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Home >  문화 >  음악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장욱조·박일준·지은숙·마도로스朴·윤한길 등 가요계 인사들과 교류도 시애틀에서 활동 중인 가수 서정우가 지난해 12월10일 개인적인 일로 급히 한국 방문 중에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 및 녹화에 참여하는 등 분주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1월14일 시애틀로 돌아간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밀어닥친 혹한으로 인해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약을 복용하는 등 사흘간 꼼짝 못 하고 지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후 친지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의 안내로 ‘가요 TV 쇼’ 등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 녹화와 가수 박일준이 유튜브로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참여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시애틀 언론계에 몸담았던 기자는 20년이 넘는 동안 가수 서정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수들의 시애틀 공연에 물꼬를 튼 개척자이다.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가수들에서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로 널리 알려진 故 송해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을 초청, 공연을 통해서 시애틀 및 인근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에게 고국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는 산파역을 했다. 주로 한국 문화계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는 가요계 취재도 할 기회가 있다. 기자가 시애틀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는 장미화는 “서정우 잘 있어요? 그 애(장미화의 친근한 사람에 대한 표현)는 정말 잘 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 출연 섭외 등에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아서…”라며, 가수 서정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미8군 무대 출신의 가수 장미화는 1973년 ‘안녕하세요’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때부터라고 계산하더라도 두 사람은 오래된 사이인지라, 가수 장미화는 후배 가수 서정우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수 장미화가 “그 애는 정말 잘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라고 안타깝게 말한 사연은 이렇다.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요사에 불멸의 곡으로 남은 ‘흙에 살리라’를 처음 녹음하고 부른 가수이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은 그 곡을 부른 가수는 홍세민(2021년 별세)으로 기억한다. 우직한 충청도 청년 서정우는 어느 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유튜브 등 다양한 홍보 매체를 이용해서 ‘운(運) 좋으면’ 일약 스타가 될 수 있지만, 60년대 말과 70년대는 ‘운’이 좋으면 라디오를 통해서, 정말 '운 벼락’을 맞으면 TV 화면을 장식하는 것이 정석으로 통했다. 그에게도 그 ‘운(運)’이 찾아왔다. 1970년대 초 김정일 작사·작곡의 곡 ‘흙에 살리라’를 받게 되었던 것.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흙에 살리라’ 1절 산업화 시대를 맞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울로 향했던 그 시절. 그렇지만 서울 생활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더 짙게 채색되어 갔다. 60년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선술집에 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거나, 선술집의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노래에 눈물을 훔치거나, 귀갓길에 홀로 흥얼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그런 때, 그 시절에 서정우가 부른 ‘흙에 살리라’라는 노랫말은 대중가요에 흔하디흔한 ‘사랑·이별’ 등이 주제가 아니라,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과 초록빛으로 채색한, 두고 온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정우가 부른 그 시대에 맞아떨어졌던 곡 ‘흙에 살리라’는 ‘운’ 좋게 라디오를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수 서정우’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운’ 나쁘게 서정우 씨 앞에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뒤 배경이 없으면 입영 연기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입영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는 ‘흙에 살리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서정우를 찾았지만, 군 생활을 하는 그를 무대에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 해서 작곡가인 김정일 씨는 부랴부랴 1973년 23세의 홍세민에게 '흙에 살리라'를 취임시켰고, 그 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가수 서정우의 이름은 잊혀졌다. 서정우가 군 생활 3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다시 신인 아닌 신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흙에 살리라’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허리끈을 졸라맨 그는 밤업소 등을 뛰면서 기회를 노렸지만, 그에게 ‘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에 시애틀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그의 누나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시애틀에서 햄버거 가게 등을 하면서 열심히 살던 그에게 가끔 한인 밤업소에서 출연을 요청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사양하고 오직 주어진 현실인 생활전선에 열심을 다했다. 어느 정도 미국 생활이 안정되자 슬며시 노래를 향한 애정의 싹이 텄다. 그때부터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면서 한국의 가요계 동료와 선후배들을 시애틀로 초대해서 한인 동포들을 위한 공연을 개최하는 데 힘썼다. 그의 그 같은 본국 가수 초청 공연은 동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초대한 본국 연예인들은 송해를 비롯해서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다. 가수 서정우와 기자는 2년여 만인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가수 박일준이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초대 가수로 출연한 장소였다. 그 자리에서 서정우는 노래와 함께 자신의 가요계 데뷔와 그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비롯해 시애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한국 방문 중에 가요 활동을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근황을 전했다. 가수 박일준은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가수인 나도 흉내를 낼 수 없는 독특한 음성을 지녔다. 솔직히 대중가요 가수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이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후 “그래서 머리가 터지게 홍보에 나서는 상황인데, 시애틀에 살고 계시면서 한국에서 가요 활동을 한다는 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요계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바로 서정우 씨가 가진 높은 음악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수 지은숙(힛송: 니가 사랑을 알아·바보같은 사람·내 가슴에 비가 내리면·사랑은 무죄 등)이 특별 출연, 가수 서정우를 응원했다. 또한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와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 가수 마도로스 박 등도 참석,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방송을 지켜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가수 마도로스 박은 “허스키한 음색이 주는 독특함이 매력적이다. 시애틀에 살면서, 이렇게 한국 가요 무대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은데, 앞으로 지방 공연 등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했다. 잘 살아 봅시다 잘 살아봐요 /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가 살면은 천년을 사나요 / 만났으니 잘 살아 봅시다 외로울 때면 나를 불러요 / 슬플 때면 함께 울어요 우리네 인생길 공수래공수거 /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서정우 노래 ‘잘 살아 봅시다’ 1절 가수 서정우가 몇 년 전 사랑하는 연인에게,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향한 진솔된 마음의 고백이 담긴 경쾌한 리듬의 노래 ‘잘 살아 봅시다’는 몇몇 가수들도 부르는 등 인기곡 챠트에 올랐다. 그런데 가수 박정식이 개사를 해서 불러 힛트시킨 것을 지켜보면서, 주거지가 미국이기 때문에 본국 무대에 설 기회가 그만큼 적은 그가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 서정우는 “제가 부른 노래가 여러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지면 좋지요.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그저 노래하는 것, 그것 자체로 즐겁게 생활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저의 생활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 했다. 마치 서정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이다. 그가 부른 대부분의 곡도 긍정적이고 밝다. 가사도 그렇고, 곡의 리듬 역시 경쾌하다. 그런 가수 서정우가 이번 한국 방문 중에 취입한 신곡 ‘꽃 입술(박영지 작사·장욱조 작곡)’이 ‘박일준 TV’에 소개되었다. 화사한 꽃 입술에 함박웃음 피어나면 / 내 마음 빼앗겼네 나도 몰래 반했네 좋아졌네 좋아하는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 / 긴 머리 찰랑대는 상큼한 그 아가씨 새빨간 꽃 입술 꽃 입술 그녀를 / 정말 정말 좋아해요-서정우 노래 ‘꽃 입술’ ‘박일준 TV’ 방송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을 때, 영하의 찬 바람이 몰아치는 밤 11시였다. 그는 ‘꽃 입술’ 곡을 준 작곡가 장욱조의 파주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은 찬양 목회자로 변신한 장욱조였다. ◎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10일 서울 KSPO돔에서 1만2000여 관객 만나 좌우 정치권 왼팔오른팔 빗대 비판…약 2시간 30분동안 거침없는 발언 사흘간 서울 공연 후 59년 가수 인생에 종지부…공연 중 눈물 보이기도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보니, 별로 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 가수 나훈아(77)의 목소리는 물기로 꽉꽉 잠겨 있었다. 그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연 단독공연 ‘라스트 콘서트- 고마웠습니다’의 한 장면. 나훈아는 1998년 가수 인생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설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 스타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미주알 고주알 들춰 보이면 환상이 깨진다.” 그랬던 그가 이젠 평범하게 땅을 걷겠다고 했다. 관객들 사이에선 아쉬움이 가득 섞인 “안돼” 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훈아는 10일~12일,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그가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은퇴 투어 무대의 ‘마지막 개최지’로 예고해 큰 예매 경쟁이 벌어진 공연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를 통해 처음 은퇴 계획을 알렸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팬들에게 고별인사를 전하는 공연을 열어왔다. 나훈아는 지난해 4월 인천 무대 때만 해도 “오늘은 인천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니 꼭 잘 해낼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 공연에선 약 2시간 30분간 23곡의 히트곡을 선보이며 수 차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첫 곡 ‘고향역’부터 내리 6곡을 부른 직후엔 “저는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게 ‘마지막 공연’이다. 오늘 아침에도 연습을 하면서 가슴이 좀 먹먹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연 마지막 순서로 대표곡 ‘사내’를 부를 땐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 또한 평소보다 더욱 거침이 없었다. 그가 매 공연 때마다 ‘띠리~’가 이어지는 후렴구를 활용해 속내를 내보이는 순서다. 한때는 팬들에게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나훈아의 2008년 ‘신체 절단설’도 이날만큼은 노래에 맞춘 유쾌한 농담 소재가 됐다. “여러분은 ‘(나훈아) 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십니까. 내보고 밑에 다 잘맀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여러분.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 띠리~!” 능청스런 나훈아의 말이 순식간에 객석을 뒤집었다. 정치권을 향한 그의 작심 발언도 평소보다 높은 수위로 이어졌다. 가장 이목을 끈건 나훈아가 지난달 7일 가진 대구 단독공연에 대한 언급. 당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사태 나흘 만에 공연을 열었고, “요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 공연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은 어느 쪽이고? 여당, 야당 대표 집은 어디고?”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선 ‘나훈아가 계엄 사태와 현 정부에 분노해 쓴소리를 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나훈아는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저거 색깔에 맞게, 맘대로 막 쓴 기다. 그럼 안 된다”며 직접 반박에 나섰다. “인제 그만 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켔는데 (안 되겠다)”며 운을 뗀 그는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을 들어보이며 “왼쪽이 오른 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 이 얘기가 지가 지방(대구)에서 한 얘기”라고 했다. 이어 그는 왼팔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니는 잘했나!” 계엄 사태 이후 좌우로 나뉘어 책임론을 묻는 정치권 분쟁을 왼팔과 오른팔에 빗대 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형제들을 혼내던 어린 시절도 예로 들었다. “서로 잘못했다 난리를 직이면 우리 어무이는 ‘둘 다 바지 걷어라!’며 둘 다 때렸다. 형제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싸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말하신 것”이라며 “지금 우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고 난리가 났는데, 느그(너희) 하는 꼬라지들이 정말 국가, 국민을 위한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외쳤다. 그는 “내 말에 동의를 안 해도 좋다”고도 덧붙였다. 객석에선 곧바로 “동의!” “옳소!” 환호가 이어졌다. 나훈아는 공을 완창한 직후에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여러분, 지금 우리 머리 위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텔레비전에서 어떤 군인들은 계속 잡혀 가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다. 이것들한테 우리 생명을 맡긴다? 웃기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언론들이 이런걸 생중계한다는게 문제”라며 “그러면 북쪽 김정은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저런건 생방송해서 비추며 안 된다”고도 외쳤다. 이어진 그의 말에 객석에선 또 다시 “맞다!” 소리가 쏟아졌다. “정치하는 분들이 반은 국회에서 밤을 새고, 탄핵을 하니 생 지x을 하든 뭘 하든 다 좋아. 다 좋은데, (나머지) 반은 국방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 써야 합니다. 경제고 국방이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딴짓들만 하고 앉아 있는데.” 한편 나훈아는 오는 12일까지 사흘간 5회에 걸쳐 약 7만 관객을 만난다. 1967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랑’ ‘영영’ ‘잡초’ 등 직접 쓰고 부른 노래만 1200여곡에 달한다.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추위 녹인 ‘레전드 뮤지션들’의 훈훈한 무대 정혜선·이영하 탤런트, 박술녀 한복 명인 등 객석 꽉 채운 관객에 감동 안겨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 장미화 회장·조갑출 고문에 ‘감사장’ 수여 관객들, “TV에서 그룹사운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K-팝의 지평을 넓히는데 초석을 다진 미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뮤지션들로 구성된 단체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마련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는 왜 그들이 ‘전설’로 통하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1,2,3층을 꽉 채운 탤런트 정혜선·이영하, 박술녀 한복 명인 등 하객 및 관객들은 나이를 초월한 레전드 뮤지션들의 열정적인 노래에 탄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행사 개막전 사회를 진행한 장미화 회장은 “오늘 김홍탁(록밴드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 그룹사운드 전성시대를 연 기타리스트. 예우회 2대 공동회장 역임-편집자)선배께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창립 21주년을 맞이한 3·4대 장미화 회장이 이끌고 있는 ‘예우회’는 지난 4월25일 ‘예우회’ 회원 김광정(‘가는 세월’의 작곡가 겸 가수, 기타리스트)에서 황규현(힛송 ‘애원’을 부른 가수. 그룹 쉐그린의 리드보컬 출신. 밴드 포가이스와. 플레이보이서 활동)에 이르기까지 16명의 뮤지션들의 힛송 및 신곡 등을 담은 옴니버스 음반 ‘전설을 노래하다’를 발매했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이끌던 전설들이 함께 뜻을 모아 다양한 목소리로 신곡이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음반에 직접 작곡한 신곡이 유작이 된 ‘사랑은 운명’을 담은 故 장우(힛송 ‘가시나요’ 등을 부른 가수. 코코 브라더스, 포 다이나믹스로 활동)가 음반 발매 사흘 후에 숨을 거두었다. 장 회장이 부음을 전한 故 김홍탁 ‘예우회’ 제2대 공동회장은 이 음반에 김선·오영숙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김홍탁 트리오'로 ‘바닷가의 추억’을 담았는데, 공교롭게도 ‘예우회’의 행사가 있는 이날 오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에 잠시 장내는 숙연해졌다.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은 행사 시작 전 예우회 장미화 회장과 조갑출 고문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그룹 사운드 신곡 발표 나눔 축제’와 ‘불우이웃돕기 자선 콘서트’를 곁들인 행사 수익금은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에 오른 그룹 사운드 및 개인별 순서는 아래와 같다. 행사 막 올린 올드 팝 전문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즈’의 멋진 연주 7인조 혼성 보컬 그룹사운드 마일스톤즈(리더 이상래)의 올드 팝송 Cotton Fields(1970. The Beach Boys)로 ‘전설을 만나’는 문을 열었다. 2014년에 결성된 이래 올드 팝송을 추억하는 관객들에게 100여곡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두터운 올드 팝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마일스톤즈’는 ‘예우회’ 회원은 아니지만, 특별 초대되어 Dust in the Wind(1978. Kansas), 팝 메들리-Hey Tonight(1970.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 Sugar, Sugar(1969. The Archies), Oh, Pretty Woman(1964. Roy Orbison and the Candy Men), Cry Like a Baby(1968. The Box Tops), I Want to Hold Your Hand(1963. The Beatles)-에 이어 1968년 비틀즈의 경쾌한 리듬의 힛송 Ob-La-Di, Ob-La-Da을 연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흥겨움과 함께 꽃피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여성팬들의 압도적 박수갈채 받은 ‘훈이와 슈퍼스타’ 출신 김훈 두 번째 무대는 1980년대 '오라리오'로 인기를 누렸던 '훈이와 슈퍼스타'의 김훈이 장식했다. 가수 뿐만 아니라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스포츠 팬들에게는 ‘명 배드민턴 해설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불멸의 힛송’ ‘오라리오’를 노래,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관객들은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의 김훈이 독특한 저음으로 1972년 영화 ‘대부(The Godfather)’ 테마뮤직을 앤디 윌리엄스가 불러 힛트시켰던 ‘Speak Softly Love’를 노래하면서 마론 브란도·알 파치노·제임스 칸 등이 열연했던 영화 ‘대부’와 197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했던 마론 브란도가 영화 속에서 펼쳤던 명연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등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30일 데뷔 50년 디너 쇼 갖는 ‘만년 소녀’ 옥희가 장식한 화려한 무대 세 번 째 무대는 자선바자회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등에 빠짐없이 동참하는 등 장미화와 언니·동생으로 지내는 절친이자 후배인 ‘철없이 순진해 보이는 만년 소녀’ 옥희가 등장, 한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치겠다는 간절함이 깃든 엘비스 프레슬리의 1961년 힛 팝송 ‘Can't Help Falling in Love’로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곡가 이봉조와 김희갑에게 발탁돼 1968년 미국인 기획자의 눈에 띄어 도미(渡美),라스베이거스의 팝송무대에서 ‘서울시스터즈’ 밴드 소속 가수로 활동 후 73년 국내 무대에 데뷔한 옥희는 ‘나는 몰라요’ ‘눈으로만 말해요’ 등 힛송과 함께 당시 파격적 의상과 시원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 옥희는 사회자 장미화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는 30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50주년 기념 디너 콘서트를 연다”며, 장년층 이상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그녀의 “남편 홍수환의 첫 세계 챔피언 등극 5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린다”는 홍보를 했다. 그러면서 옥희는 특유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최근 신곡을 냈다. 들어보시고, 대박이 날 것 같으면 박수로 화답해 달라”고 말한 후 경쾌하고 긍정적인 사랑의 의미가 담긴 ‘고마운 사랑’을 노래,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 이제는 우리 드라마 속에 / 주인공처럼 살아 봅시다 따뜻한 사랑 달콤한 사랑 / 우리 다시 또 시작해요 / 죽고 못 사는 뜨거운 사랑 / 아주 멋진 우리 사랑은 노을이 물든 강변도 함께 걸어요 / 연인처럼 두 손 꼭 잡고 /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함께해서 고마워-옥희 노래 ‘고마운 사랑’ 가사(작사 정기수, 작곡 송광호)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의 열창에 객석에서 터져나온 ‘탄식’ 네 번째 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한국 흑인 음악의 선구자로, 한국 여성 소울의 대모,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이었다. 짙은 허스키에 영혼을 울리는 그녀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흑인 재즈 가수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목소리, 굴곡진 삶을 노래한 짙은 감성의 허스키 보이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절절한 호소력의 소울, 트로트, 재즈, 가스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능력을 지닌 뮤지션. 중학교 2학년 때 외국 팝송을 많이 접했고 특히 미국 흑인가수 샘 쿡(Sam Cook)의 노래에 푹 빠져 지냈던 소녀. 어린 그녀는 짙은 감성으로 사람의 영혼을 감싸주는 외국의 솔 가수들의 끈적끈적한 솔이나, 블루스 같은 흑인 재즈성향의 노래가 특히 좋아한 것이 계기가 돼 60년이 넘은 지금도 남자가수를 압도하는 박력있고 파워넘치는 보컬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애잔함을 오래 간직하게 만드는 임희숙은 금년 ‘예우회’가 출시한 음원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 신곡 ‘사랑의 순례자’를 부르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길고 긴 강을 따라 구름이 가듯 / 터벅 터벅 세월을 따라 먼 길을 간다 / 삶의 이 끝에서 또 저 끝까지 / 내 하나의 사람을 찾아서 간다 끝내는 머물게 될 그 한 곳이 있어 / 무거운 이 발길을 쉬게 하려나 / 한 밤도 태우지 못한 이 한 가슴을 / 그날엔 파랗게 밝혀 주려나 갈수록 어두움이 두려워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 갈수록 외로움이 깊어 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임희숙 노래 ’사랑의 순례자‘: 백창우 작사·곡 임희숙이 두 번 째 부른 곡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불멸의 힛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경쾌한 리듬의 곡과 연주로 객석을 사로잡은 김혜정과 ’검은나비‘ ’전설은 만나‘는 무대는 밴드 ’검은 나비‘로 바뀌면서 객석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1974년 결성된 ’검은 나비‘는 신중현 사단인 그룹사운드 더맨 출신인 손학래가 결성한 그룹으로 신중현 계보의 그룹 ’더맨‘ 출신들과, 김홍탁 계보의 그룹 히식스 출신들이 만나 결성된 밴드다. 그룹 더맨 출신으로는 손학래, 김기표, 이태현, 문영배가 있으며, 그룹 히식스 출신으로는 최헌, 김영균, 김인섭 등이었다. 그룹 검은나비는 남성 솔로가수의 등용문으로도 유명했다. 백두산의 유현상,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 도시 아이들의 박일서, 김태화 등이 ’검은나비‘를 거쳐간 가수들이다. 국내 록그룹의 전설로 미8군 무대를 점령해서 명성을 떨쳤던 검은나비 보컬 김혜정이 호랑나비가 그려진 화려한 망토를 어깨에 걸친 채 등장하자 남편인 기타리스트 윤신호 등 6인조 밴드의 능수능란한 연주와 함께 영국이 낳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록·팝 그룹 ’퀸Queen‘ 보컬 퍼포머 프레디 머큐리의 힛송 Bohemian Rhapsody(1975), We Will Rock You(1977), Another One Bites the Dust(1980), We Are the Champions(1977)등을 열창, 올드 팝송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시선이 잠시도 무대를 떠날 시간적인 틈을 주지 않았다. 