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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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월례발표 300회 기념
    ▲ 왼쪽부터 한정열 박사, 권평 전임원장, 민경배 명예원장, 유정우 박사, 류금주 박사, 고사무엘 목사 등이 기념케익을 절단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이하 한교사)은 매월 진행하는 월례발표회의 300회를 맞아 이를 기념하는 예배와 기념케익 절단식, 1997년 6월 창립한 동 연구소의 2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발제순서를 진행했다. ▲ 고사무엘 목사가 설교를 담당했다. ▲ 민경배 명예원장(초대 원장)은 20년간의 역사를 회고했다. ▲ 류금주 원장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한정열 박사는 개회예배 인도를 담당했다. ▲ 개회예배 한정열 목사는 20주년 역사 발제에 앞서 진행된 1부 예배의 인도를 담당했다. 고사무엘 목사(전문연구원)는 성경책 고린도전서 12장 4~11절 말씀을 근거로 '변화 속에서도 하나 되는 교회'라는 제목의 설교를 담당했다. 고 목사는 한교사 월례발제 3백회를 맞는 중요한 날에 연배로는 막내에 해당하는 사람이 중대한 설교를 하게 됨은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된다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오늘 설교의 키워드인 변화라는 단어를 생각 할 때 최근 한국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있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 출연 이승만, 류석춘, 브레진스키 등)'이라는 영화가 머리에 떠오른다며, 이 영화의 관람자들은 내용상 교과서가 제시하는 것과 다르니 진위여부를 떠나 혼란스러워하는 편인데 바로 이것이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알지만 마음으로는 싫어하는 경향은 곧 변화에 부적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교회는 몇가지 위험을 겪는 중인데 교회내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신앙의 연조를 무슨 권의의 요소인 것처럼 뽐낸다는 것과 2자신의 교회내 직분을 계급화 하려는 행위, 성경의 해석에 있어 자의적이거나 인본주의적 방법론을 차용하거나 교회 공동체의 목표인 선을 지키기 위한 협력 대신 내부에서 서로 싸움에 몰두하는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겉으로는 교회가 대단히 성장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날 읽은 본문 말씀의 고린도교회는 겉으로는 대단해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독선과 교만에 빠졌었는데 마치 지금의 한국교회 같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만심보다는 겸손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인데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모든 것을 되앗아가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겸손하려면 자신이 잘못됬음을 시인하는 자아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결과 낮아짐이 따라오지만 실제적 겸손의 원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비판, 겸손, 낮아짐 등이 결과물로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들은 자주 영적 열광주의와 독선적인 은사에 빠져 공동체를 돌보지 않기 일쑤라고 밝혔다. 독선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해결의 열쇄는 십자가와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작동한다고 바울은 말했다고 주장했다. 해결책은 사랑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잘 알지만 현재 한국교회에는 사랑이 부족한 실정임을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바치며, 사람 만나기를 꺼리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는데 심지어 목회자가 가정심방을 가려하면 성도가 거부하는 사태까지 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에 대한 해결책은 새로운 것이 아닌 원론적인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이지만 한국교회의 실상은 교단과 교회, 이단 시비 등을 이용한 편가르기에 열심이라는 것으로 분석했다. 바울은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한다며 대한민국의 모든 교히들이 하나되어서 이와 같은 안좋은 모습을 없애야하는데 그 협력은 담장을 뛰어넘는 모습이어야함을 강조했다. 고 목사는 할아버지대 부터 자신까지 3대가 목회자 집안인데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많은 교회의 부흥회를 참석했는데 이 때 전혀 교파를 따지지 않고, 한 몸이요 한가지처럼 신앙생활을 했던 기억을 제시하고, 성도간의 담장을 쌓지 말 것을 제안했다. 우리의 사역에서 하나님만을 따라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으로 인해 능력이 나온 것같은 모습을 하고있는 것을 회개하고, 은사나 능력 등은 하나님께서 덕을 세우시려는 섭리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자신의 자질을 내세우지 말 것이며, 우리의 신자로서의 능력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인한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으라고 촉구했다. 기도는 한정열 목사, 광고는 류금주 원장, 축도는 민경배 명예원장 등이 담당했다. ▲ 기념케익 절단식 월례발표회 3백회를 맞은 한교사는 이를 기념하는 케익절단식을 가졌으며, 여기는 민경배 명예원장, 류금주 원장, 권평 전임 원장 등이 참여했다. 민경배 명예원장은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사학자들은 하나님안에서 한 가지이므로 모든 일을 할 때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찬송가와 성경책에 내내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으 굳게 믿고, 교회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야하지만 더 중용한 것은 신앙 안에 한 형제로서 신앙이 여정을 가자며, 회원간의 친교를 중시하는 동료(Fellow)로서 최선을 다 하자고 촉구했다. ▲ 20년사 발제 류금주 박사(원장, 청교도신학원 교수)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 20년사의 세계적 지평'이라는 제목의 주제를 발제함으로서 한교사의 창립과 관련된 정보 및 교회사학자 단체로서의 학분연구사상에 대한 제시,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의 교회사연구자들이 모여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 등을 결성했던 이야기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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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 신학적·신앙적 교회사 연구 20년
    ▲ 류금주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원장, 청교도신학원 교수)가 주 발제를 했다. ▲ 유지수 박사가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교회사의 연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겪는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면서도 역사 속에 동반되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려고 기울여온 노력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지수 박사의 사회, 류금주 박사의 발제로 진행되었다. 류금주 박사(원장, 청교도신학원 교수)는 월례발표회가 300회를 맞는 지난 3월 7일 '한국교회사학연구원 20년사의 세계적 지평-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 10년사와의 유기적 전개'를 주제로 서현교회당에서 주제발제를 했다. 류 박사는 동 연구원이 창립되기 전 한국교회에서 교회사 연구자는 일반적인 사학과 출신으로서 비신학전공자가 많은 실정이어서 교회사를 연구함에 있어 성경과 역사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고려함에 미진한 편이었지만 한교사의 출범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복음의 관점으로 한국교회사를 하기 시작해 20년이 흘렀고, 그 열매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 교회사연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류 박사는 한교사의 시작은 작고한 故 박옥선 이사장과 민경배 초대원장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한교사 교회사연구의 두 기둥으로서 연구를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전제하고, 교회에서 진행되고, 세상에서 발생한 일들을 연구하는 교회사연구자의 길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기신 천직으로 자임하는 사명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경배 박사가 지난 2018년 연희동에서 한교사 2기로 출범할 시 현장 휘장에 이사야서 43장 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는 성구를 제시한 것은 현재 한교사에서 활약하는 시니어 및 주니어 교회사학자들이 소명의식을 가져야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옥선 전 이사장은 본래 피어선신학교 재학시절 민경배 교수의 제자로서 인연이 깊었는데 이후에 민 교수에게 교회사를 연구하는 기구를 만들자고 강력히 제안해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지난 1997년 6월 18일 연세대학교 연합대학원 201호실에서 창립총회를 갖게되었고, 민경배 박사가 초대 원장으로 추대되었고, 박옥선 이사장은 같은 해 11월 개원총회 이후 12월 월례모임에서 추대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류 박사는 설명했다. 박옥선 이사장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주자국으로 쓰실 것이라는 믿음 아래 한국교회 전체를 동 연구원이 보살필 사명감을 느끼고 있던 민경배 박사와 한 마음으로 동행했던 창립맴버였으며, 박 이사장은 동 연구원이 진행하 수많은 학술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를 후원해 교회사전문연구원으로서 설립해 많은 교회사 기성학자와 신예 학자들을 배출해온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신부(神賦)의 사명의식을 가진 교회사 전문연구원의 설립을 주도한 故 박옥선 이사장과 민경배 초대원장의 가장 큰 동기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명령에 따라 행한 것"이라는 것이 류 박사의 증언이다. 박옥선 이사장은 1993년 장남 한규훈 목사와 함께 로마를 방문했을 시 "갈릴리에서 시작한 것이 로마로 건너와 사상과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 했을 때에도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복음이 기독교역사를 거치면서 비틀어진는 원리를 체험하고 교회사 전문연구원의 설립을 진척하게되었다고 류 박사는 해석했다. ◎ 교회사연구는 섭리를 연구함으로 교회에 도움줘야 민경배 초대원장은 동 연구원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뉴스레타' 1호 창간사를 통해 보면 한교사 설립은 신부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류 박사는 주목했다. 