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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종교 간의 화합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지요.” 15일 경기 남양주 성관사(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난 주지 성진 스님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조직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 이사를 맡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한 이 대회는 교황도 참석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가톨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국제 행사. 한국 천주교는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달 중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조직위원회 창립식을 열고 이사진을 선임했다. 성진 스님은 현재 선임된 이사 중 유일한 비 가톨릭계다. 성진 스님은 “그동안 신부, 목사, 교무(원불교) 등으로 구성된 만남중창단 활동을 통해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것을 좋게 본 것 같다”라며 “종교와 세대를 뛰어넘는 온 국민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외국처럼 큰 사회 문제로 비화 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갈등과 마찰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 공항,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트리를 잘 보면 십자가가 없어요. 대신 별이 달렸지요. 공공기관이 왜 특정 종교를 홍보하느냐는 항의가 심하거든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놓고 마찰을 벌이는 곳도 있고요. 지금부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더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진 스님은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인들부터 벽을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성진 스님 등 만남중창단은 26~27일 미국 뉴욕 UN 본부 처치센터(Chuch Center for the United Nations)에서 열리는 제5차 국제평화회의(2024 ICCGC-CoNGO)에서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노래한다. 또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버스킹 공연을, 뉴저지 사찰과 한인 성당에서는 청년들과 토크 콘서트도 갖는다. 성진 스님은 “종교 간 화합의 첫걸음은 목사·신부·교무·스님 등 각 종교인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4대 종교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제가 타 종교 행사에 참여해 돕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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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최근 미국에서 교회 등이 시설 부지를 저소득층 주택 건설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와 대조적인 종교단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외신들은 '이그비(YIGBY·Yes, In God's Backyard)'라고 부르고 있다. "신의 뒷마당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의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에 따르면 이그비 현상은 미국의 저소득층 주택 부족과 교회 공동화 현상이 맞물려 나왔다. 지난 10년간 미국 집값이 42%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이 됐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은 700만호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종교 단체들은 신자 수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미 공공 종교연구소에 따르면 1999년 당시 미국인의 70%는 예배 등 종교 활동을 했으나 2020년 이 비율이 47%로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 19의 여파로 신도 상당수가 온라인 예배를 택하면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 결과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미국인 비율은 31%에서 24%로 줄었다. 교회 입장에선 대규모 시설을 유지할 필요가 줄었단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교회의 65%는 코로나 이후 헌금이 줄어든 반면, 시설과 주차장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은 늘고 있다고 복스가 전했다. 때문에 미국에서 종교시설 3분의 1이 향후 몇 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복스는 "10만곳이 넘는 교회·유대교 회당·모스크가 문 닫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단 한 곳, 워싱턴 DC 절반 크기 부지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만 해도 일부 교회는 부동산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해 이득을 봤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종교단체는 매수자를 찾지 못해 '급매' 간판을 내거는 처지다. 이에 종교단체들은 비영리 단체, 지자체 등과 협력해 활용도 낮은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샌디에이고 흑인 교회인 베델 AME의 하비 본 수석 목사는 재향군인·고령자를 위한 주택 건설에 교회 부지를 제공하기로 하고 지난해 기공식을 했다. 교인 650만명을 거느린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교회(COGIC)'의 경우, 보유 부지 면적만 2만1000에이커(약 84㎢)로 워싱턴 DC의 절반에 달한다. COGIC 측은 성명에서 "저소득층 주택 건설은 교단 사명의 핵심 부분이다"고 밝혔다. 농구선수 출신의 사업가인 매직 존슨,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 등 유명 교인들이 프로젝트에 수백만 달러를 보탰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이전 2000만원 VIP루트 나왔다…"대선 전, 넘자" 美국경 몰린 중국인 지역 사회 차원에서도 주택·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 단체와 윈-윈(win-win)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미국 각지에서 이그비 현상과 관련한 법안이 최근 발의됐거나 검토 중이다. 복스에 따르면 지난 3월 주택·도시 문제 위원회 위원장인 셰로드 브라운 상원의원(민주·오하이오)은 의회에 이그비 법안을 제출했다.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종교 단체에 보상금을 주며 독려하는 내용이 골자다. 브라운 의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저렴한 집을 구하는 건 너무 어렵다"면서 "법안을 통해 교회·사원·유대교 회당 등 종교 단체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세워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종교적인) 신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애틀랜타·샌디에이고 등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했고, 메릴랜드·뉴욕·버지니아도 관련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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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시국회의' 구성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목사, 이하 NCCK) 실행위원회는 산하의 프로그램위원회인 '정의평화위원회'와 '화해통일위원회'가 'NCCK 시국회의' 구성 건의 안을 지난 7월 25일 정기실행위원회에 상정했으며, 표결로 가결됬다. 발족 기자회견과 시국토론회, 시국기도회 등의 활동계획이 공개되었으며, 동 안건에 대해 원안 대로 가결하자는 측과 프로그램위원회의 설치 목적이 존재하므로 위원회 차원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의견, 위원회를 넘어 NCCK 전체의 활동으로 하기는 여러 이유로 부담이 있다는 의견, 현재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준비로 여유가 없다는 등 다양한 논의가 장시간 진행되었지만 표결 결과 시국회를 구성키로 했다. 한편 실행위원회는 지난 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다루지 못했던 헌장세칙 개정안을 가결했고, 추가 경정 예산안과 교회협인권센터(이사장 이승렬 목사)가 요청한 명칭변경을 위한 대화위원회 구성의 건 등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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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연구 기틀 개척 공로
▲ 민경배 박사는 이날 토론회에 참여해 교회사학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총회장 정인찬 목사)와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은 제 3회 웨이크사이버신학포럼을 지난 5월 20일 CTS아트홀에서 '한국교회사에서 바라보는 역사신학자 민경배 박사'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민경배 박사는 1972년 한국기독교회사를 발간함으로서 한국교회사의 연구와 교육분야의 체제와 틀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이날 한국의 교회사 연구에 권위자로 평가 받고 있는 이상규 박사(전 고신대학교 부총장)와 박명수 박사(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류금주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원장) 등이 발제자로 초청되어 민경배 박사의 생애와 학문, 민족의 이해, 내연과 외연으로 구분한 교회사 서술구도 등을 거론했고, 대체로 한국교회사의 기초부터 성숙단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 동의했다. ▲ 정인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은 토론회 주최자로서 이날 교회를 위한 좋은 대안이 되기를 기대했다. ▲ 정인찬 박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는 동 교단과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민경배 박사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하게 됨은 한국교회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라면서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복음전파에 획기적 기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좌로부터 박명수 박사, 민경배 박사, 류금주 박사, 이상규 박사. ▲ 이상규 박사는 생애와 학문의 개괄 발제를 담당했다. ▲ 이상규 박사는 '민경배 교수의 생애와 학문'을 주제로 발제했다. 이 박사는 민경배 박사는 스승인 백낙준 박사의 계보를 잇는 제 2세 학자라고 평가하고, 한국교회사 학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라고 정의했다. 그가 한국에서 교회사연구를 개척했고, 오늘날 교회사학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학자라면서 한국의 신학도와 목회자 중 민 박사의 책을 한 권이라고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는 1934년 6월 22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내리 212번지에서 출생했고, 그의 아호인 '솔래'는 송천리의 솔래(松川)에서 취한 것으로 유추했다. 민 박사는 해방 후 월남해 서울에 정착해 1952년 3월 중앙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20기로 입대해 종군했지만 부상으로 22개월 후 명예 제대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수학하며 1956년 3월 졸업 후 동 대학원에 진학해 1958년 3월 석사학위를 취득, 스코틀랜드 에버딘대학교 신학부에서 수학하며 마가렛 크리스티나 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동 대학원에 진학 1962년 5월 졸업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귀국한 민 박사는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해 신학대학원 과정에서 수학해 1965년 3월 졸업했고, 1967년 11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이상규 박사는 설명했다. 민 박사는 목사안수 후 이미 교수가 되었지만 영국 런던대학교 신학부로 유학해 1969년 8월 졸업했는데 이 때 로버트 토마스 목사(Rev. Robert Jermain Thoma)를 연구해 조명(민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와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던 토마스 목사가 웨일즈 출신이며, 에딘버러대학교 뉴칼리지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순수한 선교의 열정으로 인한 순교였다는 점을 밝힘)했고, 귀국 후 연세대학교의 교수직을 감당하던 중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서 1984년 3월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민 교수가 1958년 3월 연세대학교에서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대학원 졸업과 동시 불과 24세의 나이로 부산 분교의 전임강사로 임용된 것이라고 밝혔다. 민 박사는 1958년~1999년 8월까지 41년간 교수직을 감당했고, 연세춘추 편집 및 주간, 교목실장, 기독교문화연구소장, 신학대학장 등 보직을 맡았다고 밝혔다. 1984년에 4년간 교무처장, 1988년 4년간 및 1994년 2년간 연합신학대학원장, 1999년 8월 연세대학교에서 정년으로 은퇴하며 명예교수로 추대, 2002년 3월 서울장신대학교 제 2대 총장으로 4년 후 2006년 퇴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되었고,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원장과 명예원장, 고문 등을 감당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노력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상규 박사는 「한국기독교회사」 및 「한국민족교회 형성사론」, 「교회와 민족」 등 50여 권의 저서, 「에큐메닉스」 등 7권의 역서, 1975년 3월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이 발간하는 「신학논단」에 '루터의 내적 발전과 그 신학적 계보'를 발표 한 이래 1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민경배 박사의 학문적 발자취를 설명했다. 민 박사는 백낙준 박사와 더불어 1966년에 '한국교회사학회'를 조직해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신학회로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고, 1993년에는 연세교회사학회를 조직해 이 모체를 통해 1997년 6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을 설립해 초대 원장을 거쳐 명예 원장 혹은 고문으로 지속적인 후학 양성에 주력 중이라고 밝혔다. 학회 활동 외에도 서울YMCA연맹 이사 혹은 부이사장으로 활동, 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 혹은 순교자기념사업회 등에 관여하거나 학술적 자문 활동, 해외 강연에서의 강좌, 국제학술회 참여 등의 다양한 활동을 수행함으로서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로서 일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민 박사의 교회사연구에 대해 한국교회사 분야를 넘어서는 영향력도 있었지만 특히 한국교회사의 전 영역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 및 개척했고, 국내외 각종 도서관이나 역사관, 고문서관를 섭렵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의 저술목록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 선교, 예전, 인물, 기구, 교파, 민족 혹은 독립운동, 외교와 국제관계, 역사인식과 방법론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거나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연구되지 못했던 여러 분야를 선구적으로 연구했고, 한국교회의 기원부터 해방 이후 교회 현실의 문제까지 연구와 재 해석, 사실규명, 사실의 의미 석명 등을 진행했는데 예를 들면 민경배 박사가 연구했던 '로버트 토마스: 한국 초기 선교사의 한 유형과 동서 교섭의 문제' 등이 그러하다고 밝혔다. 