 상업지대였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 실정이었다고 설명했다. 1942년의 종교단체들을 일본정부가 관치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어용도구로서의 역할을 시켰고, 해당 지역교회는 민족독립의 과제를 망각한 채 정교분리에 입각해 교세확장에 치중한 그런 측면을 주장했다. 윤동주가 입학한 연희전문의 학생들은 시온이라는 교지에 연전의 기독학생들은 식민조선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도덕과 사상을 확립해야하며, 식민정치의 수단이나 상업, 외교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시금 기독교를 정의와 광명의 원상대로 회복시켜야한다는 등의 내용을 기술했는데 이 당시의 대학생의 위상은 현재처럼 흔한 학생이 아닌 민족과 지역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연희전문의 기독교주의는 그간 윤동주가 접한 용정의 기독교나 숭실학교의 기독교 등과는 달랐기에 여기에서 신앙의 회의가 생겨나고, 예수의 정신이 무엇인지, 사회주의는 무엇인지 등에 고민하고, 그간 사로잡혀있던 기독교신앙의 협소함에서 벗어나는 등의 학풍을 얻고, 그의 모든 문학작품들이 이런 측면에서 발현되고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접하는 것이 필요함을 홍 박사는 설명했다. 한편 동주산책길발굴기획단은 지난 2016년 윤동주 시인과 연관된 서촌하숙집길과 연희연전숲길, 서강잔다리길 등을 발굴한 바 있어 수년간 지역사회에서 문학발전에 노력하고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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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5
  • 성경책 1년에 2독 돕는 책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담임)와 김찬홍 목사(하남중앙교회 담임)는 성도들이 성경책을 1년에 2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인 '25주 성경을 꿰뚫어라(생명의말씀사)'를 출간했다. 성경책을 성공적으로 완독하려면 구속의 사랑이라는 큰 틀에서 흐름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한기채 목사와 김찬홍 목사는 이 책을 통해 각 성경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기술되어서 성도들에게 미치고 있는가를 중점을 두고 저술했다고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라는 큰 맥락을 짚어가면서 성경을 읽어나가자 말씀에 대해 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성경을 읽을 때는 여러번 읽는 것도 중요하지미나 올바르게 읽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통해 우리들에게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시는지, 깨달음은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를 알게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요점으로 담겨있다. 이 책은 신구약성경 66권을 읽어나갈 때 하루에 30분씩 투자해서 매주 45장을 읽으면 1년 내에 2회 성경을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있으며, 각 권마다 개관의 주제와 소그룹으로 나뉘어 해야할 일들이 제시되어있다고 한다.
    • 뉴스
    2018-05-18
  • 공대 가가멜 교수, 작은 예수를 닮는 자 된 이야기
    학생들을 달달 볶아서 잡아먹을 듯 공부시키고, 1년 내내 연구실에 출근해 제자들에게는 휴일 없는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라는 학창생활의 추억을 만들어주던 악랄했던 김재호 부산대학교 공대교수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난 뒤에는 신앙의 울보가 되어버린 이야기 '부흥의 우물(아르카출판사)'이 최근 출간되었다. 김 교수의 부산대에서 별명은 만화에서 착하고, 예쁜 스머프 요정들을 괴롭히고, 잡아먹으려는 인물 가가멜 마법사였다고 한다. 김재호 교수는 부산대학교 전기기계공학과에서 학사를 따고, KAIST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에서 35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어 승승장구하던 중에 모든 일을 인력(人力)으로 해결하고, 돌파해버리는 강력한 젊은이였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버린 사건은 7년간의 연애로 결혼했던 처가 허리디스크병으로 인해 수 년간 온갖 의료시설을 찾아 다녔음에도 고통받던 중 집사님 한분이 안수기도를 한번 해줬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나아버린 후 신앙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언필칭 실험과 반복된 재연으로만 진리를 판별한다는 공대교수가 말이다. 나이 40 되어서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만나고 감명 받은 방법은 상당수의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적용하는 멋드러진 신학과 과학처럼 보이려 애쓰는 기도교철학적인 논리가 아니었다. 집에 도우미로 온 무식한 할머니 집사님의 진정한 사랑과 신앙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귀한 교수님의 고뇌와 번민을 누추한 식모에게 상담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김 교수의 경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부산대학교 교수회장을 지냈고, 공교육회복특위 위원장 역임, 우수논문상을 멀티미디어학회와 디자인학회에서 3회나 수상을 해버린 능력자였다. 