민 초대원장은 1호 뉴스레타 창간사에서 신학을 연구한 이들의 교회사 연구라는 자부와 사명을 안고 출발했으며, 교회는 다만 역사의 실체가 아이고, 신앙과 경건 그리고 섭리의 거대한 구도로 유기화된 조직이기 때문에 연구자의 돈독한 신앙이 요구되고, 아울러 신학적 소양과 깊이가 병행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더불어 연구공동체로서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학문적 소양도 깊어지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야 역량이 결속되고, 학파로서 구형(構形, 얽혀져 뭉친 모습) 될 수 있으며, 연구원이 후학의 발굴과 지도에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류 박사는 위의 글 중 언급된 신학을 전공한 교회사 연구를 언급한 대목에 대해 (당시 만연했던) 신학을 비전공자들이 교회가를 연구하는 것을 의식한 것이었다면서 이는 곧 교회를 역사적 실체로만 보고 교회사연구자들에 대한 지적이며, 민경배 박사는 이에 대해 "교회는 다만 역사적 실체만이 아니라 신앙과 경건 그리고 섭리의 거대한 구도로 유기화 된 조직이어서 연구자의 돈독한 신앙이 요구되고, 신학적 소양과 깊이가 병행한 해석이 반드시 동반하여야 하는 것이다"라는 역설을 제시한 것이고, 한교사는 신앙과 신학적 소양을 겸비한 교회사연구를 20년간 진행해왔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원의 신부적 사명의 특징으로서 하나의 기백으로서 한 몸으로 뭉친 연구공동체의 확립은 하나의 학파로서 섹트적 결속을 이루고, 후학의 발굴과 후원, 신부적 교회사연구의 계승 등이 한국교회에 이바지 하려는 모든 것들이 현재 후학 교회사연구자들이 활발히 유입되어 활약하고 있음으로 인해 추구하는 방향대로 가고 중으로 평가했다. ◎ 교회사연구 사명은 세계적 지평을 향해서 한교사는 초기부터 한중일을 중심으로한 동북아시아 교회사연구를 추구했는데 '동북아 대학원생 교회사 심포지엄(1999년 2월 9일)'을 개최했고,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1999년 11월 24일 창립~2010년 해체)' 를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교회사학자들이 참여해 창설하고, 10차례의 국제세미나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아시아를 아우르며 세계적인 교회사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방향으로 사역해 왔다고 류 박사는 밝혔다. 류 박사는 한교사의 20년 역사 중 전반기는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상임의장 민경배 박사) 10년사와 겹친다면서 기간 및 전개과정이 겹치는데 이것은 동 연구원의 신부적 사명과 비전이 세계적으로 확대 구형되는 사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대원장 민경배 박사는 한교사의 창립시부터 '신학을 연구한 이들의 교회사의 연구'라는 생명을 부리는 사명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생명을 부리고, 책임지도록 하는 하늘이 허락하신 자부함은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의 창설에서도 그 사명의식이 차고 넘쳤다고 평가했다. 동 기구의 명칭은 한교사의 복안은 '동북아교회사학협의회'였지만 일본측이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라는 명칭을 들고 나와 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측은 '기독교사학'이라는 어휘가 실제적인 '교회사'라는 단어에 비해 추상적이긴 하지만 후자를 사용할 것으로 양보하고, 포용했음을 설명했다. 류 박사는 아시아 3국의 교회사가들이 10차례의 국제회의를 진행하면서 모두 그 활동에 만족하고, 상호간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울이던 중 후반부로 가면서 일본측은 국가 단위의 회원활동이 아닌 개인참여를 주장하고, 세부활동에서 학술활동 외에 회원간 친교의 문화를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결정을 통보하는 느낌을 받아 처음 시작한 취지가 흩어지기에 한국측 주도로 해체를 결의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경배 명예원장은 이에 대해 동북아기독교사학협의회 등을 진행함에 있어 현재 한교사의 기성 교회사학자들이 대부분 대학원생일 때 시작되었고, 실무준비도 대학원생들이 진행했다는 특징이 있었다면서 그같은 경험상 특혜는 학계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귀한 기회였고, 또한 학술로만 뭉치자고 한다면 모일 필요가 없이 연구자 각자가 집에서 조용히 공부하면 되는 셈이며,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모여 학술과 교제를 갖음은 연구성과를 나누고, 연구과정을 격려하는 목적이 더욱 강한 것이기에 앞으로도 한교사는 교제가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주장할 것이며,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교회사의 연구는 물론 그 영향력이 세계각처로 미치도록 하는 한교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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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 [Religion Focus] 휴스턴 대형 '레이크우드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
    ▲사진 왼쪽부터 트로이 피너 휴스턴 경찰서장, 조엘 오스틴 레이크우드 교회 목사, 존 휘트미어 시장, 사무엘 페나 소방서장이 11일 오전 레이크우드 교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후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Religion Focus]휴스턴 대형 '레이크우드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 ‘달갑지 않았던 목사’ 아들에서 인기 설교자로…총격 사건으로 새 ‘스포트라이트’ 메가와트 미소 등 기독교 브랜드化…십자가·예수상 등 전통적 종교 상징 일체 없는 지구본 앞에서 설교 비평가들, “솜사탕만 있을 뿐, 고기는 없어‘ 혹평도 휴스턴, 텍사스(김정태 기자)-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는 미국의 종교에서 가장 친숙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일요일 오전(11일 현지시간) 36세의 여성이 총기를 난사해 5살 소년과 50대 남성에 중상을 입힌 끝에 비번 경찰근무 경비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 한 휴스턴 대형교회(Lakwwood Church)를 이끌고 있는 목사는 메가와트 미소와 웨이브진 머리, 인기 있는 기독교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60세의 그는 이전 농구 경기장에서 매주 약 45,000명의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설교를 통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오스틴은 아버지로부터 소명을 물려받아 신도들의 규모를 거의 5배나 늘렸다. 그의 저서 "Your Best Life Now: 7 Steps to Living Your Full Potential(당신의 최고의 삶 지금: 당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7가지 단계)"는 거의 300만부가 팔렸다. 닐슨 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에 오스틴은 미국의 어떤 설교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으며 전체 가구의 95%에 달했다. 수년간 그의 봉사는 백인, 흑인, 히스패닉을 거의 동등하게 혼합시켜 왔다. 이는 전국 대부분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다양성이었다. "웃는 설교자"라는 별명을 얻은 오스틴은 2004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여유로운 설교 스타일은 격렬한 설교보다 기분 좋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비판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느긋한 설교 스타일은 또한 불타는 설교보다 기분 좋은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오스틴은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서 자신의 1천만 명의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교회 공동체가 "황폐해졌다"고 했다 오스틴은 “이러한 어둠에 맞서 우리는 믿음을 굳게 잡고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며 “하나님께서는 가장 어두운 시기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이 비극을 극복하고 서로 사랑하고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요일 총격 사건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 오스틴은 자신이 설교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이렇게 큰 무리를 인도하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스틴은 1999년 아버지 존 오스틴(John Osteen) 목사가 돌아가시기 전 일요일까지 설교한 적이 없었고, 그런 소망도 없었다고 말했다. 존 오스틴은 1959년 버려진 사료 상점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기독교 레이크우드 교회( Christian Lakewood Church)를 설립했다. 오스틴은 2004년 AP 통신에 그의 아버지의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뒤에 있는 것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2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오랄 로버츠 대학(Oral Roberts University in Tulsa, Okla)에서 공부를 마친 후 텔레비전 제작자로 아버지의 참모진에 합류했다. 아버지 오스틴 목사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설교자의 아들은 마지 못해 강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아버지는 병원 침대에서 전화로 아들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오스틴은 2004년 “간호사들은 그가 그렇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존 오스틴은 5일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그가 설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냥 속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평가들은 Osteen to task for downplaying the sinful nature of humanity and the need for repentance (오스틴이 인류의 죄악된 본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경시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오스틴의 어머니인 도디 오스틴(Dodie Osteen)은 2005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We don’t preach the gospel sad, we preach it glad.(우리는 복음을 슬프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전한다)"고 말했다. 댈러스에 본부를 둔 종교감시단체 트리니티(Trinity) 회장 올레 앤서니는 2004년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To me, it’s cotton-candy theology, There’s no meat. They just make everybody feel good. (나에게 그것은 솜사탕 신학이다. 고기는 없다. 그들은 단지 모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줄 뿐)"이라고 했다. 오스틴은 휴스턴 로켓츠(Houston Rockets)의 이전 홈구장을 교회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1990년대에 두 번의 NBA 타이틀을 획득했고, WNBA의 휴스턴 코메츠(Houston Comets)는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곳은 오스틴이 미래의 신부인 빅토리아(Victoria)와 함께 휴스턴 로켓츠 농구 경기를 보러 나갔던 첫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이전 경기장을 교회로 바꾸는 데는 15개월이 걸렸고 완성하는 데 약 7,5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2005년 개장 당시에는 두 개의 폭포, 세 개의 거대한 TV 화면, 록 콘서트에 버금가는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12열의 풍부한 보라색 좌석이 있는 2개의 합창단 로프트가 폭포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살아있는 나뭇잎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십자가, 신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기타 전통적인 종교적 상징은 없었다. 