한국 기독교의 시원을 서구형 기독교와 미국형의 교파형 선교로 설명하거나 역사환경과 신앙행태의 구조적 차이를 석명하는 역사지리학, 한국교회 찬송가사, 기독교 신앙과 민족문제에 대한 접근 등의 연구방법론은 모두 민경배 박사가 개척한 분야라고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 저 「교회와 민족」에 수록된 '한국 근대 문화와 기독교의 형태 및 그 영향범위'를 이 박사는 살피면서 기독교 접촉의 단계를 넘은 수용 및 토착화의 과정을 연구한 선구적 연구형태였고, 여기서 서북형(黃平道, 체제에서 소외된 서북지방 특유의 종교적 심정)과 기청형(畿淸, 京忠道, 유교 양반의 지식인 계층의 존왕적 충성)이라는 두가지 신앙 형태 혹은 수용 배경을 제시하고, 이것을 민족운동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했으며, 이런 구분은 이미 송창근과 김린서 등에서 보이지만 민 박사는 이를 실증적으로 체계적으로 도식화했다는 공로를 이 박사는 설명하면서 이런 분석의 틀 자체가 선구적 시론이었고, 후학들의 발전적 연구의 토대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 박사의 저술 「한국기독교회사」는 한국교회 역사 최초의 교본적 통사였으며, 여러 신학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는데 1968년 출간해, 1972년 증보판, 1982년 개정판, 1993년 증보판, 2007년 순한글판으로 발간되는 등 결국 690쪽의 대작으로 발전되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이런 류의 연구를 백낙준, 김양선, 정인과, 장정심, 변종호 등이 진행했지만 한국기독교회사의 체계적 통사로서는 볼 수 없었고, 민경배 교수의 것은 근대 이전의 기독교의 접촉부터 한국전쟁과 1960년대까지의 한국교회사에 대한 체계적 최초의 통사였다고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가 민족교회 또는 민족교회론을 주창함으로서 당대 주류였던 선교확장사에 대한 반대급부가 되어 논란이 되었고, 민족이라는 말에도 어감상 오해를 받았던 부분들이 있었다고 이상규 박사는 밝히고, 민 박사는 한국교회를 '민족교회'로, 한국교회사를 '민족교회형성사'로 인식함으로서 한국인 신앙공동체를 주체적으로 기술했다고 평가했다. 민 박사 이전의 기존 한국교회사의 연구는 '선교사적' 연구로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주체가 되고, 파송국의 자료를 의존한 역사기술이었지만 민 박사는 선교사 파송국 교회의 연장이 아닌 우리가 주체가 되어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민족교회사'로서 인식했고, 이는 새로운 연구접근방식이고 독창적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 박사의 '민족', '민족교회', '민족교회 형성론'은 배타적 민족주의나 문화민족주의, 혈통에 근거한 개념이 아니라 언어나 역사, 문화,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민족공동체로서의 교회이며, 역사와 고난을 함께 공유한 교회라는 점에서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민 박사는 각기 다른 선교부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어도 교파 중심의 교회가 아닌 민족공동체의 하나의 연합된 교회를 민족교회로 파악하고 있고, 탈 서양 선교사를 지향하되 친일로의 경도가 아니며, 친 동향을 지향하되 반 선교사로 경도되지 않는 성격이라고 이상규 박사는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의 교회관은 '신도들의 세계적인 공동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기독교회사는 그리스도라는 뚜렸한 역사상의 인물과 교회라는 신도들의 세계적인 공동체, 사(史)라는 현저한 개념들을 다루고 있으며,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도, 완전할 수도 없다는 명제 속에 어느 한 측에서 반대측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리하며, 완전할 수가 없을 수 밖에 없는 특정 논리를 들이대며 교회분열을 일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고, 민 박사는 순결과 연합이라는 두 축의 선택상황이라면 연합에 더욱 의미를 둔 것이라고 이 박사는 밝혔다. 한국교회사를 다루며 '외연과 내연'이라는 신앙현상학을 개발해 역사연구의 틀을 제시한 것이 민경배 박사의 가장 특별한 공로라면서 그가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기간 동안 순수한 신앙의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민족운동과 도덕운동, 사회변혁운동으로 나타나 한국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역사의 틀이라고 이 박사는 정의했다. 이 연구 틀은 한국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시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라고 했다. 그의 저서 「민족과 교회(1981년)」 등에 게재된 논문들에 '내연과 외연'이라는 상관구조를 해명하ㅁ녀서 1903~1907년 한국교회 부흥은 신앙의 내연 구도였고, 1919년 이래 민족독립운동으로 외연 되었으며, 또 다시 김익두나 이용도의 신앙부흥운동을 통해 내연화하고, 1935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적 전시체제 하에서 신사참배가 강요됨에 따라 마지막 저항으로 외연화 되는 구조인데 결과적으로 신앙운동이 민족운동의 동력이 되는 입체적인 해석방법이라고 이 박사는 일례를 들었다. 민경배 박사의 한국교회사 연구에서 내연과 외연의 현상학은 기독교인의 현존과 존재 양식, 사회 참여 양식에 대한 역사적 실례를 제시하고, 즉 그리스도인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신앙고백적 삶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사회변혁적 역할도 감당하게된다는 연구의 흐름이라고 이 박사는 설명했댜. 이 외연과 내연의 연구방법론은 현재도 민 박사의 제자들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에서 지속적으로 사용 및 적용하고 있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이상규 박사는 논문의 말미에 "우리가 배워하 할 것은 그의 저술이나 학문적 결실만은 아닐 것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 진리에 대한 확신, 후학들에 대한 애정,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으며, 실제 민경배 박사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학술활동이 아닌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성도들이 모여 성경이 시키는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지하고있다. ▲ 박명수 박사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발제를 담당했다. ▲ 박명수 박사는 '민경배 교수의 한국교회사학에 나타난 "민족" 이해'라는 제목의 발제를 담당했다. 박 박사는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단어라고 전제하고, 민족 또는 민족주의는 한국적 상황에서 외세나 제국주의에 대칭되는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공산좌경세력들이 미국을 향해 제국의 프레임으로 보고, 미국에서 온 서양 기독교 세력도 적대하려는 즉, 북한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을 중심한 서구문화의 전달자로서 한국 문명화에 앞장서면서 조국의 근대화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겼던 것이라고 박 박사는 평가했다. 부정적 측면으로서 좌측의 민족주의세력이 볼 때 한국교회는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큰 도전세력인 미국의 친미집단이자 반민족주의집단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원래는 개신교의 핵심 단어였다면서 기독교는 천주교와 달리 민족을 강조했는데 루터교가 독일민족주의와 손을 잡았고,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와 손을 잡는 한편 성경을 강조하느 개신교의 특징상 각국의 자국어성경을 사랑해서 개신교가 들어간 지역마다 민족의식이 함양되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민족은 한국적 상황에서도 우파의 단골개념으로서 빈부와 계급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개념으로서 서구제국주의에 맞서 국민을 단결시키는 용어라고 정의하고, 공산주의는 원래 민족을 부루주아의 용어로 이해하고, 무산의 노동자계급들이 주도하는 계급혁명의 완성을 진정한 해방이라고 주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좌익은 계급이라는 단어보다는 민족이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계급혁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차제에 우리는 한국교회와 민족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민경배 박사의 저작들에 나타난 민족 개념은 현재 일부가 통용하는 반제국주의적 이념 중심의 민족주의가 아닌 서구 기독교와 힘을 합해 민족을 부강케 만드는 현실적 개념으로서의 열린 민족주의였다고 분석했다.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를 정리하는 차워에서 초기 한국교회사가 시도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보고서를 중심으로 선교 역사를 정리했는데 이 같은 입장에서 초기 한국개신교사를 총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백락준박사였고, 그는 교회사는 근본적으로 선교사라는 입장에서 한국개신교사를 정리했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는 한국교회사를 선교사가 아닌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서술하려는 최초의 학자이며, 복음을 전해준 자의 자료 뿐 아니라 복음을 받은 자의 자료도 분석 정리했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을 논할 때 선교사들이 한국 민족교회의 주체가 되기는 힘들다는 한계가 있고, 그들이 한국 민족의 고통을 이해하더라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박 박사의 평가다. 그렇다고 민 박가 선교사들을 배타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며,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 못하더라도 한국인의 편이지 일본제국주의의 편은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은 "탈서양종교사(脫西洋宗敎史)하되 친일로 경도(傾倒)되지 않고, 친동양(親東洋)하되 반선교사로 기울지 않는, 강력한 탈권(脫圈) 에너지가 참된 의미의 '조선 민족의 교회'를 형성 해 나가는 저력"을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밝혔다.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이 마치 기존의 선교사관에 대한 도전인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주된 비판의 대상은 소위 진보신학의 역사이해에 집중되어 있다는 평가를 했다. 민 박사의 저서 「교회와 민족(1982)」이 출판된 때 그 민족교회론이 활발히 전개되던 때는 한국 신학계에서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이 강하게 대두되던 때였고,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은 그러한 주장들에 의구심을 들어냈다고 박 박사는 밝혔다. 한국교회사를 보는 시각 중 일부가 민중사적으로 보려는 것은 조선 말의 권력 체제에서 소외된 농민층의 저항이던 동학혁명의 계승운동으로 간주하려하고, 이는 한국기독교의 사명과 역사를 민중의 저항의 한계에서만 가치를 인정하려할 때 민중의 저항력 결속의 한 에너지에 기독교가 동원되었다는 식의 주객 전도의 왜곡이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측면이라고 제시했다. 민경배 박사의 민족은 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민족공동체이지 어떤 특정 계급을 배제하려나 지칭하려는 계급공동체가 아니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민 박사는 한국적 신학으로 한국교회사를 바라보려는 시각들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시각을 갖은 나머지 한국교회사가 선교사들에게 굴종된 역사이므로 무가치하고, 새롭게 한국인의 신학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초기 한국교회사는 무의한 잘못된 역사로 보여질 것을 우려하는 측면도 언급되었다. 박 박사는 민경배 박사에게 민족교회는 선교사와 대칭 개념이 아니며, 그는 교회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믿기에 교회론을 강조하는 이유도 되는데 그에게 교회는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례전에 참여하는 보편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의 민족교회론은 보편교회와 대칭되는 개념을 갖고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편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어떻게 한국교회가 주체적으로 소화했는가를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신교는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미국 개신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선교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러한 고종은 이러한 당시 개신교의 선교사들을 등에 업고 조선 민족을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보호받으려고 했기에 한국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와 동일선상에 둠은 몰 이해한 일이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진보주의적 교회사가들 상당수는 선교사를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교회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제국의 침략을 발견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사실 당시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아닌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침략에서 조선을 지켜줄 세력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에 대해 민경배 교수는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가 기여했다는 입장인데 민족주의라는 서구적 개념은 국민 각자가 주인 대접을 받는 민주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개신교가 조선에 등장하면서부터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에 거대한 에너지로 봤다고 박 박사는 평가했다. 조선의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방법은 스스로 전도하고, 자립하며, 통치하는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사용했고, 이것은 책임적 시민을 양성함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종교적인 것 외에도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경제 독립을 위한 실업교육에 앞섰는데 본래 자립적인 서북사람들은 기독교정신으로 무장해 민족산업을 형성함에 앞장 섰고, 이런 배경으로 근대적 의미의 시민의식을 진 민족운동을 벌일 수 있는 집단이 바로 개신교였고, 독노회를 1907년에 총회를 1912년에 조직함으로서 전국조직망을 갖춘 상태에서 3.1운동을 맞이해 전국적인 독립운동까지 기여했던 애국의식, 책임의식 등의 발로였다고 보는 것이 민경배 박사의 지론이었다고 박 박사는 평가하고, 민경배 박사의 민족교회는 체험적 신앙을 내연으로 해서 한국교회의 반경을 외연으로 확대해가는 복음주의적 교회임을 언급했다. ▲ 류금주 박사는 민경배 박사에게 교육받으며 습득한 교회사학 연구의 방법론을 설명했다. ▲ 류금주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원장)는 민경배 박사의 직계 제자로서 그에게서 수학했던 역사연구방법론인 '민경배의 한국교회사 서울의 구도: 신앙 내연(內燃)-외연(外延)'을 발제했다. 민경배 박사의 교회사를 보는 시각에서 내연(燃)은 불탄다는 것이고, 외연(延)은 이어지진다는 뜻으로서 이는 곧 신앙이 안에서 불타면 그 에너지가 반드시 바깥으로 나오기 마련이라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는 1934년 생으로서 당시에는 일제 치하로 나라가 없던 시절이었고, 출생된 해의 한국교회는 선교 50주년이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공산정권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월남했고, 수도 서울에 정착해 교회와 조국의 근대화와 발전상을 모두 경험한 교회사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모두 경험한 교회사 박물관 급의 유능한 교회사학자라는 설명을 했다. 류 박사는 민경배 박사가 한국교회사학을 연구해 온 것은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로 개화기부터 근세, 현대까지 한국의 모든 역사와 문화, 학문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였음을 체험했고, 한국교회가 잘 됨으로서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 전세계에 밝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한국교회사를 연구함에 있어 복음과 교회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되었던 것이 큰 동기였다는 방향으로 발제를 이어갔다. 