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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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윤동주 떠난 지 80년…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애도하는 日교토 모교
    [단독] 윤동주 떠난 지 80년…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애도하는 日교토 모교 내년 2월 16일 사망 80주기에 학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1917~1945)가 순국 80주기인 내년 2월 16일, 재학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1875년 설립된 이 대학에서 사후 박사 학위를 받기는 처음으로,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대신 받을 예정이다. 도시샤대는 지난 12일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이 주재하는 학장단 회의를 열고 ‘시인 윤동주에 대한 명예 문화 박사 학위 증정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도시샤대에서 공부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당초 도시샤대의 실무진 검토 과정에서는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학위 증정’이란 예외를 인정하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 기구인 학장단 회의에선 단과대 학장과 대학원 원장 열여섯 명 모두가 찬성했다. 최용훈 도시샤대 상대 학장은 “도시샤대는 자유로운 학풍의 150년 역사를 가진 대학”이라며 “당시 재학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형무소로 끌려가서 옥사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학내 구성원들이 여전히 짐으로 떠안고 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윤동주 80주기 기념행사도 대대적으로 치를 예정이다. 윤동주는 스물다섯 살이던 1942년 10월 도시샤대 영문과에 편입했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를 졸업한 뒤 그해 4월 도쿄에 있는 릿쿄대 영문과에 진학했다가 6개월 만에 학교를 옮겼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다니던 단짝 송몽규를 따라 교토에 간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종사촌 간으로 북간도의 민족 학교인 명동학교에서 연희전문학교까지 함께한 사이다. 일본 유학도 둘이서 같이 결심했다. 송몽규는 열아홉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문학도였고, 10대 때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도시샤대는 윤동주가 흠모한 정지용 시인의 모교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은 윤동주에게 자괴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유학용 졸업 증명서를 받으려면 일본식 이름(히라누마 도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을 앞두고 쓴 시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라는 글로 그런 감정을 드러냈다. 1943년 7월 윤동주는 송몽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실제로 윤동주와 송몽규는 만날 때마다 문학과 조국의 독립을 이야기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의 활동을 ‘재(在)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1944년 3월 교토지방재판소는 윤동주에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사회주의 운동 확산을 막으려고 제정한 법이다. 후일 공개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재판정에서 윤동주가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하려 한다”고 발언한 기록이 나왔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로 순국(殉國)했다. 역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같은 형무소에 갇혔던 송몽규도 한 달 뒤 옥사했다. 송몽규의 증언 등을 통해 두 사람이 형무소에서 정체불명 주사를 맞았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에 생체 실험 때문에 희생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동주는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가족이 수습한 윤동주의 유해는 1945년 3월 북간도 용정에 안장됐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에는 일제강점기 출간하지 않았던 유작 등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시집 서문(序文) 대신에 쓴 것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다. 1968년 11월에는 모교 연세대 교정에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그때부터 27년이 지난 1995년엔 윤동주의 또 다른 모교 도시샤대에도 서시 시비가 만들어졌다. 교문에서 50m쯤 걸어 들어가 예배당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자필 원고 필체로 한국에서 가져온 돌에 새긴 시비를 볼 수 있다. 도시샤대는 매년 시비 앞에서 헌화식을 연다. 시비는 한국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에는 진달래와 무궁화가 심겼다. ☞교토 도시샤 대학 일본 교토시에 있는 대학으로 학생 수는 약 3만명이다. 1875년 설립된 ‘도시샤 영어학교’가 전신이다. 미국 애머스트대를 졸업한 니지마 조가 민간의 기부와 후원으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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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4
  • "한강의 글은 하양과 빨강, 두 색의 만남"…노벨상 시상식 스웨덴서 열려
    "한강의 글은 하양과 빨강, 두 색의 만남"…노벨상 시상식 스웨덴서 열려 한림원 위원이 직접 한강 소개…"하양은 죽음과 슬픔의 상징 빨강은 삶이자 깊게 베인 상처" 소설가 한강(54)이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다. 10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파란 카펫이 깔린 무대에 반원 모양으로 의자 95개가 놓였다. 객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맨 앞에 스웨덴 왕족이 앉았다. 왼쪽 앞줄 빨간 의자에는 노벨상 수상자 11명이 일렬로 앉았다. 이 빨간 의자는 평소 스웨덴 왕족들이 콘서트홀을 찾으면 사용하는 ‘왕족용 발코니석 의자’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스웨덴 왕가의 특별 대우다. 한강은 왼쪽에서부터 여덟째 자리에 앉았다. 왼쪽부터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경제학상 수상자 순으로 앉았다. 뒤로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카롤린스카 연구소·스웨덴 한림원 등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총 1560명이 참석했다. 무대 한가운데는 알프레드 노벨의 동상이 자리했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노벨은 유언에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서로 수상 분야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시상도 ‘노벨 순서’를 따르는 게 관례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스웨덴 국왕이 한강에게 ‘노벨 메달’과 증서(diploma)를 수여하기에 앞서,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로 한강을 소개했다. 6~7분가량 이어진 이 소개 연설에서 맛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난다.”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10일 오후 4시 40분쯤(현지 시각)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을 소개했다. 시상식에서는 각 분야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가 수상자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시상식 이후 스톡홀름 시청사(Stadhus)로 옮겨가 연회를 하면서 각 분야 수상자의 ‘특별 감사 연설’이 이어진다. 약 1300명이 자리한 가운데 네 시간 동안 만찬과 함께 이어지는 연회에서 중간중간 오늘의 주인공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한림원 위원 엘렌 맛손의 한강 소개 전문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납니다.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에 내리는 눈이자, 서술자와 세계를 구분 짓는 방어막 같은 커튼입니다. 동시에 슬픔, 그리고 죽음입니다. 빨강은 삶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고통, 피,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럽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학살이 끝나고 켜켜이 쌓인 시체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짙어지며, 호소하고, 질문합니다. 글이 답을 하지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을요. ‘우리는 죽은 자, 강탈된 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흰과 빨강은 한강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雪]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사이 아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떠다니는 것들이 만나는 장소를 만듭니다. 소설은 눈보라 속에서 전개되며, 기억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서술적 자아는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갑니다.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지식을 배우면서요. 왜냐하면 기억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울지라도, 결국 지식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강렬한 기억에서, 한 친구는 물리적인 몸이 머나먼 곳의 병실에 묶여 있음에도, 서가에서 자료 담긴 상자를 꺼내 한 문서를 찾아내고, 역사의 모자이크에 조각을 더합니다. 꿈은 현실로 넘쳐흐르고, 과거는 현재가 됩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러한 전환은 한강의 소설에서 반복됩니다. 인물들은 방해받지 않고 돌아다니고, 그들의 더듬이는 신호를 포착하고 해석하기 위해 양방향을 향합니다. 그들이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무너지더라도요. 마음의 평화를 대가로 치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필요한 힘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망각은 절대 목표일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살해당한 남자아이의 영혼이 묻습니다. 