오스틴은 2005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는 그런 상징을 한 번도 표시한 적이 없으며, 단순히 전통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오스틴은 천천히 회전하는 커다란 황금색 지구본 앞에서 설교한다. 교실과 함께 예배당, 세례 장소, 청년들을 위한 모임 공간, 교회의 텔레비전 방송 활동을 위한 전체 층이 추가되었다. 오스틴은 2004년 AP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한테는 이곳이 좋은 레스토랑인 것 같다. 좋은 음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서비스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고양시켜야 한다. 그들은 '‘You know what, I feel better today(오늘 기분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하며 떠나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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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 100주년 발전기금 특별위원회 구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윤창섭 목사, 이하 NCCK)는 지난 1월 25일 실행위원회를 서울복음교회당에서 진행했으며, 지난 해 정기총회 회의록을 채택했고, 100주년 기념사업 발전기금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개회예배는 이훈삼 목사(서기)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윤창섭 목사가 창세기 3장 6~9절을 기초로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제목의 설교를 담당했다. 회장 윤창섭 목사는 성경 창세기의 등장인물인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과일인 선악과를 먹은 후 숨어들자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부분을 설명하고, 그들이 창조주가 제공한 에덴동산에서 거주하는 기쁨 속에는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규정이 곧 경계선이었다고 정의하고, 어디냐는 질문은 장소를 말함 보다는 사람과 하나님 간의 관계를 말함이었다면서 이 관계는 비단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이 세상과 NCCK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등식을 설명했다. NCCK에게 있어서 어디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사명들을 잘 수행하느냐를 묻는 것이며, NCCK가 창립 100주년이라는 기쁨을 맞는 반면 교회로서의 사명 수행을 잘 하느냐 하는 그 경계이기 때문에 NCCK는 이번 1백주년을 기념하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사명을 수행함은 인간적인 힘이 아닌 신앙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실시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실행위원회는 지난해 10월 26일 진행된 제 71회기 정기총회에서 결의된 회의록 보고를 받기로 결의했고, NCCK 1백주년 발전기금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의했지만 NCCK 산하 위원회 위원장이 실행위원회에 언권위원으로 참석키로 하고, 총회나 실행위원 파송이나 교체 등은 회의 1주일 전에 서면으로 사무처에 접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헌장개정안은 이날 참석한 실행위원회원들이 과반수가 안되어 차기 실행위에 유안건으로 남기기로 결정했다. 한편 NCCK는 한국에큐메니칼대토론회를 오는 2월 26일부터 이틀간 파주시에 소재한 지지향에서 숙박을 하면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와 생태영성, 사회정의, 인권, 평화통일, 국제협력, 디아코니아, 선교, 지도력형성 등의 방대한 주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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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5
  • 현재 신앙비전 후대에 영향 줄 것
    ▲ 권철 목사가 설교를 담당했다. ▲ 김유준 목사(사진 왼쪽)가 사회를 담당했다. ▲ 민경배 목사가 축도를 담당했다. ▲ 권평 원장은 원장으로서 마지막 순서를 담당했고, 차기 원장은 류금주 교수가 취임할 예정이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원(원장 권평 박사)은 권철 목사(서교동교회)를 지난 1월 11일 서현교회당에서 열린 제 298회 월례발제회의 예배 설교자로 초청했다. 권철 목사는 성경 신명기 3장 25~27절 말씀을 기초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라는 제목의 설교를 담당했다.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시 가나안 땅을 바라본 모세가 들어가고 싶다는 간청에 하나님께서 거부하시는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권 목사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민수기 20장의 므리바사건(이스라엘인들이 물을 요구하자 모세가 화가나서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옴) 때문일 것이라고 추청하고, 모세는 항상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었지만 작은 일에도 실수하는 나약한 인간이자 성정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모세를 들이지 않으신 것은 모세를 베려한 것일 것이라며, 만약 모세가 약속한 땅에 도달해서 정착했다면 그의 발언이나 주장이 하나님 이상으로 우상처럼 취급되었을 것을 상상할 수 있기에 그가 변질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배려하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잘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흉하게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을 바라만 보라고 하니 야속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장차 그곳에서 일어날 일을 보이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한 말이 신명기 33장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신명기를 통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계속된 불순종과 배반으로 끌려나가는 것이 보이지만 성도가 모든 역경을 거치고, 구원받음을 보이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추하게 마감할 지라도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모세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여기까지 이끄는 일을 감당했으며, 이후 민수기 13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가나안으로 정탐을 보내셨고, 정탐 후 감격을 말함으로 놀라운 영광이 있다는 발언이 있었지만 해당 지역 거류민들의 강대함을 두고 두려워하는 등 광야를 돌아본 기대는 깨졌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탐뿐 아니라 항상 원망과 불평하는 그런 믿음 없음으로 인해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에 못들어가고, 2세대가 비로소 들어간다고 성경에 기록되었지만 신앙의 선조들이 목격한 비전이 후세대에게 빛을 발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현재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접하는 영광은 우리 이전 세대들이 본 비전으로 인한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현세대는 차세대를 위한 비전을 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밝혔다. 권 목사는 학창시절 민경배 교수가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설명하면서 이 찬송가가 만들어지던 당시는 한국이 일제로부터 수탈당하던 시기였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한국인들은 그럴 때일 수록 힘을 다해 일해야한다며 희망을 발견하려 노력했던 설명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10년, 30년, 100년 후를 준비하고 씨를 뿌리는 신앙을 발휘하자고 권 목사는 촉구했다. 이날 예배의 인도는 김유준 목사, 광고는 권평 원장, 축도는 민경배 목사 등이 담당했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1-25
  • 일제시대 韓日 성도들의 협력 주목
    ▲ 민경배 박사가 주 발제를 담당했다. ▲ 정용 박사가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박사, 이하 한교사)은 2024년 신년토론세미나를 지난 1월 11일 서현교회(담임 이상화 목사)당에서 진행했다.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일제하의 한일관계사-누가 우리 편인가?'라는 주제의 기조발제 이후 참석한 회원과 열띤 토론을 가졌다. ① 한일관계는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 민경배 박사는 한일관계는 1895년 민비의 사후부터 최소한 60년을 실제로 엮여 있었기에 한국교회사(주로 구한말부터 범위)를 연구하려면 한일 관계사적인 관점에서 시작해야 하고, 실제로 연구를 진행 하려면 사료 자체가 한문과 일본어로 되어 있기에 두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기초적인 필요사항을 제시하고, 역사학이나 정치학적인 입장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으로 부터 조선과 조선인이 탄압 받았다는 것이 큰 물결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는 다양한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각 분야에서 조선의 그리스도인들과 조선인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와 노력을 했다는 신앙인 내부적인 부분에도 큰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② 일본의 기세는 대단했다. 발제자가 1941년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대동아전쟁'이 발발했고, 1945년 5학년 때 종전을 했던 시기였다고 밝혀 학자로서 젊은 시절에 겪은 일제시대의 상황을 설명함에 정통함을 표현했다.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당시 세계제일의 대국인 청나라를 1985년 1년 만에 승리 했으며, 러시아를 1905년 1년 만에 승리 했을 뿐 아니라 당대 강국인 미국과 네델란드, 카나다, 영국 등과 4년 간을 홀로 전쟁을 벌인 저력있었음을 설명했다. 조선은 그런 나라의 식민지로서 60년을 같이 있었기에 일본을 모르고는 한국교회사연구는 어려운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 전 대통령의 부친이 함경북도 시골의 농업계장을 했다고 논란이 일은 일도 있지만 일제시대는 산업이라는 것이 농업 밖에는 없었는데 농업계장 정도를 했다고 친일파라는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이 세계열강과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분위기였는데 1896년 1월 12일 일본 국민신보의 기사 중 우리가 군사력으로 해보니 되네? 하는 이야기가 보도될 정도였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 세계가 놀라던 시기였고, 일본은 세계전 나가야겠네 하면 군국주의적인 색채를 띄게되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인들도 자신들이 그렇게 강력한지 몰랐다고 한다. ③ 일본은 교육을 중시했고, 엘리트 주의였다. 