민 박사의 교회사에 대한 사상은 연세대학교에서 평생을 교회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게 했고, 한국교회사학연구원(초대원장 민경배, 이사장 박옥선)을 지난 1997년 6월 창립해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교회사학을 연구하고, 신앙과 교회사를 기반한 교제를 진행해오기도 했으며, 동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 3국의 교회사가들을 모아 '동북아시독교사학협의회'를 구성해 10년간 교류해오는 등 사명을 감당했다고 류 박사는 회고했다. 민경배 박사는 11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역사방법론을 지난 2018년 약 1년간 연구발표했다면서 동 방법론은 정량론, 내연외연과 신앙현상학, 신앙지리학, 실체론, 그림처럼 아름답다, 질문-에듀스, 전역사체계화, 입체론, 유기역사론, 역사-시기 완충론, 역사-등거리론 등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류 박사는 실체론에 대해 사크라멘토 곧 성례는 예수그리스도의 역사 통치의 역사내 지점으로서 역사는 허상이 아닌 예수께서 실재 임하셔서 다스린다는 실체를 말함이라고 설명했다. 역사-등거리론은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집행 장소로서 각 시대와 각 존재에 독자적 사명을 분여하심으로서 역사를 경륜해가시는 것이며, 사명 받은 존재는 자신의 영역에서 주어진 사명과 기업, 자산과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개념임을 설명했다. 한국교회사를 정리함에 백낙준 박사는 선교사관, 주재용 박사는 민중사관, 민경배 박사는 민족사관이라고 구분하고, 선교사관과 민중사관은 선교의 입장 또는 민중의 입장으로서 사관을 정해놓고 고찰하는 연역적 측면이 있고, 민경배 박사는 연구해보니 신앙과 함께 민족이 각 시대의 실체로 부각되었다는(1880~1960년대 한정) 귀납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류 박사는 분석했다. 정확히는 민경배 박사의 민족사관은 민족교회사관으로서 독자적인 것이 아닌 교회와의 관계에서 고찰되는 것이며, 그의 민족교회사관을 1960년까지 한정하는 이유는 그 '민족'이라는 말이 (특정 시대부터) 기독교회와 무관하게 사용되고, 용법 또한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교회사연구방법론에 수학적 단어인 '함수'라는 개념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류 박사는 이 역학 함수관계를 교회를 중심으로 4방향에서 선교사와 신앙, 일본, 민족, 초월적, 서양적, 동양적, 역사적 요소가 상반되게 위치하는 방식임을 설명했다. 즉 신앙은 초월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민족은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 친선교사는 반일을 전제하고, 친일을 포함한 동양적 기독교는 반선교사적 경향으로서 이를 요약하면 신앙과 민족이 상반되고, 선교사와 일본이 상반되는 방식으로 시간 내에서 교회와 신앙, 세상은 영향을 주고 받은 방식이라고 류 박사는 요약했다. 그 상호작용은 늘 교회와 민족은 한국사에서 초월적 신앙 차원에서도 묘하게 긍정적 교섭이 확인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연과 외연의 상관관계에 있어 신앙이 안에서 불타오르면 자동적으로 바깥으로 영향이 이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신앙이 먼저 내면에서 불타오른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은 신앙의 영역이었지만 시기적으로 을사늑약의 주권상실 시기였고, 신앙 자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으로 번지는데 이 때 한국교회가 3.1운동을 주도하게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원점, 하나님께 대한 충성 그 자체는 역학상 결과적으로 일제의 국체에 대한 민족의 저항 에너지와 동일시되는 그런 관계라는 설명이다. 신앙의 현상학은 안에서 불타오른 신앙이 외연으로 번질 때 각자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현상화하는 것으로서 같은 신앙 에너지가 신앙운동자체로 발산도 하지만 때로는 도덕 운동, 민족 운동, 사회 변혁력으로 작동하는 것인데 故 주기철 목사는 독립운동을 외치던 사람은 아니었으나 신사참배를 반대함으로서 일본 제국의 핵심인 천황 숭배에 저항하고, 일본 정부의 국체에 정면 도전하는 '반일 민족주의자'로서 현상화한 그러한 관계라고 류 박사는 밝혔다. 민경배 박사의 역사관은 나무와 열매 중 나무가 우선하고, 신앙이 선행해야 실천이 이뤄지거나 안에서 신앙이 불타올라야 저절로 외부로 들어나거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그 가지인 성도들이 자연히 열매를 맺는 내연과 외연의 구도, 직접성, 자동성 등은 지극히 성경적인 역사관이라고 류 박사는 밝혔다. 류금주 박사는 내연과 무관한 민족운동은 한국 교회사의 주류에서 사라졌고, 민족에 대한 주목이 1960년대까지로 한정한다고 해도 민경배 박사의 내연과 외연, 신앙의 현상학 등 다양한 교회사연구의 구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여전히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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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참석자들이 창립대회 직후 예배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립대회 직후 행사장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40여명 참석…공동 발기인에 20개 교단 소속 120명 참여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모임인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이하. 기평넷, Korean Ecumenical Peace Network)가 5월22일 워싱턴 디씨 소재 연합감리교 예배실에서 창립되었다. 이날 창립예배와 총회에는40여명이 참여했으며 공동 발기인에는20개 교단 소속120명이 참여했다. 북미 한인 기독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대회장 김정호 목사(UMC)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환영사에서 김정호 목사(UMC)는"남북 관계가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의 시작이 참 귀하다."고 밝히고"우리가 그동안 평화에 많이 목말랐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조국 한반도 평화의 그날이 오면 오늘의 이 모임이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는 겨자씨 만한 기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창립을 환영했다. 예배는 김대호 목사(PCUSA), 손태환 목사(PCUSA), 정영민 목사(RCA), 조동호 박사(퀸즈대) 등 연합 찬양팀의 인도로 힘차게 시작되었다. 이어 조원태 목사(PCUSA)의 사회와 김기리 신부(성공회) 박상희 목사(기장)의 축도로 이어졌고, 김정호 목사(UMC)가"다시 또 우물파는 사람들" (창세기26:12-35)을 주제로 설교했다. 이어서 발제 순서에서는 김충성 목사(제자회)가'북미 에큐메니칼 평화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김진양 목사(UMC)는'북미 기독교 평화네트워크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김충성 목사는60년대 창립된 ‘북미기독학자회’와70년대 창립된 ‘미주 목요기도회’가 한국의 민주화, 인권, 평화통일 운동과 연대하여 기도하고 행동했던 역사를 소개했다. 김진양 목사는"북미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삼았으며 평화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밝히고"분단79주년을 맞이하는 조국이 미, 중의 패권경쟁과 핵무기 및 군비경쟁, 군사훈련 등으로 인해 대결과 갈등이 더욱 심화된 이 시기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연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진행된 총회에서는 정관과 창립선언문을 통과시켰고 초대 회장에 김정호 목사(UMC), 초대 사무총장에 조원태 목사(PCUSA)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창립 발기인120명의 이름으로 작성된 창립 선언문에서는"그동안 기독교인들로서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사명을 우리가 잘 감당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다짐한다"고 밝혔다. "하나, 우리는 북과 남 정부가 이전의 평화통일 정책으로 돌아가 대화와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미국과 기타 강대국이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대화와 정책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교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위한 연대와 협력을 이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기평넷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에서 기도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며, 다양한 교단과 학계 그리고 단체들과 연대하여 평화를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불어 기평넷은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한120명을 평화용사300명으로 확대할 것이며, 제2차 총회는 내년4월에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열기로 결정하였다. ▲초대사무총장 조원태 목사(PUCSA)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여자들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참여자들이 연방하원 Bill Foster 의원 사무실에 찾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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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Focus] 휴스턴 대형 '레이크우드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
▲사진 왼쪽부터 트로이 피너 휴스턴 경찰서장, 조엘 오스틴 레이크우드 교회 목사, 존 휘트미어 시장, 사무엘 페나 소방서장이 11일 오전 레이크우드 교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후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Religion Focus]휴스턴 대형 '레이크우드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 ‘달갑지 않았던 목사’ 아들에서 인기 설교자로…총격 사건으로 새 ‘스포트라이트’ 메가와트 미소 등 기독교 브랜드化…십자가·예수상 등 전통적 종교 상징 일체 없는 지구본 앞에서 설교 비평가들, “솜사탕만 있을 뿐, 고기는 없어‘ 혹평도 휴스턴, 텍사스(김정태 기자)-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는 미국의 종교에서 가장 친숙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일요일 오전(11일 현지시간) 36세의 여성이 총기를 난사해 5살 소년과 50대 남성에 중상을 입힌 끝에 비번 경찰근무 경비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한 휴스턴 대형교회(Lakwwood Church)를 이끌고 있는 목사는 메가와트 미소와 웨이브진 머리, 인기 있는 기독교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60세의 그는 이전 농구 경기장에서 매주 약 45,000명의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설교를 통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오스틴은 아버지로부터 소명을 물려받아 신도들의 규모를 거의 5배나 늘렸다. 그의 저서 "Your Best Life Now: 7 Steps to Living Your Full Potential(당신의 최고의 삶 지금: 당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7가지 단계)"는 거의 300만부가 팔렸다. 닐슨 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에 오스틴은 미국의 어떤 설교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으며 전체 가구의 95%에 달했다. 수년간 그의 봉사는 백인, 흑인, 히스패닉을 거의 동등하게 혼합시켜 왔다. 이는 전국 대부분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다양성이었다. "웃는 설교자"라는 별명을 얻은 오스틴은 2004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여유로운 설교 스타일은 격렬한 설교보다 기분 좋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느긋한 설교 스타일은 또한 불타는 설교보다 기분 좋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오스틴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서 자신의 1천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교회 공동체가 "황폐해졌다"고 했다 오스틴은 “이러한 어둠에 맞서 우리는 믿음을 굳게 잡고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며 “하나님께서는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이 비극을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일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 오스틴은 자신이 설교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이렇게 큰 무리를 인도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스틴은 1999년 아버지 존 오스틴(John Osteen) 목사가 돌아가시기 전 일요일까지 설교한 적이 없었고, 그런 소망도 없었다고 말했다. 존 오스틴은 1959년 버려진 사료 상점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기독교 레이크우드 교회( Christian Lakewood Church)를 설립했다. 오스틴은 2004년 AP 통신에 그의 아버지의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뒤에 있는 것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2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오랄 로버츠 대학(Oral Roberts University in Tulsa, Okla)에서 공부를 마친 후 텔레비전 제작자로 아버지의 참모진에 합류했다. 아버지 오스틴 목사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설교자의 아들은 마지 못해 강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아버지는 병원 침대에서 전화로 아들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오스틴은 2004년 “간호사들은 그가 그렇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존 오스틴은 5일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그가 설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냥 속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Osteen to task for downplaying the sinful nature of humanity and the need for repentance (오스틴이 인류의 죄악된 본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경시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스틴의 어머니인 도디 오스틴(Dodie Osteen)은 2005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e don’t preach the gospel sad, we preach it glad.(우리는 복음을 슬프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전한다)"고 말했다. 댈러스에 본부를 둔 종교감시단체 트리니티(Trinity) 회장 올레 앤서니는 2004년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To me, it’s cotton-candy theology, There’s no meat. They just make everybody feel good. (나에게 그것은 솜사탕 신학이다. 고기는 없다. 그들은 단지 모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줄 뿐)"이라고 했다. 오스틴은 휴스턴 로켓츠(Houston Rockets)의 이전 홈구장을 교회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1990년대에 두 번의 NBA 타이틀을 획득했고, WNBA의 휴스턴 코메츠(Houston Comets)는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곳은 오스틴이 미래의 신부인 빅토리아(Victoria)와 함께 휴스턴 로켓츠 농구 경기를 보러 나갔던 첫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이전 경기장을 교회로 바꾸는 데는 15개월이 걸렸고 완성하는 데 약 7,5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2005년 개장 당시에는 두 개의 폭포, 세 개의 거대한 TV 화면, 록 콘서트에 버금가는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12열의 풍부한 보라색 좌석이 있는 2개의 합창단 로프트가 폭포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살아있는 나뭇잎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십자가, 신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기타 전통적인 종교적 상징은 없었다. 오스틴은 2005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그런 상징을 한 번도 표시한 적이 없으며, 단순히 전통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오스틴은 천천히 회전하는 커다란 황금색 지구본 앞에서 설교한다. 교실과 함께 예배당, 세례 장소, 청년들을 위한 모임 공간, 교회의 텔레비전 방송 활동을 위한 전체 층이 추가되었다. 오스틴은 2004년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한테는 이곳이 좋은 레스토랑인 것 같다. 좋은 음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서비스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고양시켜야 한다. 그들은 '‘You know what, I feel better today(오늘 기분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하며 떠나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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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하심 깨닫고 전하기로