이어서 보컬 김혜정은 이날 별세한 故 김홍탁 작곡, 강찬호 작사 ’당신은 몰라‘(최헌 노래-1972년 He6 5집 수록)와 ’예우회 회원 김희갑 작곡, 지명길 작사 최진희 노래 ‘사랑의 미로’(현재 미국 워싱턴주 거주 중인 태원이 1976년 발표했던 ‘너의 사랑’이 원곡으로, 1984년 개사, 발표해서 힛송으로 자리매김-편집자)를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에너지 넘치는 ‘퀸 베이’ 장미화의 열창에 객석에서 나온 “마치 비욘세를 보는 것 같다” 감탄 이어진 무대는 김훈의 소개로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가 섞인 능수능란한 진행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장미화가 장식했다. 여기서 간략하게 장미화 ‘예우회 회장’의 노래에 얽힌 여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장미화는 ‘KBS 아마추어 톱싱어 대회’ 대상을 받은 후 신중현이 이끌던 인기 미8군 그룹사운드 ‘Add4(애드포)′의 객원 보컬을 제안받고, 1965년 신중현이 Add4 이름으로 낸 첫 정식 음반에 ‘노래 장미화’라고 새겨진 두 곡,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읻 등불을 끕니다’가 함께 실렸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녀는 “대학 1학년 재학 중 휴학계를 내고 Add4의 막내 객원 보컬로 들어가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미8군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장미화는 1966년, 국내 최초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매니저였던 ‘맥맥퀸(Bob McMackin)’을 통해 “당신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 걸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로지’란 이름으로 1세대 여성 5인조 그룹사운드 ‘레이디버드’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진출한 첫 해외 무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센스호텔’, 그룹사운드 형태 국내 걸밴드 최초의 미국 진출 기록이 됐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번은 ‘Unchained melody’로 유명한 라이처스 브러더스와 카지노 홀 중앙 원형 스테이지를 반으로 갈라 벽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무대에 올라 번갈아 노래했다. 한국에서 라디오로만 듣던 스타를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찼다.” 활동 중간에는 팀 이름을 ‘서울 키튼스’로 바꿨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서울의 이름을 해외에도 제대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장미화는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여러 국가를 7년간 돌며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선 쉴 틈 없이 차에서 먹고 자며 다음 공연지로 이동하기 바빴고, 하도 노래를 많이 해 성대가 찢어져 피가 나고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고 했다. 1973년 장미화는 해외 순방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귀국했다. 미8군에선 이름을 날렸지만, 정식 국내 방송 데뷔는 없던 탓에 ‘장미화’ 세 글자가 국내에선 거의 무명이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미8군 가수들을 자주 기용했던 TBC 방송국 ‘쇼쇼쇼’의 유명 연출가 ‘황정태 PD’를 통해 소개 받은 여대영 작곡가가 건낸 ‘전설적인 불멸의 곡’인 ‘안녕하세요’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장미화는 화려한 은박이 원피스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 폭발력 있는 음성으로 셀린 디옹이 199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영화 ‘타이타닉’ OST ‘My Heart Will Go On’을 부를 때, 객석에 앉아 있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관객이 “와! 저 연세에 어떻게 목을 관리해서 저렇게까지 음역이 넓고 음성이 높게 올라 갈수 있지?”라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앉은 친구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마치 비욘세가 노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 셀린 디옹이 부른 노래가 소프라노에 실려 변함없는 사랑을 향한 간절함을 표현했다면, 장미화의 노래는 사랑에 대한 확신에 찬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느껴지는 메조 소프라노였다고나 할까.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객석의 박수 진동폭에 대해서는 생략하는 게 좋겠다. 퀸 베이(Queen Bey) 장미화는 박수갈채가 끝나기 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서풍이 부는 바람(오준영 작사 곡)’을 열창했다. 1952년 한국 서울에서 가족에게 강간당하고 버림받은 한국 여성의 아들로 태어나 미군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12살 때 미국에 건너왔고, 21살 때였던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한 중국인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 사건 가해자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곳에서 수감자와 싸움이 붙어 실제로 살인을 저질러 가중 처벌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미 주류사회 언론사 한국계 기자가 6개월 간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치기 끝에. 재심 판결은 무죄. 그가 실제로 저지른 살인은 10년간의 복역으로 갈음하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통해 10년만인 1983년 3월에 이철수(2014년 사망)는 석방됐다. ‘서풍이 부는 날’은 이철수 씨가 10년 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어릴 적 떠난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밴 노래이다. 온전히 영혼을 노래에 쏟는 쟈니 리의 열창에 쏟아진 박수갈채 일곱 번 째 무대에 오른 이는 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불려지고 있는 마치 화석처럼 굳어진 명곡 ‘뜨거운 안녕’ 노래를 부른 쟈니리(86)였다. 이날 그는 2022년 발표곡이자 ‘예우회’ 발행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곡 “쟈니 블루스‘로 관객과 인사를 나눈 후 휴전 2년 후인 1955년 토드 던컨이 부른 형무소를 다룬 미국 영화 ’Unchained‘ 주제곡으로 유명한 ’Unchained Melody‘를 당시 한국 지식층에 널리 유행한 이래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토드 던칸의 1955년 힛송 ’Unchained Melody‘를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음 처리에 호소력 깃든 목소리로 열창, 큰 박수를 받았다. 참고로, 이 노래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녹음본이다. 자료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에서 670명도 넘는 음악인에 의해 영어 포함 다언어로 1,500회가 넘게 녹음되었다. 쟈니 리는 1959년에 극단 쇼 보트의 단원, 1961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하였다. 1966년에는 신세기레코드에서 '뜨거운 안녕', '통금 5분전' , '내일은 해가 뜬다'가 수록된 독집 음반 '쟈니리 가요 앨범'을 취입하였으며, 영화 '청춘대학'에도 출연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76년에 잠시 귀국해서 재기, 1978년에는 이훈이라는 예명으로 재즈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1980년대 초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1995년 9월 한국방송공사 빅쇼에서 故 가수 정원과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 방송에 출연한 이래 한국에 정착해서 2021년에는 신곡 '바보사랑', 2022년 ’쟈니 블루스‘ 등을 발표하면서 아직까지 여러 방송 및 행사에 초대되고 있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급조된 ’여성 트리오‘의 빛나는 노래와 댄스에 객석도 ’들썩‘이며 ’박장대소‘ 계속된 무대는 붉은색과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장미화·옥희·김혜정 등 급조된 여성 3인조 트라이 앵글 그룹이 작금의 청년 세대가 지니는 삶에 대한 고뇌와 희망을 노래한 Proud Mary(1969.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를 부르자 객석에서 이들 ’여성 그룹‘이 블루스·컨트리·포크·록이 결합한 음악 느낌에 따라 몸을 흔들며 열창하는 모습에 박수와 환호성을 곁들여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도균이 부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에 관객들은 옛시절로 소환 당해 아홉 번째 무대를 밟은 차도균은 1966년 사촌 동생 故 차중락이 불러 힛트했던 번안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맑은 톤의 목소리로 열창, 객석 곳곳에서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관객들을 젊은 시절로 소환시키기도 했다. 21년 ’예우회‘ 막내 유현상, 최신곡 ’그게 나야‘로 객석 사로잡아 10번 째 무대는 스스로 ”미8군무대 출신으로 구성된 예우회의 막내“라고 자신을 소개한 칠순의 유현상이었다. 사회자 장미화는 ”청주 공연을 마치고 오늘 행사에 마치느라 달려온 고마운 후배“라며 후배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소개를 잊지 않았다. 맞아 그게 나야 / 나 그렇게 살아왔단다 /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 내 인생은 지금부터야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 이 악물고 나 살아왔는데 / 못할 게 무어냐 안될 게 무어냐 / 아직은 아니야 포기는 없다 / 내일은 내가 웃는다.-유현상 노래, 김현진 작사, 유현상 ’그게 나야‘ 1절 유현상은 지난 2020년 5월 이후 4년만인 올 9월19일 멜론, 소리바다 등 음원포털과 유튜브에서 공식 발표된 발매한 정규앨범 타이틀곡을 첫 곡으로 불렀다. 관객들은 지난 세월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이 악물고 살아온 자신을 토닥이며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인생은 지금부터다’, ‘맞아 그게 나야’라며 무너진 중년의 자존감을 한껏 올려주는 희망을 다짐하는 리드미컬한 템포에 유현상 특유의 짙은 감성이 듬뿍 담긴 트로트 곡이 끝나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어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힛송 ’My Way’와 ‘갈테면 가라지’를 선물했다. 유현상은 1970년대 중반 그룹 '라스트 찬스'로 무대에 데뷔했고, 1976년 ’사계절‘이라는 그룹(보컬 윤시내 참여)의 기타리스트로 1976년경 오비스 캐빈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해서 1980년 해체될 때까지 ’정말 바보일까‘와 ’누가‘ 등을 발매했지만 확고한 팬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후 1986년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그룹 사운드 ’백두산‘의 리드 보컬 겸 리듬 기타로 본격 데뷔하면서 중후한 헤비사운드에 호소력있고 힘있는 보컬이 매력적인 히트곡 "어둠 속에서"로 확고한 음악적 지위를 확보했다. 90년대 초 유현상은 머리를 자르고 자신의 아내(전 수영국가대표 최윤희)에게 보내는 애정이 담긴 곡 ’여자야‘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로 변신 후 ’갈테면 가라지‘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면서 락 음악 후배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2008년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8월 17일 ’‘동두천 록 페스티벌’에서 컴백 공연을 펼쳤으며, 현재는 ‘백두산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활동 중이다. 키보이스·키브라더스 시절 주옥같은 힛송으로 향수 자극한 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용 11번 째 무대의 주인공은 윤항기와 차도균이었다. 둘은 1963년 차중락·옥성빈·김홍탁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5인조 록 음악 밴드 "키보이스"에서 드럼과 베이스기타스트로 활동 당시의 힛송 ‘바닷가의 추억(1969)’과 ‘정든 배는 떠난다(1964)‘, ‘해변으로 가요(2007)’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1970년에 결성한 한국적 브라스 락을 지향하면서 나이트클럽과 고고클럽, 젊음과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서 승승장구했던 그룹 사운드 ‘키 브라더스’에서 활동했던 멤버 중 ‘예우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김광정(기타-가는 세월 작곡)과 2대 회장 윤항기(드럼과 보컬-장미빛 스카프 등 작사·작곡), 정명용(기타)는 열두 번째 무대에서 1957년 팝 힛송 ”I Can't Stop Loving You“을 불렀다. 일부 관객들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른 이 곡은 1957년 처음으로 녹음했던 돈 깁슨이 2003년 사망했을 당시 세계 7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녹음했으나, 그 가운데 빌보드 차드 1위에 오른 레이 찰스가 가장 많이 녹음했다. 레전드 전원·하객· 청중 기립한 채 ‘나는 행복합니다’ 합창 2025년 을사년 초록색 뱀띠 해에 건강과 행복 기원 2시간 넘게 진행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는 출연진 전원과 하객으로 참석한 귀빈 모두가 무대 위와 객석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윤항기 작사·작곡의 힛송 ‘나는 행복합니다’를 합창한 후 2025년 을사년 푸른 뱀 띠 해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막을 내렸다. 한편 의정부에서 공연장을 찾은 50대 초중반 박수진·백연주 씨는 ”공연 사회를 본 장미화 씨가 말한 것처럼, 요즈음엔 TV를 틀면 방송국에서 다투어 트로트 프로그램이 대세인 게 사실“이라며 ”이렇게 팝송이 곁들인 라이브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TV에서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뜻깊은 공연에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무대를 접하게 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나이는 묻지 말라“며 목동에서 친구와 함께 자리를 뜨던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관객은 ”추위도 불구하고 오길 잘했다. 레전드는 레전드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퇴계로 오리엔탈호텔의 닐바나 고고클럽을 종종 찾았는데, 옛날 생각에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출연진 모두가 건강해서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합니다. 근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아 좋습니다. 저를 아직 ‘오빠’라고 그럽니까?” ‘가왕’ 조용필(74)은 관객의 함성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첫 공연에서다. 그는 지난달 22일 11년 만에 정규 음반 ‘20’을 발매했다. 전국 투어는 서울·대구·부산 등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인 서울 콘서트는 다음 달 1일까지 네 차례다.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첫날 공연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인사 뒤에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를 연달아 불렀다. 오프닝 뒤엔 “같이 놀기 위해 빠른 노래들을 많이 준비했다. 운동하는 셈 치고 같이 노래 불러보자. 여러분 노래가 힘이 된다”고 말한 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꽃무늬 검정 셔츠에 검정 슬랙스와 하얀 운동화. 이날의 유일한 무대의상이었다. 돌출 무대나 리프트 없는 일자형 무대. 조용필 양옆에는 밴드 위대한탄생과 코러스가 자리했다. 조용필은 2시간여 동안 인사를 건네는 잠깐 외엔 단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가득 채운 공연이었다. 기타 사운드에 맞춰 춤추는 듯한 조명 연출로 볼거리를 제공했고, 대형 스피커 4대는 웅장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조용필은 간드러진 미성과 힘 있는 고음, 날카로운 박자감의 내레이션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 ‘미지의 세계’ ‘모나리자’ 등을 소화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보컬에 나이마저 무색했다. 게스트 한 명 없이 홀로 내달리는 열정에 객석에선 “역시 가왕”이란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에게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부를 땐 배우 박근형·이솜 등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대형화면에 흘렀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 자신을 믿어 믿어봐/ 지금이야 그때’라는 가사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를 위한 헌사처럼 들렸다. 조용필은 “스무 번째 앨범을 냈다. 아쉽게도 끝났으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도 밝혔다. 솔로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청춘시대’ 등 히트곡이 이어지자 객석은 달아올랐다. 자연스레 떼창이 이어졌다. 40여년 전 ‘그 소녀’로 돌아간 듯 ‘단발머리’를 부르는 모습에 조용필은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을 부를 땐 “노래방이라 생각하고 적극 참여 바란다”며 남성 관객의 가창을 이끌었다. ‘여행을 떠나요’로 2시간여의 본 공연이 끝나자 앙코르가 이어졌다. ‘추억 속의 재회’ ‘꿈’에 이어 2013년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운스’까지 3곡으로 화답한 조용필은 공연장 곳곳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손을 흔든 뒤에야 무대를 내려왔다. 마무리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무대였다. 130분을 29곡으로 꽉 채운 공연, 역시 가왕다웠다.
-
[가요계 화제] 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가요계 화제]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미8군 무대 출신 레전드 뮤지션 총 출동…수익금 일부 ‘불우이웃돕기’에 기부 미8군 무대 출신의 뮤지션들의 음악동인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12월7일(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민회관 2층 대공연장에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을 개최한다. 2024년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새해를 뜻깊게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의미가 담긴 이 공연은 음악동인 예우회 주최,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주관하고,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가 후원한다. 출연진을 살펴보면,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스(Milestones.Cotton Fields), 김훈(오라리오), 옥희(고마운 사랑), 임희숙(사랑의 순례자), 쟈니리(뜨거운 안녕), 검은나비(Bohemian Rhapsody), 장미화(My Heart Will Go On), 장미화·옥희·김혜정(Proud Mery), 차도균(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유현상(여자야), 윤항기 키보이스(바닷가의 추억), 윤항기 키브라더스(I Can’t Stop Loving You)가 출연, 관객들에게 귀에 익은 주옥같은 팝송과 자신의 힛트송 등을 들려주면서 옛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출연진은 이밖에도 신곡도 선물한다. 주최 측은 “음악동인 예우회가 원로 회원 뮤지션들 상호간의 교류와 새로운 공연 콘텐츠의 개발, 소외된 사회에 전할 온정의 방법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새해의 길목에서 작은 공연 행사를 만든다”며 “미 8군 무대 시절부터, 주로 6~7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서 서양음악을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소개함은 물론 수준 높은 작곡과 연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질을 급상승시켜온 주역으로서 1세대 밴드 뮤지션들이 함께 오르는 무대”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최 즉은 “당시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계 아이콘이었던 연출을 통해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함은 물론 당시 시대상을 코믹하게 재현하게 되는 이 공연은, 2007년 12월 29일에 초연하여 장년과 노년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많은 지자체로부터 재연의 러브 콜 을 받기도 했다”며 “다수 출연자들의 시간적 여건으로 인해 결국 서울 중구청의 초청에 의한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의 앵콜공연 1회만 수용할 수 밖에 없었듯이 이 공연은 한 무대에 함께하기 쉽지 않은 옛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접하기 힘든 추억의 귀한 무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최측은 “이 공연의 목적은 작게는 동료 원로 뮤지션들이 함께 ‘회상’하고 ‘추억’하며 옛 팬들과 조우하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 나아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함으로써 음악인의 사회 봉사 실천행동을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음악은 장르 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며 공존해야 토대와 전통 속에 발전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여건을 극복하면서 늘 활동하는 존재가 뮤지션임을 알리고 실천하는 노력 또한 원로 뮤지션들 내면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요 출연진> MC 장미화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날마다 이시간에 지나더니" 이 노래말은 가수 장마화 를 만든 장미화 의 대표곡이다. 1966년 신중현의 ‘애드포’로 시작하여 ‘레이디 버즈’ 등 주로 밴드 활동을 했던 파워풀한 여성 보컬리스트. ’67년 KBS 전속 가수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도미하여 ‘서울 키튼스’라는 밴드로 활동하다 귀국, 1973년 <안녕하세요>로 국내무대에 복귀. 70년대에는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부각되었다. 통산 11장의 LP, 5장의 CD를 발표하며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요즘은 사회봉사 활동 법인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산마김치’ 등의 대표로서 경제활동 및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2001년 장미화는 <아름다운 손길>이란 사회복지재단(NGO단체)을 만들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장미화 알뜰바자회>를 18년째 하고 있다. 형식적인 단체가 아닌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을 위해 위안잔치를 계속하고 매년 알뜰바자회 를 통해얻은 수익금을 전국에 직접 기부하고 있다. 독거노인들은 매년 그녀가준비한 음식을 수백명씩 초청하여 무의탁 노인들에게 직·간접으로 돕고 있으며 소년·소녀가장 의 두 가정을 지금도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독실한 불자인 그녀는 산사음악회를 주관하며 수년째 불자를 위한 헌신에 힘쓰고 있다. 데뷔 35년을 맞이한 그녀는 “바쁜 생활 중에 남을 돕고 사는 것은 내자신이 맑아 지는 것같아 기쁘다”고 했다. ‘2016년 장미화50주년 자선 Dinner Concert’ 를 양재동 K Hotel 그랜드볼륨에서 성황리에 공연하였다. 최근 장욱조 작곡의 ”잊지는 못할 거야“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9년 로즈엔터테인먼트 회사설립했다. 대표곡: 안녕하세요, 서풍이 부는 날, 잊지는 못할 거야 등 키보이스&키브라더스(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룡 ) 1971년 데뷔앨범 [별이 빛나는 밤에/고고춤을 춥시다]를 발표하며 한국 최초의 브라스락을 선보인 밴드. 걸출한 스타 보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보컬에만 치중하지 않고 밴드음악의 맛을 잘 살려 나간 그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략)(2집의)<떠돌이 인생>은 키브라더스의 역량을 극대화한 뛰어난 번안곡이자 음반의 대표곡이다. 7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보컬 어느 파트 하나 쳐지지 않고 긴장과 이완으로 얽혀들어가는 이 곡은 락과 재즈와 사이키델릭을 횡단하면서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후략) 최근 은퇴 목사로 목회 활동 마치고 신곡 ‘걱정을 말아요’와 ‘완전 좋아 딱 좋아’ 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일스톤즈 (Mile Stones) 2004년 결성한 7인조 보컬 그룹사운드로 창단 후 최근까지 거의 매년 전석 매진의 정기연주회와 수많은 크고 작은 연주, 앵콜 무대 등 국내 최고의 Old Pop 전문 보컬 그룹사운드이다.한국새생명복지재단에서 개최하는 희귀난치병 환아돕기 자선공연 ‘추억의 Old Pop 콘서트’의 메인출연밴드이기도 하다. -2019 10월 세종문화회관 ‘추억의 올드팝 콘서트’ -2024. 6월 JSA공동경비구역 유엔군 미군장병 위문공연 -2024. 8월 한국 DJ협회행사 축하공연 등 옥 희 서울 출생이며 배화여중고를 졸업했다.이모의 소개로 테너 색소폰 연주자 겸 작곡가 이봉조(李鳳祚)와 기타 연주자 겸 작곡가 김희갑(金喜甲)에 의하여 가수로 발탁되었다. 1972년 미국에서 서울 시스터즈(Seoul Sisters) 밴드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 이후 귀국하여 1974년 김희갑 작곡의 ‘나는 몰라요’라는 곡으로 국내에서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때 유례없이 방송 3사의 가수왕을 휩쓸었다. 그 후 ‘눈으로만 말해요’, ‘이웃 사촌’ 등이 히트하며 입지를 다졌고 1981년 프로 복서 출신의 홍수환과 결혼한 후 1985년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음식점 사업에 전념하다가 2003 년 ‘소설같은 사랑’이라는 곡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후 2007년 돈 때문에·Invite, 2017년 인생열차 등으로 꾸준하게 인기를 이어가면서, 현재는 지난날 그룹 사운드 출신 중견 동료 가수들의 음악 재기 관련 활동을 독려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쟈니리 1938년생으로 만 81세인 쟈니 리는 만주 출신으로, 본명은 이영길이다. 1959년 21세의 나이에 쇼단체 ‘쇼보트’로 데뷔한 쟈니 리는 ‘뜨거운 안녕’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멸의 힛송 ‘뜨거운 안녕’은 김문응이 작사를 맡고 길옥윤이 작곡을 했는데, 이 곡은 1966년 발매된 데뷔앨범인 ‘쟈니리 가요앨범’에 수록되어 있다.이 앨범의 또다른 수록곡으로는 ‘내일은 해가 뜬다’가 있는데, 노랫말을 보면 알겠지만 훗날 들국화가 발표한 ‘사노라면’의 원곡이다. 다만 당시 ‘사노라면’은 작자미상의 구전가요로 전해지던 곡이었는데, 이것이 쟈니 리의 곡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04년의 일이다. 당시 가사 중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때도 오겠지’라는 구절이 현실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 한편, 쟈니 리는 한 때 매니저와의 갈등 속에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1974년 미국으로 떠난 뒤 2년 후 복귀했지만, 이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 다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가 그는 20여년 뒤에야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다시 안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희숙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 잃어버리고 / 타오르는 내 마음만 흐느껴 우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누구인가 불어주는 휘파람 소리 / 행여나 찾아줄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마음 허무해라 /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애잔하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임희숙은 소울이라는 음악 장르로 감미로운 윽인의 목소리에만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밴 듯한 그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린다. 