일본 교육기관은 천황의 발언을 담은 '교육치부'라는 문서를 매달 1회 씩 낭독했는데 이 문서를 다룰 때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신성시하는 자세를 갖고 모든 일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일본정부의 다양한 면을 통해 볼 때 일본이 가장 중시한 정책은 교육정책이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교육정책으로 일본정신을 일으켰으며, 방식은 엘리트 수재교육이었는데 한국의 경우 평준화의 방식인 것과는 달랐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교육과정이 국민학교와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전문학교 순으로 진행하는데 일본은 고등학교 과정이 있었고, 이 고등학교는 일본교육의 근본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그것에 못 미치는 경우 대학 예과에 진학하는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내에는 경성제국대학, 동경제국대학, 경수제국대학 등 제국대학 7개가 있었고, 한국과 일본에 각 1개씩의 제국대학이 있었으며, 동 시대에 일본 명지대나 동지사대 등이 존재했지만 보통의 대학교일 뿐 대세는 역시 제국대학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성제국대는 1924년 경 법문, 의학, 공학, 이학, 문학, 노학 등의 학부를 보유한 규모였다고 한다. 민 박사는 일본의 스타급 대학자인 '가와이 에이지로(1891~1944)'는 「학생에게 준다」와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학생과 교양」 등 10여권의 명저를 출간했는데 고등학생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만 하며, 이른바 지정의를 상징한 '데칸쇼'를 읽을 필요를 주장했고, 이것을 풀면 데카르트(학문)와 칸트(도덕), 쇼펜하우어(정서) 이며, 여기서 읽은 지식이 세계 강국들과의 투쟁의 자양분이 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예전은 물론 오늘날에도 이런 주장은 전무하다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밝혀 한국교회사연구를 수행함에도 언어는 물론 일본 정신문명의 근간인 문학과 문화에도 정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한편, 일본의 왕족이 수학하는 학습원을 포함해 정규고등학교는 전국에 38개 뿐이기에 입학경쟁이 매우 심했기에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대단한 수재로 취급되었지만 이들의 생활태도는 우리가 보기에는 엉망칭창인 것처럼 살기도 했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지식인을 영어로 하이칼라(High Color)라고 부르지만 일본 고등학생은 만칼라(蠻 Color)로 일컬었는데 이들의 하는 행실이 더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술을 진탕 먹고, 하수구 뚜껑을 열어서 낙시를 하기도 하는 등 온갖 기행을 했지만 일제 시민은 물론 경찰도 건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만칼라들이 용인 받은 이유는 천재를 대담한 인물로 길러내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수재들은 보통 두뇌는 명석하지만 행동은 수줍고, 소극적이라는 약점이 있기에 세계를 재패하려면 수재들이 대담한 성격을 갖게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민 박사는 분석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제 1보통학교 졸업자는 8명이었고, 대표적 인물은 주요한이나 채필근 목사(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일본제국대학을 졸업한 목사)가 있고, 1942년까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은 630명, 동경제대 61명, 경도제대 236명 등 전체 1413명이 졸업했다고 하며, 이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후 남북한을 재건하는데 주요활약을 했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한국교회는 성탄절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는 내용의 연극을 실시했는데 절기로 따지자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다뤘어야 하지만 출애굽을 다룸은 한국교회가 민족해방을 상징하는 것에 열중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이 때 사리원교회 김장호 목사는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을 건너는 것이라고 폄하했는데 이것을 알려준 선생은 월리암 선교사이고, 그는 김용도 목사의 대부이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쫒겨난 뒤 그의 대단한 재능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에 의해 경성제국대에서 성서교수를 하다가 맥아더 장군의 종교고문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군에 군목을 도입함에 기여한 인물이었다는 점들을 들어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와 인맥들이 현재의 역사를 구축함에 입체적인 영향들이 있다는 일례를 증거했다. ④ 친일파가 누구인가? 한국인들은 친일파라는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일제시대는 모든 조선인이 일본 천황의 밑에서 그의 헌법아래 생존하던 시기였다는 대전제를 가져야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의 개화파들은 대다수가 미국에서 7년 이상 유학을 경험한 인재들이었는데 서양에서 배운 세계관을 일본의 발전에 다양하게 활용했다고 밝혔다. 법학의 분야에서 살피면 서양 국가들의 헌법은 기독교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헌법의 기초를 천황제와 신도로 대치해서 응용했던 상황이고, 공교롭게도 이 시기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이 독립운동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진 그리스도교 사상 자체가 천황제에 대한 반대요, 반 헌법주의자가 되는 결과물이 나오게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의 왕자 이근을 데려다가 훌륭한 제왕을 시키려고 제왕교육을 시켰다고 많은 일본 서적에 기록되어있는데 한국의 독립가에 의해 암살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 주류세력은 군벌과 문벌이 통치의 방법을 두고 경쟁하던 시기였는데 그 주류세력은 모두 규슈 북쪽지방출신(사쯔마파, 규슈파)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지금의 기시다 노부스케와 아베 신조, 사이또 이사쿠 등이 사쯔마 출신들이며, 일본의 수상들 상당수는 집안이 같은 출신이라는 특징이 일부 있다고 일본 정계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베는 첫 국무총리 시 동아일보에 자신의 조상이 한국과 연관있음을 밝히기도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규슈지역은 고대 시대에 한인들이 대거 이주해갔던 지역이었고, 오늘날 일본에서 잘생기고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 상당수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인의 피가 흐른다고 보는 경향도 많다는 설명을 했다. 남북한이 최초에 정부를 세울 때 헌법의 기초를 남한의 경우 유진오(경성제대)가, 북한은 최용달(경성제대)이 세웠으며, 북한 김일성대학교의 교수 23명 중 일본 제국대학 출신이 20명이어서 90%였으며, 일본에서 경성제국대 출신은 친일파 중 친일파로 분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기여를 할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최고 학술기관인 학사원 북한과학원의 원사 10명 중 7명이 일본 제국대학 출신으로서 북한이 일본제국주의를 타파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을 세우고, 움직인 것은 제국대학 출신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제국대학 출신들 아니면 국가체제를 세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 남한의 모 일류대의 경우도 최모 씨, 고모 씨, 민모 씨, 정모 씨 등 제국대 출신들이 많았었다고 밝혔다. 아키히도 일본 국왕은 20년 전 뉴스위크지 「일본의 불안한 역사인정」이라는 기사에서 조상 중에 백제 여자공주가 있다는 언급도 있다고 밝혔다. ⑤ 한국과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관계 우리나라에서는 1938년 장로교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결정되었고, 신사참배 반대로 인해 1925년 홍천에서 국민학교 선생과 학생들이 퇴학을 당한 것이 최초의 고통받음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조선의 해방 후 미국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본 천황 궁성안에 기독교의 목사를 초청해 예배를 드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는 천황의 동생 중 '다까마쯔(이후 일본 ICU대학 설립)'가 주도하는 등 황실에 복음화가 진행되었음을 설명했다. 이토 히로부미(문벌)의 사망으로 인해 후임인 데라우찌 마사타께(군벌)가 공직을 수행하면서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그의 통치에 최대의 방해자라는 인식을 했고, 이들을 모두 없애기로 해서 105인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로 인해 한국그리스도교 주요인사 7백 명이 잡혀갔는데 이 숫자는 당시 한국교계 전체에 해당할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105인 사건을 다루는 경성법원의 판사 중 와타나베 다케시 법원장은 그리스도교 장로였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다 잡힌자를 풀어줬다고 밝혔다. 와타나베 법원장은 장로교총회에 찾아가 강단 뒤에서 총회장을 만났는데 아마도 같은 신앙인으로서 함께 애통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2.8선언문(1919년 2월 8일)은 이광수가 작성했는데 일본 제국의 법 아래에서는 반역죄에 해당하는 중죄로서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출판법위반으로 판결했다고 한다. 민경배 박사는 이것은 바로 한국과 일본의 기독교가 이처럼 세상을 바꾼 증거라고 강조했다. 일본인들은 본래 상대화 개념이 없으며, 오직 상대화 개념은 일본 그리스도인들만 갖고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의 그리스도인은 전체 인구 중 0.5%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이 최고 엘리트 인사들이라고 밝혔다. 민 박사가 일본 무교회계통의 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여기는 평신도까지 희랍어원문성경을 읽고 있어 놀랐다고 증언했다. 후리야 야소 ICU교수는 일본에 그리스도인이 5%만 있었다면 나라를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3.1운동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반란죄로 다스림이 충분한데 한국에 파송된 일본 판사들은 단순히 소요죄만을 적용해 대거 석방해줬던 일이 있고, 이것은 아무리 우리를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붙들어주는 손이 있다는 증거로서 국가를 떠나 종교와 사상으로서 협력을 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처럼 판사들을 모두 훌륭한 기독교인들만 데려왔고, 이 일본 기독교인들은 복음의 거룩한 역사를 장식했다고 민 박사는 강조했다. 데라우치는 이토에 비해 강경파였고, 총독 하세가와와 함께 1915년 조선에서 기독교학교와 기독교선생을 금지했던 자였지만 1917년 세브란스와 연희전문학교를 위해 '기독교연합재단'으로 인가를 해주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총독부 내 우사미 갓조 국장급 등 기독교인들이 즐비했는데 이들이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협조를 해 신과대를 만들고, 기독교연합재단이 출범되었다고 밝혔다. 세상이 어둡고 무서웠던 18세기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신상근이 작곡한 '실로암'의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는 내용을 부르짓으니 하나님은 크나 큰 복을 계속 주셨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번성해 성시화 된 국가로서 복음전파를 위해 충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쿠 도미소코'는 일본정부기관지인 '경성신문사'의 감독직위였으며, 일본 천황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실세 중 실세였는데 조선에서 3.1운동으로 인해 식민정부가 진압하는 모습을 보고 훈족(야만)이라고 비판했으며, 나까다에 기요시는 3.1운동을 옹호하는 비슷한 일이 즐비했다면서 일본 정부의 하층부는 조선을 탄압하는 것 같아도 일본 최상층부는 그리스도교적인 사고가 있었던 그런 사실들을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면서 염두해야한다고 제언했다.