- ▲ 류금주 원장(사진 중앙)이 수련회 참석자들과 후원자 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은 제 2024년 여름수련회를 대덕한빛교회(김은섭 목사 시무) 수양관인 '해울동산'에서 지난 8월 16~17일간 갖고, 하나님은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의 미래를 예비하실 뿐 아니라, 창조주이시므로 역사와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시기 때문에 본 회의 회원들은 한국교회사가들로서 그 내용과 방향, 사명감 등을 발견해 실천하고, 성도들과 한국교회에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김은섭 박사는 대덕한빛교회 담임목사이자 한교사 대표고문으로서 첫 강연을 담당했다. 김은섭 박사는 한교사를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에 교회사를 연구하는 시초가 놓여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현재 임상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구 한말에 그리스도교를 한국에 보내주셨고, 당시 예수를 믿은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도 했지만 성경말씀에 따라 한국을 개화했고, 독립운동에 매진하면서도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알려줌으로서 사회적 및 신앙적 구심점을 구성했던 것을 본받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고 성경과 학문연마, 말씀의 실천에 매진해야함을 강조했다. ▲민경배 명예원장은 한국인들이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3년 정전협정과 1952년 한국교회가 분열 되는 등 한국전쟁은 민족과 교회의 분열을 촉발시킨 면이 있다면서 그리스도인 끼리 빨갱이로 호칭하며 탄압하던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등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 '눈을 들어 하늘 보라(515장 찬송가)'는 찬송을 외치면서 신앙적 승화시키는 시절이었음을 밝혔다. 천주교가 국내에 전래되어 영동지역에 퍼지자 1758년 국조보감에 산골까지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전국 방방곡곡에 영향을 미친 전국구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벌어진 후 1930년부터 1945년까지 15년간 신문에는 매일 같이 한국인들이 굶어죽은 소식이 나왔을 정도로 비참한 나라였다면서 민 박사의 출신년도인 1931년은 노구교사건으로 만주사면, 중일전쟁 등이 발발했는데 당시 한국인들은 전량상태(양식이 전혀 없음)였기에 국민들은 패배주의와 폐허주의, 허무주의에 빠졌지만 한국교회는 온 국민에게 힘을 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라(515장),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471장)', '아침 해가 돋을 때(225장)' 등을 작곡해 보급함으로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승화시키며 희망을 줬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실제의 피사체를 해석해서 아름다운 부분만을 강조함으로서 실제의 모습보다 아름다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교회사가들이 과거의 한국교회역사를 연구해 현재 시대에 내놓을 때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교훈적인 요소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밝은 사회가 됨은 물론 바람직한 신앙의 모범도 제시할 수 있기 마련이기에 우리들이 이러한 일에 최선을 다 하자고 촉구했다. 한국교회사학자 중 시니어그룹인 민경배 박사, 이만열 박사, 윤경로 박사 등의 연구자로서의 공로가 매우 컸지만 이제는 후학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하는 시기에 왔기에 후배 사학자들이 더욱 분발해 복음전파와 신앙증진에 노력해주길 당부했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하고, 우의를 다지자고 제안했다. ▲류금주 박사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경영'을 주제로 강의했다. 류 박사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볼 때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경영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볼 때 시제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눠서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이 과거시제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경우 본인의 출생시를 전혀 인지를 못하며, 오직 부모 등 주변인들이 알려준 정보를 믿어야하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뜻의 '만유'에 해당하기에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알 수 있음을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세계(천사의 나라)를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사후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것들이 궁금한데 이는 철학의 3대질문과도 겹치는 부분으로서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대답을 주지 못했던 것이 인류사라고 설명했다. 위의 3대 질문은 오직 성경에만 명확히 나왔으며, 사람이 사후에 영과 혼, 육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때가 되면 몸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막살면 안되고, 오직 성경말씀과 신앙 안에 살아야하며, 그렇지 못하고 사후에 뒤늦게 천국을 발견하더라도 기회는 없기에 우리들은 부활함이라는 최종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세계(아담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종말의 때가 정해져있다는 것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을 통털어 제시된 사실이며, 이 때 하나님의 자녀는 천사보다도 우월한 존재로서 그 순위가 사람 밑에 천사, 동식물, 마귀 등의 순서였지만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마귀의 밑에 처하게된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메시야의 나라를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후에 반드시 부활하기 때문에 우리의 최종 목표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며, 그 때는 우리 각자가 왕노릇 하는 때가 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린도전서 15장 40절 이하에 부활의 모습들이 영광스러운 모습,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뉜다는 점이 제시되어 있다며, 우리 한교사의 회원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경영을 염두하고, 성경과 세상, 교회를 연구해 연구결과물들을 생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개회예배는 김은섭 박사의 강연과 여선암 국장의 사회, 한정열 목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둘 째 특강은 민경배 박사의 강연과 정용 박사의 인도, 유정우 박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셋째 특강은 류금주 박사의 강연과 정용 박사의 인도, 조점숙 박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이윤희 목사는 여정 중 식사기도를 조점숙 박사는 레크리에이션 진행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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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하심 깨닫고 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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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 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종교 간의 화합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지요.” 15일 경기 남양주 성관사(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난 주지 성진 스님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조직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 이사를 맡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한 이 대회는 교황도 참석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가톨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국제 행사. 한국 천주교는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달 중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조직위원회 창립식을 열고 이사진을 선임했다. 성진 스님은 현재 선임된 이사 중 유일한 비 가톨릭계다. 성진 스님은 “그동안 신부, 목사, 교무(원불교) 등으로 구성된 만남중창단 활동을 통해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것을 좋게 본 것 같다”라며 “종교와 세대를 뛰어넘는 온 국민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외국처럼 큰 사회 문제로 비화 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갈등과 마찰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 공항,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트리를 잘 보면 십자가가 없어요. 대신 별이 달렸지요. 공공기관이 왜 특정 종교를 홍보하느냐는 항의가 심하거든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놓고 마찰을 벌이는 곳도 있고요. 지금부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더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진 스님은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인들부터 벽을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성진 스님 등 만남중창단은 26~27일 미국 뉴욕 UN 본부 처치센터(Chuch Center for the United Nations)에서 열리는 제5차 국제평화회의(2024 ICCGC-CoNGO)에서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노래한다. 또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버스킹 공연을, 뉴저지 사찰과 한인 성당에서는 청년들과 토크 콘서트도 갖는다. 성진 스님은 “종교 간 화합의 첫걸음은 목사·신부·교무·스님 등 각 종교인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4대 종교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제가 타 종교 행사에 참여해 돕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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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 "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최근 미국에서 교회 등이 시설 부지를 저소득층 주택 건설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와 대조적인 종교단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외신들은 '이그비(YIGBY·Yes, In God's Backyard)'라고 부르고 있다. "신의 뒷마당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의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에 따르면 이그비 현상은 미국의 저소득층 주택 부족과 교회 공동화 현상이 맞물려 나왔다. 지난 10년간 미국 집값이 42%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이 됐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은 700만호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종교 단체들은 신자 수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미 공공 종교연구소에 따르면 1999년 당시 미국인의 70%는 예배 등 종교 활동을 했으나 2020년 이 비율이 47%로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 19의 여파로 신도 상당수가 온라인 예배를 택하면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 결과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미국인 비율은 31%에서 24%로 줄었다. 교회 입장에선 대규모 시설을 유지할 필요가 줄었단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교회의 65%는 코로나 이후 헌금이 줄어든 반면, 시설과 주차장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은 늘고 있다고 복스가 전했다. 때문에 미국에서 종교시설 3분의 1이 향후 몇 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복스는 "10만곳이 넘는 교회·유대교 회당·모스크가 문 닫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단 한 곳, 워싱턴 DC 절반 크기 부지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만 해도 일부 교회는 부동산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해 이득을 봤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종교단체는 매수자를 찾지 못해 '급매' 간판을 내거는 처지다. 이에 종교단체들은 비영리 단체, 지자체 등과 협력해 활용도 낮은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샌디에이고 흑인 교회인 베델 AME의 하비 본 수석 목사는 재향군인·고령자를 위한 주택 건설에 교회 부지를 제공하기로 하고 지난해 기공식을 했다. 교인 650만명을 거느린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교회(COGIC)'의 경우, 보유 부지 면적만 2만1000에이커(약 84㎢)로 워싱턴 DC의 절반에 달한다. COGIC 측은 성명에서 "저소득층 주택 건설은 교단 사명의 핵심 부분이다"고 밝혔다. 농구선수 출신의 사업가인 매직 존슨,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 등 유명 교인들이 프로젝트에 수백만 달러를 보탰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이전 2000만원 VIP루트 나왔다…"대선 전, 넘자" 美국경 몰린 중국인 지역 사회 차원에서도 주택·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 단체와 윈-윈(win-win)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미국 각지에서 이그비 현상과 관련한 법안이 최근 발의됐거나 검토 중이다. 복스에 따르면 지난 3월 주택·도시 문제 위원회 위원장인 셰로드 브라운 상원의원(민주·오하이오)은 의회에 이그비 법안을 제출했다.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종교 단체에 보상금을 주며 독려하는 내용이 골자다. 브라운 의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저렴한 집을 구하는 건 너무 어렵다"면서 "법안을 통해 교회·사원·유대교 회당 등 종교 단체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세워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종교적인) 신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애틀랜타·샌디에이고 등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했고, 메릴랜드·뉴욕·버지니아도 관련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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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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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시국회의' 구성 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목사, 이하 NCCK) 실행위원회는 산하의 프로그램위원회인 '정의평화위원회'와 '화해통일위원회'가 'NCCK 시국회의' 구성 건의 안을 지난 7월 25일 정기실행위원회에 상정했으며, 표결로 가결됬다. 발족 기자회견과 시국토론회, 시국기도회 등의 활동계획이 공개되었으며, 동 안건에 대해 원안 대로 가결하자는 측과 프로그램위원회의 설치 목적이 존재하므로 위원회 차원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의견, 위원회를 넘어 NCCK 전체의 활동으로 하기는 여러 이유로 부담이 있다는 의견, 현재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준비로 여유가 없다는 등 다양한 논의가 장시간 진행되었지만 표결 결과 시국회를 구성키로 했다. 한편 실행위원회는 지난 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다루지 못했던 헌장세칙 개정안을 가결했고, 추가 경정 예산안과 교회협인권센터(이사장 이승렬 목사)가 요청한 명칭변경을 위한 대화위원회 구성의 건 등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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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시국회의' 구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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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하심 찾으려 노력하자