그를 삶에 묶어두었던 얼굴의 특징들이 흐려지고 사라질 때예요. 생존자의 질문은 다릅니다. ‘나를 고통으로만 이끄는 이 몸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문으로 인해 단지 피 흘리는 물건이 돼버린 이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몸이 포기한다 할지라도, 영혼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영혼이 지칠 때, 몸은 계속해서 걷습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는 완고한 저항이 자리하고, 말보다 강한 고집이, 기억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망각은 목표가 아니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강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상처 입고, 부서질 듯하고, 어떤 면에서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발 내딛거나, 또 다른 질문을 던지거나, 또 다른 기록을 요구하거나, 혹은 또 다른 생존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딱 필요한 만큼의 올바른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빛이 희미해지고, 죽은 자의 그림자가 벽에 계속 어른거립니다. 아무것도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한강에게,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셔서 국왕에게 상을 받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국 기자들과의 회견도 예정 10일 시상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한강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6일 세계 각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8일 노벨 콘서트 등 노벨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만으로도 일정이 빼곡하다. 지난 8일에는 스웨덴은 물론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과 점심 자리를 가졌다. 같은 날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 생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찾았다. 한강은 가이드를 받아 아파트를 둘러봤고, 린드그렌의 증손자인 요한 팔름베리를 만났다. 스톡홀름에 있는 린드그렌의 아파트는 그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하며 ‘삐삐’ 시리즈를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을 썼던 곳이다. 2015년부터 관람객들에게 공개됐으며, 린드그렌이 살았을 때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다. 한강은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1973)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내 어린 시절에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책을 인간이나 삶, 죽음에 관한 나의 질문들과 결부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상식 이후 11일에는 한강의 작품을 출판한 스웨덴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 건물에서 한국 기자단과 기자회견도 예정돼 있다. 12일에는 왕립 극장에서 진행하는 대담 및 낭독 행사에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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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1
  • 한강, 한국인 첫 '블루카펫' 밟았다...스웨덴 국왕도 일어나 경의
    한강, 한국인 첫 '블루카펫' 밟았다...스웨덴 국왕도 일어나 경의 한국 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다. 현지 시각 오후 4시부터 노벨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입장하자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해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수상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다. 한강은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네 번째로 국왕에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노벨은 유언에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서로 수상 분야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시상도 ‘노벨 순서’를 따르는 게 관례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노벨상 시상식이 콘서트홀에서 열리기 시작한 1926년 이래 한국인이 이곳에 깔린 ‘블루카펫’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고 있어 2000년 수상자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슬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은 이날 ‘2024 노벨상 시상식’ 문학 부문 시상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맛손은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삶,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노벨상 시상식은 관례에 따라 각 분야 선정기관 대표가 공식 시상 연설을 통해 그해 수상자를 무대 위로 호명한다. 한강은 맛손의 호명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가 스웨덴 국왕에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강이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는 순간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일어나 손뼉을 치며 축하와 경의를 표했다. 한강은 시상식에서는 소감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수상자 강연이 있었고, 시상식 직후 오후 7시(한국시각 11일 오전 3시)부터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진행되는 만찬에서 3분 내외의 소감을 밝히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선정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꼽았다. 한편 한강은 지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강한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인 질병)를 지닌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는 이야기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어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란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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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1
  • 한강 "하루 2시간 꼭 한다"…역마살 그녀의 30년 루틴
    한강 "하루 2시간 꼭 한다"…역마살 그녀의 30년 루틴 “글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지난 5월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걸어가고 있다’는 건 비유적 표현이지만, 실제 걷기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매일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 문장들의 밀도로 다시 충전되려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 시간씩 한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 한강, 『디 에센셜: 한강』, p.346 소설 쓸 때 ‘읽기’와 ‘걷기’를 반복하는 게 그의 루틴이랍니다. 작품을 출간하고 나면 “소설을 쓰던 때보다 오히려 책을 덜 읽는다. 걷기도, 스트레칭도, 근력 운동도 덜 한다”고 합니다. 왜 ‘걷기’와 ‘읽기’일까요? 걷기는 ‘세상의 길’을 따라가는 여행이고, 읽기는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읽는 책이 ‘작은 텍스트’라면, 걷는 세상은 ‘큰 텍스트’입니다. 걷기도, 읽기도 할 땐 힘들지만 하고 나면 ‘충전’이 됩니다. 걷기는 다리와 가슴을 튼튼히 해주고, 읽기는 머리와 마음을 채워 주죠. 한강 작가처럼 규칙적으로 한다면, 우리네 고단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돼줍니다. 그는 ‘쓰기’만이 자신의 “유일한 집”이라고 말합니다. “사주에 역마가 들어서인지 무던히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는데, 오직 쓰기만을 떠나지 않고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집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 한강, 앞의 책, p.359 실제로 작가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작가가 된 뒤에도 여러 나라를 옮겨다녔습니다. 첫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2009)은 국제창작 프로그램 참가차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얘기가 나오는 소설 『흰』(2018)은 실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집필했습니다. 글 머리에 언급했던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 수상 소감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그는 자신은 ‘걷는 중’이고 ‘계속 걸어가겠다’고 강조합니다. “글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먼 길을 우회하고 때론 길을 잃고 시작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걸어 나아갑니다. 혼자서 걸어가는 그 과정이 고립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언어로 작업하는 사람이고 언어는 결국 우리를 연결해 주는 실이니까요. 아무리 내면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30년 동안 제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때론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읽는 사람들, 책은 그렇다고 치고 걸으면 뭐가 좋을까요. 걷기는 다리와 심장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운동 효과만 놓고 보면 걷기보다 더 좋은 운동도 많습니다. 특히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걷기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럼 왜 걸을까요? 매주 수요일 '더중앙플러스'에서 독자 여러분과 '걷기'와 '읽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걷고,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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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30