    • 종교
    2024-01-25

실시간 종교 기사

  • 심판과 재앙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
    ▲ 유선화 작가는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최근 출간했다. 그리스도교가 경전으로 삼는 성경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요한계시록'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해 온 것에 아타까움을 느낀 유선화 작가가 최근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길과 생명 출판사)」을 출간해 요한계시록을 읽어 교훈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기대되고있다. 유선화 작가의 「요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특정한 신학적 관점을 차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신구약 성경을 통해 요한계시록을 이해야 하고, 심판과 재앙이 중심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탄생한 교회와 성도가 어떤 이김의 삶을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방향을 택하고있다. 기존의 대부분 책들이 요한계시록 내의 내용이 미래에 어느 시점에 이뤄질 그리스도의 재림과 종말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루고 있는데 위의 세 기간을 따라 종말에 일어나는 심판과 재앙을 다루고, 마지막 그리스도의 재림과 완성의 방식으로 다루는 편이라는 평가다. 「요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성경을 성경으로 계시록을 해석함으로서 마지막 날에 임할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사로잡힌 성도들을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풍성한 사랑을 발견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1장 1절과 22장 6절에는 '속히 일어날 일들'과 '속히 되어질 일'이라는 어구의 해석이 종말중심의 시각을 결정하는 요소라고하는데 저자 유선화 작가는 '속히'는 헬라어로 '타코스'로 '짧은 간격(접두사 '엔'을 동반)', 서둘러서, 빨리, 곧, 신속히 라는 의미이므로 긴 시간을 말함이 아니기 때문에 종말에 일어날 특정한 시간이 아닌 모든 시대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들에게 반드시 일어날 일로서 현재에 무게중심이 있음을 강조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의 승리로 인해 태어날 교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무슨 일을 만나게 될지를 기록한 책이라고 설명을 했다. 계시록 1장 18, 19절에서의 그들은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교회와 성도이며, 아담이 뺏겼던 통치권을 회복한 교회가 더 이상 죄와 종의 삶을 그치고 하늘에 앉힌 자들의 삶을 살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은 속량함을 받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어린 양을 따르는 자이며, 순결하고 거짓이 없고, 힘이 없는 자들로서 밤낮으로 주를 섬기는 자들로 저자는 해석했다. 계시록 21장 9절에는 신부가 언급되어있는데 이것은 교회와 성도가 바로 어린 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이며, 교회는하나님으로 태어난 그분의 형상이고, 성도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 거하시는 성전, 하나님과 ㅇ린 양은 성도의 성전을 말함으로서 하나님과 성도의 완전한 연합으로새 언약의 핵심으로 평가했다. 저자는 여러번 언급되는 삼년반, 천이백육십일은 1)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양육을 받는 기간(천이백육십일,삼년 반, 계 12장 6절, 14절), 2)교회가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기간(천이백육십일, 계 11장 3절), 3)성전 바깥마당이 핍박과 박해 그리고 유혹으로 밟히는 기간(마흔두달, 계 11장2절), 4)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받고 일하는 기간(마흔두달, 계 13장 5절) 등으로 계산상 진법만 다를 뿐 모두 동일한 기간이며, 예수님의 승천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인데 하나님과 사탄의 진영가운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기록하고, 동 기간동안 교회는 사탄과의 대치가 불가피한데 교회는 이 기간에 하나님의 양육을 받고, 계시가 열림으로 복음을 증언, 사탄이 싸움을 걸어오므로 일곱 나팔에서 반대진영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이야기가 기술되어있으며, 하나님은 옛적에 선지자를 통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는데(히브리서 1장 1절) 세상의 창조와 인류의 타락, 구원자의 약속 등의 주제가 기록되었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속량을 이룬 후 기록한 사복음서와 사도들과 선지자를 통해 교회에 직접 보낸 서신서들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요한계시록은 결말의 책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중요성은 이 결말을 책에는 성경의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었고, 성경전체의 말씀들을 상징을 사용한 중요 계시를 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에게 기록하게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점이기에 보다 많은 성도들이 읽고, 교훈을 받아 성실한 삶과 신앙생활을 이어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교회는 아버지와 주 예수님의 음성인 계시록에 등한히 한 측면이 있다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편지가 계시록이라면 계시록을 읽어야하며, 사탄이 교회에 혼란과 두려움을 줘서 읽지 못하게 했다면 무엇 때문인지 더욱 읽어야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요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큰 틀에서 요한계시록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말씀을 풀어 모두 서술했으며, 요한계시록 외에 성경전체에 산재한 관련한 구절들을 유기적으로 대입해 해석했고, 구체적으로는 최초의 성경 원본이 희브리어와 헬라어로 쓰여져있기에 성경언어 원어를 사용해 명확한 의미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의 구속을 하나님의 종들 즉 교회들과 함께 이루고 완성하시는 구속사에 대한 기록이라는 전제에서 해석을 했으며, 무엇보다 성경전체의 내용이 복음이라는 틀로 귀결되기에 복음으로 해석해야하는 원칙대로 동 요한계시록도 복음을 사용해 설명하고있다는 측면이 타 저서들과는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선화 작가는 「요한..., 하나님의 구속사」는 종말에 이야기로 기존의 연구들이 중심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모든 시대와 오늘에 대한 말씀으로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며, 심판이 아니라 완벽한 구원을 드러내는 말씀이며, 교회와 함께 구속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단편적 해석이 아닌 계시록의 주제와 목적에 따른 일관적 구조를 사용해 전체를 다뤘고, 무엇보다 성경 원어의 뜻을 살펴서 신구약 말씀으로 계시록의 상징들을 풀어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계시록은 대략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백성을 나눴고, 양자간에는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이며, 그 싸움은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시대마다 시간마다 그리스도인과 악마에 속한 타락한 짐승의 표를 받은 간에는 전쟁을 벌이는데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도 계시록에 기록한대로 결국 하나님 진영의 승리로 귀결될 것임을 믿고, 오직 하나님의 편에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야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한..., 하나님의 구속사」에 수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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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11-14
  • 코로나시대, 어느 교회나 온라인 선교 가능하게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인간생활의 전반적인 부분이 붕괴 되다 시피 했고,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곳인 교회에도 참석자가 많이 줄어들은 문제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교회 성도간에 교류가 어려워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책이 출간되었다. 김도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책임 집필), 김성중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신현호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연구원 책임연구교수), 신형섭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등은 최근 「뉴노멀 시대의 기독교교육(도서출판동연)」을 출간했다. 「뉴노멀 시대의 기독교교육」은 지난 수년간 전세계인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 감염병인 코로나19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류의 노하우를 교회교육의 발전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증진에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저자들은 사람들이 직접 대면해 사람의 눈에 보이는 아날로그의 세상이 인간에게 확실히 익숙하며, 그 아날로그 방식을 토대로 문명이 구축된 것이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인 디지털세상과 초현실세계인 메타버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히 익숙한 개념이라며 이것을 통한 신앙의 증진에 기대를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최신 산업의 결과물인 정보시대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을 기반으로 메타버스시대가 앞당겨졌기에 교회가 이것을 적극 도입해 사람이 모이기 어렵게 된 탈노멀시대를 극복해 문명기기를 통해 성도가 모이는 뉴노멀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취지로 저술된 책이다. 한국교회들 중 일부의 대형교회들이나 자체적으로 문명기기를 사용해 가상공간에서 모이게할 기술과 자원을 갖고있겠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교회들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일 것이며, 이 80%에 해당하는 기술이 부족한 교회들을 위해 부록편에 구체적으로 교회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목록을 제시했다. 이 책의 60%에 달하는 내용이 부록편이며, 이 부록편에는 한국교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는 각 교단들과 기독교단체, 학술단체 등의 홈페이지 등이 제시되어있어서 가상공간에서 또는 멀티미디어 장비를 사용한 교회교육을 실시하기 어려운 상대적 소규모의 교회들이 정확히 정보와 교재들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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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5
  • 예수님의 향기는 고백하는 자에게 난다