공대교수로서 이름을 날리던 중 부산대 총장님이 뜬금없이 김 교수를 불러다가는 제발 부탁이니 부산대학교 문화콘텐츠개발원장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문화와는 담쌓고 살던 공대교수에게 문화 뭐시기 개발원장이라니 본인도 놀라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도 맡아서 발전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천하의 김 교수도 여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질 수 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도데체 콘텐츠를 어떤 것으로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던 김 교수에게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는데, "윤인구를 세상에 들어내라!". 부산대학교를 설립한 윤인구 총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부터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김 교수는 윤인구 총장이 설립자라는 것 말고는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원로급 교수에게 여쭤도 대략적인 대답만 있었다고 했다. 문화콘텐츠개발원에 부임하고 보니 개인비서와 큼직한 사무실, 대단한 특급대우를 받아서 놀라기도 했는데 비서로부터 동 기관은 특별한 예산이 없고, 자급자족하는 기관이라는 이야기에 더 놀라버렸다. 뭐 그래도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밀어붙이긴 했는데 훌륭한 영상감독과 작가, 학교측의 절대적인 지원 등 외적인 요소는 모두 마련했는데 윤 총장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몰라서 자료를 수집중이었고, 제작팀과는 기도로서 준비하자고 하고는 헤어졌다. 얼마 후 가슴만 조리면서도 기도는 안하고 있던 김 교수에게 서울의 제작팀 김우현 감독이 전화를 해서 기도가 잘 안풀리는데 "기도 열심히 하고 계시죠?"라며 물어보는데 가슴이 뜨끔해 앞으로는 매주 기도하겠다고 답변했다. 김 교수의 컨텐츠 팀이 이런 고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떤 목사님이 매주 부산까지 찬양팀을 보내줬는데 이들은 그냥 그런 찬양팀이 아니라 정말로 말씀을 사랑하는 전도자들이었고, 이들로부터 감명받은 김 교수 팀원들은 기도회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차 몰랐던 쑥맥이었는데 성령받고, 불을 받는 체험을 하고 열성적인 신앙으로 매진해 하나님의 사람 윤인구 총장을 세상에 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윤인구 총장은 부산대학교 설립자 겸 초대총장이기도 하지만 언더우드 목사가 세운 연세대학교의 3대 총장을 감당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부산신학교 교장, 영남신학교 교장을 지낸 인물로서 기본적으로 기독교신앙에 충실하게 살아간 인물이라고 한다. 윤 총장은 부산대 초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취임사를 통해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라면서 "이 대학은 이 나라의 성소이니 참으로 숭엄과 경건의 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내 캠퍼스가 거룩한 곳이라는 자각이 있습니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순종의 종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소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확신을 강조한 바 있다고도 한다. 김 교수는 마치 모세처럼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부산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개발원의 사업을 진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이적의 능력을 모두 구비해주셔서 바로왕을 이기게 해주신 것같과 같이, 조선땅에 복음을 주셨고,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뤄지는 매개체로서의 부산대학교가 한국 최상위권의 대학교로서 학문은 물론이요 사람을 널리 이롭게하는 역할하도록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이 할 수 있도록 기여한 역사들을 이 책에 수록했다. 본인 자신도 모세처럼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했고, 그 또한 이 책에 수록해놓았다. 일반적으로 이과계열의 사람들은 이처럼 긴 글을 쓰길 즐겨하지 않는데 김재호 교수는 출중한 문과출신자처럼 미려하고, 길고, 자세한 글을 이 책에 수록했다. 그가 이 토록 어려운 일을 능히 감당한 이유는 복음에 아름다움과 은혜로움을 전함이 매우 중요하고 꼭 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일텐데 그런 이유들이 이 책에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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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7
  • 조선의 미래 위해 교육 전념