- ▲ 사회는 고사무엘 목사가 담당했다. ▲ 설교는 정용 목사가 담당했으며, 달란트의 비유를 제시했다. ▲ 축도는 민경배 명예원장이 담당했다. ▲ 류금주 원장은 광고순서를 통해 감사를 표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은 제 304회 월례세미나와 예배를 서현교회당에서 지난 7월 11일 개최했다. 예배는 고사무엘 목사의 인도, 민경배 명예원장의 축도, 정용 목사의 설교 등으로 진행되었다. 정용 목사는 마태복음 25장 25~30절 말씀을 기초해 '한국교회사학연구원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담당했다. 정 목사는 본문 내 달란트 비유 중 주인에게 5 달란트, 2 달란트를 위임받은 종은 이윤을 남겼지만 1 달란트를 받은 종은 아무것도 안하고 핑계를 대는 상황을 설명했다. 5 달란트, 2 달란트의 종과 1 달란트의 종이 얻는 보람이라면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악한 종으로 지목된 1 달란트의 종은 주인을 평생 섬겼으되 그 종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무작정 섬긴 경우인데 한교사의 회원들도 교회사학을 연구하며 충성하는 사람들로서 말씀을 쫒고, 교회사를 연구하는 복음의 사역을 진행하면서 진정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목사는 신학생 시절 목회자가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면서도 이해도 안되었는데 임상목회자가 되고 나니 교회 현장에서 복음을 따르기 보다는 명예나 경제 등 부차적인 것들을 더욱 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한교사에는 평생 복음을 위해 살았고, 교회사와 학문을 위해 투쟁해 온 학문의 거목 민경배 박사 같은 분이 있다며, 그와 동행하는 회원들로서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을 본받아 후학들이 자신을 가다듬음으로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런 발자취를 남기자고 강조했다. 주인은 1 달란트의 종의 달란트를 충성된 종들에게 옮기는 것을 경험하는데 여기 모인 한교사의 회원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현재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축복을 사용해 최선의 충성, 봉사를 하는 삶을 살자고 요청했다. 류금주 원장은 광고를 통해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올해 여러 차례 큰 행사들이 있다며, 많은 회원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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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하심 찾으려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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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회운동 온라인 보존
- ▲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이 NCCK아카이브 사용법을 시연했다. ▲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1백주년을 기념함 보다는 반성과 미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규무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사진 왼쪽)은 김종생 NCCK총무(사진 오른쪽)에게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이순자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가운데)가 동행했다. 1924년 9월 24일 설립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이하 NCCK)'가 오는 9월 24일이면 설립 100주년을 맞게된다. NCCK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해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성도들의 삶은 물론 실천적인 부분에서 한국 개신교는 선교와 교육, 문화, 구제, 의료, 민주화, 인권, 통일,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했던 모습들을 담은 다양한 자료들을 데이터화시켜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해 모든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 문화관광부의 후원으로 진행했던 온라인 아카이브에 수록된 자료는 총 24,798건(문서는 23,398건 및 사진그림류는 1,400건)이 수록되어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는 지난 6월 27일 NCCK가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더라운지에서 오픈 기념식을 갖음으로서 공식적으로 온라인에서 공개되었다. NCCK는 수년 전 동 사업을 준비하기 전 에큐메니칼사역(교회연합)을 진행해오면서 축적된 수 많은 자료들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한규무 박사)에 제공해 분류 가공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후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사업의 방향이 확대되었고, 이후에 설립된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및 IT기술을 제공한 아카이브랩 등의 관련기관들과의 협조체제를 가져오는 등 전체적으로는 2019년부터 약 6년간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한국교회가 이 땅에 함께 지낸 역사가 매우 길며, 신앙은 물론 한국인들을 위한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아직도 세상과의 소통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아카이브 개소식을 갖음으로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나눔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열렸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32년 NCCK는 사회신조를 발표하면서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일을 각오했던 일도 있다면서 NCCK의 백주년을 맞는 지금 미래를 위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의 아카이브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의 이야기를 듣자면 한국교회가 성찰이 없이는 새 백년을 맞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면서 뼈아픈 반성을 기반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백주년 선언을 준비중이기에 한국교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봉사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종생 NCCK 총무는 아카이브를 사용해 1972년 전국신자운동을 검색해보니 NCCK가 지난 25회 총회에서 적극 노력해야한다는 결의를 했던 것을 불과 5분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처럼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함에 큰 도움을 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아카이브랩,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등에게 감사하며, 이에 대한 감사패 시상을 할 예정임을 밝혔다. 안교성 목사(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는 NCCK 아카이브는 한국교회의 지난 1백년간의 사역을 모두에게 알리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이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원활한 활용과 유지보수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야 한다고 평가하는 발제를 담당했다.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는 컴퓨터를 사용해 아카이브의 사용을 설명하는 시연회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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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회사관 인정 받음에 감사"
- ▲ 안준배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이사장이 시상을 앞두고 의의를 설명하고, 개회선언을 했다. ▲ 좌로부터 안준배 이사장, 임호빈 사모, 민경배 박사, 김종대 장로. ▲ 안준배 이사장이 민경배 박사에게 제 16회 세계성령봉사상을 시상했다. ▲ 민경배 박사와 임호빈 사모. ▲ 민경배 박사의 제자들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이하 한교사) 회원들이 시상식에 참여했다. 앞줄 왼쪽부터 권평 전 한교사 원장, 임호빈 사모, 민경배 박사, 류금주 한교사 원장, 이윤희 목사(전 군종감).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교회사학연구원 명예원장)는 한국교회의 교회사학의 기초를 놓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는 학자로서 사)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이사장 안준배 목사, 명예총재 이영훈 목사)로부터 제 16회 세계성령봉사상을 지난 9월 5일 CCMM빌딩에서 수상했다. 이영훈 명예총재는 민경배 박사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교회사학분야에 기여도가 컸기에 교육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김종대 장로(전 해군 1함대장)는 대한민국 해군의 장교로서 조국수호에 기여했으므로 보훈분야 등에 각각 공로를 했기 때문에 세계성령봉사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이 모든 사역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수행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공로자라고 기념사를 통해 밝혔다. 소강석 목사(총재)는 민경배 박사는 민족교회사의 시각으로 한국교회사를 연구해 큰 성과를 남겼고, 김종대 장로는 대한민국 해군으로서 평생을 바쳐 안보를 지켜왔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농력으로 된 일들로서 이날 행사에 참석자들도 성령을 받아 주님의 일을 완수해주기를 바란다고 설교를 통해 촉구했다. 민경배 박사는 전통있는 단체인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에서 제 16회 세게성령봉사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본인이 90세가 되는 생일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어 더욱 의미가 컸다고 기쁨을 표했다. 민 박사의 초기 교회사학연구자 시절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한국교회사를 다룸에 있어 선교사(史)적인 입장(내한 선교사들의 자체자료를 중심)이었던 것에 반해 자신은 민족교회사관(기독교복음 원류와 한국적 상황)을 중심으로 연구했는데 안준배 이사장이 그런 점을 모두 알고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으로 이해하며, 그러기에 더욱 뜻 깊은 '세계성령봉사상'으로 자부한다고 밝혔다. 맨체스터 가디언지 등 세계유수의 언론은 이미 15년 전부터 한국교회가 향후 세계선교를 책임질 것으로 예상했고, 뉴스위크지는 한국교회가 콘스탄틴대제의 사역에 버금가는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보기도 했는데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를 통해 그런 기적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종대 장로는 수년 전 지병으로 수술을 했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본인이 섬기는 새에덴교회에서 장군 예편자로서 전 세계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사역을 진행하며 보훈의 역할을 했던 추억이 있다며, 이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노구에 몸이 부족했지만 담임 소강석 목사의 따뜻한 격려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됨을 감사하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복음사역에 노력하겠다고 글과 영상을 통해 밝혔다. 시상식은 강헌식 목사(이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은대 목사(충주그리스도교회)의 기도, 윤민자 목사의 성경봉독, 테너 박주옥과 소프라노 임경애의 특송,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의 '성령으로 봉사하라'라는 제하의 설교, 이영훈 명예총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의 기념사, 안준배 이사장의 선정보고 및 시상, 김성길 목사(시은소교회)와 배진기 목사(안디옥교회)의 축사, 김창곤 목사(서초순복음교회)의 광고, 김규 목사(양평동교회)의 축도 등으로 진행되었고, 행사 후 축하케익 절단식도 진행되었다. 사전 순서로 전담양 목사(임마누엘교회)의 축시 '다소니'가 낭독되었고, 테너 박주옥과 빅콰이어의 특송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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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회사관 인정 받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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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교제를 갖다
- 제27회 동유럽한인선교사대회 (회장 윤상수선교사)가 지난 8월 13~16일까지 불가리아 사모코프에서 '내 얼굴을 찾으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20개 국가에서 240여 명의 선교사들과 선교사자녀들(이하 MK)이 함께 참석해 예배와 교제를 통해 큰 은혜와 쉼을 얻는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그간 만나지 못했던 동역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교사들의 영적 충전을 위해 길요나 목사(왕성교회), 박동은 목사(프랑크푸르트사랑의교회), 안요한 목사(새빛맹인선교회), 이여백 목사(주사랑선교교회)가 주 강사로 나섰고, 전기현 장로와 정승식 장로가 특별 간증자로 섬겼다. 그리고 황경애 선교사의 자녀교육 특강과 세기총과 함께 한 ‘한반도 자유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통해 더 풍성한 은혜를 나누었다. 특별히 이번 대회에서는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포럼도 개최하였다. 동유럽의 복음화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온 선교사들은 예배의 감격 가운데 영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고, 불가리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육신의 회복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또래들을 만난 MK들은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순회선교단의 섬김을 통해 복음을 더 깊이 경험하는 은혜를 누렸다. 그리고 MK들의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소정의 축하금을 전달하였다. 선교사들은 영적인 충전과 육신의 회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 사명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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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교제를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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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하심 깨닫고 전하기로