  • 한강 작품 영문 번역한 英스미스씨…“광주와 가자의 아픔 연결한 한강 독자들에 감명”
    한강 작품 영문 번역한 英스미스씨…“광주와 가자의 아픔 연결한 한강 독자들에 감명” “부커상 수상후 오역 논란-찬사 갈려 그런 과정서 번역가 된 이유 알게 돼 ‘소년이…’ 번역 인세 가자지구 기부” “전 세계 수많은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강 작가의 놀라운 작품이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 부커상 수상 등을 이끌어 낸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7·사진)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18일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은 영문 계간지 ‘KLN(Korean Literature Now)’에 쓴 스미스의 기고문을 공개했다. 스미스는 2016년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영어로 번역해 한강 문학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 데 공헌한 번역가로 평가받는다. 기고문에서 그는 부커상 수상 이후의 오역 논란과 과한 찬사 등 상반된 반응이 쏟아진 데 대한 심경부터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비판은 가혹했고 개인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인종 불평등이 심한 문학계에서 백인 번역가란 점이 원작의 문학성을 깎아내리는 정도의 과대평가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왜 번역가가 됐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한강 작품의 번역은 텍스트에 날카롭게 떠오는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고문에서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의 문학적 의미에 집중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가 ‘극단적이고 기괴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인물의 강한 주체성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구식 남성들’은 못마땅해할 방식으로 독자들을 개인적 독서로 초대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는 “(한강) 작가의 더 발전된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임에도 ‘채식주의자’에 가려진 것 같아 아쉬웠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묻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표현된다”며 “광주와 가자를 연결한 수많은 독자에게 깊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년이 온다’의 번역 인세를 가자지구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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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1
  • 한승원 축사 싣고 인쇄도 했는데… '문학사상' 복간 무기한 연기
    한승원 축사 싣고 인쇄도 했는데… '문학사상' 복간 무기한 연기 부영이 인수한 '52년 전통 문예지'…소량 찍어 도서번호 받았지만 보류 반세기 넘게 한국 문학을 지탱해 온 전통이 힘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폐간 기로에 놓였던 52년 전통의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이 지난 7월 부영그룹 인수로 ‘심폐 소생’을 기대했지만, 복간이 다시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취재 결과, 고승철 문학사상 사장과 편집부는 지난달 모두 사임했고 현재 복간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부영 측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검토 단계”라고 했다. ‘문학사상’은 지난달 1일 재창간호(619호)를 소량(20부) 찍어 ISBN(국제표준도서번호)까지 발급받았다. 본지가 입수한 재창간호를 보면 황주리 화백이 표지화를 그렸고 ‘영원한 청년 작가’라는 제목으로 소설가 황석영 인터뷰를 실었다. 소설가 한승원의 축사를 비롯해 권지예·김별아·김숨·이경란의 단편소설, 복거일의 장편소설, 시인 강신애·강은교의 신작 시도 담았다. 본문만 472쪽에 달한다. 이에 대해 부영 관계자는 “시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문학사상’은 1972년 창간 이래 올해 4월호까지 통권 618호를 발행했다. 경영난으로 지난 5월부터 무기한 휴간 상황에 처했다. 이런 가운데 이중근 부영 회장이 기업의 메세나 활동(문화 예술 지원) 차원에서 인수 계획을 밝혔다. 이 회장이 사비를 들여 설립한 우정문고가 잡지를 출간하기로 하고 직접 발행인을 맡았다. 이후 10월 재창간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발간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시안이라고 했지만 인쇄까지 마친 책이 배포되지 않은 배경을 두고 “인터뷰가 실린 황석영의 정치적 성향을 이 회장이 부담스러워했다”는 말도 나왔다. 한 문단 관계자는 “부영 측이 정치적인 논란을 우려한 것 같다”고 했다. 출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이 회장과 편집부의 견해 차이가 컸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잡지 발간 무기한 연기의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한국의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하겠다는 큰 뜻을 갖고 인수했는데,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김이 샌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재창간사에서 “’문학사상’은 필자에게 최고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우정문학상을 제정해 최고의 상금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문학사상’에 실리는 작품들이 문학사에 길이 남고 우정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날을 고대한다”고 썼다. 이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적자가 나는 문예지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중인 것 같다”고 전했다. 원고를 보낸 문인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재창간호에 기고한 한 작가는 “주문이 들어와서 요리했더니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문학판 ‘노쇼(no-show)’”라고 지적했다. 문인들이 애꿎은 피해자가 되는 일은 또 있다. 지난해 제26회 동리·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윤순례와 시인 조창환은 상금(각 6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이 문학상은 경상북도,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상금 협찬)이 주최하고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윤 소설가는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 상금 지급 청구 소송을 걸어 지난 9월 승소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수상 통보 전화를 받았는데, 나흘 앞두고 시상식이 연기됐다는 얘길 들었다”며 “이후 시상식은 치러지지 않았고 결국 상금을 못 받았다”고 소송을 진행한 이유를 밝혔다. 서울서부지법은 “사업회가 소설가에게 상금 6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약정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상금을 협찬한다는 점도 판결문에 명시됐다. 경주시 관계자는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전후로 ‘K문학’이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내 문단 속사정은 겉보기만큼 화려하지 않은 실정이다.
    • 문화
    • 문학
    2024-11-15

실시간 문학 기사

  • [단독] 윤동주 떠난 지 80년…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애도하는 日교토 모교
    [단독] 윤동주 떠난 지 80년…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애도하는 日교토 모교 내년 2월 16일 사망 80주기에 학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윤동주(1917~1945)가 순국 80주기인 내년 2월 16일, 재학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1875년 설립된 이 대학에서 사후 박사 학위를 받기는 처음으로, 윤동주의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가 대신 받을 예정이다. 도시샤대는 지난 12일 고하라 가쓰히로 총장이 주재하는 학장단 회의를 열고 ‘시인 윤동주에 대한 명예 문화 박사 학위 증정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도시샤대에서 공부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당초 도시샤대의 실무진 검토 과정에서는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학위 증정’이란 예외를 인정하는 데 대한 우려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 기구인 학장단 회의에선 단과대 학장과 대학원 원장 열여섯 명 모두가 찬성했다. 최용훈 도시샤대 상대 학장은 “도시샤대는 자유로운 학풍의 150년 역사를 가진 대학”이라며 “당시 재학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형무소로 끌려가서 옥사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학내 구성원들이 여전히 짐으로 떠안고 있다”고 했다. 학교 측은 윤동주 80주기 기념행사도 대대적으로 치를 예정이다. 윤동주는 스물다섯 살이던 1942년 10월 도시샤대 영문과에 편입했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를 졸업한 뒤 그해 4월 도쿄에 있는 릿쿄대 영문과에 진학했다가 6개월 만에 학교를 옮겼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문학부에 다니던 단짝 송몽규를 따라 교토에 간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종사촌 간으로 북간도의 민족 학교인 명동학교에서 연희전문학교까지 함께한 사이다. 일본 유학도 둘이서 같이 결심했다. 송몽규는 열아홉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문학도였고, 10대 때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도시샤대는 윤동주가 흠모한 정지용 시인의 모교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은 윤동주에게 자괴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유학용 졸업 증명서를 받으려면 일본식 이름(히라누마 도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을 앞두고 쓴 시 ‘참회록’에서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라는 글로 그런 감정을 드러냈다. 1943년 7월 윤동주는 송몽규 등과 함께 조선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실제로 윤동주와 송몽규는 만날 때마다 문학과 조국의 독립을 이야기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의 활동을 ‘재(在)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1944년 3월 교토지방재판소는 윤동주에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가 사회주의 운동 확산을 막으려고 제정한 법이다. 