감정 전달과 탁월한 곡 해석 능력으로 소울계의 대모로 불렸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가창력의 소유자인 임희숙은 우리 가요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화제작자 전옥숙 딸이다. -덕성여고 2학년 때인 1966년 ‘외로운 산장’으로 데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했다. 이후 1969년 노래 '그사람 떠나고'로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진정 난 몰랐네’, ‘사랑의 굴레’, ‘잊혀진 여자’, ‘상처’, ‘한동안 뜸했었지’ 등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켰다. 김훈/ 오라리오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빅히트곡 <오라리오> 37년만에 리메이크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의 1981년 빅히트곡 <오라리오>(이백천 작사, 이현섭 작곡)가 37년만에 리메이크됐다. ‘훈이와 슈퍼스타’리더 김훈은 LP시절 슬로우고고풍이었던 이곡을 최신 디스코 버전으로 완전 재녹음, CD로 발매했다. <오라리오>는 원로 가요평론가 이백천이 작사하고 <옛시인의 노래> <어디쯤 가고 있을까>로 유명한 작곡가 이현섭의 곡으로 ‘오라고 하리오’의 준말이다. 황폐한 세상속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한편의 서정시이다. 이 곡이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 ‘훈이와 슈퍼스타’ 데뷔앨범은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돼 5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6인조 꽃미남 밴드 ‘훈이와 슈퍼스타’는 1984년 <오라리오>로 KBS가요대상 록그룹 부문 상을 수상했으며, 다운타운 클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훈이와 슈퍼스타’는 그러나 80년대 후반 소속사 대표였던 ‘현이와 덕이’가 요절하면서, 그 충격으로 그룹이 해체되었다. 이후 김훈은 홀로 독일로 떠나 유럽지역 교민행사 출연 가수로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10년 귀국한 김훈은 이후 ‘K스포츠’ 케이블TV 회장, 서울시 배드민턴체육회 수석 부회장, 연예인 배드민턴 협회장 등이 되며 ‘배드민턴계의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청년에서 시니어로 변한 김훈이 <오라리오>리메이크를 결심한 것은 이 곡이 아직도 잊혀지지않고, 너무도 많은 팬들에게 계속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검은나비(윤신호, 김혜정, 김덕성, 이기근, 김비오, 장민준, 이민구,) 70년대 초, The men과 He 6 출신의 뮤지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여 당대 최고 인기밴드의 한 축을 형성했다. He-6를 비롯하여 많은 가수들이 불렀었던 <당신은 몰라>를 밴드 곡으로 재 해석, 최헌이 불러 대힛트시킴으로써 곡의 원작자가 김홍탁임을 밝히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 드문 세련된 소울과 브래스락을 추구하였다. 2기 멤버로 긴 기간 팀을 이끌어 온 기타 윤신호 외에 보컬 김혜정, 베이스 김비오, 키보드 김덕성 이민구, 드럼 이기근 타악기 장민준 현재 참여하였다. ‘2024 오늘, 전설을 만난다(Meet Today’s Legend)-불우이웃돕기 나눔자선콘서트 2024년 12월 7일(화) 17:30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2층 주최 : 음악동인 예우회 주관 :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후원 :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 협찬 : ㈜하림통산 하현철, K-스타푸드타운 김진덕 회장, 이메가인터내쇼날수소물, 캘리포니아주립대4기 후롬더스킨 신영훈, 삼미모피, 전 라오스대사 이재숙, 족발 신선생, 경마조교협 홍대유, 인소니주얼리 조현숙, 경희현기로운한의원 김현기원장, 하춘하보리밥,(사)자연보호중앙회, 환경감시단 최경석, 문의 : 윤신호(010-5269-4106) 스태프 총괄기획 :장미화(음악동인 예우회 회장 3대~4대) 연출 : 윤신호 (그룹, 검은나비의 리더 / TS Music 대표 / BlackRose Recording Studio 대표/ (사)한국대중문화예술기념사업회 예술총감독 / (사)전국자연보호 중앙회 예술총감독) 감독 : 김형일 (HI 엔터테인먼트 대표) 2000년 ~ 2006년 :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진행 총감독 2002년 : 문화부장관 기장수여 받음( 2002년 월드컵 전야제관련 ) 2006년 : 이시카와사유리 내한공연 제작, 진행 외 국내.외 공연 200회 이상 기획, 제작. 현 (사)청소년운동연합 문화사업국장 2017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페스티발 총감독, 현 HI Entertaiment 대표이사 보조연출 : 이성연(God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 조연출 /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연출.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飛上' 연출. 러브이즈콘서트 기획 및 연출 / 현 (주)SBL COM 재직 중) 음향: 정용운 EAW 한국 테크닉 엔지니어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3회, 4회 음향감독 2002년 : 대종상 시상식 음향감독 2006년 : 펜타포트 rock festival (서브무대) 음향감독 2007년 : 그린민트 페스티발 음향감독 2004년~2008년, 2017~2018년 : 자라섬 째즈페스티벌 음향감독 빠뜨리샤 카스, 캐니 가렛 내한공연 등 500여 회 공연 음향감독 2017~1018 자라섬 Jazz페스티벌 음향감독 진행: 김혜정, 조미리 포토그래퍼 : 김형준 홍보 : 스티브 김(김학우. 예우회 홍보 담당관)◎
-
[로컬 뉴스] 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로컬 뉴스]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할리우드, 캘리포니아(김정태 기자)-레이 찰스와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음반에 세련된 세련미를 더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음악계의 거장 퀸시 존스가 사망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밝혔습니다. 그는 91세였다. 故 존스는 일요일 밤(현지시각 3일) 캘리포니아주 벨 에어에 있는 자택에서 자녀, 형제 자매 및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그의 홍보 담당자가 CNN에 성명을 통해 전했다. 존스 가족은 성명에서 "오늘 밤, 가슴이 아프지만 충만하게 아버지이자 형제인 퀸시 존스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라며 가족에게는 엄청난 상실이지만, 그가 살았던 위대한 삶을 기념하고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던 사랑과 기쁨이 그가 만든 모든 것을 통해 세상과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위안을 얻고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음악과 무한한 사랑을 통해 퀸시 존스의 심장은 영원히 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은 그의 커리어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만큼 놀라운 경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를 가지고 놀았고 최고를 배출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를 사랑했어요."라고 엘튼 존은 인스타그램에 썼습니다. "@ejaf 오스카 시청 파티에 함께했습니다. 항상 이 중요한 기금 모금 행사의 충성스러운 후원자입니다." 캐나다 가수 더 위켄드는 "그 이유"라는 캡션과 함께 존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윌 스미스는 인스타그램에 따뜻한 글을 올리며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 총괄 프로듀서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스카상 수상자는 "퀸시 존스는 멘토, 아버지, 친구의 진정한 정의이다. 그는 내 자신의 가장 큰 부분을 향해 나를 가리켰다. 그는 나를 옹호했다. 그는 나를 키웠다. 그는 나를 격려했다. 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 저를 확인했다. 그는 나의 날개가 날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질 때까지 나를 사용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컴튼 출신이자 힙합의 전설인 닥터 드레는 존스가 프로듀서가 된 이유라고 밝혔다. Dre는 인스타그램에 "제가 엔지니어링을 시작했을 때 그의 기록은 제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다“며 "그와 함께 어울린 모든 시간은 귀중했고, 그가 저에게 해준 조언과 우리가 나눈 대화가 제 인생과 커리어에 도움이 된 것처럼 그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비교할 수 없는 퀸시 존스에게서 영원히 영감을 받았다"고 썼다. 래퍼이자 배우인 아이스 티는 "오늘 퀸시 존스를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에 잠에서 깼다"며 "천재는 느슨하게 사용되었지만 거의 자격이 없는 표현이다. 요점을 비우면 퀸시는 남자였다. 저는 퀸시와 함께 첫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매일 그의 지혜와 함께 살고 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던 그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번 일은 저를 강타했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동료 프로듀서인 나일 로저스는 X에서 "Rest in Power"를 썼다. R&B 가수 빅토리아 모네트는 존스가 "가장 큰 영감" 중 하나라는 글을 X에 올렸다 "퀸시, 정말 사랑해요!!! 당신의 유산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며 "하늘은 당신과 함께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했다. LL Cool J는 "아버지와 모범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당시 존스를 "아버지이자 모범"이라고 불렀다 "멘토. 롤모델. 킹. ????당신은 저에게 기회를 주었고 지혜를 공유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온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가장 달콤한 음악 속에서 쉬십시오.“◎
-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장욱조·박일준·지은숙·마도로스朴·윤한길 등 가요계 인사들과 교류도 시애틀에서 활동 중인 가수 서정우가 지난해 12월10일 개인적인 일로 급히 한국 방문 중에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 및 녹화에 참여하는 등 분주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1월14일 시애틀로 돌아간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밀어닥친 혹한으로 인해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약을 복용하는 등 사흘간 꼼짝 못 하고 지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후 친지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의 안내로 ‘가요 TV 쇼’ 등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 녹화와 가수 박일준이 유튜브로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참여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시애틀 언론계에 몸담았던 기자는 20년이 넘는 동안 가수 서정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수들의 시애틀 공연에 물꼬를 튼 개척자이다.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가수들에서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로 널리 알려진 故 송해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을 초청, 공연을 통해서 시애틀 및 인근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에게 고국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는 산파역을 했다. 주로 한국 문화계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는 가요계 취재도 할 기회가 있다. 기자가 시애틀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는 장미화는 “서정우 잘 있어요? 그 애(장미화의 친근한 사람에 대한 표현)는 정말 잘 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 출연 섭외 등에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아서…”라며, 가수 서정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미8군 무대 출신의 가수 장미화는 1973년 ‘안녕하세요’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때부터라고 계산하더라도 두 사람은 오래된 사이인지라, 가수 장미화는 후배 가수 서정우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수 장미화가 “그 애는 정말 잘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라고 안타깝게 말한 사연은 이렇다.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요사에 불멸의 곡으로 남은 ‘흙에 살리라’를 처음 녹음하고 부른 가수이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은 그 곡을 부른 가수는 홍세민(2021년 별세)으로 기억한다. 우직한 충청도 청년 서정우는 어느 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유튜브 등 다양한 홍보 매체를 이용해서 ‘운(運) 좋으면’ 일약 스타가 될 수 있지만, 60년대 말과 70년대는 ‘운’이 좋으면 라디오를 통해서, 정말 '운 벼락’을 맞으면 TV 화면을 장식하는 것이 정석으로 통했다. 그에게도 그 ‘운(運)’이 찾아왔다. 1970년대 초 김정일 작사·작곡의 곡 ‘흙에 살리라’를 받게 되었던 것.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흙에 살리라’ 1절 산업화 시대를 맞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울로 향했던 그 시절. 그렇지만 서울 생활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더 짙게 채색되어 갔다. 60년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선술집에 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거나, 선술집의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노래에 눈물을 훔치거나, 귀갓길에 홀로 흥얼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그런 때, 그 시절에 서정우가 부른 ‘흙에 살리라’라는 노랫말은 대중가요에 흔하디흔한 ‘사랑·이별’ 등이 주제가 아니라,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과 초록빛으로 채색한, 두고 온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정우가 부른 그 시대에 맞아떨어졌던 곡 ‘흙에 살리라’는 ‘운’ 좋게 라디오를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수 서정우’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운’ 나쁘게 서정우 씨 앞에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뒤 배경이 없으면 입영 연기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입영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는 ‘흙에 살리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서정우를 찾았지만, 군 생활을 하는 그를 무대에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 해서 작곡가인 김정일 씨는 부랴부랴 1973년 23세의 홍세민에게 '흙에 살리라'를 취임시켰고, 그 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가수 서정우의 이름은 잊혀졌다. 서정우가 군 생활 3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다시 신인 아닌 신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흙에 살리라’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허리끈을 졸라맨 그는 밤업소 등을 뛰면서 기회를 노렸지만, 그에게 ‘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에 시애틀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그의 누나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시애틀에서 햄버거 가게 등을 하면서 열심히 살던 그에게 가끔 한인 밤업소에서 출연을 요청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사양하고 오직 주어진 현실인 생활전선에 열심을 다했다. 어느 정도 미국 생활이 안정되자 슬며시 노래를 향한 애정의 싹이 텄다. 그때부터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면서 한국의 가요계 동료와 선후배들을 시애틀로 초대해서 한인 동포들을 위한 공연을 개최하는 데 힘썼다. 그의 그 같은 본국 가수 초청 공연은 동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초대한 본국 연예인들은 송해를 비롯해서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다. 가수 서정우와 기자는 2년여 만인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가수 박일준이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초대 가수로 출연한 장소였다. 그 자리에서 서정우는 노래와 함께 자신의 가요계 데뷔와 그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비롯해 시애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한국 방문 중에 가요 활동을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근황을 전했다. 가수 박일준은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가수인 나도 흉내를 낼 수 없는 독특한 음성을 지녔다. 솔직히 대중가요 가수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이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후 “그래서 머리가 터지게 홍보에 나서는 상황인데, 시애틀에 살고 계시면서 한국에서 가요 활동을 한다는 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요계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바로 서정우 씨가 가진 높은 음악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수 지은숙(힛송: 니가 사랑을 알아·바보같은 사람·내 가슴에 비가 내리면·사랑은 무죄 등)이 특별 출연, 가수 서정우를 응원했다. 또한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와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 가수 마도로스 박 등도 참석,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방송을 지켜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가수 마도로스 박은 “허스키한 음색이 주는 독특함이 매력적이다. 시애틀에 살면서, 이렇게 한국 가요 무대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은데, 앞으로 지방 공연 등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했다. 잘 살아 봅시다 잘 살아봐요 /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가 살면은 천년을 사나요 / 만났으니 잘 살아 봅시다 외로울 때면 나를 불러요 / 슬플 때면 함께 울어요 우리네 인생길 공수래공수거 /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서정우 노래 ‘잘 살아 봅시다’ 1절 가수 서정우가 몇 년 전 사랑하는 연인에게,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향한 진솔된 마음의 고백이 담긴 경쾌한 리듬의 노래 ‘잘 살아 봅시다’는 몇몇 가수들도 부르는 등 인기곡 챠트에 올랐다. 그런데 가수 박정식이 개사를 해서 불러 힛트시킨 것을 지켜보면서, 주거지가 미국이기 때문에 본국 무대에 설 기회가 그만큼 적은 그가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 서정우는 “제가 부른 노래가 여러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지면 좋지요.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그저 노래하는 것, 그것 자체로 즐겁게 생활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저의 생활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 했다. 마치 서정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이다. 그가 부른 대부분의 곡도 긍정적이고 밝다. 가사도 그렇고, 곡의 리듬 역시 경쾌하다. 그런 가수 서정우가 이번 한국 방문 중에 취입한 신곡 ‘꽃 입술(박영지 작사·장욱조 작곡)’이 ‘박일준 TV’에 소개되었다. 화사한 꽃 입술에 함박웃음 피어나면 / 내 마음 빼앗겼네 나도 몰래 반했네 좋아졌네 좋아하는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 / 긴 머리 찰랑대는 상큼한 그 아가씨 새빨간 꽃 입술 꽃 입술 그녀를 / 정말 정말 좋아해요-서정우 노래 ‘꽃 입술’ ‘박일준 TV’ 방송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을 때, 영하의 찬 바람이 몰아치는 밤 11시였다. 그는 ‘꽃 입술’ 곡을 준 작곡가 장욱조의 파주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은 찬양 목회자로 변신한 장욱조였다. ◎
-
- 문화
- 음악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10일 서울 KSPO돔에서 1만2000여 관객 만나 좌우 정치권 왼팔오른팔 빗대 비판…약 2시간 30분동안 거침없는 발언 사흘간 서울 공연 후 59년 가수 인생에 종지부…공연 중 눈물 보이기도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보니, 별로 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 가수 나훈아(77)의 목소리는 물기로 꽉꽉 잠겨 있었다. 그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연 단독공연 ‘라스트 콘서트- 고마웠습니다’의 한 장면. 나훈아는 1998년 가수 인생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설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 스타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미주알 고주알 들춰 보이면 환상이 깨진다.” 그랬던 그가 이젠 평범하게 땅을 걷겠다고 했다. 관객들 사이에선 아쉬움이 가득 섞인 “안돼” 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훈아는 10일~12일,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그가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은퇴 투어 무대의 ‘마지막 개최지’로 예고해 큰 예매 경쟁이 벌어진 공연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를 통해 처음 은퇴 계획을 알렸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팬들에게 고별인사를 전하는 공연을 열어왔다. 나훈아는 지난해 4월 인천 무대 때만 해도 “오늘은 인천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니 꼭 잘 해낼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 공연에선 약 2시간 30분간 23곡의 히트곡을 선보이며 수 차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첫 곡 ‘고향역’부터 내리 6곡을 부른 직후엔 “저는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게 ‘마지막 공연’이다. 오늘 아침에도 연습을 하면서 가슴이 좀 먹먹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연 마지막 순서로 대표곡 ‘사내’를 부를 땐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 또한 평소보다 더욱 거침이 없었다. 그가 매 공연 때마다 ‘띠리~’가 이어지는 후렴구를 활용해 속내를 내보이는 순서다. 한때는 팬들에게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나훈아의 2008년 ‘신체 절단설’도 이날만큼은 노래에 맞춘 유쾌한 농담 소재가 됐다. “여러분은 ‘(나훈아) 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십니까. 내보고 밑에 다 잘맀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여러분.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 띠리~!” 능청스런 나훈아의 말이 순식간에 객석을 뒤집었다. 정치권을 향한 그의 작심 발언도 평소보다 높은 수위로 이어졌다. 가장 이목을 끈건 나훈아가 지난달 7일 가진 대구 단독공연에 대한 언급. 당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사태 나흘 만에 공연을 열었고, “요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 공연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은 어느 쪽이고? 여당, 야당 대표 집은 어디고?”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선 ‘나훈아가 계엄 사태와 현 정부에 분노해 쓴소리를 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나훈아는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저거 색깔에 맞게, 맘대로 막 쓴 기다. 그럼 안 된다”며 직접 반박에 나섰다. “인제 그만 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켔는데 (안 되겠다)”며 운을 뗀 그는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을 들어보이며 “왼쪽이 오른 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 이 얘기가 지가 지방(대구)에서 한 얘기”라고 했다. 이어 그는 왼팔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니는 잘했나!” 계엄 사태 이후 좌우로 나뉘어 책임론을 묻는 정치권 분쟁을 왼팔과 오른팔에 빗대 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형제들을 혼내던 어린 시절도 예로 들었다. “서로 잘못했다 난리를 직이면 우리 어무이는 ‘둘 다 바지 걷어라!’며 둘 다 때렸다. 형제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싸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말하신 것”이라며 “지금 우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고 난리가 났는데, 느그(너희) 하는 꼬라지들이 정말 국가, 국민을 위한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외쳤다. 그는 “내 말에 동의를 안 해도 좋다”고도 덧붙였다. 객석에선 곧바로 “동의!” “옳소!” 환호가 이어졌다. 나훈아는 공을 완창한 직후에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여러분, 지금 우리 머리 위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텔레비전에서 어떤 군인들은 계속 잡혀 가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다. 이것들한테 우리 생명을 맡긴다? 웃기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언론들이 이런걸 생중계한다는게 문제”라며 “그러면 북쪽 김정은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저런건 생방송해서 비추며 안 된다”고도 외쳤다. 이어진 그의 말에 객석에선 또 다시 “맞다!” 소리가 쏟아졌다. “정치하는 분들이 반은 국회에서 밤을 새고, 탄핵을 하니 생 지x을 하든 뭘 하든 다 좋아. 다 좋은데, (나머지) 반은 국방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 써야 합니다. 경제고 국방이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딴짓들만 하고 앉아 있는데.” 한편 나훈아는 오는 12일까지 사흘간 5회에 걸쳐 약 7만 관객을 만난다. 1967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랑’ ‘영영’ ‘잡초’ 등 직접 쓰고 부른 노래만 1200여곡에 달한다.