- ▲ 류금주 원장(사진 중앙)이 수련회 참석자들과 후원자 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은 제 2024년 여름수련회를 대덕한빛교회(김은섭 목사 시무) 수양관인 '해울동산'에서 지난 8월 16~17일간 갖고, 하나님은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의 미래를 예비하실 뿐 아니라, 창조주이시므로 역사와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시기 때문에 본 회의 회원들은 한국교회사가들로서 그 내용과 방향, 사명감 등을 발견해 실천하고, 성도들과 한국교회에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김은섭 박사는 대덕한빛교회 담임목사이자 한교사 대표고문으로서 첫 강연을 담당했다. 김은섭 박사는 한교사를 통해 한국 그리스도교에 교회사를 연구하는 시초가 놓여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현재 임상목회자로서 하나님께서 구 한말에 그리스도교를 한국에 보내주셨고, 당시 예수를 믿은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도 했지만 성경말씀에 따라 한국을 개화했고, 독립운동에 매진하면서도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알려줌으로서 사회적 및 신앙적 구심점을 구성했던 것을 본받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고 성경과 학문연마, 말씀의 실천에 매진해야함을 강조했다. ▲민경배 명예원장은 한국인들이 6.25 전쟁이 발발한 이후 1953년 정전협정과 1952년 한국교회가 분열 되는 등 한국전쟁은 민족과 교회의 분열을 촉발시킨 면이 있다면서 그리스도인 끼리 빨갱이로 호칭하며 탄압하던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등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 '눈을 들어 하늘 보라(515장 찬송가)'는 찬송을 외치면서 신앙적 승화시키는 시절이었음을 밝혔다. 천주교가 국내에 전래되어 영동지역에 퍼지자 1758년 국조보감에 산골까지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전국 방방곡곡에 영향을 미친 전국구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벌어진 후 1930년부터 1945년까지 15년간 신문에는 매일 같이 한국인들이 굶어죽은 소식이 나왔을 정도로 비참한 나라였다면서 민 박사의 출신년도인 1931년은 노구교사건으로 만주사면, 중일전쟁 등이 발발했는데 당시 한국인들은 전량상태(양식이 전혀 없음)였기에 국민들은 패배주의와 폐허주의, 허무주의에 빠졌지만 한국교회는 온 국민에게 힘을 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라(515장),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471장)', '아침 해가 돋을 때(225장)' 등을 작곡해 보급함으로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승화시키며 희망을 줬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실제의 피사체를 해석해서 아름다운 부분만을 강조함으로서 실제의 모습보다 아름다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교회사가들이 과거의 한국교회역사를 연구해 현재 시대에 내놓을 때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교훈적인 요소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밝은 사회가 됨은 물론 바람직한 신앙의 모범도 제시할 수 있기 마련이기에 우리들이 이러한 일에 최선을 다 하자고 촉구했다. 한국교회사학자 중 시니어그룹인 민경배 박사, 이만열 박사, 윤경로 박사 등의 연구자로서의 공로가 매우 컸지만 이제는 후학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하는 시기에 왔기에 후배 사학자들이 더욱 분발해 복음전파와 신앙증진에 노력해주길 당부했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노력하고, 우의를 다지자고 제안했다. ▲류금주 박사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경영'을 주제로 강의했다. 류 박사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볼 때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경영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을 볼 때 시제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나눠서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이 과거시제로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경우 본인의 출생시를 전혀 인지를 못하며, 오직 부모 등 주변인들이 알려준 정보를 믿어야하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뜻의 '만유'에 해당하기에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모르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알 수 있음을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세계(천사의 나라)를 창조하셨는데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사후에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것들이 궁금한데 이는 철학의 3대질문과도 겹치는 부분으로서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대답을 주지 못했던 것이 인류사라고 설명했다. 위의 3대 질문은 오직 성경에만 명확히 나왔으며, 사람이 사후에 영과 혼, 육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때가 되면 몸으로 부활하기 때문에 막살면 안되고, 오직 성경말씀과 신앙 안에 살아야하며, 그렇지 못하고 사후에 뒤늦게 천국을 발견하더라도 기회는 없기에 우리들은 부활함이라는 최종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사세계(아담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종말의 때가 정해져있다는 것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을 통털어 제시된 사실이며, 이 때 하나님의 자녀는 천사보다도 우월한 존재로서 그 순위가 사람 밑에 천사, 동식물, 마귀 등의 순서였지만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마귀의 밑에 처하게된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메시야의 나라를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후에 반드시 부활하기 때문에 우리의 최종 목표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며, 그 때는 우리 각자가 왕노릇 하는 때가 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린도전서 15장 40절 이하에 부활의 모습들이 영광스러운 모습,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뉜다는 점이 제시되어 있다며, 우리 한교사의 회원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경영을 염두하고, 성경과 세상, 교회를 연구해 연구결과물들을 생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개회예배는 김은섭 박사의 강연과 여선암 국장의 사회, 한정열 목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둘 째 특강은 민경배 박사의 강연과 정용 박사의 인도, 유정우 박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셋째 특강은 류금주 박사의 강연과 정용 박사의 인도, 조점숙 박사의 기도로 진행되었다. 이윤희 목사는 여정 중 식사기도를 조점숙 박사는 레크리에이션 진행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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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하심 깨닫고 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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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 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종교 간의 화합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지요.” 15일 경기 남양주 성관사(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난 주지 성진 스님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조직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 이사를 맡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한 이 대회는 교황도 참석하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가톨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국제 행사. 한국 천주교는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달 중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조직위원회 창립식을 열고 이사진을 선임했다. 성진 스님은 현재 선임된 이사 중 유일한 비 가톨릭계다. 성진 스님은 “그동안 신부, 목사, 교무(원불교) 등으로 구성된 만남중창단 활동을 통해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것을 좋게 본 것 같다”라며 “종교와 세대를 뛰어넘는 온 국민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외국처럼 큰 사회 문제로 비화 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갈등과 마찰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 공항, 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트리를 잘 보면 십자가가 없어요. 대신 별이 달렸지요. 공공기관이 왜 특정 종교를 홍보하느냐는 항의가 심하거든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놓고 마찰을 벌이는 곳도 있고요. 지금부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더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진 스님은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인들부터 벽을 허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성진 스님 등 만남중창단은 26~27일 미국 뉴욕 UN 본부 처치센터(Chuch Center for the United Nations)에서 열리는 제5차 국제평화회의(2024 ICCGC-CoNGO)에서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노래한다. 또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버스킹 공연을, 뉴저지 사찰과 한인 성당에서는 청년들과 토크 콘서트도 갖는다. 성진 스님은 “종교 간 화합의 첫걸음은 목사·신부·교무·스님 등 각 종교인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4대 종교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제가 타 종교 행사에 참여해 돕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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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천주교 행사 조직위 이사를 맡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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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 "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최근 미국에서 교회 등이 시설 부지를 저소득층 주택 건설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와 대조적인 종교단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을 외신들은 '이그비(YIGBY·Yes, In God's Backyard)'라고 부르고 있다. "신의 뒷마당에 오는 걸 환영한다"는 의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에 따르면 이그비 현상은 미국의 저소득층 주택 부족과 교회 공동화 현상이 맞물려 나왔다. 지난 10년간 미국 집값이 42%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이 됐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은 700만호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내 종교 단체들은 신자 수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미 공공 종교연구소에 따르면 1999년 당시 미국인의 70%는 예배 등 종교 활동을 했으나 2020년 이 비율이 47%로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 19의 여파로 신도 상당수가 온라인 예배를 택하면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 결과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미국인 비율은 31%에서 24%로 줄었다. 교회 입장에선 대규모 시설을 유지할 필요가 줄었단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교회의 65%는 코로나 이후 헌금이 줄어든 반면, 시설과 주차장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은 늘고 있다고 복스가 전했다. 때문에 미국에서 종교시설 3분의 1이 향후 몇 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복스는 "10만곳이 넘는 교회·유대교 회당·모스크가 문 닫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단 한 곳, 워싱턴 DC 절반 크기 부지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만 해도 일부 교회는 부동산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해 이득을 봤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 종교단체는 매수자를 찾지 못해 '급매' 간판을 내거는 처지다. 이에 종교단체들은 비영리 단체, 지자체 등과 협력해 활용도 낮은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샌디에이고 흑인 교회인 베델 AME의 하비 본 수석 목사는 재향군인·고령자를 위한 주택 건설에 교회 부지를 제공하기로 하고 지난해 기공식을 했다. 교인 650만명을 거느린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교회(COGIC)'의 경우, 보유 부지 면적만 2만1000에이커(약 84㎢)로 워싱턴 DC의 절반에 달한다. COGIC 측은 성명에서 "저소득층 주택 건설은 교단 사명의 핵심 부분이다"고 밝혔다. 농구선수 출신의 사업가인 매직 존슨,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 등 유명 교인들이 프로젝트에 수백만 달러를 보탰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이전 2000만원 VIP루트 나왔다…"대선 전, 넘자" 美국경 몰린 중국인 지역 사회 차원에서도 주택·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 단체와 윈-윈(win-win)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미국 각지에서 이그비 현상과 관련한 법안이 최근 발의됐거나 검토 중이다. 복스에 따르면 지난 3월 주택·도시 문제 위원회 위원장인 셰로드 브라운 상원의원(민주·오하이오)은 의회에 이그비 법안을 제출했다.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짓는 종교 단체에 보상금을 주며 독려하는 내용이 골자다. 브라운 의원은 "미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저렴한 집을 구하는 건 너무 어렵다"면서 "법안을 통해 교회·사원·유대교 회당 등 종교 단체 부지에 저소득층 주택을 세워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종교적인) 신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애틀랜타·샌디에이고 등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했고, 메릴랜드·뉴욕·버지니아도 관련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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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뒷마당에 온 걸 환영해"…美교회가 땅 내놓는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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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문체로 전문적 내용 수록