후일 공개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재판정에서 윤동주가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향상해 독립이 가능하게 하려 한다”고 발언한 기록이 나왔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윤동주는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로 순국(殉國)했다. 역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같은 형무소에 갇혔던 송몽규도 한 달 뒤 옥사했다. 송몽규의 증언 등을 통해 두 사람이 형무소에서 정체불명 주사를 맞았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에 생체 실험 때문에 희생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동주는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가족이 수습한 윤동주의 유해는 1945년 3월 북간도 용정에 안장됐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에는 일제강점기 출간하지 않았던 유작 등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시집 서문(序文) 대신에 쓴 것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다. 1968년 11월에는 모교 연세대 교정에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가 건립됐다. 그때부터 27년이 지난 1995년엔 윤동주의 또 다른 모교 도시샤대에도 서시 시비가 만들어졌다. 교문에서 50m쯤 걸어 들어가 예배당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자필 원고 필체로 한국에서 가져온 돌에 새긴 시비를 볼 수 있다. 도시샤대는 매년 시비 앞에서 헌화식을 연다. 시비는 한국이 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에는 진달래와 무궁화가 심겼다. ☞교토 도시샤 대학 일본 교토시에 있는 대학으로 학생 수는 약 3만명이다. 1875년 설립된 ‘도시샤 영어학교’가 전신이다. 미국 애머스트대를 졸업한 니지마 조가 민간의 기부와 후원으로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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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4
  • "한강의 글은 하양과 빨강, 두 색의 만남"…노벨상 시상식 스웨덴서 열려
    "한강의 글은 하양과 빨강, 두 색의 만남"…노벨상 시상식 스웨덴서 열려 한림원 위원이 직접 한강 소개…"하양은 죽음과 슬픔의 상징 빨강은 삶이자 깊게 베인 상처" 소설가 한강(54)이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다. 10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파란 카펫이 깔린 무대에 반원 모양으로 의자 95개가 놓였다. 객석을 기준으로 오른쪽 맨 앞에 스웨덴 왕족이 앉았다. 왼쪽 앞줄 빨간 의자에는 노벨상 수상자 11명이 일렬로 앉았다. 이 빨간 의자는 평소 스웨덴 왕족들이 콘서트홀을 찾으면 사용하는 ‘왕족용 발코니석 의자’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스웨덴 왕가의 특별 대우다. 한강은 왼쪽에서부터 여덟째 자리에 앉았다. 왼쪽부터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경제학상 수상자 순으로 앉았다. 뒤로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카롤린스카 연구소·스웨덴 한림원 등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총 1560명이 참석했다. 무대 한가운데는 알프레드 노벨의 동상이 자리했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노벨은 유언에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서로 수상 분야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시상도 ‘노벨 순서’를 따르는 게 관례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스웨덴 국왕이 한강에게 ‘노벨 메달’과 증서(diploma)를 수여하기에 앞서,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로 한강을 소개했다. 6~7분가량 이어진 이 소개 연설에서 맛손은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난다.”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10일 오후 4시 40분쯤(현지 시각)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강을 소개했다. 시상식에서는 각 분야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가 수상자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시상식 이후 스톡홀름 시청사(Stadhus)로 옮겨가 연회를 하면서 각 분야 수상자의 ‘특별 감사 연설’이 이어진다. 약 1300명이 자리한 가운데 네 시간 동안 만찬과 함께 이어지는 연회에서 중간중간 오늘의 주인공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한림원 위원 엘렌 맛손의 한강 소개 전문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납니다.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에 내리는 눈이자, 서술자와 세계를 구분 짓는 방어막 같은 커튼입니다. 동시에 슬픔, 그리고 죽음입니다. 빨강은 삶을 대변합니다. 그러나 고통, 피,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럽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학살이 끝나고 켜켜이 쌓인 시체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짙어지며, 호소하고, 질문합니다. 글이 답을 하지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을요. ‘우리는 죽은 자, 강탈된 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흰과 빨강은 한강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합니다. 2021년 작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눈[雪]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 사이 아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떠다니는 것들이 만나는 장소를 만듭니다. 소설은 눈보라 속에서 전개되며, 기억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서술적 자아는 시간의 층을 미끄러지듯이 지나갑니다. 죽은 자들의 그림자와 상호작용하며, 그들의 지식을 배우면서요. 왜냐하면 기억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울지라도, 결국 지식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강렬한 기억에서, 한 친구는 물리적인 몸이 머나먼 곳의 병실에 묶여 있음에도, 서가에서 자료 담긴 상자를 꺼내 한 문서를 찾아내고, 역사의 모자이크에 조각을 더합니다. 꿈은 현실로 넘쳐흐르고, 과거는 현재가 됩니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러한 전환은 한강의 소설에서 반복됩니다. 인물들은 방해받지 않고 돌아다니고, 그들의 더듬이는 신호를 포착하고 해석하기 위해 양방향을 향합니다. 그들이 목격하는 것으로 인해 무너지더라도요. 마음의 평화를 대가로 치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필요한 힘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망각은 절대 목표일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살해당한 남자아이의 영혼이 묻습니다. 그를 삶에 묶어두었던 얼굴의 특징들이 흐려지고 사라질 때예요. 생존자의 질문은 다릅니다. ‘나를 고통으로만 이끄는 이 몸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문으로 인해 단지 피 흘리는 물건이 돼버린 이 몸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몸이 포기한다 할지라도, 영혼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영혼이 지칠 때, 몸은 계속해서 걷습니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는 완고한 저항이 자리하고, 말보다 강한 고집이, 기억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망각은 목표가 아니고,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한강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상처 입고, 부서질 듯하고, 어떤 면에서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발 내딛거나, 또 다른 질문을 던지거나, 또 다른 기록을 요구하거나, 혹은 또 다른 생존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딱 필요한 만큼의 올바른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빛이 희미해지고, 죽은 자의 그림자가 벽에 계속 어른거립니다. 아무것도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한강에게,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나오셔서 국왕에게 상을 받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국 기자들과의 회견도 예정 10일 시상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한강은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6일 세계 각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 8일 노벨 콘서트 등 노벨위원회가 주최하는 행사만으로도 일정이 빼곡하다. 지난 8일에는 스웨덴은 물론 노르웨이, 브라질, 영국,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온 편집자 10여 명과 점심 자리를 가졌다. 같은 날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스웨덴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이 생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찾았다. 한강은 가이드를 받아 아파트를 둘러봤고, 린드그렌의 증손자인 요한 팔름베리를 만났다. 스톡홀름에 있는 린드그렌의 아파트는 그가 1941년부터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주하며 ‘삐삐’ 시리즈를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을 썼던 곳이다. 2015년부터 관람객들에게 공개됐으며, 린드그렌이 살았을 때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돼 있다. 한강은 지난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직후 스웨덴 한림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1973)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내 어린 시절에 영감을 준 유일한 작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책을 인간이나 삶, 죽음에 관한 나의 질문들과 결부지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상식 이후 11일에는 한강의 작품을 출판한 스웨덴 출판사 ‘나투르 오크 쿨투르’ 건물에서 한국 기자단과 기자회견도 예정돼 있다. 12일에는 왕립 극장에서 진행하는 대담 및 낭독 행사에도 참석한다.