-
- 문화
- 음악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추위 녹인 ‘레전드 뮤지션들’의 훈훈한 무대 정혜선·이영하 탤런트, 박술녀 한복 명인 등 객석 꽉 채운 관객에 감동 안겨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 장미화 회장·조갑출 고문에 ‘감사장’ 수여 관객들, “TV에서 그룹사운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K-팝의 지평을 넓히는데 초석을 다진 미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뮤지션들로 구성된 단체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마련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는 왜 그들이 ‘전설’로 통하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1,2,3층을 꽉 채운 탤런트 정혜선·이영하, 박술녀 한복 명인 등 하객 및 관객들은 나이를 초월한 레전드 뮤지션들의 열정적인 노래에 탄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행사 개막전 사회를 진행한 장미화 회장은 “오늘 김홍탁(록밴드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 그룹사운드 전성시대를 연 기타리스트. 예우회 2대 공동회장 역임-편집자)선배께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창립 21주년을 맞이한 3·4대 장미화 회장이 이끌고 있는 ‘예우회’는 지난 4월25일 ‘예우회’ 회원 김광정(‘가는 세월’의 작곡가 겸 가수, 기타리스트)에서 황규현(힛송 ‘애원’을 부른 가수. 그룹 쉐그린의 리드보컬 출신. 밴드 포가이스와. 플레이보이서 활동)에 이르기까지 16명의 뮤지션들의 힛송 및 신곡 등을 담은 옴니버스 음반 ‘전설을 노래하다’를 발매했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이끌던 전설들이 함께 뜻을 모아 다양한 목소리로 신곡이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음반에 직접 작곡한 신곡이 유작이 된 ‘사랑은 운명’을 담은 故 장우(힛송 ‘가시나요’ 등을 부른 가수. 코코 브라더스, 포 다이나믹스로 활동)가 음반 발매 사흘 후에 숨을 거두었다. 장 회장이 부음을 전한 故 김홍탁 ‘예우회’ 제2대 공동회장은 이 음반에 김선·오영숙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김홍탁 트리오'로 ‘바닷가의 추억’을 담았는데, 공교롭게도 ‘예우회’의 행사가 있는 이날 오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에 잠시 장내는 숙연해졌다.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은 행사 시작 전 예우회 장미화 회장과 조갑출 고문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그룹 사운드 신곡 발표 나눔 축제’와 ‘불우이웃돕기 자선 콘서트’를 곁들인 행사 수익금은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에 오른 그룹 사운드 및 개인별 순서는 아래와 같다. 행사 막 올린 올드 팝 전문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즈’의 멋진 연주 7인조 혼성 보컬 그룹사운드 마일스톤즈(리더 이상래)의 올드 팝송 Cotton Fields(1970. The Beach Boys)로 ‘전설을 만나’는 문을 열었다. 2014년에 결성된 이래 올드 팝송을 추억하는 관객들에게 100여곡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두터운 올드 팝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마일스톤즈’는 ‘예우회’ 회원은 아니지만, 특별 초대되어 Dust in the Wind(1978. Kansas), 팝 메들리-Hey Tonight(1970.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 Sugar, Sugar(1969. The Archies), Oh, Pretty Woman(1964. Roy Orbison and the Candy Men), Cry Like a Baby(1968. The Box Tops), I Want to Hold Your Hand(1963. The Beatles)-에 이어 1968년 비틀즈의 경쾌한 리듬의 힛송 Ob-La-Di, Ob-La-Da을 연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흥겨움과 함께 꽃피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여성팬들의 압도적 박수갈채 받은 ‘훈이와 슈퍼스타’ 출신 김훈 두 번째 무대는 1980년대 '오라리오'로 인기를 누렸던 '훈이와 슈퍼스타'의 김훈이 장식했다. 가수 뿐만 아니라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스포츠 팬들에게는 ‘명 배드민턴 해설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불멸의 힛송’ ‘오라리오’를 노래,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관객들은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의 김훈이 독특한 저음으로 1972년 영화 ‘대부(The Godfather)’ 테마뮤직을 앤디 윌리엄스가 불러 힛트시켰던 ‘Speak Softly Love’를 노래하면서 마론 브란도·알 파치노·제임스 칸 등이 열연했던 영화 ‘대부’와 197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했던 마론 브란도가 영화 속에서 펼쳤던 명연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등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30일 데뷔 50년 디너 쇼 갖는 ‘만년 소녀’ 옥희가 장식한 화려한 무대 세 번 째 무대는 자선바자회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등에 빠짐없이 동참하는 등 장미화와 언니·동생으로 지내는 절친이자 후배인 ‘철없이 순진해 보이는 만년 소녀’ 옥희가 등장, 한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치겠다는 간절함이 깃든 엘비스 프레슬리의 1961년 힛 팝송 ‘Can't Help Falling in Love’로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곡가 이봉조와 김희갑에게 발탁돼 1968년 미국인 기획자의 눈에 띄어 도미(渡美),라스베이거스의 팝송무대에서 ‘서울시스터즈’ 밴드 소속 가수로 활동 후 73년 국내 무대에 데뷔한 옥희는 ‘나는 몰라요’ ‘눈으로만 말해요’ 등 힛송과 함께 당시 파격적 의상과 시원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 옥희는 사회자 장미화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는 30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50주년 기념 디너 콘서트를 연다”며, 장년층 이상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그녀의 “남편 홍수환의 첫 세계 챔피언 등극 5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린다”는 홍보를 했다. 그러면서 옥희는 특유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최근 신곡을 냈다. 들어보시고, 대박이 날 것 같으면 박수로 화답해 달라”고 말한 후 경쾌하고 긍정적인 사랑의 의미가 담긴 ‘고마운 사랑’을 노래,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 이제는 우리 드라마 속에 / 주인공처럼 살아 봅시다 따뜻한 사랑 달콤한 사랑 / 우리 다시 또 시작해요 / 죽고 못 사는 뜨거운 사랑 / 아주 멋진 우리 사랑은 노을이 물든 강변도 함께 걸어요 / 연인처럼 두 손 꼭 잡고 /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함께해서 고마워-옥희 노래 ‘고마운 사랑’ 가사(작사 정기수, 작곡 송광호)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의 열창에 객석에서 터져나온 ‘탄식’ 네 번째 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한국 흑인 음악의 선구자로, 한국 여성 소울의 대모,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이었다. 짙은 허스키에 영혼을 울리는 그녀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흑인 재즈 가수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목소리, 굴곡진 삶을 노래한 짙은 감성의 허스키 보이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절절한 호소력의 소울, 트로트, 재즈, 가스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능력을 지닌 뮤지션. 중학교 2학년 때 외국 팝송을 많이 접했고 특히 미국 흑인가수 샘 쿡(Sam Cook)의 노래에 푹 빠져 지냈던 소녀. 어린 그녀는 짙은 감성으로 사람의 영혼을 감싸주는 외국의 솔 가수들의 끈적끈적한 솔이나, 블루스 같은 흑인 재즈성향의 노래가 특히 좋아한 것이 계기가 돼 60년이 넘은 지금도 남자가수를 압도하는 박력있고 파워넘치는 보컬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애잔함을 오래 간직하게 만드는 임희숙은 금년 ‘예우회’가 출시한 음원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 신곡 ‘사랑의 순례자’를 부르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길고 긴 강을 따라 구름이 가듯 / 터벅 터벅 세월을 따라 먼 길을 간다 / 삶의 이 끝에서 또 저 끝까지 / 내 하나의 사람을 찾아서 간다 끝내는 머물게 될 그 한 곳이 있어 / 무거운 이 발길을 쉬게 하려나 / 한 밤도 태우지 못한 이 한 가슴을 / 그날엔 파랗게 밝혀 주려나 갈수록 어두움이 두려워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 갈수록 외로움이 깊어 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임희숙 노래 ’사랑의 순례자‘: 백창우 작사·곡 임희숙이 두 번 째 부른 곡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불멸의 힛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경쾌한 리듬의 곡과 연주로 객석을 사로잡은 김혜정과 ’검은나비‘ ’전설은 만나‘는 무대는 밴드 ’검은 나비‘로 바뀌면서 객석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1974년 결성된 ’검은 나비‘는 신중현 사단인 그룹사운드 더맨 출신인 손학래가 결성한 그룹으로 신중현 계보의 그룹 ’더맨‘ 출신들과, 김홍탁 계보의 그룹 히식스 출신들이 만나 결성된 밴드다. 그룹 더맨 출신으로는 손학래, 김기표, 이태현, 문영배가 있으며, 그룹 히식스 출신으로는 최헌, 김영균, 김인섭 등이었다. 그룹 검은나비는 남성 솔로가수의 등용문으로도 유명했다. 백두산의 유현상,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 도시 아이들의 박일서, 김태화 등이 ’검은나비‘를 거쳐간 가수들이다. 국내 록그룹의 전설로 미8군 무대를 점령해서 명성을 떨쳤던 검은나비 보컬 김혜정이 호랑나비가 그려진 화려한 망토를 어깨에 걸친 채 등장하자 남편인 기타리스트 윤신호 등 6인조 밴드의 능수능란한 연주와 함께 영국이 낳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록·팝 그룹 ’퀸Queen‘ 보컬 퍼포머 프레디 머큐리의 힛송 Bohemian Rhapsody(1975), We Will Rock You(1977), Another One Bites the Dust(1980), We Are the Champions(1977)등을 열창, 올드 팝송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시선이 잠시도 무대를 떠날 시간적인 틈을 주지 않았다. 이어서 보컬 김혜정은 이날 별세한 故 김홍탁 작곡, 강찬호 작사 ’당신은 몰라‘(최헌 노래-1972년 He6 5집 수록)와 ’예우회 회원 김희갑 작곡, 지명길 작사 최진희 노래 ‘사랑의 미로’(현재 미국 워싱턴주 거주 중인 태원이 1976년 발표했던 ‘너의 사랑’이 원곡으로, 1984년 개사, 발표해서 힛송으로 자리매김-편집자)를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에너지 넘치는 ‘퀸 베이’ 장미화의 열창에 객석에서 나온 “마치 비욘세를 보는 것 같다” 감탄 이어진 무대는 김훈의 소개로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가 섞인 능수능란한 진행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장미화가 장식했다. 여기서 간략하게 장미화 ‘예우회 회장’의 노래에 얽힌 여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장미화는 ‘KBS 아마추어 톱싱어 대회’ 대상을 받은 후 신중현이 이끌던 인기 미8군 그룹사운드 ‘Add4(애드포)′의 객원 보컬을 제안받고, 1965년 신중현이 Add4 이름으로 낸 첫 정식 음반에 ‘노래 장미화’라고 새겨진 두 곡,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읻 등불을 끕니다’가 함께 실렸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녀는 “대학 1학년 재학 중 휴학계를 내고 Add4의 막내 객원 보컬로 들어가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미8군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장미화는 1966년, 국내 최초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매니저였던 ‘맥맥퀸(Bob McMackin)’을 통해 “당신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 걸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로지’란 이름으로 1세대 여성 5인조 그룹사운드 ‘레이디버드’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진출한 첫 해외 무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센스호텔’, 그룹사운드 형태 국내 걸밴드 최초의 미국 진출 기록이 됐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번은 ‘Unchained melody’로 유명한 라이처스 브러더스와 카지노 홀 중앙 원형 스테이지를 반으로 갈라 벽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무대에 올라 번갈아 노래했다. 한국에서 라디오로만 듣던 스타를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찼다.” 활동 중간에는 팀 이름을 ‘서울 키튼스’로 바꿨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서울의 이름을 해외에도 제대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장미화는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여러 국가를 7년간 돌며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선 쉴 틈 없이 차에서 먹고 자며 다음 공연지로 이동하기 바빴고, 하도 노래를 많이 해 성대가 찢어져 피가 나고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고 했다. 1973년 장미화는 해외 순방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귀국했다. 미8군에선 이름을 날렸지만, 정식 국내 방송 데뷔는 없던 탓에 ‘장미화’ 세 글자가 국내에선 거의 무명이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미8군 가수들을 자주 기용했던 TBC 방송국 ‘쇼쇼쇼’의 유명 연출가 ‘황정태 PD’를 통해 소개 받은 여대영 작곡가가 건낸 ‘전설적인 불멸의 곡’인 ‘안녕하세요’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장미화는 화려한 은박이 원피스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 폭발력 있는 음성으로 셀린 디옹이 199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영화 ‘타이타닉’ OST ‘My Heart Will Go On’을 부를 때, 객석에 앉아 있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관객이 “와! 저 연세에 어떻게 목을 관리해서 저렇게까지 음역이 넓고 음성이 높게 올라 갈수 있지?”라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앉은 친구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마치 비욘세가 노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 셀린 디옹이 부른 노래가 소프라노에 실려 변함없는 사랑을 향한 간절함을 표현했다면, 장미화의 노래는 사랑에 대한 확신에 찬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느껴지는 메조 소프라노였다고나 할까.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객석의 박수 진동폭에 대해서는 생략하는 게 좋겠다. 퀸 베이(Queen Bey) 장미화는 박수갈채가 끝나기 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서풍이 부는 바람(오준영 작사 곡)’을 열창했다. 1952년 한국 서울에서 가족에게 강간당하고 버림받은 한국 여성의 아들로 태어나 미군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12살 때 미국에 건너왔고, 21살 때였던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한 중국인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 사건 가해자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곳에서 수감자와 싸움이 붙어 실제로 살인을 저질러 가중 처벌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미 주류사회 언론사 한국계 기자가 6개월 간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치기 끝에. 재심 판결은 무죄. 그가 실제로 저지른 살인은 10년간의 복역으로 갈음하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통해 10년만인 1983년 3월에 이철수(2014년 사망)는 석방됐다. ‘서풍이 부는 날’은 이철수 씨가 10년 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어릴 적 떠난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밴 노래이다. 온전히 영혼을 노래에 쏟는 쟈니 리의 열창에 쏟아진 박수갈채 일곱 번 째 무대에 오른 이는 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불려지고 있는 마치 화석처럼 굳어진 명곡 ‘뜨거운 안녕’ 노래를 부른 쟈니리(86)였다. 이날 그는 2022년 발표곡이자 ‘예우회’ 발행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곡 “쟈니 블루스‘로 관객과 인사를 나눈 후 휴전 2년 후인 1955년 토드 던컨이 부른 형무소를 다룬 미국 영화 ’Unchained‘ 주제곡으로 유명한 ’Unchained Melody‘를 당시 한국 지식층에 널리 유행한 이래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토드 던칸의 1955년 힛송 ’Unchained Melody‘를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음 처리에 호소력 깃든 목소리로 열창, 큰 박수를 받았다. 참고로, 이 노래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녹음본이다. 자료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에서 670명도 넘는 음악인에 의해 영어 포함 다언어로 1,500회가 넘게 녹음되었다. 쟈니 리는 1959년에 극단 쇼 보트의 단원, 1961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하였다. 1966년에는 신세기레코드에서 '뜨거운 안녕', '통금 5분전' , '내일은 해가 뜬다'가 수록된 독집 음반 '쟈니리 가요 앨범'을 취입하였으며, 영화 '청춘대학'에도 출연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76년에 잠시 귀국해서 재기, 1978년에는 이훈이라는 예명으로 재즈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1980년대 초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1995년 9월 한국방송공사 빅쇼에서 故 가수 정원과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 방송에 출연한 이래 한국에 정착해서 2021년에는 신곡 '바보사랑', 2022년 ’쟈니 블루스‘ 등을 발표하면서 아직까지 여러 방송 및 행사에 초대되고 있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급조된 ’여성 트리오‘의 빛나는 노래와 댄스에 객석도 ’들썩‘이며 ’박장대소‘ 계속된 무대는 붉은색과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장미화·옥희·김혜정 등 급조된 여성 3인조 트라이 앵글 그룹이 작금의 청년 세대가 지니는 삶에 대한 고뇌와 희망을 노래한 Proud Mary(1969.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를 부르자 객석에서 이들 ’여성 그룹‘이 블루스·컨트리·포크·록이 결합한 음악 느낌에 따라 몸을 흔들며 열창하는 모습에 박수와 환호성을 곁들여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도균이 부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에 관객들은 옛시절로 소환 당해 아홉 번째 무대를 밟은 차도균은 1966년 사촌 동생 故 차중락이 불러 힛트했던 번안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맑은 톤의 목소리로 열창, 객석 곳곳에서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관객들을 젊은 시절로 소환시키기도 했다. 21년 ’예우회‘ 막내 유현상, 최신곡 ’그게 나야‘로 객석 사로잡아 10번 째 무대는 스스로 ”미8군무대 출신으로 구성된 예우회의 막내“라고 자신을 소개한 칠순의 유현상이었다. 사회자 장미화는 ”청주 공연을 마치고 오늘 행사에 마치느라 달려온 고마운 후배“라며 후배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소개를 잊지 않았다. 맞아 그게 나야 / 나 그렇게 살아왔단다 /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 내 인생은 지금부터야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 이 악물고 나 살아왔는데 / 못할 게 무어냐 안될 게 무어냐 / 아직은 아니야 포기는 없다 / 내일은 내가 웃는다.-유현상 노래, 김현진 작사, 유현상 ’그게 나야‘ 1절 유현상은 지난 2020년 5월 이후 4년만인 올 9월19일 멜론, 소리바다 등 음원포털과 유튜브에서 공식 발표된 발매한 정규앨범 타이틀곡을 첫 곡으로 불렀다. 관객들은 지난 세월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이 악물고 살아온 자신을 토닥이며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인생은 지금부터다’, ‘맞아 그게 나야’라며 무너진 중년의 자존감을 한껏 올려주는 희망을 다짐하는 리드미컬한 템포에 유현상 특유의 짙은 감성이 듬뿍 담긴 트로트 곡이 끝나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어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힛송 ’My Way’와 ‘갈테면 가라지’를 선물했다. 유현상은 1970년대 중반 그룹 '라스트 찬스'로 무대에 데뷔했고, 1976년 ’사계절‘이라는 그룹(보컬 윤시내 참여)의 기타리스트로 1976년경 오비스 캐빈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해서 1980년 해체될 때까지 ’정말 바보일까‘와 ’누가‘ 등을 발매했지만 확고한 팬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후 1986년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그룹 사운드 ’백두산‘의 리드 보컬 겸 리듬 기타로 본격 데뷔하면서 중후한 헤비사운드에 호소력있고 힘있는 보컬이 매력적인 히트곡 "어둠 속에서"로 확고한 음악적 지위를 확보했다. 90년대 초 유현상은 머리를 자르고 자신의 아내(전 수영국가대표 최윤희)에게 보내는 애정이 담긴 곡 ’여자야‘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로 변신 후 ’갈테면 가라지‘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면서 락 음악 후배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2008년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8월 17일 ’‘동두천 록 페스티벌’에서 컴백 공연을 펼쳤으며, 현재는 ‘백두산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활동 중이다. 키보이스·키브라더스 시절 주옥같은 힛송으로 향수 자극한 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용 11번 째 무대의 주인공은 윤항기와 차도균이었다. 둘은 1963년 차중락·옥성빈·김홍탁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5인조 록 음악 밴드 "키보이스"에서 드럼과 베이스기타스트로 활동 당시의 힛송 ‘바닷가의 추억(1969)’과 ‘정든 배는 떠난다(1964)‘, ‘해변으로 가요(2007)’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1970년에 결성한 한국적 브라스 락을 지향하면서 나이트클럽과 고고클럽, 젊음과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서 승승장구했던 그룹 사운드 ‘키 브라더스’에서 활동했던 멤버 중 ‘예우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김광정(기타-가는 세월 작곡)과 2대 회장 윤항기(드럼과 보컬-장미빛 스카프 등 작사·작곡), 정명용(기타)는 열두 번째 무대에서 1957년 팝 힛송 ”I Can't Stop Loving You“을 불렀다. 일부 관객들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른 이 곡은 1957년 처음으로 녹음했던 돈 깁슨이 2003년 사망했을 당시 세계 7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녹음했으나, 그 가운데 빌보드 차드 1위에 오른 레이 찰스가 가장 많이 녹음했다. 레전드 전원·하객· 청중 기립한 채 ‘나는 행복합니다’ 합창 2025년 을사년 초록색 뱀띠 해에 건강과 행복 기원 2시간 넘게 진행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는 출연진 전원과 하객으로 참석한 귀빈 모두가 무대 위와 객석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윤항기 작사·작곡의 힛송 ‘나는 행복합니다’를 합창한 후 2025년 을사년 푸른 뱀 띠 해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막을 내렸다. 한편 의정부에서 공연장을 찾은 50대 초중반 박수진·백연주 씨는 ”공연 사회를 본 장미화 씨가 말한 것처럼, 요즈음엔 TV를 틀면 방송국에서 다투어 트로트 프로그램이 대세인 게 사실“이라며 ”이렇게 팝송이 곁들인 라이브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TV에서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뜻깊은 공연에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무대를 접하게 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나이는 묻지 말라“며 목동에서 친구와 함께 자리를 뜨던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관객은 ”추위도 불구하고 오길 잘했다. 레전드는 레전드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퇴계로 오리엔탈호텔의 닐바나 고고클럽을 종종 찾았는데, 옛날 생각에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출연진 모두가 건강해서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
- 문화
- 음악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합니다. 근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아 좋습니다. 저를 아직 ‘오빠’라고 그럽니까?” ‘가왕’ 조용필(74)은 관객의 함성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첫 공연에서다. 그는 지난달 22일 11년 만에 정규 음반 ‘20’을 발매했다. 전국 투어는 서울·대구·부산 등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인 서울 콘서트는 다음 달 1일까지 네 차례다.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첫날 공연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인사 뒤에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를 연달아 불렀다. 오프닝 뒤엔 “같이 놀기 위해 빠른 노래들을 많이 준비했다. 운동하는 셈 치고 같이 노래 불러보자. 여러분 노래가 힘이 된다”고 말한 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꽃무늬 검정 셔츠에 검정 슬랙스와 하얀 운동화. 이날의 유일한 무대의상이었다. 돌출 무대나 리프트 없는 일자형 무대. 조용필 양옆에는 밴드 위대한탄생과 코러스가 자리했다. 조용필은 2시간여 동안 인사를 건네는 잠깐 외엔 단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가득 채운 공연이었다. 기타 사운드에 맞춰 춤추는 듯한 조명 연출로 볼거리를 제공했고, 대형 스피커 4대는 웅장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조용필은 간드러진 미성과 힘 있는 고음, 날카로운 박자감의 내레이션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 ‘미지의 세계’ ‘모나리자’ 등을 소화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보컬에 나이마저 무색했다. 게스트 한 명 없이 홀로 내달리는 열정에 객석에선 “역시 가왕”이란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에게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부를 땐 배우 박근형·이솜 등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대형화면에 흘렀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 자신을 믿어 믿어봐/ 지금이야 그때’라는 가사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를 위한 헌사처럼 들렸다. 조용필은 “스무 번째 앨범을 냈다. 아쉽게도 끝났으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도 밝혔다. 솔로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청춘시대’ 등 히트곡이 이어지자 객석은 달아올랐다. 자연스레 떼창이 이어졌다. 40여년 전 ‘그 소녀’로 돌아간 듯 ‘단발머리’를 부르는 모습에 조용필은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을 부를 땐 “노래방이라 생각하고 적극 참여 바란다”며 남성 관객의 가창을 이끌었다. ‘여행을 떠나요’로 2시간여의 본 공연이 끝나자 앙코르가 이어졌다. ‘추억 속의 재회’ ‘꿈’에 이어 2013년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운스’까지 3곡으로 화답한 조용필은 공연장 곳곳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손을 흔든 뒤에야 무대를 내려왔다. 마무리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무대였다. 130분을 29곡으로 꽉 채운 공연, 역시 가왕다웠다.