    ▲ 조점숙 목사(오른 쪽)가 사회를 담당했다. ▲ 최두섭 목사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담당했다. ▲ 권평 원장은 오는 11월 7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리는 차기 모임을 설명했다. ▲ 민경배 목사(명예원장)이 축도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교수, 명예원장 민경배 교수)은 지난 10월 6일 제 284회 월례발제회를 서현교회당(담임목사 이상화 목사 시무)갖고, 교회사학연구를 통해 복음화에 더욱 노력하기로 했다. 최두섭 목사(전 인도네시아 선교사)는 개회예배에서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최두섭 목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인도네시아 그리스도인들은 훌륭한 성도들이었다고 밝히면서도 그럼에도 주일 성수를 하기만 해도 나름 성실한 성도로 취급받으며, 한국에서처럼 십일조를 지키는 등의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로 여기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성도의 신앙의 정도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본다며 한국교회들은 재정투명성이 상당한 편이라고 밝혔다. 최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구치소 직원으로 근무하던 지인에 따르면 대형경제사건 피의자들 중 20~30%는 장로 등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리스도인의 죄많음은 주변 환경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과 양심의 정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설교 문인 요한복음 1장 47절에 "참 이스라엘 사람"이 언급되면서 그의 맘에는 간사함이 없었다 라고 묘사되었 듯이 사람은 사람 다워야 사람인 것 처럼 그리스도인은 성도 다워야 그리스도인이인이라며, 구체적으로 그의 중심이 깨끗해야함을 주장했다. 최 목사의 청년시절 최자실 목사가 본인을 갑자기 불러서 교회를 도우라고 하셨는데 그분이 아들인 김성광 목사를 1984년 즈음에 만나니 목회를 도우라고 하셔서 교회의 총무과장으로서 복음전파에 뛰어들었는데 이제는 자신도 목사가 되어 인도네시아선교까지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밝혔다. 총무과장 시절 평신도에 불과했지만 일부 목회자들의 허물들을 목격하기도 했고, 마음에 고난이 많았지만 기도하는 신앙생활로서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소 존경했던 故 조용기 목사의 경우 매일 최소한 3시간을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에 영향을 크게 받아,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있을 때 매일 3시간을 기도했던 생각이 난다고 밝혔다. 최 목사가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만난 아줌마에게 다짜 고짜 권사님이냐고 여쭸고,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 권사님은 왜 그러냐고 질문했고, 그 얼굴에 은총을 받아서 감사하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본문 49절에 올바른 신앙고백을 한 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석했다. 성경의 본문은 교회의 성도는 중직자로부터 일반 신도까지 모두 올바른 신앙고백을 해야한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누구나 해야하며, 그 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내적 고백을 하면 겉으로도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퍼져 복음에 큰 일꾼으로 쓰임받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개회예배 사회는 조점숙 목사, 반주는 류금주 목사, 광고는 권평 회장, 축도는 민경배 목사 등이 담당했다. 권평 회장은 동 연구소 차기 모임은 오는 11월 7일 오후 3시 경 원두우기념관에서 연세대학교 신학과 대학원 총동문회와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 회장은 복음과 교회사 연구의 발전을 위해 이처럼 공동세미나모임을 더욱 많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주 발제는 장재경 박사(연세대학교, 교회사)가 '신학적 갈등과 권위의 관계: 란 프랑크와 성만찬 논쟁'을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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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0
  • 떡과 포도주 논란은 교황권 강화로 이어져
    ▲ 장재경 박사가 발제했다. ▲ 정용 목사(사진 왼쪽)은 이날 사회를 담당했다. 오른쪽은 장재경 박사. 장재경 박사(연세대학교 강사)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교수, 명예원장 민경배 교수)이 지난 10월 6일 서현교회당(담임 이상화 목사 시무) 주최한 284회 월례발표회에서 란프랑크와 베렝가르가 성만찬을 중심으로 논란을 빚었던 '신학적 갈등과 권위의 관계'를 발제했다. 투르의 베렝가르는 1948년 무렵 성찬에서의 빵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지 않으며, 그리스도는 실체적으로 임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갖고 있었고, 벡의 란프랑크에게 이와 반대되는 이단적인 주장을 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던 내용이 교황청에 알려져서 베렝가르가 오히려 이단적이라며 정죄당하고, 란프랑크는 교황의 편에 서서 이를 반박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내용을 장재경 박사는 설명했다. 베렝가르는 성만찬 논란이 발생하기 전 1020년대에 사르트르의 풀베르트 아래서 공부했고, 앙제의 대부제를 거쳐 주교의 재무관으로 일하면서 앙주의 백작 조프루아 마르텔을 돕고있었는데 학자이자 교사로서 명성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란프랑크는 이미 1042년 이전부터 교사로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사가 되어 신앙에만 전념하되 세상에서는 잊혀지기를 원했지만 교사 및 부수도원장으로서의 말과 행동은 그의 능력과 명성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권위가 형성되고이었으며, 성찬 논쟁 후 교황에게 특별한 배려를 받는 등 영광스러운 결말을 맞긴하지만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권위가 의심받을 위험에 처해졌기에 베렝가르에게 대응할 수 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장재경 박사는 성찬에 대해 베렝카르가 떡과 포도주가 직접 주님의 피와 살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가졌음을 밝혔지만 란프랑크는 어디에도 이에 대한 기술을 한 바가 없어 알기 어렵지만 교황이 베렝가르를 정죄했으며, 그 방향에 충실하게 따랐다는 것은 설명함으로서 상징설과 화체설 간의 갈등이었던 것이었음을 추측케 했다. 성만찬 논쟁을 두고 당시 교황인 레오 9세~그레고리우스 7세까지는 갈등에 적극 개입하고, 교회 회의를 통해 해결을 도모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서방 기독교 세계에서 교황의 권위와 리더십이 강화되었지만 더욱 심층적으로는 논쟁을 두고 과거에는 로마와 신성로마제국의 교회까지였지만 1049년에는 서유럽 타 지역의 주교들까지 전체를 소집하거나 소통함으로서 영향력과 교황권의 강화를 꾀했고, 이것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설명이다. 베렝가르와 관련해 열린 교회회의는 1049년 랭스, 1050년 로마, 1059년 로마, 1062년 앙제, 1078년 로마, 1079년 로마 등등에서 열렸지만 번번히 정죄당했고, 때로는 반성의 성명을 발표, 성명발표 한 것을 번복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한다. 성만찬 문제를 둘러싼 교황들의 해결방식에 대해 란프랑크는 교황의 결정과 지도력에 대해 적극 부응하고, 더 나아가 베렝가르에 대항 할 수 있는 논리 및 신학적 연구를 수행함으로서 더욱 더 교권 세력에게 큰 신뢰를 받게된다. 란프랑크는 성만찬에 관한 반 베렝가르적 신학논리를 준비하면서 교부들의 사상을 충실히 연구해 변증능력을 교황들로부터 인정받았다. 노르망디 교회는 성만찬 논쟁에 대해 베렝가르의 주장과 상반되는 태도였고, 이 지역 공작 월리엄은 동 논쟁에 대해 친 교황적인 방식의 대처를 실시함으로서 공작의 권위를 강화하고,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열매를 거뒀다고 한다. 월리엄은 성만찬 논란에 관해 교황청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며 신뢰를 얻었는데 이면에 그는 랭스 교회가 금지한 혈족간의 결혼을 플랑드르의 마틸다와 했기 때문에 결혼의 공식화가 어려워 교황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며, 교황의 인정을 결국 얻어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노르망디 등 여러 지역에서의 이 논쟁에서도 란프랑크의 논증은 직간접적으로 반 베렝카르적 입장에서 실력있는 인사로서 면모를 보였고, 캔터베리의 대주교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장재경 박사는 중요한 점은 란프랑크가 갈등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갈등을 해결하고,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권위를 지키면서 강화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주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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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6
  • 제 78대 의장단 복음을 위한 디딤돌 강조
    ▲ 김인환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김인환 목사)가 지난 10월 4일 안성 함께하는교회(김인환 목사) 112차 총회 78대 의장단 이·취임 감사예배를 드렸다. 김인환 총회장은 취임사에서, “역사는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며 온전히 썩어질 밀알로 섬기며 헌신의 길을 걸어가겠다”며 “하나님의 지혜로 서두르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면서 성령님께서 다시 치유하고 회복하는 교단이 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겠다”고 취임사를 밝혔다. 김 총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현재 교단 내에는 갈등을 넘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있는 상태라고 밝히고, 이제는 복음에 집중하는 교단이 되고자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재 동 교단의 계단공과 중 유치부~장년부까지 모두 집필이 완료되어있는 상태인데 이 공과를 전국 예하교회에 무료로 배포해서 지교회들의 전도활동과 신앙활동에 도움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앙교육과 관련한 캠프 등 교육활동에 교단이 적극 후원할 계획도 있음을 밝혔다. 김 총회장은 지난해 1백만 침례교인운동을 전임 고명진 총회장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것을 언급하고, 이 운동을 올해에는 지역별 목회자전도단 등을 구성해 전도활동을 할 수 있도록 ㅇ러 물품 등을 공급하고 격려하겠다고 강조했다. 감사예배에서 이욥 제 1부총회장과 강명철 제 2부총회장이 취임인사를 전하며 교단을 위해 헌신할 뜻을 전했다. 전임 총회장 고명진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한 가치로 만드시고 걸작품으로 만드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일을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며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신 이들이 침례교회를 위해 영혼을 살리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매진할 때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칭송받고 축복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담당했다. 경기도침례교연합회 대표회장 김원정 목사(우리가꿈꾸는교회)의 사회로 진행한 1부 이·취임예배는 김삼랑 목사(이산지교회 원로)의 기도, 112차 총회 임원단이 특송을 담당했다. 이어 김인환 총회장의 부친인 김순보 원로목사(함께하는교회)의 축도로 1부 이·취임예배를 마치고 이·취임식을 가졌다. 2부는 김종임 목사(동도중앙교회)의 사회로 평안밀알복지재단 난타팀 해피드리머의 축하공연, 김인환 총회장이 고명진 직전총회장에게 이임패를 증정하고 고명진 목사가 이임사를 전하며 신임 총회 의장단을 격려했다. 이어 고명진 직전총회장이 김인환 총회장에게 취임패를 전달하고 김인환 총회장이 이욥 제 1부총회장(대전은포교회)와 강명철 제 2부총회장(산양교회)에게 취임패를 전달했다. 국회의원 김학용 의원과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 전 총회장 안희묵 목사(멀티꿈의 대표),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가 영상으로 의장단 취임을 축하했으며 전 총회장 박종철 목사(새소망교회), 대전시침례교연합회 대표회장 홍석훈 목사(신탄진교회), 송탄중앙교회 배국순 목사,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가 축사했다.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축하패와 화환을 증정했으며 김인환 총회장이 전도부장 백승기 목사(백향목교회), 교육부장 김준태 목사(천안교회), 사회부장 장남홍 목사(석천중앙교회), 공보부장 김진혁 목사(뿌리교회), 해외선교부장 이창순 목사(서부교회), 재무부장 송석찬 목사(안산한양교회), 청소년부장 정임엘 목사(대전꿈의교회), 평신도부장 한덕진 목사(사랑하는교회), 군경부장 정희량 목사(광정교회), 농어촌부장 조용호 목사(칠산교회), 여성부장 이란숙 집사(전국여성선교연합회 회장), 감사 지성윤 목사(강남제일교회), 감사 유건재 목사(청주중앙교회)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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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7