    • 문화
    • 문학
    2024-12-11
  • 한강, 한국인 첫 '블루카펫' 밟았다...스웨덴 국왕도 일어나 경의
    한강, 한국인 첫 '블루카펫' 밟았다...스웨덴 국왕도 일어나 경의 한국 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다. 현지 시각 오후 4시부터 노벨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칼 16세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이 입장하자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해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한강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수상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다. 한강은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네 번째로 국왕에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노벨상은 스웨덴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노벨은 유언에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순서로 수상 분야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시상도 ‘노벨 순서’를 따르는 게 관례다. 노벨의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로 시상한다. 노벨상 시상식이 콘서트홀에서 열리기 시작한 1926년 이래 한국인이 이곳에 깔린 ‘블루카펫’을 밟은 것은 처음이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고 있어 2000년 수상자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슬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은 이날 ‘2024 노벨상 시상식’ 문학 부문 시상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를 흰색과 빨강, 두 색(色)에 비유했다. 맛손은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삶,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노벨상 시상식은 관례에 따라 각 분야 선정기관 대표가 공식 시상 연설을 통해 그해 수상자를 무대 위로 호명한다. 한강은 맛손의 호명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가 스웨덴 국왕에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강이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는 순간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일어나 손뼉을 치며 축하와 경의를 표했다. 한강은 시상식에서는 소감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수상자 강연이 있었고, 시상식 직후 오후 7시(한국시각 11일 오전 3시)부터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진행되는 만찬에서 3분 내외의 소감을 밝히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선정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꼽았다. 한편 한강은 지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트라우마(강한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인 질병)를 지닌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인 채식을 하는 이야기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아름다움과 공포가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어 “서정적이면서도 통렬한 작품”이란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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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1
  • 한강 "하루 2시간 꼭 한다"…역마살 그녀의 30년 루틴
    한강 "하루 2시간 꼭 한다"…역마살 그녀의 30년 루틴 “글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지난 5월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걸어가고 있다’는 건 비유적 표현이지만, 실제 걷기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매일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 문장들의 밀도로 다시 충전되려고.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 시간씩 한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 - 한강, 『디 에센셜: 한강』, p.346 소설 쓸 때 ‘읽기’와 ‘걷기’를 반복하는 게 그의 루틴이랍니다. 작품을 출간하고 나면 “소설을 쓰던 때보다 오히려 책을 덜 읽는다. 걷기도, 스트레칭도, 근력 운동도 덜 한다”고 합니다. 왜 ‘걷기’와 ‘읽기’일까요? 걷기는 ‘세상의 길’을 따라가는 여행이고, 읽기는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읽는 책이 ‘작은 텍스트’라면, 걷는 세상은 ‘큰 텍스트’입니다. 걷기도, 읽기도 할 땐 힘들지만 하고 나면 ‘충전’이 됩니다. 걷기는 다리와 가슴을 튼튼히 해주고, 읽기는 머리와 마음을 채워 주죠. 한강 작가처럼 규칙적으로 한다면, 우리네 고단한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돼줍니다. 그는 ‘쓰기’만이 자신의 “유일한 집”이라고 말합니다. “사주에 역마가 들어서인지 무던히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는데, 오직 쓰기만을 떠나지 않고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집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 한강, 앞의 책, p.359 실제로 작가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작가가 된 뒤에도 여러 나라를 옮겨다녔습니다. 첫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2009)은 국제창작 프로그램 참가차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얘기가 나오는 소설 『흰』(2018)은 실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집필했습니다. 글 머리에 언급했던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 수상 소감으로 다시 돌아가 보죠. 그는 자신은 ‘걷는 중’이고 ‘계속 걸어가겠다’고 강조합니다. “글 쓰는 사람 이미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고요히 책상 앞에 앉은 모습이지만 사실 저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먼 길을 우회하고 때론 길을 잃고 시작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걸어 나아갑니다. 혼자서 걸어가는 그 과정이 고립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언어로 작업하는 사람이고 언어는 결국 우리를 연결해 주는 실이니까요. 아무리 내면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30년 동안 제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때론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읽는 사람들, 책은 그렇다고 치고 걸으면 뭐가 좋을까요. 걷기는 다리와 심장을 튼튼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실 운동 효과만 놓고 보면 걷기보다 더 좋은 운동도 많습니다. 특히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걷기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럼 왜 걸을까요? 매주 수요일 '더중앙플러스'에서 독자 여러분과 '걷기'와 '읽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걷고,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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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4-11-30
  • 한강 작품 영문 번역한 英스미스씨…“광주와 가자의 아픔 연결한 한강 독자들에 감명”
    한강 작품 영문 번역한 英스미스씨…“광주와 가자의 아픔 연결한 한강 독자들에 감명” “부커상 수상후 오역 논란-찬사 갈려 그런 과정서 번역가 된 이유 알게 돼 ‘소년이…’ 번역 인세 가자지구 기부” “전 세계 수많은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강 작가의 놀라운 작품이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작품을 영미권에 소개해 부커상 수상 등을 이끌어 낸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7·사진)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18일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은 영문 계간지 ‘KLN(Korean Literature Now)’에 쓴 스미스의 기고문을 공개했다. 스미스는 2016년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영어로 번역해 한강 문학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 데 공헌한 번역가로 평가받는다. 기고문에서 그는 부커상 수상 이후의 오역 논란과 과한 찬사 등 상반된 반응이 쏟아진 데 대한 심경부터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비판은 가혹했고 개인적 공격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인종 불평등이 심한 문학계에서 백인 번역가란 점이 원작의 문학성을 깎아내리는 정도의 과대평가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왜 번역가가 됐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한강 작품의 번역은 텍스트에 날카롭게 떠오는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고문에서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의 문학적 의미에 집중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가 ‘극단적이고 기괴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인물의 강한 주체성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구식 남성들’은 못마땅해할 방식으로 독자들을 개인적 독서로 초대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는 “(한강) 작가의 더 발전된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임에도 ‘채식주의자’에 가려진 것 같아 아쉬웠다”며 “(하지만) 이 작품은 묻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으로 표현된다”며 “광주와 가자를 연결한 수많은 독자에게 깊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년이 온다’의 번역 인세를 가자지구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문화