- ▲ 김주원 목사는 임상 목회와 신학, 선교학, 문화학에 대한 연구와 실천 등 다방면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경전인 성경책에 '요나서'가 있다. 요나서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요나인데 그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적국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을 바로 믿도록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기에 불복해 배를 타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으로 인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회개하고 니느웨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주원 목사(주원침례교회 담임목사,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겸임교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치 동화처럼 권선징악의 이야기만으로 이해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연구한 결과 신학, 고대중동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문학적으로 다양한 내용들을 발견해 「요나의 전도(기독교포털뉴스 발행)」에 수록했다. 저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대학캠퍼스 복음화 사역자로 활약하다가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된 특별한 이력가진 점이 이목을 끌고 있다. 김 목사는 캠퍼스사역을 실시하던 중 캠퍼스 내 수많은 이단종교단체들과 경쟁과 대립을 이어오면서 복음전파와 이단대처의 역할은 한 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성경공부를 함에 있어 구령사업과 이단대처를 동시에 실시했던 철저한 임상목회자로서 이 책이 쓰여졌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저자는 「이단 대처를 위한 요한계시록으로 정면돌파」와 「펜데믹 상황에서 들어야할 말씀」 등 많은 책을 출간했는데 모든 책이 내용상 심오하고, 복잡하더라도 문체는 중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공통점을 가졌으며, 이번에 출간한 「요나의 전도」도 쉬운 문체로 구성되어있어서 이해가 쉽다는 평가다. 김주원 목사는 캠퍼스 선교사역을 할 때는 운동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잘 수행했지만 '주원침례교회'를 개척하고, 임상 목회를 실시하니 과거와는 달리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방법을 알기에는 고군붙투 중이라고 했다. 건강한 교회를 위해 요나서를 연구하던 중 구약에는 수많은 복음전도자들이 있지만 왜 예수님은 유독 요나만을 언급하시는지가 궁금해서 요나서를 깊이 연구했고, 기본적인 육하원칙부터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따지기 시작했더니 우리가 인식하던 것과 는 달리 요나서에 수많은 복음적인 요소와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련된 내용들이 제시되어있어서 잘 이해한다면 피조물로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발견해 김 목사는 책에 수록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요나 전도의 성경적 연구로서 성서신학적 요소를 담았고, 2부는 조직신학적 연구, 3부는 주전 8세기 당시의 북이스라엘과 앗수르, 니느웨 등에 대한 정치역학을 담아 역사신학적인 연구가 담겼다. 3부까지는 요나의 전도에 대한 개괄로서 이론적 연구였다면 4부에서는 목회 현장이나 선교사역 현장, 성도들의 신앙생활 현장에서 성경말씀대로 실천에 도움되는 내용들을 제공했다. 김주원 목사는 요나가 그저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비춰지지만 실제로는 배로 여행하며 개인이 배를 전세낼 정도의 힘있는 사람이었으며, 로뎀나무 아래 있었다는 사실고 원어로는 시궁창 밭에 있었다는 말이며, 해당 시대 중동의 정세를 한눈에 꿰뚫고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정무적 감각이 있었고, 피선교지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천재성이 있었다는 등의 다양한 정보를 발견했다면서 요나서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람들이 지상에 올 때 누구의 은혜를 받았으며, 죽기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목적을 함께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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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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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문체로 전문적 내용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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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을 제시
- ▲ 손원배 목사는 설교의 방법론 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목회하는 방법을 강조했다. 손원배 교수(청교도신학원 조직신학교수, 전 산호세임마누엘장로교회 담임목사)는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뉴퓨리탄)」라는 설교학 관련한 책을 최근 출간했다.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에는 좋은 설교를 하고자 하는 목회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져있기는 한데 보통의 전문설교학책이 설교가 무엇인지, 말씀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들을 담고있는 것에 반해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들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대로 마음먹고, 실천하는 지 등 마음의 자세와 신앙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설교 방법론을 배우고자 하면 성경 본문과 시대적 상황, 신학에 관련된 사항들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인간적인 내용을 원하겠지만 손 목사의 저술에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어서 그분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그런 영적인 기술만 빼곡히 제시되어있다. 손 목사는 청년시절에는 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평생을 살기를 결심하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공부에 매진했고, 자부심도 있었으나 목회자로서 교회에 부임해보니 알던 지식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내요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대로 목회를 하고, 설교메시지를 준비했던 과정들을 이 책에 수록했다. 좋은 설교를 하는 방법에 대해 손 목사가 주목하는 원칙은 몇가지 밖에는 안된다. 오직 기도와 성경만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나를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모든 방향을 지시하신다. 하나님의 지도방법 대로 주제와 본문을 택한다. 설교자는 대변인처럼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말한다. 모세의 설교준비처럼 그분의 말씀만 듣고, 주신 말씀 만을 전하고, 설교를 들은 백성의 반응을 하나님께 고하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등 몇가지 정도이다. 이 책에는 신앙 생활은 복종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특권이기에 기도하기에 매진해야할 것, 공교회도 중요하지만 성도들의 가정 자체가 교회로서 작동할 수 있는 노력을 제시하는 등 다른 설교학 책과는 매우 다른 구성을 하고 있으며, 손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온각 근심걱정과 어려움,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는 목회를 통해 신기하게도 교회가 성장했던 그런 직접 경험한 내용들로 채워져있다.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를 저술하면서 손 목사는 몇개의 원칙대로 설교하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 교회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지 즉,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며 모든 일에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방법이 그 밑에 깔려있어야한다는 점을 훨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설명했다. 손원배 목사는 전문적인 신학자요 교수로서의 삶을 살기를 결심하고 한국 외국어대학교를 거쳐 총신신학대학원, Calvin Theological Seminary,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고, 미국 사호세 임마누엘장로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현재는 청교도신학원 조직신학 교수직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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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을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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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가 성숙해진 과정 다뤄
- ▲ 주재용 박사는 평생 동안 교회를 위한 학문활동을 했다. 주재용 박사(전 한신대학교 총장)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이후 등장한 속사도 및 교부들이 차례로 등장해 종교개혁 전까지 약 5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이합 집산하던 모습과 사상, 교리, 교의 등이 변천해온 모습을 단 한권의 책에 정리해 최근 발행했다. '교부 문헌으로 쓴 초대 그리스도교 사상사(도서출판 동연)'를 저술한 주재용 박사는 예수님의 사후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습과 상황에서 시작해 콘스탄틴 황제로 인해 국교가 된 이래 이단 종교 등 많은 도전자에게 대항하며 교회 내 교리와 교의, 질서, 신앙과 삶의 방식을 세워온 속사도들과 교부들의 신학과 사상을 정리해 수록했으며, 특히 2세기의 클레멘트부터 4세기의 어거스틴까지의 각 교부들의 신학적인 주장과 당대 사회적 분위기 등을 중점적으로 비교했다. 주 박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적 삶이라면서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신앙생활의 질서를 위해 매우 기본적 '신앙의 규범'을 제정했고, 구원의 메시지를 갖고 이교 문화권에 진출하면서 이교 철학과 종교와 주우하는데 이 때 상대방의 교설과는 다른 것을 보여야했고,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근본적 사상을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교의'라고 정의했다. 2세기 초부터 그리스도교회는 안으로는 많은 오해와 이설을 극복해야 했고, 밖으로는 이교와의 접촉으로 인해 개종해오는 초신자들을 지도할 지침을 마련해야했는데 이 때 지도한 사람들이 2세기의 교부들이었고, 그들로 인해 '진리의 표준', '신앙의 규범' 등의 만들어져 이후에 '신앙 형식', '신조'로 발전되는데 니케아신조나 사도신경 등이 그 상황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사도신경만 해도 첫 구절에 이원론적 두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거부하는 '방어적 교의'가 담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교의가 교회에 의해 '교회법'으로 받아들여져 교의가 법이 되는 상황이 왔으며, 교의를 받아들임은 교회법을 받아들인다는 결론인데 이러한 교의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자 중세 사회는 교회법을 시민법 혹은 국가법으로 받아들이면서 교회법이 전 사회를 지배하는 위치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즉, 교의를 파괴하는 자는 교회법을 어겨서 이단자를 넘어 범죄자가 되는 등식이어서 이러한 교의에 대한 계몽운동이 저항하고 투쟁하기도 했다고 한다. 교의는 교회 삶의 현실적 표현이 아닌 교회삶을 억압하는 교권의 도구가 되어버렸다고 주 박사는 분석하고, 그리스도교의 교의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교의와 교리를 구분하는 일은 간단하지도 않으며, 소모적인 행위라면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학자들이 교리와 교의를 동의어로 보기도 하고, 아니라고 보기도 했으며, 역할의 관점에서 해당 집단의 공식적 신념에 적용된다는 입장과 교회의 삶의 현실을 분명히 체계화해 교설에 적용해 신자의 규범이 된다는 등 다양한 사례를 설명했다. 또한 정당성에 대해서 교회의 합법적 권의로 인정된 것만이 교의가 된다거나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근본적 그리스도교 사상의 구체적 표현이 교회에 의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진 신앙진술이라는 표현, 또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고 교회가 반포했거나 교황이 직권으로 결정했던지 교회에 위해 정의된 진리라는 주장들이 제시되지만 계몽주의자들에게 교의가 해체된 이래 교의사는 끝났다고 보는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구체적으로 논증되어 있으며, 협의적으로 교부시대 것을 넘어서 종교개혁 이후의 교리의 발전과 교회 회의나 교황에 의해 반포되지 않은 신앙의 형식 등도 지속적으로 교의사로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영어권 학자들의 최신 주장들도 보인다. 중세기에는 교리사 연구가 불가능했다고 하는데 이는 교리 불변성의 주장 때문이었지만 16세기에 종교개혁은 교리사 길을 열린 셈이라고 한다. 루터는 교리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한 공의회나 교황이 포고했다고 해서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고 한다. 교리사의 저술은 계몽주의시대에 비로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과거의 신조적 진술에 대해 그 기원과 발전, 세대에서 타당성이 검증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교의나 교리사에 대한 입장이 상이 하지만 주 박사는 교리는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규범적이며, 성서에 대한 교회의 시대적 공식적 진술이라고 설명하고, 교리사의 연속성은 인정해야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의 역사를 믿어야 하지만 교리 자체가 절대 무엇인가를 표시하는 반면 역사는 상대적이고 변화적, 해석적인 특징이 있음을 주지했다. 교리사의 발전은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서 물려받은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면서 교리사의 과제는 교리의 형성동기를 확인, 서술, 전승된 교리 전통을 통해 그리스도교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고찰하는, 즉 폐기할 것이 아닌 재 해석 해야 할 필요성을 주 박사는 강조했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시대가 지나고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된다고 서술되어있는데 즉, 유대교나 이교도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해소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 그리스교도교의 선교활동의 결과로 이교도가 개종해 들어올 때 이들에게 신앙의 긍정적 요소를 강조할 필요성, 신흥종교로서서 열광과 환상이 잦아들며 조직체로서와 교회의 통일을 이루거나 생활을 안내할 규율 등이 필요했는데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을 통해 확이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설명했다. 1세기 말부터 일어난 이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이 때의 '사도 교부'는 신약성경 시대를 바로 계승한 속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의 저술가들이라고 정의하고, 2세기의 클레멘트부터 교부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는 4세기의 어거스틴까지 다뤘고, 어거스틴은 별도로 장을 분리해서 자세히 다뤘다. 사도 교부들의 글들은 서신 형식일 뿐 아니라 원 사도들과 사상이 맥을 같이 하며, 사도 시대와 고 가톨릭 시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함을 설명함으로서 이 책이 다루려는 내용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로마의 클레멘트(A.D 30~101)를 첫 사도로 다뤘는데 88~97년 경 로마의 감독(베드로 이후 세 번째 로마의 감독)으로 재직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고린도교회에 '클레멘트 제 1서신'을 보냈는데 개인자격이 아닌 로마교회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문서였다고 밝혔다. 