-
- 문화
- 음악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
-
[가요계 화제] 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 [가요계 화제]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미8군 무대 출신 레전드 뮤지션 총 출동…수익금 일부 ‘불우이웃돕기’에 기부 미8군 무대 출신의 뮤지션들의 음악동인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12월7일(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민회관 2층 대공연장에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을 개최한다. 2024년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새해를 뜻깊게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의미가 담긴 이 공연은 음악동인 예우회 주최,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주관하고,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가 후원한다. 출연진을 살펴보면,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스(Milestones.Cotton Fields), 김훈(오라리오), 옥희(고마운 사랑), 임희숙(사랑의 순례자), 쟈니리(뜨거운 안녕), 검은나비(Bohemian Rhapsody), 장미화(My Heart Will Go On), 장미화·옥희·김혜정(Proud Mery), 차도균(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유현상(여자야), 윤항기 키보이스(바닷가의 추억), 윤항기 키브라더스(I Can’t Stop Loving You)가 출연, 관객들에게 귀에 익은 주옥같은 팝송과 자신의 힛트송 등을 들려주면서 옛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출연진은 이밖에도 신곡도 선물한다. 주최 측은 “음악동인 예우회가 원로 회원 뮤지션들 상호간의 교류와 새로운 공연 콘텐츠의 개발, 소외된 사회에 전할 온정의 방법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새해의 길목에서 작은 공연 행사를 만든다”며 “미 8군 무대 시절부터, 주로 6~7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서 서양음악을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소개함은 물론 수준 높은 작곡과 연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질을 급상승시켜온 주역으로서 1세대 밴드 뮤지션들이 함께 오르는 무대”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최 즉은 “당시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계 아이콘이었던 연출을 통해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함은 물론 당시 시대상을 코믹하게 재현하게 되는 이 공연은, 2007년 12월 29일에 초연하여 장년과 노년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많은 지자체로부터 재연의 러브 콜 을 받기도 했다”며 “다수 출연자들의 시간적 여건으로 인해 결국 서울 중구청의 초청에 의한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의 앵콜공연 1회만 수용할 수 밖에 없었듯이 이 공연은 한 무대에 함께하기 쉽지 않은 옛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접하기 힘든 추억의 귀한 무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최측은 “이 공연의 목적은 작게는 동료 원로 뮤지션들이 함께 ‘회상’하고 ‘추억’하며 옛 팬들과 조우하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 나아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함으로써 음악인의 사회 봉사 실천행동을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음악은 장르 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며 공존해야 토대와 전통 속에 발전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여건을 극복하면서 늘 활동하는 존재가 뮤지션임을 알리고 실천하는 노력 또한 원로 뮤지션들 내면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요 출연진> MC 장미화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날마다 이시간에 지나더니" 이 노래말은 가수 장마화 를 만든 장미화 의 대표곡이다. 1966년 신중현의 ‘애드포’로 시작하여 ‘레이디 버즈’ 등 주로 밴드 활동을 했던 파워풀한 여성 보컬리스트. ’67년 KBS 전속 가수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도미하여 ‘서울 키튼스’라는 밴드로 활동하다 귀국, 1973년 <안녕하세요>로 국내무대에 복귀. 70년대에는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부각되었다. 통산 11장의 LP, 5장의 CD를 발표하며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요즘은 사회봉사 활동 법인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산마김치’ 등의 대표로서 경제활동 및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2001년 장미화는 <아름다운 손길>이란 사회복지재단(NGO단체)을 만들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장미화 알뜰바자회>를 18년째 하고 있다. 형식적인 단체가 아닌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을 위해 위안잔치를 계속하고 매년 알뜰바자회 를 통해얻은 수익금을 전국에 직접 기부하고 있다. 독거노인들은 매년 그녀가준비한 음식을 수백명씩 초청하여 무의탁 노인들에게 직·간접으로 돕고 있으며 소년·소녀가장 의 두 가정을 지금도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독실한 불자인 그녀는 산사음악회를 주관하며 수년째 불자를 위한 헌신에 힘쓰고 있다. 데뷔 35년을 맞이한 그녀는 “바쁜 생활 중에 남을 돕고 사는 것은 내자신이 맑아 지는 것같아 기쁘다”고 했다. ‘2016년 장미화50주년 자선 Dinner Concert’ 를 양재동 K Hotel 그랜드볼륨에서 성황리에 공연하였다. 최근 장욱조 작곡의 ”잊지는 못할 거야“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9년 로즈엔터테인먼트 회사설립했다. 대표곡: 안녕하세요, 서풍이 부는 날, 잊지는 못할 거야 등 키보이스&키브라더스(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룡 ) 1971년 데뷔앨범 [별이 빛나는 밤에/고고춤을 춥시다]를 발표하며 한국 최초의 브라스락을 선보인 밴드. 걸출한 스타 보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보컬에만 치중하지 않고 밴드음악의 맛을 잘 살려 나간 그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략)(2집의)<떠돌이 인생>은 키브라더스의 역량을 극대화한 뛰어난 번안곡이자 음반의 대표곡이다. 7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보컬 어느 파트 하나 쳐지지 않고 긴장과 이완으로 얽혀들어가는 이 곡은 락과 재즈와 사이키델릭을 횡단하면서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후략) 최근 은퇴 목사로 목회 활동 마치고 신곡 ‘걱정을 말아요’와 ‘완전 좋아 딱 좋아’ 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일스톤즈 (Mile Stones) 2004년 결성한 7인조 보컬 그룹사운드로 창단 후 최근까지 거의 매년 전석 매진의 정기연주회와 수많은 크고 작은 연주, 앵콜 무대 등 국내 최고의 Old Pop 전문 보컬 그룹사운드이다.한국새생명복지재단에서 개최하는 희귀난치병 환아돕기 자선공연 ‘추억의 Old Pop 콘서트’의 메인출연밴드이기도 하다. -2019 10월 세종문화회관 ‘추억의 올드팝 콘서트’ -2024. 6월 JSA공동경비구역 유엔군 미군장병 위문공연 -2024. 8월 한국 DJ협회행사 축하공연 등 옥 희 서울 출생이며 배화여중고를 졸업했다.이모의 소개로 테너 색소폰 연주자 겸 작곡가 이봉조(李鳳祚)와 기타 연주자 겸 작곡가 김희갑(金喜甲)에 의하여 가수로 발탁되었다. 1972년 미국에서 서울 시스터즈(Seoul Sisters) 밴드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 이후 귀국하여 1974년 김희갑 작곡의 ‘나는 몰라요’라는 곡으로 국내에서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때 유례없이 방송 3사의 가수왕을 휩쓸었다. 그 후 ‘눈으로만 말해요’, ‘이웃 사촌’ 등이 히트하며 입지를 다졌고 1981년 프로 복서 출신의 홍수환과 결혼한 후 1985년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음식점 사업에 전념하다가 2003 년 ‘소설같은 사랑’이라는 곡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후 2007년 돈 때문에·Invite, 2017년 인생열차 등으로 꾸준하게 인기를 이어가면서, 현재는 지난날 그룹 사운드 출신 중견 동료 가수들의 음악 재기 관련 활동을 독려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쟈니리 1938년생으로 만 81세인 쟈니 리는 만주 출신으로, 본명은 이영길이다. 1959년 21세의 나이에 쇼단체 ‘쇼보트’로 데뷔한 쟈니 리는 ‘뜨거운 안녕’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멸의 힛송 ‘뜨거운 안녕’은 김문응이 작사를 맡고 길옥윤이 작곡을 했는데, 이 곡은 1966년 발매된 데뷔앨범인 ‘쟈니리 가요앨범’에 수록되어 있다.이 앨범의 또다른 수록곡으로는 ‘내일은 해가 뜬다’가 있는데, 노랫말을 보면 알겠지만 훗날 들국화가 발표한 ‘사노라면’의 원곡이다. 다만 당시 ‘사노라면’은 작자미상의 구전가요로 전해지던 곡이었는데, 이것이 쟈니 리의 곡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04년의 일이다. 당시 가사 중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때도 오겠지’라는 구절이 현실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 한편, 쟈니 리는 한 때 매니저와의 갈등 속에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1974년 미국으로 떠난 뒤 2년 후 복귀했지만, 이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 다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가 그는 20여년 뒤에야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다시 안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희숙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 잃어버리고 / 타오르는 내 마음만 흐느껴 우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누구인가 불어주는 휘파람 소리 / 행여나 찾아줄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마음 허무해라 /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애잔하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임희숙은 소울이라는 음악 장르로 감미로운 윽인의 목소리에만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밴 듯한 그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린다. 감정 전달과 탁월한 곡 해석 능력으로 소울계의 대모로 불렸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가창력의 소유자인 임희숙은 우리 가요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화제작자 전옥숙 딸이다. -덕성여고 2학년 때인 1966년 ‘외로운 산장’으로 데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했다. 이후 1969년 노래 '그사람 떠나고'로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진정 난 몰랐네’, ‘사랑의 굴레’, ‘잊혀진 여자’, ‘상처’, ‘한동안 뜸했었지’ 등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켰다. 김훈/ 오라리오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빅히트곡 <오라리오> 37년만에 리메이크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의 1981년 빅히트곡 <오라리오>(이백천 작사, 이현섭 작곡)가 37년만에 리메이크됐다. ‘훈이와 슈퍼스타’리더 김훈은 LP시절 슬로우고고풍이었던 이곡을 최신 디스코 버전으로 완전 재녹음, CD로 발매했다. <오라리오>는 원로 가요평론가 이백천이 작사하고 <옛시인의 노래> <어디쯤 가고 있을까>로 유명한 작곡가 이현섭의 곡으로 ‘오라고 하리오’의 준말이다. 황폐한 세상속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한편의 서정시이다. 이 곡이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 ‘훈이와 슈퍼스타’ 데뷔앨범은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돼 5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6인조 꽃미남 밴드 ‘훈이와 슈퍼스타’는 1984년 <오라리오>로 KBS가요대상 록그룹 부문 상을 수상했으며, 다운타운 클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훈이와 슈퍼스타’는 그러나 80년대 후반 소속사 대표였던 ‘현이와 덕이’가 요절하면서, 그 충격으로 그룹이 해체되었다. 이후 김훈은 홀로 독일로 떠나 유럽지역 교민행사 출연 가수로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10년 귀국한 김훈은 이후 ‘K스포츠’ 케이블TV 회장, 서울시 배드민턴체육회 수석 부회장, 연예인 배드민턴 협회장 등이 되며 ‘배드민턴계의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청년에서 시니어로 변한 김훈이 <오라리오>리메이크를 결심한 것은 이 곡이 아직도 잊혀지지않고, 너무도 많은 팬들에게 계속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검은나비(윤신호, 김혜정, 김덕성, 이기근, 김비오, 장민준, 이민구,) 70년대 초, The men과 He 6 출신의 뮤지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여 당대 최고 인기밴드의 한 축을 형성했다. He-6를 비롯하여 많은 가수들이 불렀었던 <당신은 몰라>를 밴드 곡으로 재 해석, 최헌이 불러 대힛트시킴으로써 곡의 원작자가 김홍탁임을 밝히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 드문 세련된 소울과 브래스락을 추구하였다. 2기 멤버로 긴 기간 팀을 이끌어 온 기타 윤신호 외에 보컬 김혜정, 베이스 김비오, 키보드 김덕성 이민구, 드럼 이기근 타악기 장민준 현재 참여하였다. ‘2024 오늘, 전설을 만난다(Meet Today’s Legend)-불우이웃돕기 나눔자선콘서트 2024년 12월 7일(화) 17:30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2층 주최 : 음악동인 예우회 주관 :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후원 :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 협찬 : ㈜하림통산 하현철, K-스타푸드타운 김진덕 회장, 이메가인터내쇼날수소물, 캘리포니아주립대4기 후롬더스킨 신영훈, 삼미모피, 전 라오스대사 이재숙, 족발 신선생, 경마조교협 홍대유, 인소니주얼리 조현숙, 경희현기로운한의원 김현기원장, 하춘하보리밥,(사)자연보호중앙회, 환경감시단 최경석, 문의 : 윤신호(010-5269-4106) 스태프 총괄기획 :장미화(음악동인 예우회 회장 3대~4대) 연출 : 윤신호 (그룹, 검은나비의 리더 / TS Music 대표 / BlackRose Recording Studio 대표/ (사)한국대중문화예술기념사업회 예술총감독 / (사)전국자연보호 중앙회 예술총감독) 감독 : 김형일 (HI 엔터테인먼트 대표) 2000년 ~ 2006년 :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진행 총감독 2002년 : 문화부장관 기장수여 받음( 2002년 월드컵 전야제관련 ) 2006년 : 이시카와사유리 내한공연 제작, 진행 외 국내.외 공연 200회 이상 기획, 제작. 현 (사)청소년운동연합 문화사업국장 2017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페스티발 총감독, 현 HI Entertaiment 대표이사 보조연출 : 이성연(God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 조연출 /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연출.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飛上' 연출. 러브이즈콘서트 기획 및 연출 / 현 (주)SBL COM 재직 중) 음향: 정용운 EAW 한국 테크닉 엔지니어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3회, 4회 음향감독 2002년 : 대종상 시상식 음향감독 2006년 : 펜타포트 rock festival (서브무대) 음향감독 2007년 : 그린민트 페스티발 음향감독 2004년~2008년, 2017~2018년 : 자라섬 째즈페스티벌 음향감독 빠뜨리샤 카스, 캐니 가렛 내한공연 등 500여 회 공연 음향감독 2017~1018 자라섬 Jazz페스티벌 음향감독 진행: 김혜정, 조미리 포토그래퍼 : 김형준 홍보 : 스티브 김(김학우. 예우회 홍보 담당관)◎
-
- 문화
- 음악
-
[가요계 화제] 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
-
[로컬 뉴스] 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 [로컬 뉴스]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할리우드, 캘리포니아(김정태 기자)-레이 찰스와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음반에 세련된 세련미를 더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음악계의 거장 퀸시 존스가 사망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밝혔습니다. 그는 91세였다. 故 존스는 일요일 밤(현지시각 3일) 캘리포니아주 벨 에어에 있는 자택에서 자녀, 형제 자매 및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그의 홍보 담당자가 CNN에 성명을 통해 전했다. 존스 가족은 성명에서 "오늘 밤, 가슴이 아프지만 충만하게 아버지이자 형제인 퀸시 존스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라며 가족에게는 엄청난 상실이지만, 그가 살았던 위대한 삶을 기념하고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던 사랑과 기쁨이 그가 만든 모든 것을 통해 세상과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위안을 얻고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음악과 무한한 사랑을 통해 퀸시 존스의 심장은 영원히 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은 그의 커리어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만큼 놀라운 경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를 가지고 놀았고 최고를 배출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를 사랑했어요."라고 엘튼 존은 인스타그램에 썼습니다. "@ejaf 오스카 시청 파티에 함께했습니다. 항상 이 중요한 기금 모금 행사의 충성스러운 후원자입니다." 캐나다 가수 더 위켄드는 "그 이유"라는 캡션과 함께 존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윌 스미스는 인스타그램에 따뜻한 글을 올리며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 총괄 프로듀서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스카상 수상자는 "퀸시 존스는 멘토, 아버지, 친구의 진정한 정의이다. 그는 내 자신의 가장 큰 부분을 향해 나를 가리켰다. 그는 나를 옹호했다. 그는 나를 키웠다. 그는 나를 격려했다. 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 저를 확인했다. 그는 나의 날개가 날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질 때까지 나를 사용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컴튼 출신이자 힙합의 전설인 닥터 드레는 존스가 프로듀서가 된 이유라고 밝혔다. Dre는 인스타그램에 "제가 엔지니어링을 시작했을 때 그의 기록은 제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다“며 "그와 함께 어울린 모든 시간은 귀중했고, 그가 저에게 해준 조언과 우리가 나눈 대화가 제 인생과 커리어에 도움이 된 것처럼 그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비교할 수 없는 퀸시 존스에게서 영원히 영감을 받았다"고 썼다. 래퍼이자 배우인 아이스 티는 "오늘 퀸시 존스를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에 잠에서 깼다"며 "천재는 느슨하게 사용되었지만 거의 자격이 없는 표현이다. 요점을 비우면 퀸시는 남자였다. 저는 퀸시와 함께 첫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매일 그의 지혜와 함께 살고 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던 그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번 일은 저를 강타했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동료 프로듀서인 나일 로저스는 X에서 "Rest in Power"를 썼다. R&B 가수 빅토리아 모네트는 존스가 "가장 큰 영감" 중 하나라는 글을 X에 올렸다 "퀸시, 정말 사랑해요!!! 당신의 유산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며 "하늘은 당신과 함께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했다. LL Cool J는 "아버지와 모범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당시 존스를 "아버지이자 모범"이라고 불렀다 "멘토. 롤모델. 킹. ????당신은 저에게 기회를 주었고 지혜를 공유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온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가장 달콤한 음악 속에서 쉬십시오.“◎
-
- 문화
- 음악
-
[로컬 뉴스] 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실시간 음악 기사
-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장욱조·박일준·지은숙·마도로스朴·윤한길 등 가요계 인사들과 교류도 시애틀에서 활동 중인 가수 서정우가 지난해 12월10일 개인적인 일로 급히 한국 방문 중에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 및 녹화에 참여하는 등 분주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1월14일 시애틀로 돌아간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밀어닥친 혹한으로 인해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약을 복용하는 등 사흘간 꼼짝 못 하고 지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후 친지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의 안내로 ‘가요 TV 쇼’ 등 케이블 TV 가요 프로그램 녹화와 가수 박일준이 유튜브로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참여하는 등 강행군을 이어갔다. 시애틀 언론계에 몸담았던 기자는 20년이 넘는 동안 가수 서정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수들의 시애틀 공연에 물꼬를 튼 개척자이다.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가수들에서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로 널리 알려진 故 송해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을 초청, 공연을 통해서 시애틀 및 인근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에게 고국을 향한 향수를 달래주는 산파역을 했다. 주로 한국 문화계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는 가요계 취재도 할 기회가 있다. 기자가 시애틀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는 장미화는 “서정우 잘 있어요? 그 애(장미화의 친근한 사람에 대한 표현)는 정말 잘 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 출연 섭외 등에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아서…”라며, 가수 서정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 적이 있다. 미8군 무대 출신의 가수 장미화는 1973년 ‘안녕하세요’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때부터라고 계산하더라도 두 사람은 오래된 사이인지라, 가수 장미화는 후배 가수 서정우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수 장미화가 “그 애는 정말 잘나갔을 텐데, 시애틀로 가서 생활하는 바람에…”라고 안타깝게 말한 사연은 이렇다. 가수 서정우는 한국 가요사에 불멸의 곡으로 남은 ‘흙에 살리라’를 처음 녹음하고 부른 가수이다. 그런데 일반 대중들은 그 곡을 부른 가수는 홍세민(2021년 별세)으로 기억한다. 우직한 충청도 청년 서정우는 어느 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유튜브 등 다양한 홍보 매체를 이용해서 ‘운(運) 좋으면’ 일약 스타가 될 수 있지만, 60년대 말과 70년대는 ‘운’이 좋으면 라디오를 통해서, 정말 '운 벼락’을 맞으면 TV 화면을 장식하는 것이 정석으로 통했다. 그에게도 그 ‘운(運)’이 찾아왔다. 1970년대 초 김정일 작사·작곡의 곡 ‘흙에 살리라’를 받게 되었던 것.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흙에 살리라’ 1절 산업화 시대를 맞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울로 향했던 그 시절. 그렇지만 서울 생활은 고향에 대한 향수로 더 짙게 채색되어 갔다. 60년대에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선술집에 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거나, 선술집의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노래에 눈물을 훔치거나, 귀갓길에 홀로 흥얼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그런 때, 그 시절에 서정우가 부른 ‘흙에 살리라’라는 노랫말은 대중가요에 흔하디흔한 ‘사랑·이별’ 등이 주제가 아니라, 수양버들이나 능수버들과 초록빛으로 채색한, 두고 온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정우가 부른 그 시대에 맞아떨어졌던 곡 ‘흙에 살리라’는 ‘운’ 좋게 라디오를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수 서정우’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운’ 나쁘게 서정우 씨 앞에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뒤 배경이 없으면 입영 연기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입영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는 ‘흙에 살리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서정우를 찾았지만, 군 생활을 하는 그를 무대에 세울 상황이 아니었다. 해서 작곡가인 김정일 씨는 부랴부랴 1973년 23세의 홍세민에게 '흙에 살리라'를 취임시켰고, 그 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가수 서정우의 이름은 잊혀졌다. 서정우가 군 생활 3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다시 신인 아닌 신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흙에 살리라’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시 허리끈을 졸라맨 그는 밤업소 등을 뛰면서 기회를 노렸지만, 그에게 ‘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에 시애틀에서 이민 생활을 하던 그의 누나가 초청장을 보내왔다. 시애틀에서 햄버거 가게 등을 하면서 열심히 살던 그에게 가끔 한인 밤업소에서 출연을 요청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사양하고 오직 주어진 현실인 생활전선에 열심을 다했다. 어느 정도 미국 생활이 안정되자 슬며시 노래를 향한 애정의 싹이 텄다. 그때부터 가끔 한국을 방문해서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면서 한국의 가요계 동료와 선후배들을 시애틀로 초대해서 한인 동포들을 위한 공연을 개최하는 데 힘썼다. 그의 그 같은 본국 가수 초청 공연은 동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초대한 본국 연예인들은 송해를 비롯해서 남진·현철·송대관·태진아·주현미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다. 가수 서정우와 기자는 2년여 만인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가수 박일준이 진행하는 ‘박일준 TV’에 초대 가수로 출연한 장소였다. 그 자리에서 서정우는 노래와 함께 자신의 가요계 데뷔와 그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비롯해 시애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한국 방문 중에 가요 활동을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근황을 전했다. 가수 박일준은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가수인 나도 흉내를 낼 수 없는 독특한 음성을 지녔다. 솔직히 대중가요 가수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이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로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후 “그래서 머리가 터지게 홍보에 나서는 상황인데, 시애틀에 살고 계시면서 한국에서 가요 활동을 한다는 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요계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바로 서정우 씨가 가진 높은 음악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자리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수 지은숙(힛송: 니가 사랑을 알아·바보같은 사람·내 가슴에 비가 내리면·사랑은 무죄 등)이 특별 출연, 가수 서정우를 응원했다. 또한 윤한길 색소폰 연주자와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 가수 마도로스 박 등도 참석,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방송을 지켜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가수 마도로스 박은 “허스키한 음색이 주는 독특함이 매력적이다. 시애틀에 살면서, 이렇게 한국 가요 무대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은데, 앞으로 지방 공연 등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했다. 잘 살아 봅시다 잘 살아봐요 /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가 살면은 천년을 사나요 / 만났으니 잘 살아 봅시다 외로울 때면 나를 불러요 / 슬플 때면 함께 울어요 우리네 인생길 공수래공수거 / 우리 한번 잘 살아 봅시다-서정우 노래 ‘잘 살아 봅시다’ 1절 가수 서정우가 몇 년 전 사랑하는 연인에게, 부부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향한 진솔된 마음의 고백이 담긴 경쾌한 리듬의 노래 ‘잘 살아 봅시다’는 몇몇 가수들도 부르는 등 인기곡 챠트에 올랐다. 그런데 가수 박정식이 개사를 해서 불러 힛트시킨 것을 지켜보면서, 주거지가 미국이기 때문에 본국 무대에 설 기회가 그만큼 적은 그가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 서정우는 “제가 부른 노래가 여러 가수들에 의해서 불려지면 좋지요.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그저 노래하는 것, 그것 자체로 즐겁게 생활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 이것이 저의 생활철학이라면 철학”이라고 했다. 마치 서정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이다. 그가 부른 대부분의 곡도 긍정적이고 밝다. 가사도 그렇고, 곡의 리듬 역시 경쾌하다. 그런 가수 서정우가 이번 한국 방문 중에 취입한 신곡 ‘꽃 입술(박영지 작사·장욱조 작곡)’이 ‘박일준 TV’에 소개되었다. 화사한 꽃 입술에 함박웃음 피어나면 / 내 마음 빼앗겼네 나도 몰래 반했네 좋아졌네 좋아하는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네 / 긴 머리 찰랑대는 상큼한 그 아가씨 새빨간 꽃 입술 꽃 입술 그녀를 / 정말 정말 좋아해요-서정우 노래 ‘꽃 입술’ ‘박일준 TV’ 방송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을 때, 영하의 찬 바람이 몰아치는 밤 11시였다. 그는 ‘꽃 입술’ 곡을 준 작곡가 장욱조의 파주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은 찬양 목회자로 변신한 장욱조였다. ◎
-
- 문화
- 음악
-
가수 서정우, 한국 방문 중 신곡 ‘꽃 입술’ 취입 등 분주한 활동
-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10일 서울 KSPO돔에서 1만2000여 관객 만나 좌우 정치권 왼팔오른팔 빗대 비판…약 2시간 30분동안 거침없는 발언 사흘간 서울 공연 후 59년 가수 인생에 종지부…공연 중 눈물 보이기도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보니, 별로 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 가수 나훈아(77)의 목소리는 물기로 꽉꽉 잠겨 있었다. 그가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연 단독공연 ‘라스트 콘서트- 고마웠습니다’의 한 장면. 나훈아는 1998년 가수 인생 처음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설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중 스타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미주알 고주알 들춰 보이면 환상이 깨진다.” 그랬던 그가 이젠 평범하게 땅을 걷겠다고 했다. 관객들 사이에선 아쉬움이 가득 섞인 “안돼” 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훈아는 10일~12일,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그가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은퇴 투어 무대의 ‘마지막 개최지’로 예고해 큰 예매 경쟁이 벌어진 공연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자필 편지를 통해 처음 은퇴 계획을 알렸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차례로 팬들에게 고별인사를 전하는 공연을 열어왔다. 나훈아는 지난해 4월 인천 무대 때만 해도 “오늘은 인천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니 꼭 잘 해낼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하지만 이날 서울 공연에선 약 2시간 30분간 23곡의 히트곡을 선보이며 수 차례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첫 곡 ‘고향역’부터 내리 6곡을 부른 직후엔 “저는 인생에서 처음 해보는게 ‘마지막 공연’이다. 오늘 아침에도 연습을 하면서 가슴이 좀 먹먹하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연 마지막 순서로 대표곡 ‘사내’를 부를 땐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훈아의 대표곡 ‘공’의 무대 또한 평소보다 더욱 거침이 없었다. 그가 매 공연 때마다 ‘띠리~’가 이어지는 후렴구를 활용해 속내를 내보이는 순서다. 한때는 팬들에게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나훈아의 2008년 ‘신체 절단설’도 이날만큼은 노래에 맞춘 유쾌한 농담 소재가 됐다. “여러분은 ‘(나훈아) 니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노’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십니까. 내보고 밑에 다 잘맀다(잘렸다) 카고. 지금은 웃지만, 여러분. 제 속이 어땠겠습니까. 띠리~!” 능청스런 나훈아의 말이 순식간에 객석을 뒤집었다. 정치권을 향한 그의 작심 발언도 평소보다 높은 수위로 이어졌다. 가장 이목을 끈건 나훈아가 지난달 7일 가진 대구 단독공연에 대한 언급. 당시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계엄 해제 사태 나흘 만에 공연을 열었고, “요 며칠 밤을 꼴딱 새웠다. 공연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은 어느 쪽이고? 여당, 야당 대표 집은 어디고?”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선 ‘나훈아가 계엄 사태와 현 정부에 분노해 쓴소리를 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나훈아는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저거 색깔에 맞게, 맘대로 막 쓴 기다. 그럼 안 된다”며 직접 반박에 나섰다. “인제 그만 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켔는데 (안 되겠다)”며 운을 뗀 그는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을 들어보이며 “왼쪽이 오른 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 이 얘기가 지가 지방(대구)에서 한 얘기”라고 했다. 이어 그는 왼팔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니는 잘했나!” 계엄 사태 이후 좌우로 나뉘어 책임론을 묻는 정치권 분쟁을 왼팔과 오른팔에 빗대 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형제들을 혼내던 어린 시절도 예로 들었다. “서로 잘못했다 난리를 직이면 우리 어무이는 ‘둘 다 바지 걷어라!’며 둘 다 때렸다. 형제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싸우면 안 된다는 논리를 말하신 것”이라며 “지금 우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고 난리가 났는데, 느그(너희) 하는 꼬라지들이 정말 국가, 국민을 위한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외쳤다. 그는 “내 말에 동의를 안 해도 좋다”고도 덧붙였다. 객석에선 곧바로 “동의!” “옳소!” 환호가 이어졌다. 나훈아는 공을 완창한 직후에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여러분, 지금 우리 머리 위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며 “텔레비전에서 어떤 군인들은 계속 잡혀 가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다. 이것들한테 우리 생명을 맡긴다? 웃기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언론들이 이런걸 생중계한다는게 문제”라며 “그러면 북쪽 김정은이 얼마나 좋아하겠나. 저런건 생방송해서 비추며 안 된다”고도 외쳤다. 이어진 그의 말에 객석에선 또 다시 “맞다!” 소리가 쏟아졌다. “정치하는 분들이 반은 국회에서 밤을 새고, 탄핵을 하니 생 지x을 하든 뭘 하든 다 좋아. 다 좋은데, (나머지) 반은 국방을, 우리가 먹고 사는 경제에 신경 써야 합니다. 경제고 국방이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 딴짓들만 하고 앉아 있는데.” 한편 나훈아는 오는 12일까지 사흘간 5회에 걸쳐 약 7만 관객을 만난다. 1967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랑’ ‘영영’ ‘잡초’ 등 직접 쓰고 부른 노래만 1200여곡에 달한다.