  •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韓 네 번재 비레타 받은 유흥식 추기경
    ▲27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에게 추기경의 상징인 비레타를 씌워준 뒤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韓 네 번재 비레타 받은 유흥식 추기경 유흥식 추기경, 바티칸서 서임식…한국인 네 번째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 27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추기경 서임식을 마친 유흥식 추기경(71)의 각오다. 이날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인 유 추기경을 비롯해 20명의 새로운 추기경에 대한 서임식이 열렸다. 유 추기경은 선종(善終)한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과 2014년 서임된 염수정 추기경(78)에 이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이날 서임식은 가톨릭 의례에 따라 진행됐다. 유 추기경은 영국의 아서 로시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돼 빨간색 비레타와 추기경 반지를 받고서 교황과 잠시 웃으며 대화한 뒤 포옹을 나눴다. 비레타는 추기경 품위의 상징으로 아래는 사각형이고 위쪽에 성부·성자·성령의 삼위(三位)를 상징하는 세 개의 각이 있으며 빨간색은 순교자의 피를 의미한다. 추기경 반지는 교회에 대한 추기경의 사랑이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랑으로 굳건해짐을 뜻한다. 교황은 신임 추기경들에게 로마의 성당 하나씩을 명의 본당으로 지정하는 칙서도 전달했다. 유 추기경은 로마에 있는 ‘제수 부온 파스토레 몬타뇰라’(착한 목자 예수님 성당)를 명의 본당으로 받았다. ▲유흥식 라자로(70) 추기경이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서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의 상징인 빨간색 사제 각모(비레타)를 수여받고 있다. 사진=로마교황청 유튜브 캡처 .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영예로운 자리다. 세계의 모든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다. 새 추기경 20명이 탄생하면서 세계 추기경은 226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132명은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의 추기경이다. 국내에서는 유 추기경과 은퇴한 염 추기경이 80세까지 선출권이 있다. 유 추기경은 서임식 뒤 축하 모임 등에서 “교황님께서 ‘앞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씀하셨다”며 “그래서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서 죽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은 교황님에게 편지 쓸 때 내가 첫머리에 항상 쓰는 표현”이라며 “죽을 각오로 추기경직에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2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식에서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뉴시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추기경은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한 뒤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지냈으며 2003년 주교품을 받았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계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까이 지내는 소수의 한국인 성직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2014년 교황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냈고 지난해 6월 대주교 승품과 동시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축하 사절단을 통해 전달한 서한에서 “지난해 유흥식 추기경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하신 데 이어 이번에 대한민국 역사상 네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하시니 전 세계 천주교인들과 기쁨을 함께 한다”며 “새롭게 임명된 추기경들이 교황님을 보좌하며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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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08-28
  • 유흥식 추기경, 공식 서임… 한국인 네번째 추기경
    ▲유흥식 추기경이 지난 18일(현지 시각)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건물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흥식 추기경, 공식 서임… 한국인 네번째 추기경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인 유흥식 라자로(70) 추기경의 서임식이 27일(현지 시각)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렸다. 유 추기경은 지난 5월 29일 함께 추기경에 임명된 19명의 성직자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 속에 서임식을 마침으로써 정식으로 로마 교회 추기경단의 일원이 됐다.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78) 추기경에 이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네 번째 추기경이다. 추기경 복장을 완전히 갖춘 유 추기경은 29∼30일 교황이 주재하는 추기경 회의에 참석해 추기경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추기경을 임명한 것은 2013년 즉위 후 이번이 여덟 번째지만 무더운 8월에 추기경 서임식을 연 것은 처음이다. 교황청 역사를 되짚어봐도 8월 추기경 서임식은 1807년이 마지막이었다. 새 추기경 20명이 탄생하면서 전 세계 추기경은 226명으로 늘었고, 이 중 132명이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의 추기경이다. 132명 중 83명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비율로는 63%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 서임된 염수정 추기경과 유 신임 추기경 두 명 모두 투표권을 가진다.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유 추기경은 향후 10년간 투표권이 있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영예로운 자리다.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이 소속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다. 서임식에는 염수정 추기경이 추기경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정순택 서울대교구장, 김종수 대전교구장 등과 함께 국내 가톨릭 신도 경축 순례단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정부 대표인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을 단장으로 한 여야 국회 대표단도 현지에서 유 추기경의 서임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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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08-28
  • 기독교 변증 및 신앙 강화에 도움
    ▲ 저자 양형주 목사 요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이야기 중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던데', ;흑암이 깊은 위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뱀이 정말 말을 했는지', '보혜사의 뜻을 아는지', '천국의 비밀을 깨달았는지' 등에 수많은 질문을 하고,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내 직책과 무관하게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서 교회가 흔들리고, 신앙이 흔들리는 사례가 많기에 이런 질문들에 대처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양형주 목사는 「신천지 돌발질문에 대한 친절한 답변(기독교포털뉴스 발행)」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이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지난 8월 11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했다. 양 목사는 목회를 하다보면 신천지 측 인사로 보이는 이들이 교회 또는 성도들에게 접근해 성경책의 내용 중 답변하기 어려워 보이는 질문을 하는 사례가 많이 제보되어서 이것들을 분류해서 약 80가지 정도의 질문과 답변, 해설 등을 담아 출간했다며 한국교회의 건강성과 신앙증진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저자는 그들의 질문이나 설득을 위한 말들이 논리적으로 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영이나 말, 사랑, 조직체 등 다양한 주제들을 진리나 비진리, 영적 또는 육적으로 이분법적으로 구성된 것들이 발견되는데 대책으로는 성경 내 다양한 사건들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거나 비약이나 과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봤으며, 성경 내용의 문구가 아닌 문맥을 중시해서 봐야한다고 제시했다.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네안데르탈인이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진화론의 인류들을 제시하거나 창세기 2장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이라는 내용에서 부모나 떠나 등의 내용을 볼 때 첫 사람이었던 아담인데 부모가 있느냐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진화론은 진실이 아니라 일종의 가설이며, '떠나'라는 단어는 한국어에서는 완료형처럼 보이지만 성경 원본 히브리어의 '야아자브'라는 미완료형으로서 동작의 완료가 아닌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후손들이 계속해 준수할 결혼의 원칙일 뿐이라는 등 80가지 성경주제들을 성경해석학이나 문화학, 언어학, 신학, 인류학 등 매우 다양한 방식을 사용해 정통 그리스도교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가졌다. 양형주 목사느 이 책이 저술된 가장 큰 목적은 교회를 교리적으로 신앙적으로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여기 서술된 성경이야기들이 그리스도교희 핵심교리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변증적인 목적이 아닌 사람이 읽어도 본인의 신앙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형주 목사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철학과, 장신대 신대원, 동 대학원 신약학 석사 및 박사학위 등을 취득하고, 장신대 신약학 객원교수, 바이블백신센터 원장, 예장 통합 대전서노회 이단상담소장, 대전도안교회 담임목사 등을 담당하고 있다. 바이블백신센터는 그리스도교 교리공부를 쉽게 하도록 도우며, 그리스도교 교리의 수립자체가 이단들과의 변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기에 교회사적으로 근본적 연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이단상담사역이나 바이블아카데미 상담사 양성과 청년 양성 사역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08-19
  • 복음과 실천의 균형 맞춤에 최선을