    • 문학
    2024-11-21
  • 한승원 축사 싣고 인쇄도 했는데… '문학사상' 복간 무기한 연기
    한승원 축사 싣고 인쇄도 했는데… '문학사상' 복간 무기한 연기 부영이 인수한 '52년 전통 문예지'…소량 찍어 도서번호 받았지만 보류 반세기 넘게 한국 문학을 지탱해 온 전통이 힘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폐간 기로에 놓였던 52년 전통의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이 지난 7월 부영그룹 인수로 ‘심폐 소생’을 기대했지만, 복간이 다시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취재 결과, 고승철 문학사상 사장과 편집부는 지난달 모두 사임했고 현재 복간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부영 측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검토 단계”라고 했다. ‘문학사상’은 지난달 1일 재창간호(619호)를 소량(20부) 찍어 ISBN(국제표준도서번호)까지 발급받았다. 본지가 입수한 재창간호를 보면 황주리 화백이 표지화를 그렸고 ‘영원한 청년 작가’라는 제목으로 소설가 황석영 인터뷰를 실었다. 소설가 한승원의 축사를 비롯해 권지예·김별아·김숨·이경란의 단편소설, 복거일의 장편소설, 시인 강신애·강은교의 신작 시도 담았다. 본문만 472쪽에 달한다. 이에 대해 부영 관계자는 “시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문학사상’은 1972년 창간 이래 올해 4월호까지 통권 618호를 발행했다. 경영난으로 지난 5월부터 무기한 휴간 상황에 처했다. 이런 가운데 이중근 부영 회장이 기업의 메세나 활동(문화 예술 지원) 차원에서 인수 계획을 밝혔다. 이 회장이 사비를 들여 설립한 우정문고가 잡지를 출간하기로 하고 직접 발행인을 맡았다. 이후 10월 재창간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발간이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시안이라고 했지만 인쇄까지 마친 책이 배포되지 않은 배경을 두고 “인터뷰가 실린 황석영의 정치적 성향을 이 회장이 부담스러워했다”는 말도 나왔다. 한 문단 관계자는 “부영 측이 정치적인 논란을 우려한 것 같다”고 했다. 출간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이 회장과 편집부의 견해 차이가 컸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잡지 발간 무기한 연기의 계기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한국의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하겠다는 큰 뜻을 갖고 인수했는데,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김이 샌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재창간사에서 “’문학사상’은 필자에게 최고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우정문학상을 제정해 최고의 상금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문학사상’에 실리는 작품들이 문학사에 길이 남고 우정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날을 고대한다”고 썼다. 이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적자가 나는 문예지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중인 것 같다”고 전했다. 원고를 보낸 문인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재창간호에 기고한 한 작가는 “주문이 들어와서 요리했더니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문학판 ‘노쇼(no-show)’”라고 지적했다. 문인들이 애꿎은 피해자가 되는 일은 또 있다. 지난해 제26회 동리·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윤순례와 시인 조창환은 상금(각 6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이 문학상은 경상북도,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상금 협찬)이 주최하고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주관한다. 윤 소설가는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 상금 지급 청구 소송을 걸어 지난 9월 승소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수상 통보 전화를 받았는데, 나흘 앞두고 시상식이 연기됐다는 얘길 들었다”며 “이후 시상식은 치러지지 않았고 결국 상금을 못 받았다”고 소송을 진행한 이유를 밝혔다. 서울서부지법은 “사업회가 소설가에게 상금 6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약정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이 상금을 협찬한다는 점도 판결문에 명시됐다. 경주시 관계자는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운영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전후로 ‘K문학’이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내 문단 속사정은 겉보기만큼 화려하지 않은 실정이다.
    • 문화
    • 문학
    2024-11-15
  • “美서 삼국사기 읽으며 자라… 호랑이 같은 독립투쟁 그렸다”
    “美서 삼국사기 읽으며 자라… 호랑이 같은 독립투쟁 그렸다”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재미 소설가 김주혜 ‘독립운동가 후손’ 한국 정체성 각별… “이민 후에도 정지용-김현 읽으며 자라” 韓역사 다룬 첫 소설, 14개국 판권 팔려 발레리나 이야기 차기작 이달 美 출간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의 데뷔작은 여러 면에서 한국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깊은 설산 여명의 순간을 수묵화처럼 그린 첫 문장을 600페이지 넘는 묵직한 서사로 밀고 나가면서 한반도의 근대사를 되살린 이가 30대 중반의 젊은 재미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홉 살 때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원제 Beast of Little Land)’은 2021년 미국 출간 후 신인의 데뷔작으론 이례적으로 뉴욕타임스 등 40여 개 매체 추천도서에 올랐고, 미국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올해 러시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으며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한인 작가 중 한 명이 됐다. 소설가 김주혜(37)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줄곧 성장해 아이비리그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했고 뉴욕의 출판사에서 일하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됐지만, 그는 영어 이름을 따로 쓰지 않는다. 이민 이후로도 한국인으로의 정체성과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우주의 지혜(宙慧)를 뜻하는 주혜란 한국 이름을 각별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결혼한 후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영국 런던 노팅힐 인근에 자리 잡았다는 그와의 화상 인터뷰도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언제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했나. “어릴 적부터 발레, 첼로 등을 하면서 책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영향을 받아 미술사학을 전공했고 박물관, 패션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10여 년 전 출판사에 근무하면서부터 하게 됐다.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한국계 미국 작가가 택한 첫 소설의 주제가 왜 한국의 근현대사였나. “독학으로 습작할 때 길잡이가 돼준 게 레프 톨스토이, 가장 영감을 준 작품이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처럼 예리한 통찰력, 깊은 연민, 인간 보편성을 보여 주는 작품을 쓰려면 역사를 관통하는 장대한 스케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삼국사기’ 같은 한국사 책을 읽으며 자랐기에 첫 장편을 써야 했을 때 망설임 없이 택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반도에 번성했던 호랑이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한국인의 강골함과 독립운동사를 녹여낸 대하소설이다. 소작농의 딸로 기생이 된 ‘옥희’와 가난한 사냥꾼의 아들로 경성을 떠도는 주먹이 된 ‘정호’의 삶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지주와 소작농 등 수많은 이들의 삶을 교차시킨다. 그가 이 작품으로 수상한 톨스토이문학상은 톨스토이 탄생 175주년인 2003년 레프 톨스토이 박물관이 삼성전자 러시아법인과 함께 제정한 러시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줄리언 반스, 오르한 파무크 등이 수상했다. 