-
- 문화
- 음악
-
나훈아, 마지막 투어 공연에서 작심 비판... "왼쪽, 니는 잘했나!"
-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추위 녹인 ‘레전드 뮤지션들’의 훈훈한 무대 정혜선·이영하 탤런트, 박술녀 한복 명인 등 객석 꽉 채운 관객에 감동 안겨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 장미화 회장·조갑출 고문에 ‘감사장’ 수여 관객들, “TV에서 그룹사운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K-팝의 지평을 넓히는데 초석을 다진 미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뮤지션들로 구성된 단체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마련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는 왜 그들이 ‘전설’로 통하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1,2,3층을 꽉 채운 탤런트 정혜선·이영하, 박술녀 한복 명인 등 하객 및 관객들은 나이를 초월한 레전드 뮤지션들의 열정적인 노래에 탄성과 박수갈채를 보냈다. 행사 개막전 사회를 진행한 장미화 회장은 “오늘 김홍탁(록밴드 키보이스와 히식스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 그룹사운드 전성시대를 연 기타리스트. 예우회 2대 공동회장 역임-편집자)선배께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창립 21주년을 맞이한 3·4대 장미화 회장이 이끌고 있는 ‘예우회’는 지난 4월25일 ‘예우회’ 회원 김광정(‘가는 세월’의 작곡가 겸 가수, 기타리스트)에서 황규현(힛송 ‘애원’을 부른 가수. 그룹 쉐그린의 리드보컬 출신. 밴드 포가이스와. 플레이보이서 활동)에 이르기까지 16명의 뮤지션들의 힛송 및 신곡 등을 담은 옴니버스 음반 ‘전설을 노래하다’를 발매했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이끌던 전설들이 함께 뜻을 모아 다양한 목소리로 신곡이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이 음반에 직접 작곡한 신곡이 유작이 된 ‘사랑은 운명’을 담은 故 장우(힛송 ‘가시나요’ 등을 부른 가수. 코코 브라더스, 포 다이나믹스로 활동)가 음반 발매 사흘 후에 숨을 거두었다. 장 회장이 부음을 전한 故 김홍탁 ‘예우회’ 제2대 공동회장은 이 음반에 김선·오영숙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김홍탁 트리오'로 ‘바닷가의 추억’을 담았는데, 공교롭게도 ‘예우회’의 행사가 있는 이날 오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에 잠시 장내는 숙연해졌다. 강남구의회 이호귀 의장은 행사 시작 전 예우회 장미화 회장과 조갑출 고문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그룹 사운드 신곡 발표 나눔 축제’와 ‘불우이웃돕기 자선 콘서트’를 곁들인 행사 수익금은 우리 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오늘, 전설을 만나다’ 무대에 오른 그룹 사운드 및 개인별 순서는 아래와 같다. 행사 막 올린 올드 팝 전문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즈’의 멋진 연주 7인조 혼성 보컬 그룹사운드 마일스톤즈(리더 이상래)의 올드 팝송 Cotton Fields(1970. The Beach Boys)로 ‘전설을 만나’는 문을 열었다. 2014년에 결성된 이래 올드 팝송을 추억하는 관객들에게 100여곡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두터운 올드 팝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마일스톤즈’는 ‘예우회’ 회원은 아니지만, 특별 초대되어 Dust in the Wind(1978. Kansas), 팝 메들리-Hey Tonight(1970.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 Sugar, Sugar(1969. The Archies), Oh, Pretty Woman(1964. Roy Orbison and the Candy Men), Cry Like a Baby(1968. The Box Tops), I Want to Hold Your Hand(1963. The Beatles)-에 이어 1968년 비틀즈의 경쾌한 리듬의 힛송 Ob-La-Di, Ob-La-Da을 연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흥겨움과 함께 꽃피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안내했다. 여성팬들의 압도적 박수갈채 받은 ‘훈이와 슈퍼스타’ 출신 김훈 두 번째 무대는 1980년대 '오라리오'로 인기를 누렸던 '훈이와 슈퍼스타'의 김훈이 장식했다. 가수 뿐만 아니라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스포츠 팬들에게는 ‘명 배드민턴 해설자’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불멸의 힛송’ ‘오라리오’를 노래,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관객들은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의 김훈이 독특한 저음으로 1972년 영화 ‘대부(The Godfather)’ 테마뮤직을 앤디 윌리엄스가 불러 힛트시켰던 ‘Speak Softly Love’를 노래하면서 마론 브란도·알 파치노·제임스 칸 등이 열연했던 영화 ‘대부’와 197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거부했던 마론 브란도가 영화 속에서 펼쳤던 명연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등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30일 데뷔 50년 디너 쇼 갖는 ‘만년 소녀’ 옥희가 장식한 화려한 무대 세 번 째 무대는 자선바자회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등에 빠짐없이 동참하는 등 장미화와 언니·동생으로 지내는 절친이자 후배인 ‘철없이 순진해 보이는 만년 소녀’ 옥희가 등장, 한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치겠다는 간절함이 깃든 엘비스 프레슬리의 1961년 힛 팝송 ‘Can't Help Falling in Love’로 객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작곡가 이봉조와 김희갑에게 발탁돼 1968년 미국인 기획자의 눈에 띄어 도미(渡美),라스베이거스의 팝송무대에서 ‘서울시스터즈’ 밴드 소속 가수로 활동 후 73년 국내 무대에 데뷔한 옥희는 ‘나는 몰라요’ ‘눈으로만 말해요’ 등 힛송과 함께 당시 파격적 의상과 시원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 옥희는 사회자 장미화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는 30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50주년 기념 디너 콘서트를 연다”며, 장년층 이상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그녀의 “남편 홍수환의 첫 세계 챔피언 등극 5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린다”는 홍보를 했다. 그러면서 옥희는 특유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최근 신곡을 냈다. 들어보시고, 대박이 날 것 같으면 박수로 화답해 달라”고 말한 후 경쾌하고 긍정적인 사랑의 의미가 담긴 ‘고마운 사랑’을 노래, 큰 박수를 받았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 이제는 우리 드라마 속에 / 주인공처럼 살아 봅시다 따뜻한 사랑 달콤한 사랑 / 우리 다시 또 시작해요 / 죽고 못 사는 뜨거운 사랑 / 아주 멋진 우리 사랑은 노을이 물든 강변도 함께 걸어요 / 연인처럼 두 손 꼭 잡고 / 사랑이 뭔지 모르고 만나 / 여기까지 함께해서 고마워-옥희 노래 ‘고마운 사랑’ 가사(작사 정기수, 작곡 송광호)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의 열창에 객석에서 터져나온 ‘탄식’ 네 번째 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한국 흑인 음악의 선구자로, 한국 여성 소울의 대모, ‘한국의 티나 터너’ 임희숙이었다. 짙은 허스키에 영혼을 울리는 그녀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흑인 재즈 가수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목소리, 굴곡진 삶을 노래한 짙은 감성의 허스키 보이스,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절절한 호소력의 소울, 트로트, 재즈, 가스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능력을 지닌 뮤지션. 중학교 2학년 때 외국 팝송을 많이 접했고 특히 미국 흑인가수 샘 쿡(Sam Cook)의 노래에 푹 빠져 지냈던 소녀. 어린 그녀는 짙은 감성으로 사람의 영혼을 감싸주는 외국의 솔 가수들의 끈적끈적한 솔이나, 블루스 같은 흑인 재즈성향의 노래가 특히 좋아한 것이 계기가 돼 60년이 넘은 지금도 남자가수를 압도하는 박력있고 파워넘치는 보컬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애잔함을 오래 간직하게 만드는 임희숙은 금년 ‘예우회’가 출시한 음원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 신곡 ‘사랑의 순례자’를 부르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길고 긴 강을 따라 구름이 가듯 / 터벅 터벅 세월을 따라 먼 길을 간다 / 삶의 이 끝에서 또 저 끝까지 / 내 하나의 사람을 찾아서 간다 끝내는 머물게 될 그 한 곳이 있어 / 무거운 이 발길을 쉬게 하려나 / 한 밤도 태우지 못한 이 한 가슴을 / 그날엔 파랗게 밝혀 주려나 갈수록 어두움이 두려워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 갈수록 외로움이 깊어 가는 길 / 꿈처럼 아득한 그 길을 간다-임희숙 노래 ’사랑의 순례자‘: 백창우 작사·곡 임희숙이 두 번 째 부른 곡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불멸의 힛송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였다. 경쾌한 리듬의 곡과 연주로 객석을 사로잡은 김혜정과 ’검은나비‘ ’전설은 만나‘는 무대는 밴드 ’검은 나비‘로 바뀌면서 객석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1974년 결성된 ’검은 나비‘는 신중현 사단인 그룹사운드 더맨 출신인 손학래가 결성한 그룹으로 신중현 계보의 그룹 ’더맨‘ 출신들과, 김홍탁 계보의 그룹 히식스 출신들이 만나 결성된 밴드다. 그룹 더맨 출신으로는 손학래, 김기표, 이태현, 문영배가 있으며, 그룹 히식스 출신으로는 최헌, 김영균, 김인섭 등이었다. 그룹 검은나비는 남성 솔로가수의 등용문으로도 유명했다. 백두산의 유현상, 사랑과 평화의 이철호, 도시 아이들의 박일서, 김태화 등이 ’검은나비‘를 거쳐간 가수들이다. 국내 록그룹의 전설로 미8군 무대를 점령해서 명성을 떨쳤던 검은나비 보컬 김혜정이 호랑나비가 그려진 화려한 망토를 어깨에 걸친 채 등장하자 남편인 기타리스트 윤신호 등 6인조 밴드의 능수능란한 연주와 함께 영국이 낳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록·팝 그룹 ’퀸Queen‘ 보컬 퍼포머 프레디 머큐리의 힛송 Bohemian Rhapsody(1975), We Will Rock You(1977), Another One Bites the Dust(1980), We Are the Champions(1977)등을 열창, 올드 팝송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시선이 잠시도 무대를 떠날 시간적인 틈을 주지 않았다. 이어서 보컬 김혜정은 이날 별세한 故 김홍탁 작곡, 강찬호 작사 ’당신은 몰라‘(최헌 노래-1972년 He6 5집 수록)와 ’예우회 회원 김희갑 작곡, 지명길 작사 최진희 노래 ‘사랑의 미로’(현재 미국 워싱턴주 거주 중인 태원이 1976년 발표했던 ‘너의 사랑’이 원곡으로, 1984년 개사, 발표해서 힛송으로 자리매김-편집자)를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에너지 넘치는 ‘퀸 베이’ 장미화의 열창에 객석에서 나온 “마치 비욘세를 보는 것 같다” 감탄 이어진 무대는 김훈의 소개로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가 섞인 능수능란한 진행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장미화가 장식했다. 여기서 간략하게 장미화 ‘예우회 회장’의 노래에 얽힌 여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장미화는 ‘KBS 아마추어 톱싱어 대회’ 대상을 받은 후 신중현이 이끌던 인기 미8군 그룹사운드 ‘Add4(애드포)′의 객원 보컬을 제안받고, 1965년 신중현이 Add4 이름으로 낸 첫 정식 음반에 ‘노래 장미화’라고 새겨진 두 곡,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읻 등불을 끕니다’가 함께 실렸다. 이것이 계기가 돼 그녀는 “대학 1학년 재학 중 휴학계를 내고 Add4의 막내 객원 보컬로 들어가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미8군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장미화는 1966년, 국내 최초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매니저였던 ‘맥맥퀸(Bob McMackin)’을 통해 “당신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 걸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로지’란 이름으로 1세대 여성 5인조 그룹사운드 ‘레이디버드’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진출한 첫 해외 무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센스호텔’, 그룹사운드 형태 국내 걸밴드 최초의 미국 진출 기록이 됐다. 그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번은 ‘Unchained melody’로 유명한 라이처스 브러더스와 카지노 홀 중앙 원형 스테이지를 반으로 갈라 벽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무대에 올라 번갈아 노래했다. 한국에서 라디오로만 듣던 스타를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찼다.” 활동 중간에는 팀 이름을 ‘서울 키튼스’로 바꿨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서울의 이름을 해외에도 제대로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장미화는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여러 국가를 7년간 돌며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선 쉴 틈 없이 차에서 먹고 자며 다음 공연지로 이동하기 바빴고, 하도 노래를 많이 해 성대가 찢어져 피가 나고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고 했다. 1973년 장미화는 해외 순방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귀국했다. 미8군에선 이름을 날렸지만, 정식 국내 방송 데뷔는 없던 탓에 ‘장미화’ 세 글자가 국내에선 거의 무명이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미8군 가수들을 자주 기용했던 TBC 방송국 ‘쇼쇼쇼’의 유명 연출가 ‘황정태 PD’를 통해 소개 받은 여대영 작곡가가 건낸 ‘전설적인 불멸의 곡’인 ‘안녕하세요’로 대박을 터트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장미화는 화려한 은박이 원피스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 폭발력 있는 음성으로 셀린 디옹이 1998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영화 ‘타이타닉’ OST ‘My Heart Will Go On’을 부를 때, 객석에 앉아 있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관객이 “와! 저 연세에 어떻게 목을 관리해서 저렇게까지 음역이 넓고 음성이 높게 올라 갈수 있지?”라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앉은 친구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마치 비욘세가 노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 셀린 디옹이 부른 노래가 소프라노에 실려 변함없는 사랑을 향한 간절함을 표현했다면, 장미화의 노래는 사랑에 대한 확신에 찬 마침표를 찍는 것처럼 느껴지는 메조 소프라노였다고나 할까.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객석의 박수 진동폭에 대해서는 생략하는 게 좋겠다. 퀸 베이(Queen Bey) 장미화는 박수갈채가 끝나기 전, 간략한 설명과 함께 ‘서풍이 부는 바람(오준영 작사 곡)’을 열창했다. 1952년 한국 서울에서 가족에게 강간당하고 버림받은 한국 여성의 아들로 태어나 미군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12살 때 미국에 건너왔고, 21살 때였던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한 중국인이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 사건 가해자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곳에서 수감자와 싸움이 붙어 실제로 살인을 저질러 가중 처벌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미 주류사회 언론사 한국계 기자가 6개월 간 끈질기게 사건을 파헤치기 끝에. 재심 판결은 무죄. 그가 실제로 저지른 살인은 10년간의 복역으로 갈음하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통해 10년만인 1983년 3월에 이철수(2014년 사망)는 석방됐다. ‘서풍이 부는 날’은 이철수 씨가 10년 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어릴 적 떠난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밴 노래이다. 온전히 영혼을 노래에 쏟는 쟈니 리의 열창에 쏟아진 박수갈채 일곱 번 째 무대에 오른 이는 장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까지 불려지고 있는 마치 화석처럼 굳어진 명곡 ‘뜨거운 안녕’ 노래를 부른 쟈니리(86)였다. 이날 그는 2022년 발표곡이자 ‘예우회’ 발행 ‘전설을 노래하다’ 수록곡 “쟈니 블루스‘로 관객과 인사를 나눈 후 휴전 2년 후인 1955년 토드 던컨이 부른 형무소를 다룬 미국 영화 ’Unchained‘ 주제곡으로 유명한 ’Unchained Melody‘를 당시 한국 지식층에 널리 유행한 이래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토드 던칸의 1955년 힛송 ’Unchained Melody‘를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음 처리에 호소력 깃든 목소리로 열창, 큰 박수를 받았다. 참고로, 이 노래의 가장 유명한 버전은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녹음본이다. 자료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에서 670명도 넘는 음악인에 의해 영어 포함 다언어로 1,500회가 넘게 녹음되었다. 쟈니 리는 1959년에 극단 쇼 보트의 단원, 1961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 활동을 하였다. 1966년에는 신세기레코드에서 '뜨거운 안녕', '통금 5분전' , '내일은 해가 뜬다'가 수록된 독집 음반 '쟈니리 가요 앨범'을 취입하였으며, 영화 '청춘대학'에도 출연했다. 197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76년에 잠시 귀국해서 재기, 1978년에는 이훈이라는 예명으로 재즈 음반을 발표하였으나 1980년대 초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1995년 9월 한국방송공사 빅쇼에서 故 가수 정원과 ’우정의 라이벌 무대‘ 특집 방송에 출연한 이래 한국에 정착해서 2021년에는 신곡 '바보사랑', 2022년 ’쟈니 블루스‘ 등을 발표하면서 아직까지 여러 방송 및 행사에 초대되고 있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급조된 ’여성 트리오‘의 빛나는 노래와 댄스에 객석도 ’들썩‘이며 ’박장대소‘ 계속된 무대는 붉은색과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장미화·옥희·김혜정 등 급조된 여성 3인조 트라이 앵글 그룹이 작금의 청년 세대가 지니는 삶에 대한 고뇌와 희망을 노래한 Proud Mary(1969. 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를 부르자 객석에서 이들 ’여성 그룹‘이 블루스·컨트리·포크·록이 결합한 음악 느낌에 따라 몸을 흔들며 열창하는 모습에 박수와 환호성을 곁들여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장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도균이 부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에 관객들은 옛시절로 소환 당해 아홉 번째 무대를 밟은 차도균은 1966년 사촌 동생 故 차중락이 불러 힛트했던 번안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맑은 톤의 목소리로 열창, 객석 곳곳에서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관객들을 젊은 시절로 소환시키기도 했다. 21년 ’예우회‘ 막내 유현상, 최신곡 ’그게 나야‘로 객석 사로잡아 10번 째 무대는 스스로 ”미8군무대 출신으로 구성된 예우회의 막내“라고 자신을 소개한 칠순의 유현상이었다. 사회자 장미화는 ”청주 공연을 마치고 오늘 행사에 마치느라 달려온 고마운 후배“라며 후배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소개를 잊지 않았다. 맞아 그게 나야 / 나 그렇게 살아왔단다 /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 내 인생은 지금부터야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 이 악물고 나 살아왔는데 / 못할 게 무어냐 안될 게 무어냐 / 아직은 아니야 포기는 없다 / 내일은 내가 웃는다.-유현상 노래, 김현진 작사, 유현상 ’그게 나야‘ 1절 유현상은 지난 2020년 5월 이후 4년만인 올 9월19일 멜론, 소리바다 등 음원포털과 유튜브에서 공식 발표된 발매한 정규앨범 타이틀곡을 첫 곡으로 불렀다. 관객들은 지난 세월 비바람에 휘청이고 넘어질 때도 이 악물고 살아온 자신을 토닥이며 ‘지난 세월은 연습이었다. 인생은 지금부터다’, ‘맞아 그게 나야’라며 무너진 중년의 자존감을 한껏 올려주는 희망을 다짐하는 리드미컬한 템포에 유현상 특유의 짙은 감성이 듬뿍 담긴 트로트 곡이 끝나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어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힛송 ’My Way’와 ‘갈테면 가라지’를 선물했다. 유현상은 1970년대 중반 그룹 '라스트 찬스'로 무대에 데뷔했고, 1976년 ’사계절‘이라는 그룹(보컬 윤시내 참여)의 기타리스트로 1976년경 오비스 캐빈을 무대로 활동을 시작해서 1980년 해체될 때까지 ’정말 바보일까‘와 ’누가‘ 등을 발매했지만 확고한 팬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후 1986년 KBS 2TV의 인기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그룹 사운드 ’백두산‘의 리드 보컬 겸 리듬 기타로 본격 데뷔하면서 중후한 헤비사운드에 호소력있고 힘있는 보컬이 매력적인 히트곡 "어둠 속에서"로 확고한 음악적 지위를 확보했다. 90년대 초 유현상은 머리를 자르고 자신의 아내(전 수영국가대표 최윤희)에게 보내는 애정이 담긴 곡 ’여자야‘를 부르며, 트로트 가수로 변신 후 ’갈테면 가라지‘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면서 락 음악 후배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2008년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을 재결성하여 8월 17일 ’‘동두천 록 페스티벌’에서 컴백 공연을 펼쳤으며, 현재는 ‘백두산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활동 중이다. 키보이스·키브라더스 시절 주옥같은 힛송으로 향수 자극한 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용 11번 째 무대의 주인공은 윤항기와 차도균이었다. 둘은 1963년 차중락·옥성빈·김홍탁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5인조 록 음악 밴드 "키보이스"에서 드럼과 베이스기타스트로 활동 당시의 힛송 ‘바닷가의 추억(1969)’과 ‘정든 배는 떠난다(1964)‘, ‘해변으로 가요(2007)’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1970년에 결성한 한국적 브라스 락을 지향하면서 나이트클럽과 고고클럽, 젊음과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서 승승장구했던 그룹 사운드 ‘키 브라더스’에서 활동했던 멤버 중 ‘예우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김광정(기타-가는 세월 작곡)과 2대 회장 윤항기(드럼과 보컬-장미빛 스카프 등 작사·작곡), 정명용(기타)는 열두 번째 무대에서 1957년 팝 힛송 ”I Can't Stop Loving You“을 불렀다. 일부 관객들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른 이 곡은 1957년 처음으로 녹음했던 돈 깁슨이 2003년 사망했을 당시 세계 7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이 녹음했으나, 그 가운데 빌보드 차드 1위에 오른 레이 찰스가 가장 많이 녹음했다. 레전드 전원·하객· 청중 기립한 채 ‘나는 행복합니다’ 합창 2025년 을사년 초록색 뱀띠 해에 건강과 행복 기원 2시간 넘게 진행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는 출연진 전원과 하객으로 참석한 귀빈 모두가 무대 위와 객석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윤항기 작사·작곡의 힛송 ‘나는 행복합니다’를 합창한 후 2025년 을사년 푸른 뱀 띠 해에도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막을 내렸다. 한편 의정부에서 공연장을 찾은 50대 초중반 박수진·백연주 씨는 ”공연 사회를 본 장미화 씨가 말한 것처럼, 요즈음엔 TV를 틀면 방송국에서 다투어 트로트 프로그램이 대세인 게 사실“이라며 ”이렇게 팝송이 곁들인 라이브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TV에서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뜻깊은 공연에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무대를 접하게 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나이는 묻지 말라“며 목동에서 친구와 함께 자리를 뜨던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관객은 ”추위도 불구하고 오길 잘했다. 레전드는 레전드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퇴계로 오리엔탈호텔의 닐바나 고고클럽을 종종 찾았는데, 옛날 생각에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출연진 모두가 건강해서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