    ▲정운형 박사는 언더우드의 선교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발제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박종현 박사, 이하 한교사)은 연속해서 신진역사학자들의 월례발제를 시작하면서 제 1회 발제자로 정운형 박사(연세대학교 연세학풍연구소 전문연구원)를 선별해 지난 5월 10일 은진교회당 세미나실에서 발제토록 했다. 정운형 박사는 '조선의 정세 변화와 언더우드의 선교 전략_대학설립을 중심으로'를 발제하면서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는 한국에 70여개의 개척교회를 세웠을 정도로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지만 복음 외에도 일제의 통치를 받던 조선인들의 독립과 미래 발전을 위해 일본정부의 방해를 극복해가면서 연세대학교를 설립해 오늘 대한민국의 학문체계를 정착시켰다는 점을 설명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을 위해 입국한 선교사였는데 당시 세계정세는 동아시아질서의 근간인 군신관계 혹은 부자관계 체계엿던 화이체제(華夷體制)가 유럽방식인 조약체제로 전환되는 시기였는데 당시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삼으려하고, 일본은 청나라가 가진 조선에서의 이권을 가로채려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김옥균이 시찰단원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살피면서 일본 내 개화주의자들과 개신교 선교사들과의 교류시 만난 낙스 목사 등에게 조선에도 개신교를 도입하자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이후 한국에 머문 선교사들의 안전과 선교부지구입에 도움을 주눈 등 활동을 하고, 이수정의 경우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접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미국교회에 요청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당시 조선은 국가의 부강을 위해 양무개혁론(유교이념은 유지 강화하고 군사 등 기술만 선별해 도입)과 문명개화론(일본처럼 서양문명을 적극 수입), 변법개혁론(서양문명의 절충적 수용) 등을 논하는 혼란한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언더우드는 이런 시기인 1885년 4월에 입국했는데 초기에는 국가법에 의해 복음은 전할 수 없어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실시하면서 고아학당을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언더우드는 찾아오는 아이들이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심성을 갖음과 동시에 거리를 배회하지 않기를 바랬고, 조선인 누구나 반듯한 사람이 되어 자유와 권리를 갖도록 한다는 신념으로 일요학교(1885.7)와 고아학당(1886.5)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인 사람자체에 관심을 갖는 차원에서 고아학당과 경신학교 등 교육사역을 시작했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국가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새로운 문화인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나라가 대국이라는 의식이 변화고, 미국 등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 비공식적인 종교의 자유, 포교의 자유로 이어지지만 조선에 주재한 선교부와 조선선교회는 선교의 문이 열린 김에 학교는 그만두고 복음전파에 치중하자며 민노아학당의 휴교를 결의하는 등의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조선인들은 교육의 열망이 높다는 사실을 근거로 언더우드와 마펫 등은 선교부에 중등교육과정 재 개설을 촉구하는 노력 끝에 1901년 11월 민노아학당을 계승하는 중학교를 재 개교하고, 6명이 입학한 이 학교를 '경신(儆新)'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선선교회 연합위원회는 1904년 연합학교(Union International School)의 설립을 추진결의하고, 경신과 배재를 통합해 1905년 10월 6일부터 2년간 합성중학교 체제로 운영, 이후 경신은 1909년 통감부의 요구에 따라 4년제 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서 언제든지 대학교육으로서 실시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했다고 한다. 재개교한 경신학교의 교장으로 재임한 언더우드는 대학과를 개설했고, 이는 미북장로교회와 미북감리교회가 연합해 세운 조선크리스천칼리지(Chosen Christian College)의 전신이며, 이는 현재의 연세대학교로 이어지는 계보임을 설명했다. 다만 개교시기가 1910, 1915년, 1914년 중 어떤 것으로 결론내릴지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어졌으며, 이는 차후에 논문집에 수록 될 때까지 한교사의 회원들과 함께 논의하자는 뜻을 비췄다. 정운형 박사는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에 주재한 선교부나 미국선교부, 주한 선교사 대부분이 교육선교가 아니라 교회를 설립하는 방식의 선교를 선호하는 시기에 왜 대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선교에도 노력했는가를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언더우드는 조선시민들을 조선의 정신을 지키며 독립을 준비하는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서 대학설립을 추진했고, 이 대학은 조선사랍의 자유오 독립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기운을 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조선의 인재를 배출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의 우기 극복을 위해서는 대학만이 유일한 길로서 생각했고, 행정적으로는 알렌선교사가 미 공사관의 서기로서 취임해 그 영향으로 선교가 수월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알렌이 물러난 뒤에는 조선인에게 온 선교사로서 자임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봉사하기로 했고, 그 방식은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다고 정운형 박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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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4