올해 최종 후보 10편에 오른 작품 중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도 포함돼 있었다. ―이민 가정에서 지킨 한국적 정체성이 작품에 큰 자양이 된 것 같다. “김구 선생 곁에서 독립운동을 한 외할아버지 김태희 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인, 한국문화에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 국문학 석사인 어머니 책장에서 김현 평론집, 정지용 시집 등 문학이론과 한국어만의 질감과 풍경미를 드러낸 문학을 읽으며 컸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아주 어릴 때부터 눈물 흘리며 접했고 이 책을 쓰면서도 그런 감동을 투영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데뷔작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은 것 같지만, 사실 작가로 첫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본격적으로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2014년만 해도 신인 작가들은 대부분 백인 작가였다. 두드러지는 활약을 하는 한인 작가도 없었고,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러 단편을 에이전트에 보냈지만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함박눈 오는 공원을 달리던 날 문득 호랑이와 마주친 사냥꾼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러 인물이 별자리처럼 그려졌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내 경험으로는 맞다. 내가 책을 쓸 때 가장 나다운 글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었다”고 썼다 . ―일과 집필을 힘들게 병행했었다고 들었다. “뉴욕에서 일하는 동안 평일 새벽 5시부터 7시, 퇴근 후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썼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썼다.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갰다. 전투적이었다. 남들의 10배는 노력하는데 성과는 10분의 1도 나지 않는 것 같아서, 자책하고 의구심에 시달리던 시간도 있었다.” 초고 집필에 5년, 출판사와의 교정에 1년, 총 6년이 걸려서 영문판이 나왔고 다시 한 해에 걸친 예닐곱 번의 수정을 거쳐서 한국 번역본이 출간됐다. 2019년 최인호 작가의 단편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을 번역했던 적이 있던 그는 문학번역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한국어판이 매끄럽게 읽힐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애썼다. ―쓰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등장 인물을 줄여야 했다. 더 세세하게 쓰고 싶었지만 현대 미국 출판시장에서 그렇게 긴 작품은 불가능했다. 영문판 기준 100페이지를 줄였다. 윌리엄 포그너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s).’ 애지중지하는 등장인물을 죽이란 말이다. 창작에 도취되지 말고 전체 흐름을 살려라. 미국 편집자와 에이전트에서 계속 들었던 부탁과 경고도 ‘너무 길게 쓰지 마라’였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큰 상을 받고 난 뒤에 달라진 게 있나. “파노라마처럼 사회 각층을 자유자재로 보여 주면서도 인간 내면의 진실, 통찰력과 깊은 사랑을 보여 주는 글쓰기를 톨스토이에게 배웠다. 인간, 작가, 아내로서 해야 하는 일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그의 문체와 인도주의적 문학 정신을 계승했다는 극찬을 받았으니 이전과는 절대 같을 수 없는 전환이 됐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라고 느꼈다.” 그는 이달 러시아,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리마 발레리나의 사랑을 다룬 두 번째 장편 ‘밤새들의 도시’를 미국에서 출간한다. 수상 이후 각국에서 출간과 인터뷰 일정이 새벽까지 쏟아지지만 어떤 곳보다 우선순위를 두는 곳이 한국이다. “내 작품의 문학적·역사적 가치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분들이 한국 독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이어 겹경사다. 한국 작가들이 부상하는 요인이 뭘까. “한강 작가와 함께 논의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개인적 재능뿐 아니라 한국문학번역원이 굉장히 오랜 기간 노력했고 국가적 양성이 큰 역할을 했다.” ―외부에 있었기에 한국 문화의 위상 변화가 더 잘 보였을 것 같다. “2019년 집필에 에너지가 너무 소진돼 프랑스에 석 달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이미 많이 바뀌었단 걸 느꼈다. 프랑스에 문화적 동경이 있었다. 그런데 패션잡지를 보니 정작 그들이 동경하는 건 한국이었다. 책이 출간되고 여러 나라 독자들에게 편지 등을 받는데 한국 문화에 대한 소양이 정말 깊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많다. 너무 뿌듯한 일이다.” 그는 높아진 한국 문화 인기의 덕을 14개국으로의 해외 판권 수출 등에서 같이 누리고 있다고 했다. “브라질의 경우 특별한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큰 성원을 받았다. 모스크바에서의 북토크 당시 순식간에 책이 팔리고 긴 사인줄이 생기는 걸 보고 한국 문화의 위상 변화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톨스토이문학상 상금 120만 루블(약 1680만 원) 전액을 멸종위기에 놓인 한국 호랑이를 보호하는 한국범보전기금에 기부했다. 책 인세 일부도 관련 단체에 기부해 왔다. 작품 활동만큼 생태보호와 자선활동에 열정적인 것은 “집필하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것을 나누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결혼한 캐나다 출신 남편도 뉴욕에서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회적기업 그린체크의 창업자로 기후나 환경문제 등에 대한 관심사가 비슷하다. 차기작 역시 소말리아의 한 구제사업 단체에 인세 일부를 보낸다. ―미국에서 차기작이 곧 공개된다. 이번에도 대하소설인가. “문학적 범주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싶어서 완전히 반대로 했다. 1인칭 한 사람의 목소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게 했다. 전작이 교향곡이었다면, 이번에는 협주곡이다. 솔로이스트 역량을 보여 주고 싶어서 뜨거움과 도회적 매끄러움을 오가게 하려고 노력했다.” ―집필 루틴, 혹은 글을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런던으로 이사오며 서재도 책상도 없어졌다. 시상식 당시 주최측 안내로 톨스토이 생가를 둘러봤는데 곳곳이 책상이더라. 집필 환경이 너무 다르다고 푸념했더니 그분들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책상은커녕 욕조에서 ‘롤리타’를 썼다”고 했다. 그래, 그냥 써야지. (웃음) 매일 아침 글 쓸 커피숍을 찾는 게 일과가 됐지만, 한번 몰입하면 사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대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다만 글을 쓸 때의 어떤 정신 상태는 중요한 것 같다. 커피가 큰 도움이 된다.” 김주혜 약력 △1987년 인천 출생 △1996년 가족과 미국 포틀랜드로 이민 △2009년 프린스턴대 미술사학 졸업 △2016년 영국 문학잡지 ‘그란타’에 단편소설 ‘보디랭귀지’ 발표 △2021년 장편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 출간 △2022년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 후보 △2024년 러시아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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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1
  • [단독]“유교-전쟁 겪은 독자들 한강 작품에 공감”…베트남에 부는 한강 ‘열풍’
    [단독]“유교-전쟁 겪은 독자들 한강 작품에 공감”…베트남에 부는 한강 ‘열풍’ 한강 ‘채식주의자’ 베트남어로 번역한 황하이번 “채식주의자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답변을 찾고자 계속 집착하게 됩니다.”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2007년)를 베트남어로 번역한 황하이번(46)은 20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황 번역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 채식주의자는 2010년 베트남에서 출간되며 처음으로 해외 독자들과 만났다. 황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를 접한 계기는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었다. 당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황 번역가가 대상을 수상한 한강의 중편 ‘몽고반점’을 읽은 것. 몽고반점은 육식을 거부하는 여성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 ‘나’가 화자로 나온다. 그가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처제 영혜를 모델로 세우는 이야기다. 몽고반점이 발표되고 2년 뒤, 영혜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을 엮어 채식주의자가 출간됐다. 자신의 직감을 따른 황 번역가는 누구보다 빨리 번역서를 내놨다. “몽고반점은 미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어요. 인물의 감정에 고스란히 빠져들었어요. ‘아, 이건 예술이다’라는 인상을 받았고,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채식주의자가 나오자마자 번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해외 문단의 평가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만큼 제가 사랑한 작품입니다.” 번역 작업 중 한강과 만나는 기회도 생겼다. 2009년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번역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 당시 호치민국립대 한국학부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한달 반 동안 레지던시 참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작가님과 떠난 문학기행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궁금한 점을 직접 여쭤봤고, 이후에도 이메일로 소통하면서 작업했다”고 했다. 황 번역가가 채식주의자를 작업한 지도 벌써 15년이나 흘렀다. 그는 문장이 어렵지는 않던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설의 관능적이고 신비롭고 모호한 분위기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신경 썼다고 했다. 그는 “번역을 마치고도 여러 해가 지나서야 작품의 의미를 이해한 것 같다”고 했다. 