- 문화
- 음악
-
美8군 1세대 보컬 그룹 출신 ‘예우회’ 주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성황
-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합니다. 근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아 좋습니다. 저를 아직 ‘오빠’라고 그럽니까?” ‘가왕’ 조용필(74)은 관객의 함성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첫 공연에서다. 그는 지난달 22일 11년 만에 정규 음반 ‘20’을 발매했다. 전국 투어는 서울·대구·부산 등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인 서울 콘서트는 다음 달 1일까지 네 차례다.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첫날 공연의 문을 열었다. 간단한 인사 뒤에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를 연달아 불렀다. 오프닝 뒤엔 “같이 놀기 위해 빠른 노래들을 많이 준비했다. 운동하는 셈 치고 같이 노래 불러보자. 여러분 노래가 힘이 된다”고 말한 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꽃무늬 검정 셔츠에 검정 슬랙스와 하얀 운동화. 이날의 유일한 무대의상이었다. 돌출 무대나 리프트 없는 일자형 무대. 조용필 양옆에는 밴드 위대한탄생과 코러스가 자리했다. 조용필은 2시간여 동안 인사를 건네는 잠깐 외엔 단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만으로 가득 채운 공연이었다. 기타 사운드에 맞춰 춤추는 듯한 조명 연출로 볼거리를 제공했고, 대형 스피커 4대는 웅장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조용필은 간드러진 미성과 힘 있는 고음, 날카로운 박자감의 내레이션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 ‘미지의 세계’ ‘모나리자’ 등을 소화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보컬에 나이마저 무색했다. 게스트 한 명 없이 홀로 내달리는 열정에 객석에선 “역시 가왕”이란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에게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부를 땐 배우 박근형·이솜 등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대형화면에 흘렀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 자신을 믿어 믿어봐/ 지금이야 그때’라는 가사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를 위한 헌사처럼 들렸다. 조용필은 “스무 번째 앨범을 냈다. 아쉽게도 끝났으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도 밝혔다. 솔로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필두로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 ‘청춘시대’ 등 히트곡이 이어지자 객석은 달아올랐다. 자연스레 떼창이 이어졌다. 40여년 전 ‘그 소녀’로 돌아간 듯 ‘단발머리’를 부르는 모습에 조용필은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을 부를 땐 “노래방이라 생각하고 적극 참여 바란다”며 남성 관객의 가창을 이끌었다. ‘여행을 떠나요’로 2시간여의 본 공연이 끝나자 앙코르가 이어졌다. ‘추억 속의 재회’ ‘꿈’에 이어 2013년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운스’까지 3곡으로 화답한 조용필은 공연장 곳곳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손을 흔든 뒤에야 무대를 내려왔다. 마무리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무대였다. 130분을 29곡으로 꽉 채운 공연, 역시 가왕다웠다.
-
- 문화
- 음악
-
130분간 29곡…가왕은 쇼가 필요없었다
-
-
[가요계 화제] 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 [가요계 화제]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미8군 무대 출신 레전드 뮤지션 총 출동…수익금 일부 ‘불우이웃돕기’에 기부 미8군 무대 출신의 뮤지션들의 음악동인 예우회(회장 장미화)가 12월7일(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민회관 2층 대공연장에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을 개최한다. 2024년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새해를 뜻깊게 맞이하는 송구영신의 의미가 담긴 이 공연은 음악동인 예우회 주최,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주관하고,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가 후원한다. 출연진을 살펴보면, 그룹 사운드 마일스톤스(Milestones.Cotton Fields), 김훈(오라리오), 옥희(고마운 사랑), 임희숙(사랑의 순례자), 쟈니리(뜨거운 안녕), 검은나비(Bohemian Rhapsody), 장미화(My Heart Will Go On), 장미화·옥희·김혜정(Proud Mery), 차도균(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유현상(여자야), 윤항기 키보이스(바닷가의 추억), 윤항기 키브라더스(I Can’t Stop Loving You)가 출연, 관객들에게 귀에 익은 주옥같은 팝송과 자신의 힛트송 등을 들려주면서 옛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출연진은 이밖에도 신곡도 선물한다. 주최 측은 “음악동인 예우회가 원로 회원 뮤지션들 상호간의 교류와 새로운 공연 콘텐츠의 개발, 소외된 사회에 전할 온정의 방법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새해의 길목에서 작은 공연 행사를 만든다”며 “미 8군 무대 시절부터, 주로 6~70년대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서 서양음악을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소개함은 물론 수준 높은 작곡과 연주로 한국 대중음악의 질을 급상승시켜온 주역으로서 1세대 밴드 뮤지션들이 함께 오르는 무대”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최 즉은 “당시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계 아이콘이었던 연출을 통해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함은 물론 당시 시대상을 코믹하게 재현하게 되는 이 공연은, 2007년 12월 29일에 초연하여 장년과 노년의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많은 지자체로부터 재연의 러브 콜 을 받기도 했다”며 “다수 출연자들의 시간적 여건으로 인해 결국 서울 중구청의 초청에 의한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의 앵콜공연 1회만 수용할 수 밖에 없었듯이 이 공연은 한 무대에 함께하기 쉽지 않은 옛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접하기 힘든 추억의 귀한 무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최측은 “이 공연의 목적은 작게는 동료 원로 뮤지션들이 함께 ‘회상’하고 ‘추억’하며 옛 팬들과 조우하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며, 나아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함으로써 음악인의 사회 봉사 실천행동을 구체화하는 것”이라며 “음악은 장르 뿐만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며 공존해야 토대와 전통 속에 발전하는 것이라는 확신으로 여건을 극복하면서 늘 활동하는 존재가 뮤지션임을 알리고 실천하는 노력 또한 원로 뮤지션들 내면의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요 출연진> MC 장미화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날마다 이시간에 지나더니" 이 노래말은 가수 장마화 를 만든 장미화 의 대표곡이다. 1966년 신중현의 ‘애드포’로 시작하여 ‘레이디 버즈’ 등 주로 밴드 활동을 했던 파워풀한 여성 보컬리스트. ’67년 KBS 전속 가수로 발탁되었으며 이후 도미하여 ‘서울 키튼스’라는 밴드로 활동하다 귀국, 1973년 <안녕하세요>로 국내무대에 복귀. 70년대에는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부각되었다. 통산 11장의 LP, 5장의 CD를 발표하며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요즘은 사회봉사 활동 법인 ‘장미화의 아름다운 손길’, ‘산마김치’ 등의 대표로서 경제활동 및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2001년 장미화는 <아름다운 손길>이란 사회복지재단(NGO단체)을 만들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장미화 알뜰바자회>를 18년째 하고 있다. 형식적인 단체가 아닌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을 위해 위안잔치를 계속하고 매년 알뜰바자회 를 통해얻은 수익금을 전국에 직접 기부하고 있다. 독거노인들은 매년 그녀가준비한 음식을 수백명씩 초청하여 무의탁 노인들에게 직·간접으로 돕고 있으며 소년·소녀가장 의 두 가정을 지금도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독실한 불자인 그녀는 산사음악회를 주관하며 수년째 불자를 위한 헌신에 힘쓰고 있다. 데뷔 35년을 맞이한 그녀는 “바쁜 생활 중에 남을 돕고 사는 것은 내자신이 맑아 지는 것같아 기쁘다”고 했다. ‘2016년 장미화50주년 자선 Dinner Concert’ 를 양재동 K Hotel 그랜드볼륨에서 성황리에 공연하였다. 최근 장욱조 작곡의 ”잊지는 못할 거야“ 음반을 발표했으며, 2019년 로즈엔터테인먼트 회사설립했다. 대표곡: 안녕하세요, 서풍이 부는 날, 잊지는 못할 거야 등 키보이스&키브라더스(윤항기,차도균,김광정,정명룡 ) 1971년 데뷔앨범 [별이 빛나는 밤에/고고춤을 춥시다]를 발표하며 한국 최초의 브라스락을 선보인 밴드. 걸출한 스타 보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보컬에만 치중하지 않고 밴드음악의 맛을 잘 살려 나간 그룹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략)(2집의)<떠돌이 인생>은 키브라더스의 역량을 극대화한 뛰어난 번안곡이자 음반의 대표곡이다. 7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보컬 어느 파트 하나 쳐지지 않고 긴장과 이완으로 얽혀들어가는 이 곡은 락과 재즈와 사이키델릭을 횡단하면서 무아지경으로 인도한다(후략) 최근 은퇴 목사로 목회 활동 마치고 신곡 ‘걱정을 말아요’와 ‘완전 좋아 딱 좋아’ 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일스톤즈 (Mile Stones) 2004년 결성한 7인조 보컬 그룹사운드로 창단 후 최근까지 거의 매년 전석 매진의 정기연주회와 수많은 크고 작은 연주, 앵콜 무대 등 국내 최고의 Old Pop 전문 보컬 그룹사운드이다.한국새생명복지재단에서 개최하는 희귀난치병 환아돕기 자선공연 ‘추억의 Old Pop 콘서트’의 메인출연밴드이기도 하다. -2019 10월 세종문화회관 ‘추억의 올드팝 콘서트’ -2024. 6월 JSA공동경비구역 유엔군 미군장병 위문공연 -2024. 8월 한국 DJ협회행사 축하공연 등 옥 희 서울 출생이며 배화여중고를 졸업했다.이모의 소개로 테너 색소폰 연주자 겸 작곡가 이봉조(李鳳祚)와 기타 연주자 겸 작곡가 김희갑(金喜甲)에 의하여 가수로 발탁되었다. 1972년 미국에서 서울 시스터즈(Seoul Sisters) 밴드로 가수 활동을 하다가 이후 귀국하여 1974년 김희갑 작곡의 ‘나는 몰라요’라는 곡으로 국내에서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때 유례없이 방송 3사의 가수왕을 휩쓸었다. 그 후 ‘눈으로만 말해요’, ‘이웃 사촌’ 등이 히트하며 입지를 다졌고 1981년 프로 복서 출신의 홍수환과 결혼한 후 1985년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음식점 사업에 전념하다가 2003 년 ‘소설같은 사랑’이라는 곡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후 2007년 돈 때문에·Invite, 2017년 인생열차 등으로 꾸준하게 인기를 이어가면서, 현재는 지난날 그룹 사운드 출신 중견 동료 가수들의 음악 재기 관련 활동을 독려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쟈니리 1938년생으로 만 81세인 쟈니 리는 만주 출신으로, 본명은 이영길이다. 1959년 21세의 나이에 쇼단체 ‘쇼보트’로 데뷔한 쟈니 리는 ‘뜨거운 안녕’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멸의 힛송 ‘뜨거운 안녕’은 김문응이 작사를 맡고 길옥윤이 작곡을 했는데, 이 곡은 1966년 발매된 데뷔앨범인 ‘쟈니리 가요앨범’에 수록되어 있다.이 앨범의 또다른 수록곡으로는 ‘내일은 해가 뜬다’가 있는데, 노랫말을 보면 알겠지만 훗날 들국화가 발표한 ‘사노라면’의 원곡이다. 다만 당시 ‘사노라면’은 작자미상의 구전가요로 전해지던 곡이었는데, 이것이 쟈니 리의 곡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04년의 일이다. 당시 가사 중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때도 오겠지’라는 구절이 현실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 한편, 쟈니 리는 한 때 매니저와의 갈등 속에 연예계 생활에 환멸을 느껴 1974년 미국으로 떠난 뒤 2년 후 복귀했지만, 이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1980년대 초 다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가 그는 20여년 뒤에야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다시 안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희숙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 잃어버리고 / 타오르는 내 마음만 흐느껴 우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누구인가 불어주는 휘파람 소리 / 행여나 찾아줄까 그 님이 아니올까 기다리는 마음 허무해라 /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난 몰랐네 애잔하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임희숙은 소울이라는 음악 장르로 감미로운 윽인의 목소리에만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밴 듯한 그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린다. 감정 전달과 탁월한 곡 해석 능력으로 소울계의 대모로 불렸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가창력의 소유자인 임희숙은 우리 가요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5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영화제작자 전옥숙 딸이다. -덕성여고 2학년 때인 1966년 ‘외로운 산장’으로 데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중퇴했다. 이후 1969년 노래 '그사람 떠나고'로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진정 난 몰랐네’, ‘사랑의 굴레’, ‘잊혀진 여자’, ‘상처’, ‘한동안 뜸했었지’ 등 수많은 곡들을 히트시켰다. 김훈/ 오라리오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빅히트곡 <오라리오> 37년만에 리메이크 전설의 그룹 사운드 ‘훈이와 슈퍼스타’의 1981년 빅히트곡 <오라리오>(이백천 작사, 이현섭 작곡)가 37년만에 리메이크됐다. ‘훈이와 슈퍼스타’리더 김훈은 LP시절 슬로우고고풍이었던 이곡을 최신 디스코 버전으로 완전 재녹음, CD로 발매했다. <오라리오>는 원로 가요평론가 이백천이 작사하고 <옛시인의 노래> <어디쯤 가고 있을까>로 유명한 작곡가 이현섭의 곡으로 ‘오라고 하리오’의 준말이다. 황폐한 세상속에 마음을 정화시키는 한편의 서정시이다. 이 곡이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 ‘훈이와 슈퍼스타’ 데뷔앨범은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돼 5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6인조 꽃미남 밴드 ‘훈이와 슈퍼스타’는 1984년 <오라리오>로 KBS가요대상 록그룹 부문 상을 수상했으며, 다운타운 클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훈이와 슈퍼스타’는 그러나 80년대 후반 소속사 대표였던 ‘현이와 덕이’가 요절하면서, 그 충격으로 그룹이 해체되었다. 이후 김훈은 홀로 독일로 떠나 유럽지역 교민행사 출연 가수로 솔로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10년 귀국한 김훈은 이후 ‘K스포츠’ 케이블TV 회장, 서울시 배드민턴체육회 수석 부회장, 연예인 배드민턴 협회장 등이 되며 ‘배드민턴계의 대통령’으로 변신했다. 청년에서 시니어로 변한 김훈이 <오라리오>리메이크를 결심한 것은 이 곡이 아직도 잊혀지지않고, 너무도 많은 팬들에게 계속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검은나비(윤신호, 김혜정, 김덕성, 이기근, 김비오, 장민준, 이민구,) 70년대 초, The men과 He 6 출신의 뮤지션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하여 당대 최고 인기밴드의 한 축을 형성했다. He-6를 비롯하여 많은 가수들이 불렀었던 <당신은 몰라>를 밴드 곡으로 재 해석, 최헌이 불러 대힛트시킴으로써 곡의 원작자가 김홍탁임을 밝히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에 드문 세련된 소울과 브래스락을 추구하였다. 2기 멤버로 긴 기간 팀을 이끌어 온 기타 윤신호 외에 보컬 김혜정, 베이스 김비오, 키보드 김덕성 이민구, 드럼 이기근 타악기 장민준 현재 참여하였다. ‘2024 오늘, 전설을 만난다(Meet Today’s Legend)-불우이웃돕기 나눔자선콘서트 2024년 12월 7일(화) 17:30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대공연장 2층 주최 : 음악동인 예우회 주관 : HI 엔터테인먼트, TS Music 후원 :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사)대한가수협회 협찬 : ㈜하림통산 하현철, K-스타푸드타운 김진덕 회장, 이메가인터내쇼날수소물, 캘리포니아주립대4기 후롬더스킨 신영훈, 삼미모피, 전 라오스대사 이재숙, 족발 신선생, 경마조교협 홍대유, 인소니주얼리 조현숙, 경희현기로운한의원 김현기원장, 하춘하보리밥,(사)자연보호중앙회, 환경감시단 최경석, 문의 : 윤신호(010-5269-4106) 스태프 총괄기획 :장미화(음악동인 예우회 회장 3대~4대) 연출 : 윤신호 (그룹, 검은나비의 리더 / TS Music 대표 / BlackRose Recording Studio 대표/ (사)한국대중문화예술기념사업회 예술총감독 / (사)전국자연보호 중앙회 예술총감독) 감독 : 김형일 (HI 엔터테인먼트 대표) 2000년 ~ 2006년 :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진행 총감독 2002년 : 문화부장관 기장수여 받음( 2002년 월드컵 전야제관련 ) 2006년 : 이시카와사유리 내한공연 제작, 진행 외 국내.외 공연 200회 이상 기획, 제작. 현 (사)청소년운동연합 문화사업국장 2017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페스티발 총감독, 현 HI Entertaiment 대표이사 보조연출 : 이성연(God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 조연출 /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연출. 임재범 데뷔 20주년 기념 전국투어 콘서트 '飛上' 연출. 러브이즈콘서트 기획 및 연출 / 현 (주)SBL COM 재직 중) 음향: 정용운 EAW 한국 테크닉 엔지니어 부산 국제락페스티벌 3회, 4회 음향감독 2002년 : 대종상 시상식 음향감독 2006년 : 펜타포트 rock festival (서브무대) 음향감독 2007년 : 그린민트 페스티발 음향감독 2004년~2008년, 2017~2018년 : 자라섬 째즈페스티벌 음향감독 빠뜨리샤 카스, 캐니 가렛 내한공연 등 500여 회 공연 음향감독 2017~1018 자라섬 Jazz페스티벌 음향감독 진행: 김혜정, 조미리 포토그래퍼 : 김형준 홍보 : 스티브 김(김학우. 예우회 홍보 담당관)◎
-
- 문화
- 음악
-
[가요계 화제] 예우회, 12월7일 강남구민회관서 ‘2024 오늘, 전설을 만나다’ 공연
-
-
[로컬 뉴스] 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 [로컬 뉴스]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할리우드, 캘리포니아(김정태 기자)-레이 찰스와 프랭크 시나트라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음반에 세련된 세련미를 더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음악계의 거장 퀸시 존스가 사망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밝혔습니다. 그는 91세였다. 故 존스는 일요일 밤(현지시각 3일) 캘리포니아주 벨 에어에 있는 자택에서 자녀, 형제 자매 및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그의 홍보 담당자가 CNN에 성명을 통해 전했다. 존스 가족은 성명에서 "오늘 밤, 가슴이 아프지만 충만하게 아버지이자 형제인 퀸시 존스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라며 가족에게는 엄청난 상실이지만, 그가 살았던 위대한 삶을 기념하고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다. 그의 존재의 본질이었던 사랑과 기쁨이 그가 만든 모든 것을 통해 세상과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위안을 얻고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음악과 무한한 사랑을 통해 퀸시 존스의 심장은 영원히 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은 그의 커리어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그의 업적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만큼 놀라운 경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최고를 가지고 놀았고 최고를 배출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를 사랑했어요."라고 엘튼 존은 인스타그램에 썼습니다. "@ejaf 오스카 시청 파티에 함께했습니다. 항상 이 중요한 기금 모금 행사의 충성스러운 후원자입니다." 캐나다 가수 더 위켄드는 "그 이유"라는 캡션과 함께 존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윌 스미스는 인스타그램에 따뜻한 글을 올리며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 총괄 프로듀서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스카상 수상자는 "퀸시 존스는 멘토, 아버지, 친구의 진정한 정의이다. 그는 내 자신의 가장 큰 부분을 향해 나를 가리켰다. 그는 나를 옹호했다. 그는 나를 키웠다. 그는 나를 격려했다. 그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 저를 확인했다. 그는 나의 날개가 날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질 때까지 나를 사용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컴튼 출신이자 힙합의 전설인 닥터 드레는 존스가 프로듀서가 된 이유라고 밝혔다. Dre는 인스타그램에 "제가 엔지니어링을 시작했을 때 그의 기록은 제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다“며 "그와 함께 어울린 모든 시간은 귀중했고, 그가 저에게 해준 조언과 우리가 나눈 대화가 제 인생과 커리어에 도움이 된 것처럼 그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비교할 수 없는 퀸시 존스에게서 영원히 영감을 받았다"고 썼다. 래퍼이자 배우인 아이스 티는 "오늘 퀸시 존스를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에 잠에서 깼다"며 "천재는 느슨하게 사용되었지만 거의 자격이 없는 표현이다. 요점을 비우면 퀸시는 남자였다. 저는 퀸시와 함께 첫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매일 그의 지혜와 함께 살고 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던 그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번 일은 저를 강타했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동료 프로듀서인 나일 로저스는 X에서 "Rest in Power"를 썼다. R&B 가수 빅토리아 모네트는 존스가 "가장 큰 영감" 중 하나라는 글을 X에 올렸다 "퀸시, 정말 사랑해요!!! 당신의 유산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며 "하늘은 당신과 함께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했다. LL Cool J는 "아버지와 모범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당시 존스를 "아버지이자 모범"이라고 불렀다 "멘토. 롤모델. 킹. ????당신은 저에게 기회를 주었고 지혜를 공유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음악은 음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온 가족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가장 달콤한 음악 속에서 쉬십시오.“◎
-
- 문화
- 음악
-
[로컬 뉴스] 할리우드, 음악계 거장 퀸시 존스 사망에 일제히 애도
-
-
'2024 THE KING', 락·메탈과 패션이 함께하는 페스티벌, 10월26일 홍대 ‘롤링홀’서 개최