클레멘트는 분열을 가져오는 악덕에 대항해 구약성서가 보여주는 것은 복종과 친절, 겸손과 스토아철학 등 조화의 이론을 제시했고, 애녹의 순종이나 노아의 충성, 아브라함의 말씀에 복종을 언급하며 일치의 덕목을 권고하는 지극히 교회를 위한 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 터튤리안과 키프리안 등 2~3세기의 신학자들이 서방신학의 기초를 놓았으며, 이후에는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틴 황제 가 로마제국의 통치자가 된 324년 이후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며 교회의 중심이 동방으로 옮겨셔 초대교회의 신학적 논쟁은 주로 동방교회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초대교회의 주된 신학적 논쟁인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 구원론 등을 알렉산드리아학파와 안디옥학파, 카파도기아 신학다들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동방지역에 속했다고 설명했다. 영지주의의 도전이나 마리시온의 개혁, 몬타니즘의 반동, 아폴리나리우스논쟁, 네스토리우스논쟁 등이 모두 동방교회에서 일어났고, 이를 해결하기위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공의회 등이 모두 이 지역과 연관 깊다는 것이다. 또한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회의 신학적 결정권까지 행사했고, 황제의 결정에 따라 교회의 상황이 달라지는 상황이었던 반면 서방교회의 감독들인 비교적 독립적이어서 정치적인 영향이 적었지만 신학적 논쟁의 관점에서 지적 고립의 원인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서방에서도 일부 갈등과 지배권의 다툼이 생기기도 하는 등 계속된 신학적 논쟁으로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보편적 교회의 평화를 위협했다고 한다. 교회의 궁극적 안정은 확고한 교리적 토대와 정치권력과의 적극적 관계, 국가교회적 새로운 질서 등이 필요하다는 그런 임무를 4세기~5세기의 서방교회신학자들인 암브로스와 제롬, 어거스틴 등이 지적 및 정치적으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어거스틴(354년~430년)이 초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부라는 평가와 서방신학의 특유한 성격을 결정적으로 확립했고, 그의 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 로마교회와의 싸움 도구로 수용되었다는 의의를 설명했으며, 실제로 이 책의 결론부에서 따로 구분해 자세히 다루고, 의의를 설명했다. 어거스틴의 저작 중 고백록과 하나님의 도성, 삼위일체에 관하여, 성서 주석에 관한 저술들, 마니교도들을 반대한 저술들, 도나투스주의자들을 반대한 저술들 등과 죄론, 은총론, 예정론 등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있다. 주재용 박사는 한국신학대학(한신대학교 전신)을 거쳐 캐나다 맥길대학교 교회사 전공으로 Ph.D.학위를 수여받고, 한신대학교에서 37년간 교수직을 감당하고, 한신대학교 제 12대 학장, 초대 총장으로 재직했다고 한다. 이 책은 1399페이지에 달하는 규모이며, 초기교회의 교부들의 신학에 대해 저자가 평생의 노력이 담겼다고 알려졌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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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가 성숙해진 과정 다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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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시국회의' 구성 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목사, 이하 NCCK) 실행위원회는 산하의 프로그램위원회인 '정의평화위원회'와 '화해통일위원회'가 'NCCK 시국회의' 구성 건의 안을 지난 7월 25일 정기실행위원회에 상정했으며, 표결로 가결됬다. 발족 기자회견과 시국토론회, 시국기도회 등의 활동계획이 공개되었으며, 동 안건에 대해 원안 대로 가결하자는 측과 프로그램위원회의 설치 목적이 존재하므로 위원회 차원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의견, 위원회를 넘어 NCCK 전체의 활동으로 하기는 여러 이유로 부담이 있다는 의견, 현재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준비로 여유가 없다는 등 다양한 논의가 장시간 진행되었지만 표결 결과 시국회를 구성키로 했다. 한편 실행위원회는 지난 회의에서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다루지 못했던 헌장세칙 개정안을 가결했고, 추가 경정 예산안과 교회협인권센터(이사장 이승렬 목사)가 요청한 명칭변경을 위한 대화위원회 구성의 건 등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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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시국회의' 구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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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례교는 항일운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
- ▲ 오지원 겸임교수는 한국침례교가 일제시절 항일운동과 신앙운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 김동석 박사는 논찬을 담당했다. ▲ 류금주 박사는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침례교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1905년부터 항거했으며, 그 수위는 교단의 폐쇄, 산하 각종 학교의 폐쇄되는 정도로 강력했다고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명예원장 민경배)이 개최한 학술모임에서 제시되었다. 오지원 침신대학교 겸임교수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초청해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침례교의 항일운동사'라는 제목으로 지난 7월 11일 발제했다. 류금주 원장은 동 발표회에서 사회를 담당했다. ▲ 오지원 겸임교수는 한국침례교는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 항일 활동을 활발히 벌였지만 그간 연구가 없었던 관계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았다면서 사실 한국침례교는 당시 교단 폐쇄, 산하의 학교를 폐쇄하는 정도로 애국, 애족과 더불어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바 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2015년 개최한 기독교한국침례회 105차 정기총회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교단이 폐쇄된 1944년 5월 10일을 교단의 기념일로 재정했던 바 있으며, 사단법인 침례교역사신학회가 필자에게 관련 연구를 의뢰함으로서 연구가 실시되어 『신사참배 거부로 수난당한 침례교 대표 32인(누가출판사, 오지원 저)』이라는 서적을 집필했고, 동 책자의 내용과 연관된 내용을 이날 월례발표회에서 발제했다. 침례교는 교단적으로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정교분리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천황숭배와 신사신앙을 축으로 일제에 저항하게 되었다고 경과를 설명했다. 침례교는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서울지역 연합 위국 기도회(이토 히로부미의 서울에 도착한 1905년 11월 9일 이튿날부터)'를 서울 내 장로교와 침례교, 감리교를 주축으로 개최한 것이 최초 항일운동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동 기도회는 당시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19일자에 보도되었으며, 학이 깊은 물가에서 울면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는 '성문우천(聲聞于天)'이라고 표현되었고, 이날 위국기도문도 자세히 보도 되었다고 설명했다. 기도문의 내용은 대한의 위기 극복의 비결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이라며 하나님께 바로 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하고, 난국의 원인은 일본보다는 국민과 기독교인 전체 공동체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고 한다. 대한매일신보의 이 보도는 그 동안 당시 침례교의 지도자였던 펜윅 선교사(Rev. Malcom C. Fenwick)사 및 대한기독교회 사역자들이 당시에 비정치화와 비민족화의 신앙으로 철저해 대부흥운동을 배격하고 을사늑약과 국권침탈, 3.1운동 등 거국적 활동을 안 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오히려 항일운동과 애국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을 들어낸 역사적 증거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침례교인들도 국가적 위기를 외면하지 않았고, 침례교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 한 항일운동이었으며, 침례교 뿐 아니라 서울지역의 장로교와 감리교 등 타 교파와 연합함으로서 당시 교단간 갈등요인인 선교지분할정책의 문제를 극복한 좋은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펜윅 선교사는 1906년에 일제의 내정 간섭으로 점차 힘을 잃어가는 대한제국을 바라보며 조선에 대한 애국적 내용을 담은 '내 나라 대한(My country Tai Han)'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는 등 침례교 항일운동사상의 토대를 이미 가지고 있었고, 침례교인들은 초교파적 위국기도회에 참여해 침례교항일운동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는 평가를 오 교수는 했다. '내 나라 대한'이라는 노래는 애국가적인 성격을 지녔어도 내용상 통상적인 민족주의 등이 아닌 철저한 기독교적인 교리와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1절은 열성조가 낳고 돌아가신 한국의 유구한 역사, 2절에는 한국의 지리적 아름다움, 3절은 을사늑약 등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님과 예수님, 성경을 쫏음, 4절 회개와 죄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5절에서는 한국의 만세와 나라를 다시 세울 것 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침례교는 1918년 일제에게 포교계 제출을 거부하고 교단과 교회를 폐쇄했는데 이는 일제가 1915년 8월 '포교규칙'과 '개정사립학교규칙'을 제정해 조선통치에 특별히 방해가 되는 한국기독교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침례교는 이에 대해 신앙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오 교수는 설명했다. 당시 한국침례교는 제 1대 감목인 펜윅 선교사가 2대 감목을 이종덕 목사로 지명했지만 교단 내 일부는 신명균 목사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 어긋나 교단이 분열 되는 등 주도권 다툼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제의 이와 같은 탄압에 대응하기에는 더욱 어려운 분위기였다. 특히 학당의 폐쇄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훼손된다는 반대와 교회의 폐쇄를 불러올 포교계 제출은 그저 일제 정부의 단순한 법적 절차일 뿐이라는 반발 등으로 더욱 어려웠지만 침례교는 학당을 폐쇄했고, 일제로 부터 교회 폐쇄령(1918년)을 받게되었다고 한다. 한국침례교의 저항은 이종덕 당시 감목의 투옥을 불러들였으나 1918년 풀려난 이 감목은 원산을 떠나 간도의 종성동에서 신자들을 재 규합해 신앙을 돈독히 했으며, 일제의 무단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뀐 1920년 침례교는 다시 교회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펜윅은 1926년 제 21차 대화회(총회)에서 학교교육 금지령을 내렸는데 아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근본주의신앙이기 때문에 세속교육에 심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혹평하기도 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이 벌어지는 스콥사건이 벌어지는 중이었으며, 일제는 신사참배를 중심으로 공교육을 점령해 한국에 천황주의적 역사관을 심음으로서 민족의식을 퇴색하게하고, 창조론 중심의 기독교사학 또한 악영향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에 의한 것이었다고 오 교수는 해석했으며, 따라서 학교교육금지로 교단 인재양성에 장애를 줬다는 식의 평가보다는 일제에 항거한 이 행위는 마땅했다고 재 평가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한국침례교는 신사참배를 배격한 이유는 당시 식민정부가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조선인들을 동원하기 위한 작전이었기 때문이며, 김영관 당시 침례교 감목은 1935년 10월 5일자 달편지를 통해 전국 교회의 신사참배와 황궁요배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불복할 것을 당부했고, 1938년 총독부가 동아기독대에 참배할 것을 요구하자 또 다시 불응할 것을 당부, 1939년 긴급 임원회에서 김영관 감목이 교단 산하에 신사참배를 거부를 당부함은 일제와의 마찰을 불러들인다는 교단 내 일부의 반발에 갑론 을박이 벌어지자 감목직을 사임했으며, 1939년 제 5대 감목인 이종근 목사도 신사참배와 황궁요배에 굴하지 않기로 결의해 지속적인 항일운동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1940년 일제는 동아기독교회 원산총부에 교규 제출을 요구했고, 일제가 이를 검토하던 중 우태호 전도사(미남침례회 해외선교회 일본국 한국선교사)가 입국해있던 중 교단 임원들과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놓였으며, 동아기독교회 실태를 파악해 일본 헌병대에 불순한 단체로 고발, 논란이 된 부분은 '복음찬미'에 "대왕님 예수 씨 보혈"의 용어, "주의 재림"의 내용 등이 천황에 대한 모독과 국체명징(國體明徵)에 벗어난다는 트집이었다고 한다. 이로서 원산총부는 압수수색을 당해 신약젼서와 복음찬미, 교단 서류들을 몰수당하고, 이종근 감독(총회장)과 전치규, 김영관 목사 및 총 32인의 교단지도자들을 체포해 수 개월간 모진 고문과 옥고를 줬으며, 일제는 '재림신앙(말세론)'을 빌미로 9인을 예심에 회부했는데 유대민족의 재건이라는 민족주의적 측면을 가장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오 교수는 해석했다. 1944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는 일련의 내용들을 이유로 동아기독교회 교단 해체령을 공포하는 등 한국침례교는 신앙과 민족, 국가를 위한 항일운동을 지속하며 어려움을 당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동 주제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면서 선행연구가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으며, 교단이 폐쇄되는 바람에 교단자료가 소실되어서 오히려 일제 기록물을 상당수 참고할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향후 더욱 많이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 김동석 박사(믿힘연구원 원장, 한국교회사학연구원 부원장)는 주제 발제에 대한 논찬을 담당했다. 한국침례교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감명받았다며, 위국기도회를 침례교가 장로교와 감리교 등과 공동으로 진행했다는 것은 위기의 시대에 민족의 비극을 외면치 않고 참여한 애국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펜윅의 애국은 민족주의적 애국보다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애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국가와 민족의 위기 시절 항일운동을 전개함은 매우 위험한 일 이었다면서도 한국침례교가 몇몇의 시기마다 적극적으로 기독교신앙에 입각한 애국적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암흑기를 거친 교단이 오늘날에도 한국교회에서 중요한 교단으로 활동함에 감사를 표했다. 논문에서는 소극적 저항으로 보이는데 '항일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과 침례교의 항일운동사의 선행연구가 없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오지원 교수는 항일운동의 활동은 기독교인들로서 기도교신앙에 충실하다는 것 자체가 일제의 의도에 반하는 것으로서 항일운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고, 교단폐쇄 시기에 일제가 대부분의 자료를 소각했기에 남은 자료가 많지 않았기에 총독부의 자료를 참고한 일이 많았으며, 본인의 학교에서 한국교회사 전공으로서 1호 박사에 해당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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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침례교는 항일운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