황 번역가는 1세대 베트남어 번역가다. 1992년 양국 수교 이듬해에 베트남에 한국학과가 설치됐다. 그리고 1996년 하노이국립대에 입학한 황 번역가는 한국어 전공을 선택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한-베 사전이 없어 한-영 사전과 영-베 사전을 끼고 공부했습니다. 어렵게 공부했지만 재밌었어요. 대학 4학년 때는 배우 김혜수, 배용준 주연 44부작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의 베트남어 번역에도 같이 참가했죠.” 한국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는 베트남이지만, 한국 문학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나 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을 받으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벨 문학상까지 받자, 베트남에 출간된 한강 작품 세권(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은 모두 동난 상태다. 황 번역가는 “가부장제가 강한 유교 문화권이고, 전쟁의 아픔을 겪은 베트남 독자들은 누구보다 한강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베트남에는 ‘한강 문학의 기적’ 열풍이 불고 있다. 한강 작품 세계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넘어 “우리도 노벨 문학상을 받아보자”는 희망이 싹튼 것.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외세와 맞서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문학을 발달시켜 온 국가다. 문학 독자층 또한 두텁다. “베트남 주요 언론은 한국의 ‘한국 문학 세계화’ 전략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문학번역 지원과 번역가 육성에 물심양면 지원했고,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에도 굉장히 많이 투자한 점에 주목한 것이죠.” 17일(현지 시간) 호치민국립대 한국학부 주최로 연 ‘한강과 한국 문학의 기적’ 세미나에는 600명 넘게 모이며 베트남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베트남 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섰고 황 번역가도 ‘채식주의자 번역 및 한강 작품의 인문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강 문학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질문하러 멀리서 찾아온 고등학교 문학 교사도 있었고, 문학계뿐 아니라 영화계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참석해 놀라웠다”고 전했다. 17일 호치민국립대 한국학부가 주최한 ‘한강과 한국문학의 기적’ 세미나가 학생, 연구자, 교사 등 600명 이상이 모이며 성황리에 진행됐다. 호치민국립대 제공 황 번역가가 느끼는 한국 문학의 힘은 무엇일까.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인물의 심리를 너무나 잘 표현합니다. 한국 문학이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좋은 글을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거든요. 사실 저는 현재 문학번역을 쉬고 있는데, 한강의 차기작은 꼭 번역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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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2
  • 한강 “작가 황금기 6년 남아… 책 3권 쓰는데 몰두”
    한강 “작가 황금기 6년 남아… 책 3권 쓰는데 몰두” 노벨상 일주일만에 첫 공개행사 포니정 시상식 참석해 소감 밝혀 “난 술도 못마시고 카페인도 끊어 걷는 것, 못읽은 책들이 사는 재미”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소설가 한강(54)은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일주일 만인 17일 첫 공개 행사에 참석해 이런 바람을 밝혔다. 한강은 이날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의 수상자로 단상에 서서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라고 했다. 또한 한강은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면서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작가 황금기’인 60세까지 6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노벨상에 연연하지 않고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강은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농담을 던졌고,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집필)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한강은 노벨상 발표 날도 회상했다.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았다”면서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한강은 “저는 술을 못 마신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다”며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도 했다. 대신 걷는 것, 아직 못 읽은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를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강은 신작 얘기를 직접 꺼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 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정확한 시기를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은 별도로 초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한강이 노벨상 수상 결정 뒤 가진 첫 공개 행보였던 만큼 그를 만나려는 취재진과 시민들로 행사장 주변이 일찌감치 북적였다. 한강은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시상식장을 출입하며 취재진 등과 거리를 뒀고, 수상 소감 등은 재단을 통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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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8
  • 한강, 스웨덴 언론과 인터뷰…"조용히 글 쓰고 싶다"
    한강, 스웨덴 언론과 인터뷰…"조용히 글 쓰고 싶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발표 후 스웨덴 공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주목받고 싶지 않다"면서 "이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스웨덴 공영 SVT 방송의 지난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강은 이 방송과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나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으며,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인 지난 11~12일 사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왜 축하하고 싶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강은 "아니다. 아들과 함께 카밀러(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축하했다. 축하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기자가 당신의 부친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딸이 세계의 상황(우크라이나 전쟁 등)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언급하자 한강은 "뭔가 혼란이 있었던 거 같다. 그날 아침 아버지께 전화드렸을 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큰 잔치를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큰 잔치는 하지 마시라고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한강은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당시에 대해선 "인터뷰할 때 장난인 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진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끔찍한 역사적 사건에 직면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을 통해 배울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분명히 (끔찍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다"면서 "적어도 언젠가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인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배웠던 것들의 아주 분명한 결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강은 글을 쓰는 것이 무용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는 취지의 말도 했습니다. "1년에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예를 들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하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시간을 들여 계속 글을 쓰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강은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빨리 끝내고 노벨상 수락 연설문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림원으로부터) 에세이를 써야 한다고 들었다. 바라건대 지금 쓰는 짧은 소설을 이달이나 내달 초까지 마무리하고 그 이후 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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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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