- '2024 THE KING', 락·메탈과 패션이 함께하는 페스티벌, 10월26일 홍대 ‘롤링홀’서 개최 임연희 대표, “국내 최고 밴드와 관중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락·메탈의 진수 선보일 것” 한국 록·메탈 뮤직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밴드들이 총출동하는 『THE KING-2024 ROCK METAL BANDS & MODEL FESTA(이하 KRMBMF로 표기)』가 오는 10월 26일(토) 오후 6시, 홍대 '롤링홀'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이 8번 째인 KRMBMF는 미 8군 무대 출신으로 10월에 EP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는 다국적 밴드로 구성된 ‘프리 씽커(Freethinker)’의 리더이자 보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록희림(본명 임연희)이 총기획·연출을 맡아 ㈜아트앤컬트코리아, 임연희아트아카데미, 한국예술문화진흥원의 주최·주관으로 진행된다. KRMBMF는 락과 메탈이 빚어내는 강결한 음악과 함께 국내외 유명 패션 모델들(박효미, 김미리내, 이도연, 박두희, 이미래, 례라, 아나스타샤, 크리스텔, 안나, 엘리자베타, 한나)이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2024년 한국의 가을밤을 단풍빛보다 아름답게 수놓는다. 공연의 헤드라이너는 30년간 꾸준히 국내외 무대를 오가며 독보적인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고 있는 한국 스래쉬 메탈의 대표 주자 ‘마하트마(MAHATMA-기타/보컬 윤종갑, 베이스 정영상, 드럼 이준선, 기타 서동휘)’가 장식한다. 아울러 그루브 메탈의 진수를 보여줄 ‘해머링(HAMMERING-기타 염명섭, 베이스 유(류)진아, 드럼 김용훈, 보컬 유비, 기타2 Hunter)’, 정통 LA 메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크라티아(CRATIA-기타 이준일, 베이스 김동완, 보컬 김영준, 드럼 오일정)’, 폭발적인 에너지를 자랑하는 파워 메탈 밴드 ‘몬스터리그(MONSTER LEAGUE-보컬 조성아, 기타 김태인, 드럼 권새호, 기타 지원석))’, 모터헤드 스타일의 하드락을 구사하는 ‘와비킹(WABI KING-기타·보컬 강완엽, 베이스 오의환, 드럼 이준호)’이 출연한다. 아울러 젊은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다국적 뮤지션을 구성원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프로젝트 밴드 ‘프리씽커(FREETHINKER-리더·보컬 록희림(임연희), 기타 Anna, 베이스 Arezoo, 드럼 Gin)’가 열정이 넘치는 무대를 장식한다. KRMBMF 주최측 임연희 대표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자유’이다. 락과 메탈의 자유로운 정신을 표방한 이번 페스티벌은 음악, 패션, 그리고 관객이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펼쳐질 것”이라며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대표는 “이번 페스티벌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관객들에게는 기쁨을, 후배들에게는 설 무대를 제공하고, 소외계층에게는 희망을 전달하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나눔 활동과 재능 기부를 통해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그녀는 “우리의 락/메탈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더욱 성장하고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국내 최고의 연주 실력을 갖춘 밴드들과 열정 가득한 관중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에서 락·메탈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아시아 문화예술의 미래를 이끌어갈 최고의 헤비메탈 락밴드들과 함께 ROCK의 진수에 빠지게 될것이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 문화
- 음악
-
'2024 THE KING', 락·메탈과 패션이 함께하는 페스티벌, 10월26일 홍대 ‘롤링홀’서 개최
-
-
美컨트리 음악의 전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별세…향년 88세
- 美컨트리 음악의 전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별세…향년 88세 싱어송라이터, 배우 등으로 명성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김학우 기자)-능숙한 문체와 거친 카리스마를 지닌 영국 옥스퍼드大 로즈 장학생(Rhodes scholar) 출신으로 컨트리 음악 슈퍼스타이자 A급 할리우드 배우로 성장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사망했다. 크리스토퍼슨의 가족 대변인 에비 맥팔랜드는 28일(현지시각) 이메일을 통해 “크리스토퍼슨이 하와이 마우이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향년 88세. 맥팔랜드는 “크리스토퍼슨이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사망했다”고 전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텍사스 브라운스빌 출신인 크리스토퍼슨은 "Sunday Mornin’ Comin’ Down선데이 모닝 커밍 다운",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헬프 미 메이크 잇 더 나이트", "For the Good Times포 더 굿 타임즈", "Me and Bobby McGee나와 바비 맥기"와 같은 컨트리 앤 롤 기준과 록 앤 롤 기준을 작곡했다. 크리스토퍼슨은 가수이기도 했지만, 레이 프라이스 크라우닝 "For the Good Times포 더 굿 타임즈"나 재니스 조플린이 "“Me and Bobby McGee.나와 바비 맥기"를 외치든 그의 많은 노래는 다른 사람들이 부른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74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에서 엘렌 버스틴의 반대편에 출연했고, 1976년 영화 'A Star Is Born스타 이즈 본'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반대편에 출연했으며, 1998년 마블 영화 'Blade블레이드'에서는 웨슬리 스나이프스와 함께 연기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를 기억 속에서 읊을 수 있었던 크리스토퍼슨은 외로움과 부드러운 로맨스에 대한 복잡한 포크 음악 가사를 대중적인 컨트리 음악에 접목시켰다. 긴 머리와 종 아래 슬랙스, 밥 딜런의 영향을 받은 반문화적 노래로 그는 윌리 넬슨, 존 프라인, 톰 T. 홀과 같은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컨트리 작곡가들을 대표했다. 넬슨은 2009년 크리스토퍼슨의 BMI 시상식에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보다 더 좋은 작곡가는 없다“며 "그가 작곡하는 모든 것은 표준이며 우리 모두는 그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토퍼슨은 2021년 공연과 녹음에서 은퇴했으며, 2023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보울에서 열린 넬슨의 90번째 생일 축하 행사에서 캐시의 딸 로잔과 함께 공연하는 등 가끔씩만 무대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크리스토퍼슨의 히트곡이자 그의 작품을 훌륭하게 해석한 넬슨의 오랜 라이브 필수곡인 'Loving Her Was Easy (Than Anothing I'll Ever Do Again)'를 불렀다. 넬슨과 크리스토퍼슨은 조니 캐시, 웨일론 제닝스(Johnny Cash and Waylon Jennings)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컨트리 슈퍼그룹 '더 하이웨이맨(The Highwaymen)'을 결성했다. 크리스토퍼슨은 대학 시절 골든 글러브 복서이자 럭비 스타, 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에서 영어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 육군 대위로 헬리콥터를 조종했지만, 내슈빌에서 작곡을 하기 위해 뉴욕 웨스트 포인트에 있는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가르치기로 한 약속을 거절했다. 업계에 진출하기 위해 1966년 딜런은 컬럼비아 레코드의 뮤직 로우 스튜디오에서 파트타임 관리자로 일하며 중요한 "블론드 온 블론드" 더블 앨범의 트랙을 녹음했다. 때때로 크리스토퍼슨의 전설은 실제보다 더 컸다. 조니 캐시는 크리스토퍼슨이 헬리콥터를 캐시의 잔디밭에 착륙시켜 한 손에 맥주를 들고 "Sunday Mornin' Comin' Down" 테이프를 건네준 이야기를 대부분 과장해서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수년 동안 인터뷰에서 크리스토퍼슨은 캐시에게 존경심을 표하며, 헬리콥터를 캐시의 집에 착륙시켰지만, 당시 맨 인 블랙은 집에 없었고, 데모 테이프는 아무도 실제로 자르지 않은 노래였고, 맥주를 들고 헬리콥터를 조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가장 많이 녹음된 노래 중 하나인 "Me and Bobby McGee"는 Monument Records 설립자 프레드 포스터의 추천을 받아 썼다. 포스터는 머릿속에 "Me and Bobby McKee"라는 노래 제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건물에 있는 여성 비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크리스토퍼슨은 잡지 "Performing Songwriter"와의 인터뷰에서 프레데리코 펠리니 영화 "La Strada"를 본 후 함께 길을 가던 남녀에 대한 가사를 쓰게 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6년 A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캐시가 없었다면 커리어를 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슨은 "아직 군에 있을 때 그랜드 올 오프리의 무대 뒤에서 그와 악수한 순간이 내가 돌아오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며 "정말 짜릿했다. 그는 내 노래를 자르기 전에 나를 보호했다. 그는 올해의 레코드로 선정된 내 첫 번째 음반을 녹음했다. 그는 나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고 회상했다. 그의 가장 많이 녹음된 노래 중 하나인 "Me and Bobby McGee"는 Monument Records 설립자 프레드 포스터의 추천을 바탕으로 썼다. 포스터는 머릿속에 "Me and Bobby McKee"라는 노래 제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건물에 있는 여성 비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크리스토퍼슨은 잡지 "Performing Songwriter"와의 인터뷰에서 프레데리코 펠리니 영화 "La Strada"를 본 후 함께 길을 가는 남여에 대한 가사를 쓰는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슨과 가까운 사이였던 조플린은 바비 맥기를 남자로 바꾸기 위해 가사를 바꾸었고, 그녀가 1970년 약물 과용으로 사망하기 며칠 전에 그녀의 버전을 줄였다. 이 음반은 조플린의 사후 1위 히트곡이 되었다. 크리스토퍼슨이 녹음한 히트곡으로는 "Watch Closely Now," "Desperados Waiting for a Train," "A Song I'd Like to Sing," "Jesus Was a Capricorn"이 있다. 1973년 그는 동료 작곡가인 리타 쿨리지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성공적인 듀엣 경력을 쌓았으며,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들은 1980년에 이혼했다. 넬슨, 캐시, 제닝스(Nelson, Cash and Jennings)와 함께 하이웨이맨(Highwaymen)을 결성한 것은 그의 공연자로서의 경력에서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크리스토퍼슨은 2005년 A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 모두의 팬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라며 "나는 아직 군에 있을 때 그들을 존경했다. 내슈빌에 갔을 때 그들은 음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제게 큰 영웅과 같았다. 그들에게 녹음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친구가 되어 나란히 작업하는 것은 약간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러시모어 산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이 그룹은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단 세 장의 앨범만 발표했다. 제닝스는 2002년에 사망했고, 캐시는 1년 후에 사망했다. 크리스토퍼슨은 2005년에 조지 존스나 행크 윌리엄스 주니어와 같은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그룹을 재편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크리스토퍼슨은 ”예전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슨은 2005년에 "지금 돌이켜보면, 윌리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게 들린다.(“When I look back now — I know I hear Willie say it was the best time of his life)”며 "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 지 더 잘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일이었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았을 텐데.(For me, I wish I was more aware how short of a time it would be. It was several years, but it was still like the blink of an eye. I wish I would have cherished each moment.)" 네 명 중 넬슨만이 현재 생존해 있다. 크리스토퍼슨의 날카로운 정치적 가사는 특히 1980년대 후반에 그의 인기에 타격을 주기도 니다. 1989년 발매한 앨범 '제3세계 전사'는 중앙 아메리카와 미국의 정책이 가져온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비평가들과 팬들은 이 노골적인 정치적 노래에 열광하지 않았다. 공군 장군의 아들이었던 그는 1960년대에 육군에 입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5년 AP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의 이름으로 아기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 중 하나에 대해 불평하는 한 여성을 기억한다”며 "그리고 저는 '음, 뭐가 당신을 화나게 했나요? 내가 그렇게 말한 사실이나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그들이 내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했기 때문에 나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2006년 AP 인터뷰에서 "나는 대학 때 ROTC에 있었고, 나의 가족은 내가 군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며 "내 배경과 내가 자란 세대에서는 국가를 존중하고 섬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나중에 여러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 중 일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을 때 특히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할리우드가 그의 음악 경력을 구했을 수도 있다. 그는 풀 밴드와 함께 투어를 할 여유가 없었을 때에도 영화와 텔레비전 출연을 통해 여전히 노출되었다. 크리스토퍼슨의 첫 번째 역할은 1971년 데니스 호퍼 감독의 "The Last Movie"였다. 그는 서부극을 좋아했고, 그의 쉰 목소리로 매력적이고 냉정한 주연을 연기했다. 그는 "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앨리스는 더 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에서 버스틴의 거칠고 잘생긴 연인 역을 맡았고, "A Star Is Born스타 이즈 본"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험난한 관계를 맺은 비극적인 록 스타 역을 맡았다. 이 역할은 2018년 리메이크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재현했다. 그는 샘 페킨파 감독의 1973년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에서 젊은 무법자 역을 맡았고, 1978년 "Convoy콘보이"에서 같은 감독의 트럭 운전사 역을 맡았고, 존 세일즈 감독의 1996년 "Lone Star론 스타"에서 부패한 보안관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또한 1980년 서부극 'Heaven’s Gate천국의 문'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이 작품은 제작비를 수천만 달러나 초과해 헐리우드에서 가장 큰 흥행 실패작 중 하나였다. 그리고 슈퍼히어로 영화에 드물게 등장한 그는 "Blade블레이드"에서 스나이프스의 뱀파이어 사냥꾼의 멘토를 연기했다. 그는 2006년 AP 인터뷰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했을 때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크리스토퍼슨은 "우연히도 제 첫 프로 공연은 로스앤젤레스의 트루바두르에서 린다 론드스타트의 오프닝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로버트 힐번(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음악 평론가)이 환상적인 리뷰를 썼고 콘서트는 일주일 동안 열렸다”며 "영화계 사람들이 많이 왔고, 나는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영화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공연 경험도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
- 문화
- 음악
-
美컨트리 음악의 전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별세…향년 88세
-
-
해리스, 큰절해야겠네...…‘이 여자’ 지지선언에 꿈쩍않던 경합주까지 들썩
- 해리스, 큰절해야겠네...…‘이 여자’ 지지선언에 꿈쩍않던 경합주까지 들썩 현존 최고 팝스타 스위프트 해리스 지지선언 하루도 안돼 투표정보 홈피 34만명 유입 출신지역 펜실베이니아 표심도 들썩일 듯 머스크는 ‘성희롱성’ 공격에 구설 휘말려 ‘현존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 벌써부터 미국 대선판이 들썩이고 있다. 스위프트의 지지선언이 있은지 하루도 안돼 미국 유권자 등록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에 34만명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이 유입되는 한편, 이번 대선의 핵심지역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주 표심도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NYT)는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의 대선 TV토론 직후 열린 지지자 행사에서 스위프트의 지지사실을 듣게 됐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지지자들과 막 인사를 나누려던 참에 보좌관들이 그를 옆으로 끌어당겨 스위프트의 지지사실을 전달한 것이다. 그 정도로 해리스 캠프에서는 스위프트의 지지선언이 단순한 유명인의 지지선언이라 여기지 않은 셈이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었던 시절부터 선거캠프에서는 스위프트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스위프트가 깜짝 방문할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희망사항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토론 직후 스위프트가 ‘아이가 없는 캣 레이디(cat lady)’라는 별칭으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에 나서자 미국 대선판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미국 매체 더힐은 스위프트의 지지선언 이후 미국 유권자 정보사이트(vote.gov) 방문자 수가 이날 2시 오후 기준 33만8000명에 육박했다고 미국 조달청(GSA)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위프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과 함께 해당 웹사이트의 주소를 추가했는데, 이 링크를 타고 들어온 방문자 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민주당원들은 고무된 분위기다. 스위프트는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와이오미싱에서 자랐고, 음악적인 성장을 위해 ‘컨트리 음악의 본산’ 테네시주 내슈빌로 가족들과 함께 이사했다.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스위프트의 발언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며 “펜실베이니아의 스위프트가 지지하는 것은 엄청난 지지”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스위프트를 공격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는 스위프트의 지지선언 직후 자신의 SNS에 “테일러 네가 이겼다. 너에게 아이를 주고, 네 고양이를 지켜줄게”라고 적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것이 성희롱성 발언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스위프트)는 항상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 같다”며 “아마도 시장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스위프트 효과’를 차단하고 나섰다.
-
- 문화
- 음악
-
해리스, 큰절해야겠네...…‘이 여자’ 지지선언에 꿈쩍않던 경합주까지 들썩
-
-
스위프트 "난 아이 없는 캣레이디, 해리스 지지" TV토론 직후 선언
- 스위프트 "난 아이 없는 캣레이디, 해리스 지지" TV토론 직후 선언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선언했다. 스위프트는 10일(현지시간)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토론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오늘 밤 토론을 시청했다”며 “2024년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에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해리스에게 투표하는 이유는 그가 (시민들의) 권리와 명분을 위해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해리스에 대해 “안정적이고 재능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그가 혼란이 아닌 차분함으로 이 나라를 이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성소수자 인권, 시험관 아기, 여성 생식권을 옹호했다”고 썼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 국립 헌법센터에서 ABC 방송 주관으로 두 대선후보 간 첫 TV 토론을 진행했다. 스위프트는 이날 해리스 지지선언과 함께 자신의 세마리 고양이 중 한 마리인 벤자민 버튼을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테일러 스위프트, 자식 없는 캣 레이디(Childless Cat Lady)”라고 적었다. 이는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을 비하한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밴스 상원의원을 저격한 것으로 해석됐다. 밴스는 지난 2021년 7월 폭스뉴스 출연 당시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몇몇 민주당 인사들을 "자기 삶에서 비참한, 자식이 없는 고양이 여성들"(childless cat ladies who are miserable at their own lives)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이 자녀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캣 레이디'는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만 키우는 중년 독신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스위프트는 이날 적극적인 투표도 독려했다. 그는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라며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사전 투표를 하기가 더 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권자 등록 장소, 조기 투표 날짜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링크도 첨부했다. 또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자신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가짜뉴스가 유포된 것에 대해서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출마를 거짓으로 지지하는 ‘나’의 AI(인공지능)가 그의 사이트에 게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AI에 대한 두려움과 잘못된 정보 확산의 위험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1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스위프트의 사진을 올리며 “수락한다(I accept!)”고 썼다. 이 사진에서 스위프트는 미국을 의인화한 캐릭터 ‘엉클 샘(Uncle Sam)’으로 분장한 채 ‘테일러는 여러분이 트럼프에게 투표하길 바란다’는 문구를 들고 있다. 이는 AI로 만들어진 가짜 사진이었다. 스위프트의 이날 선언까지 그가 이번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지에 대한 관심은 컸다. ‘스위프티(Swifties)’라는 대형 팬덤을 거느린 그의 지지는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53%)은 스위프트의 팬이었다. 또 지난해 9월 팬들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하루 만에 신규 등록한 유권자가 3만5000명 늘기도 했다. 스위프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2억8000만명에 이른다. 스위프트는 지난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다.
-
- 문화
- 음악
-
스위프트 "난 아이 없는 캣레이디, 해리스 지지" TV토론 직후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