  • 가정생활협회, 63회 가정주간 기념예배
    한국기독교가정생활협회(회장 김진덕 목사)는 제 63회 가정주간기념예배 및 새가정연구원 특강을 오는 5월 24일 오후 2시 능동교회당에서 개최한다. '하나님의 평화, 지금 이곳에'라는 주제로 열리는 동 행사는 임규일 목사(가정생활협 부회장)의 사회, 김진덕 목사의 설교, 유연영 소장(아름다운심리상담센터)의 강연 등이 진행된다. 특히 2018년 가정평화상이 이성재 조애리 이정일 이정민 가족과 박건태 목사 가족 등에게 시상될 예정이라고 한다. 조애리 이성재 부부 가정에는 막내아들인 이정민 군이 희귀난치질환인 엔질만증후군 환우인데 발작과 경련 및 보행이나 배변 언어의 능력이 만 2세 가량밖에는 안되는 특징이 있어 가족들의 어려움이 크기 마련임에도 오히려 그런 도전 앞에 가족들이 더욱 단합하고,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고 있어 귀감이되어 시상하게되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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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0
  • 이봉화 화백, 7회 개인작품전 가져
    ▲오 주님 ▲신바람 놀이 ▲이봉화 화백(왼쪽에서 첫째 검은 옷)이 관람자들에게 작품설명을 하고있다. 이봉화 화백(서양화)이 제 7회 서양화 개인전을 지난 5월 2일부터 7일까지 서울 종로에 소재한 '조형갤러리'에서 개최했다. 이번에 공개된 35점의 서양화작품들은 대부분 인물화를 다루었고, 일부는 풍경화, 성화 등을 다루었다. 이봉화 화백은 인물화는 대부분 평소에 알고지내는 지인들이 많으며, 일부는 작품의뢰를 받아 제작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서는 농악을 하는 인물을 그린 5개의 작품이 시리즈를 이루는 '신바람놀이'인데 우리의 동양사상 중 동방(청색)과 서방(백색), 남방(적색), 북방(흑색), 중앙(황색)을 테마로 했으며, 각 그림들은 각각의 방위를 뜻하는 색상으로 칠해져있고, 이것은 우리 지구를 현재 둘러싼 동서양과 남북방의 문명권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있는 듯했다. 이봉화 화백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세계관을 표하려는 측면을 두고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며,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서 문화를 형성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기능을 하는 대형 건축물에 어울릴 수 있는 '우주와 인간질서'를 담은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다룬 작품 '오주님' 2가지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간음하는 여인, 병들어서 치유가 필요한 노인의 얼굴들은 절절한 간구와 슬픔의 극복이라는 두가지의 표정을 함께 담고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봉화 화백은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Repin 국립미술대학 하기연수, N.Fechin Instiute 연수를 마쳤고, 기독교미술협회와 대한민국회화제, 소성회, 한국미협 등에 몸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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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3
  • 한기총, 29회기 위원장 임명식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엄기호 목사, 이하 한기총)는 20일(금) 오전 제29회기 위원장 임명식을 열었다.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는 “위원장으로서 각 위원회들을 잘 이끌어주시기를 바란다. 위원회 역할에 맞는 계획과 사업들로 한기총의 외연을 확장하고, 다양성 속에 화합해 나가는 한기총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명된 위원장은 아래와 같다. 재정위원장 엄진용 목사(기하성여의도), 군선교위원장 고석환 목사(기하성여의도), 경찰선교위원장 정진성 목사(정통보수), 스포츠위원장 김진옥 목사(예감웨슬레), 직장선교위원장 정순식 목사(브니엘), 복지위원장 박홍자 장로(기하성여의도), 여성위원장 임보실 권사(그교협), 문화예술위원장 강사라 선교사(대한보수), 실사위원장 김정환 목사(예장), 정관운영세칙개정위원장 이영훈 목사(기하성여의도), 선교위원장 이경은 목사(기하성), 남북교회협력위원장 진덕민 목사(기하성여의도), 평신도위원장 김우제 장로(평협), 대한민국공공정책개발위원장 박요셉 목사(국민희망), 질서위원장 김희선 장로(글로벌선교회), 청소년위원장 조홍식 목사(개혁총회), 국제위원장 권오한 목사(예장선교), 교회일치위원장 김창수 목사(보수합동), 장애인위원장 최명우 목사(기하성여의도), 신천지대책특별위원장 홍계환 목사(합동장신) 임명식에 앞서 드려진 예배에서 박홍자 장로(공동회장)가 기도했고,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는 로마서 16장 1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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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4
  • 진정한 복음과 교회됨을 지향