    ▲김정곤 송암교회 담임목사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김명구 월남이상재연구소장 ▲김정회 목사 송암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 담임 김정곤 목사)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기념예배를 지난 8월 14일 예배당에서 가졌다. 동 기념예배는 「송암 함태영(김정회 저,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발행)」의 발행기념식도 겸해 진행되었으며, 김정곤 담임목사의 '이 마음을 품으라'라는 제하의 설교와 김명구 박사(월남시민문화연구소 소장)의 기조강연, 김정회 「송암 함태영」 저자의 답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송암교회는 지난 1962년 6월 한국신학대학 교수 가족을 중심으로 대학구내 예배실에서 창립예배를 드렸고, 1970년 4월 송암기념관으로 이전 후 1976년에 현재 명칭 송암교회로 변경했으며, 송암기념관의 나라사랑, 겨례사랑, 사회봉사, 인재양성이라는 취지를 이어 받아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 김정곤 목사는 송암교회와의 인연은 신학생일 때 학교인근에 있는 동 교회에 출석했다며, 당시로 부터 최근까지 교회의 역사나 함태영 목사 등에 대한 내용을 잘 접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서말의 구슬을 꿴 것처럼 모든 정보를 집대성해 기억하게되었는데 이런 노력들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진행해오다가 김정회 목사가 「송암 함태영」 책을 저술함으로서 우리들도 몰랐던 많은 정보들이 정제되어 책에 수록된 것은 매우 감사드려야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故 함태영 목사님의 큰 업적들이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로 이해관계나 정치적 선택, 교권 등 의도적 배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그럼에도 그는 독립 투사요, 총회장이요, 인기인 중에 인기인이지만 주변인처럼 취급받아왔던 것이 바로잡아지는 때가 왔다고 밝혔다. 함태영 목사에 대해 사상가요 정치가, 법률가로서는 3.1운동의 가장 핵심인이며, 한국 법조계의 근간을 놓은 국가적인 인물이지만 목회자로서는 둔전교회에서 목회, 초동교회 초대 당회장 등을 감당하면서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들 함병훈 군의 교복을 손수 꿰매주던 그런 소탈함을 모두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신앙적으로 실천적으로 좌우의 균형을 바로잡아주시던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 감동을 느끼며, 그것이 사회적 성공을 뒤로한 채 묵묵히 신앙으로 정진하셨던 것으로 인해한다고 설명했다. 설교 본문인 빌립보교회에서 성도들이 두 파로 나뉘었다는 사실에 가슴아픈 바울은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며 통합을 주문했는데 함태영 목사님의 삶을 청념결백과 외유내강, 모범됨으로 평가되는 만큼 그분의 정신대로 겸손함과 희생정신을 배우자고 요청했다. ▲ 김명구 박사는 일본의 조선침탈시기에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내용이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였다고 상당수 역사가들이 평가하지만 이처럼 장개석이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다는 그런 주장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주도권을 갖고있었다는 현실적 측면을 통해 볼 때 오히려 미국은 카이로선언 이전에 이미 한국을 독립국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루즈벨트와 그의 친구 호킨스나 배우자 등은 신앙인이었고, 특히 사회복음주의적이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고 밝혔다. 현재 송암교회의 교우들은 철저히 복음주의적 신앙인이라고 김 박사는 평가하고, 사회복음주의는 내세신앙적 측면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하고, 국가간에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리스독교 윤리관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00년대 초기 미국은 일본에 대해 항상 우호적이었던 나라였고, 당시 조선과는 경제통상이 0.01% 정도의 수준으로서 무의미한 관계였지만 1912년 조선에서 105인 사건이 일어나 6백 여 명의 그리스도인을 수감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고 느꼈기에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으로 평가했다. 게다가 한국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벌어져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엄청난 선교의 결실이 벌어지는 것들을 미국 출신 선교사들이 목격, 귀국 후 조야정치계에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서 조선의 독립에 다양한 도움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사회구원적인 요소를 많이 실천해 이념적인 무장이 되는 한편 지 교회의 성도들이 한밤중에 교회당을 찾는 것은 그런 이념 때문이 아니라 내세적인 복음과 신앙 때문일 것인데 송암교회에서 교단의 신학방향과 성도의 신앙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것은 함태영 목사님의 영혼구령과 전도생활, 신앙과 사회구원적 봉사정신 등이 발현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회 목사의 책은 성도들이 세사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구체적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저자 김정회 목사는 「송암 함태영」의 출간은 역사 속에 뭍혀있었던 거인을 제 자리에 돌려놓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선행연구나 자료가 거의 없었던 상황이 어려웠지만 자료로서 출간했으니 후학 연구자들이 이것을 뛰어 넘는 연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고 밝혔다. 함 목사의 신앙과 삶은 민족을 되살려야하는 시기에 애국의 정신으로 주님께 충성한 인생이었다며, 복음의 능력이 약화되어가는 시기에 진정한 지도자요 목회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며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 함재봉 박사(한국학술연구원 원장)는 김정곤 송암교회 담임목사와 송암교회가 출간기념행사를 흔쾌히 열어줌에 감사를 표했다. 함태영 목사의 손자로서 동 예배에 참석했으며,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를 일찍 잃고, 어린 두아들을 손수 양육하면서 육체적인 고통도 많았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맞았던 것들을 알고 있는데 이처럼 영광스러운 시기가 올지는 몰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할아버지께서 3.1운동 등 국가의 어려운 때마다 큰 희생과 기여를 하셨다는 것은 집안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비밀스러운 정보였고, 외부에 발설하는 것은 금기였는데 이처럼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이 행복하고, 무엇보다 지금 이 시간에 송암교회가 우리 유족과 지금도 손 잡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 박종화 목사는 함태영 목사의 아들 함병춘 교수가 국가를 위해 순국했고, 손자인 함재봉 박사 또한 한국정치사상사분야의 대가로서 여전히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에 기쁜 마음이 든다며, 송암 목사님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그의 사상과 신앙을 통해 볼 때 그의 호가 늘 푸른 소나무 송(松), 굳건한 반석 암(岩) 인 것을 통해 볼 때 송암교회의 성도들은 굳건한 신앙을 가져야할 의무가 있다고 축사했다. ▲ 강성영 목사(한신대학교 총장)는 60년 전 동 교회에 소나무가 있고, 시내가 흐르던 때가 생각난다면서 송암교회의 60주년을 축하하며, 함태영 목사와 송창근 목사 등이 신앙의 동지였던 때가 기억난다며, 한신대학교에서 목요강연회를 늘 개최하고있는데 오는 9월 함태영 목사에 대한 강연회를 김정회 목사를 초청해 실시하는 등 함 목사님에 대한 새로운 발걸음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고시영 목사(전 서울장신대학교 이사장)는 토인비는 유럽 최대의 사건으로 그리스도교의 몰락이라고 했는데 본인이 보기에 현재 한국 최대의 문제도 그리스도교의 몰락이라고 꼽는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의 수 많은 문제의 해결방법은 그리스도교밖에 없으므로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건국과 민주화의 핵심공로자였음을 다시금 알리고, 한국 그리스도교의 명의로 한국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서 문제의 파악 후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예배는 축도에 김주용 목사(함 목사가 목회했던 연동교회 담임목사, 「송암 함태영」의 저술시 자료제공), 기도에 이규남 원로장로(함태영 목사와 함께 교회행정을 처리 함), 성경봉독에 박창수 장로, 특송 송암교회 시온성가대, 광고 백종원장로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08-17
  • 쯔빙글리의 정당한 경제 및 점진적 개혁 논해
    ▲김유준 한신대학교 교수는 츠빙글리의 경제사상에 대한 발제를 담당했다. 김유준 교수(한신대학교 겸임교수)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교수, 명예원장 민경배 교수)이 개최하는 제 282회 월례발표회에서 '츠빙글리의 경제사상 연구'를 지난 8월 11일 발제했다. 권평 원장(평택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동 발표회에서 김 교수는 교회사연구에서 츠빙글리에 대한 경제사상사 연구분야에서 칼빈의 것에 비하면 덜 부각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개혁교회의 뿌리가 츠빙글리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는 교회개혁가이면서도 취리히시의회 의원으로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교회개혁의 물결이 5백년 전에 유럽에 불었지만 츠빙글리로 인해 교회개혁과 동시에 사회개혁이 진행된 것을 알 수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취리히시의 당시 경제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경제적인 양극화로 인해 스위스의 많은 청년들이 용병으로 나가서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는 현실이어서 경제일반적으로 노동에 의한 것이 아닌 전쟁으로 인해 생계를이어가는 기이한 상황인데다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돈을 갈취하는 경우고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사람들이 삶이 국가보다는 도시위주로 이뤄지는 상황이었고, 문화적으로는 독일어권이었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너 높아서 루터보다는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는 1519년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봉사활동 중 병을 얻을 정도로 좋은 심성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고, 병에서 나아가며 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은 세상의 권력보다 선행한다는 점들을 깨닫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상을 펼쳐갔다고 한다. 그의 개혁은 1~3차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회를 거듭할 수록 개혁의 강도는 세어져가며, 이윽고 67개조문을 만들고, 성상을 모두 제거하고, 성만찬의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특징적으로 교회개혁과 동시에 현실정치에도 참여함으로서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개혁에 주력한 것과 대비해서 설명했다. 츠빙글리는 사유재산은 하나님께서 이웃사랑을 위해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고, 노동의 가치도 건전한 양심의 결과물로서 신성한 것이기에 사회복지적인 제도의 도입을 강조함으로서 교회와 사회 양측에서 개혁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고리대금업도 과거에는 수백퍼센트의 이자율을 갖고있었지만 5%로 한정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용병제도를 통한 연금제도를 금지했는데 이 연금은 현재의 것처럼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전해 벌어온 돈을 갈취하는 방식을 규제한 것인데 당시 여타의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가톨릭의 교리에만 주력해 싸우던 것에서 발전해 교황의 돈줄기를 막아놓은 구체적 개혁에 해당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정의(Justice)에 대한 개념도 하나님의 정의가 가장 높은 가치이며, 인간적인 정의는 상대적이고, 부차적인것에 불과하기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정의 관점에서 개혁을 실시하되 점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선조가 이뤄놓은 모범적인 것은 계승하는 방식이어야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의 경제사상은 현재에도 불의한 경제체제의 절대관을 부정해야하며, 점진적인 개혁이어야하고, 개혁을 할 때 교회개혁과 동시에 사회개혁도 추구해야한다는 측면을 갖고있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주장인 친환경적인 인간활동과도 연계된다고 김유준 교수는 밝혔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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