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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정하
꽃잎-이정하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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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문정희
남편-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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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정하
- 꽃잎-이정하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앗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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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문정희
- 남편-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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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시-오세영
- 8월의 시-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라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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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래요-정재학
- 늘 그래요-정재학 저녁 굶고 술 마셔요 늘 그래요 TV는 계속 짖어대요 혼 자 두어도 잘 놀아요 가끔은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 요 보지 않아도 TV를 끄지 않아요 그때의 정적이 싫거든 요 시월이 오면 손에서 땀이 흘러요 종이가 찢어져 편지 조차 쓸 수 없어요 늘 그래요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어요 생각해 보니 연락이 안 온 지 꽤 되었어요 그냥 무덤덤해요 내일은 영화나 한 편 보려고 해요 늘 그 래요 웃다가 내가 왜 웃었는지 까먹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덮어두기 로 했어요 늘 그래요 집에 들어와 보니 피아노가 부서져 있었어요 피아노 속에는 묵은 기침이 가득하고 책에서 쏟 아져 나온 글자들이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었어요 눈썹에 서 물감이 묻어 나와요 나는 허공에 검은 물감을 풀어 넣 어요 늘 그래요 회색 물방울들이 날아다니며 기타 줄을 건드려요 꿈은 언제나 명확해요 사람들은 왜 자신이 하나 의 꿈이라는 걸 믿지 않을까요 가방에서 잉크가 새고 있 어요 옷이 더럽혀졌어요 사람들이 모래처럼 휘날려요 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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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숫대 높이만큼-고재종
- 수숫대 높이만큼-고재종 네가 그리다 말고 간 달이 휘영청 밝아서는 댓 그림자 쓰윽 쓰윽 마당을 잘 쓸고 있다 백 리까지 확 트여서는 귀뚜라미 찌찌찌찌찌 너를 향해 타전을 하는데 아무 장애는 없다 바람이 한결 선선해져서 날개가 까실까실 잘 마른 씨르래기의 연주도 씨르릉 씨르릉 넘친다 텃밭의 수숫대 높이를 하곤 이 깊고 푸른 잔을 든다 나는 아직 견딜 만하다 시방 제 이름을 못 얻는 대숲 속의 저 새울음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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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최승자
-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최승자 창문 밖, 사막, 바라보고 있다. 내세의 모래 언덕들, 전생처럼 불어가는 모래의 바람. 창가에서 이 십 년 전쯤 처음 만났던 노래를 들으며 찻잔을 홀짝이다가, 나는 결정한다. 이제껏 내가 먹여 키워왔던 슬픔들을 이제 결정적으로 밟아버리겠다고 한때는 그것들이 날 뜯어먹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그것들을 얼마나 정성스레 먹여 키웠는지 이제 안다. 그 슬픔들은 사실이었고, 진실이었지만 그러나 대책 없는 픽션이었고, 연결되지 않는 숏 스토리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창 밖 풍경, 저 불모를 지탱해주는 눈먼 하늘의 흰자위, 저 무한으로 번져가는 무색 투명에 기대고 싶다 더스트 인 더 윈드, 캔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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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이성복
- 그 여름의 끝-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푹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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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는 술-이성부
- 익는 술-이성부 착한 몸 하나로 너의 더운 허파에 가 닿을 수가 있었으면. 쓸데없는 욕심 걷어차버리고 더러운 마음도 발기발기 찢어놓고 너의 넉넉한 잠 속에 뛰어들어 내 죽음 파묻힐 수 있었으면. 죽어서 얻는 깨달음 남을 더욱 앞장서게 만드는 깨달음 익어가는 힘. 고요한 힘. 그냥 살거나 피흘리거나 너의 곁에서 오래오래 썩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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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오탁번
- 밤-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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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의 오늘 밤-박목월
- 한가위의 오늘 밤-박목월 달을 보며 생각한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한가위의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들. 한라산 기슭에도 태백산 골짜기 두메 산골에도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몇 명이나 될까 헤아릴 순 없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달빛에 빛나는 하얀 이마 달빛에 빛나는 까만 눈동자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를 생각할까.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내게로 따뜻한 마음의 손을 내밀까. 그야 모르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모든 어린이들이 어쩐지 정답게 느껴진다. 언제 만날지 어떻게 사귀게 될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는 따뜻한 마음의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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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것네-김영랑
- 오매 단풍 들것네-김영랑 오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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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이홍섭
- 서귀포-이홍섭 울지 마세요 돌아갈 곳이 있겠지요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구멍 숭숭 뚫린 담벼락을 더듬으며 몰래 울고 있는 당신, 머리채 잡힌 야자수처럼 엉엉 울고 있는 당신 섬 속에 숨은 당신 섬 밖으로 떠도는 당신 울지 마세요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당신이라고 돌아갈 곳이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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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서-나희덕
- 속리산에서-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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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서-나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