    한국사회에 인구절벽과 교회성장의 둔화시대를 경험하는 현재 진보와 보수를 따지지 말고,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어야한다는 운동이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지역NCC전국협의회(강원, 광주, 대구, 부산, 전북, 제주, 충남, 충북, 전남동부 등)가 에큐메니칼 목회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지역교회들과 함께 새로운 복음과 선교패러다임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올해에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기자간담회를 지난 3월 16일 기독교회관 에이레네홀에서 개최했다. 이홍정 NCCK총무는 지역NCC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으며, 임기 초에 최초로 추진한 사업은 전국을 돌면서 지역NCC를 순회한 바 있는데 "한국교회가 저성장과 사회의 인구절벽의 시대를 맞아 교회들은 새로운 목회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고있다"면서 "그간 교회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고성장을 하면서 부작용중이 하나인 개교회중심주의, 교권중심주의, 교파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등을 양산했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와 지역사회는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이러한 물결은 그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타 지역과의 연대와도 성장을 함께 나눠야할 것이지만 각 지역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대안이 도출되겠지만 NCCK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충실한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지역교회와 한국교회의 순수한 복음적 발전은 전세계 에큐메니칼운동의 토대가 될 것이며, 특히 NCCK와 지역NCC는 절대적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서 협력하는 방식의 사역을 할 것으로 설명했다. 김종선 사관(NCCK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사회로 진행된 간담회에는 NCCK와 지역NCC전국협의회(총무 한창승 목사), 광주NCC, 대구NCC, 대전NCC, 부산NCC, 제주NCC, 충남NCC, 전남동부NCC(5월 출범예정) 등에서 총무들이 참석해 진행되었고, 강원과 충북, 전북 등은 사정상 참석을 못했다. 김영철 목사(NCCK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시간동안 NCC는 사회나 인권활동에 매진한 결과 지역교회와는 비친화적이라는 오해를 받아왔지만 이제는 목회자와 성도, 지역 등이 에큐메니칼과 함께해야만한다는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이라면서 에큐메니칼목회아카데미를 지난 3월 5~6일 강촌에서 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5월까지는 전국 10개 지역NCC를 중심으로 주제강연회를 개최하고, 5월 28일에는 전국모임을 한자리에서 갖고, 2차 세미나를 개최, 6월~9월에는 국내 100여개에 달하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에 모범적인 교회들을 방문, 10월에는 해외교회들을 현장방문하는 등의 계획을 갖고있음을 설명했다. 목회아카데미는 에큐메니칼 교회론(전환의 시대와 에큐메니칼운동, 교회와 사회연대 모델, 작은교회론, 생태정의적 교회론, 선교적 교회론)과 에큐메니칼 목회론(목회방향과 중심의 개혁의 사명, 설교나 교육및 사회선교의 돌봄목회, 섬김의 리더쉽, 생태적 영성과 기독교의 재주체화, 평화영성과 마을교육목회), 지역에큐메니즘(지역운동과 마을목회, 교회교육의 새모델과 연합주일학교, 대안적교육론, 생태운동과 도농연대, 생명농업의 목회론), 다양한 대안적 모색(네트워크 운동, 공감과 소통, 이중직 목회의 한계와 극복) 등 4가지 방향으로 잡고있다. 지역마다 열리는 세미나와 워크샵에서는 시대전환과 에큐메니칼목회, 선교적 교회론과 마을목회, 행태적 영성과 녹색목회, 생명평화적 영성과 민주시민교육, 대안적 기독교교육과 연합교회학교, 교회력에 따른 설교와 성경공부 등의 주제 중에 지역마다 필요한 3가지 가량의 주제를 선택해 강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날 참석한 지역NCC관계자들은 지역마다 활성화의 차이가 있긴해도 지역사회와 교회가 유기적인 관계와 발전을 이뤄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일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과거 NCC의 지향성이나 순수한 신학의 내용이 지역교회내에서 잘 알려져있지 못해서 복음정신이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오해를 받는 점이 가슴아프기에 오해를 불식하는 작업부터 교회와 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도록 노력을 기울이자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홍정 NCCK총무는 한국은 남북한으로 분단 된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던 중 냉전적 사고의 틀이 국민과 교회를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나눴고, 결과적으로 복음이 파편화되어서 교회다움을 잊어버린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목회아카데미를 기회로 복음의 온전한 길로 다시 초대되어 보혁의 프레임을 치우고 이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뉴스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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