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9-1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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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기간산업 한국천문학 발전 공로
    ▲ 나일성 교수(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故 이원철 박사의 마지막 남은 생존 제자로서 이날 주제강연을 통해 이 박사의 업적이 현재 한국과 세계 과학계와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 이상기 씨(고 이원철 박사의 손자, 왼쪽으로부터 첫번 째)와 조규태 서울YMCA 회장(넷 째), 김인복 서울YMCA 이사장 등 주요 인사들이 유품과 사진전을 돌아보고있다. ▲ 이원철 박사가 생존시에 완성했던 다양한 논문들의 실물이다. 주최측은 실제본을 대여해 약 10일간 전시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페이드 변광성인 독수리자리 에타'를 연구해 지난 1926년 이학박사학위를 미국 미시건주립대학에서 취득하고, 귀국해 한국 천문학의 기틀부터 발전까지를 감당했던 故 우남 이원철 박사의 제 60주기 추모식이 진행되었고, 우 박사가 연관 맺었던 과학기관 및 시민단체의 후배들이 그 뜻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했다. 기상청(기상청장 유희동)과 서울YMCA(이사장 김인복), 연세대학교(총장 서승환), 인하대학교(총장 조명우), 한국천문연구원(원장 박영득) 등의 주최로 지난 3월 14일 서울YMCA '우남 이원철 홀'에서 다수의 주요관계자가 모인 가운데 '우남 이원철 박사 제 60주기 추모기념식'을 개최했다. 故 이원철 박사(1896~1963)는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수물과를 1916년 졸업하고, 1922년 미국 엘비온대학교 학사학위, 1923년 미시건주립대학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 1926년 미시건주립대학교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인 독수리자리 에타를 연구'하여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으로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 및 이사장, 서울YMCA 이사 및 이사장, 1945년 경성측우소를 시작으로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 1954년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 등을 거쳤으며, 한국천문연구원은 故 이원철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1974년 대통령령으로 국립천문대(현 한국천문연구원)가 설립된 인연 등으로 추도회 자리에 함께 모였다. 특히 서울YMCA와 이 박사의 인연은 1935년 이사직을 감당하기 시작해 동회가 운영하던 영창학교 강사로서 청소년들을 지도했고, 1951년에는 부이사장, 1955년에는 이사장, 1958년에는 대한YMCA연맹 부회장 등을 감당하면서 수 십년간의 인연을 이어왔고, 사후인 1976년 유족 김화순 여사로 하여금 금곡리 임야 36,000여 평과 용산구의 대지 170평과 건물 68평을 기증함으로서 사회봉사실천의 모범을 보여줬으며, 이에 서울YMCA는 종로 회관의 대강당을 '우남 이원철 홀'로 명명해 지속적으로 그 유지를 받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날 추모기념식과 기념사진전이 개최되었고, 우남 이원철 박사의 유일한 생존 제자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가 추모강연회 발제를 담당하면서 이원철 박사의 천문학적 연구를 설명하고 한국천문학계를 위한 발전노력이 어떤 영향을 현재 끼쳤는지를 조명함으로서 이날 참석자들에게 많은 감명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 추모기념식 우남 이원철 박사 제 60주기 추모기념식은 정애리 교수(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 유희동 기상청장은 우남 이원철 박사의 서거 60주기를 기리며, 그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온 후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며 감회를 밝혔다. 이 박사는 천문학자였지만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의 기상 분야에서 처음 가는 길을 걸었고, 우리 후배들이 그 뒤를 따를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길을 닦아주셨다고 동영상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해방 후 신설된 국립중앙관상대장을 맡아 전문인력 양성과 기상업무체계구축 등 기초과학발전에 초석을 세웠고, 기상 분야의 선구자로서 우리를 위해 최고의 열정과 시간 및 재증을 기부해주신 점 이 박사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안전한 삶이 없었을 것이라며, 떠나 가신지 60년이 된 지금도 그 가르침을 되 새기며 자란 후학들이 기상 과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를 세계 기상 선도국으로 만드는 중 이기에 후배들로서 그 뜻을 가장 기리는 방법은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예보역량 등 관련 기술 향상에 힘을 모아 세계 최고의 기상 서비스로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인복 이사장(서울YMCA)은 창립 120주년을 맞는 서울YMCA는 독립운동단체요 민족운동단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서 대일 항쟁시기에 YMCA활동자들 대부분이 민족지도자였으며, 우남 이원철 박사도 YMCA운동을 통해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한 대표적 YMCA인물로서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체포될 정도로 애국 애족의 정신이 투철했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1948년 초대 기상대장으로 취임해 조선총독부시절부터 내려오던 기상대라는 명칭을 '국립중앙관상대'로 변경했으며, 특히 서울YMCA 재건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한국전시기에 파괴된 회관을 되살리던 중 재차 이사장에 선임되어 지속적으로 봉사한 것은 서울YMCA의 재건이 민족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이원철 박사가 남긴 얼은 지금 서울YMCA 운동의 맥 안에 살아있다며 현재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 서승환 총장(연세대학교)은 연세대학교와 YMCA, 이원철 박사는 대단한 인연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을 흔히 연희전문으로 알지만 사실은 1915년 봄 조선기독대학이라는 명칭으로 현재 종로의 서울YMCA회관을 임차해 학교를 열었으며, 조선총독부는 대학이라는 명칭을 빼고 연희전문학교로 인가했으나 조선기독대학은 문학과와 신학과, 상과, 수학급 물리학 등 다양한 학부를 설치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추구해오던 중이었고, 이원철 박사는 개교 첫 해 들어온 61명의 학생의 일원으로서 졸업 후 2년간 모교의 수학강사를 하다가 미국에서 1926년 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임에도 귀국해 연희전문학교 최초의 동문교수로서 교육활동을 한 실천가였다고 설명했다. 이원철 박사는 그의 활동기가 우리에게 민족사적인 비극이자 극빈의 시대였지만 대한민국이 과학적으로 뒤떨어지는 쓰라림을 우려하면서도 과학만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일반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건전한 과학을 추구했고, 과학의 발전이 전부는 아니지만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 속에 이처럼 과학의 안내자가 되셨기에 천문학과 기상학 분야 뿐 아니라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과 연구가 이뤄지도록 발전하는 중이고, 이 박사와 같은 기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 조명우 총장(인하대학교)은 이원철 박사는 1953년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을 감당했다면서 일제 강점기에도 꿋굿히 학문연마와 후학양성에 매진해 해방 조국의 초석을 닦는 중이었으나 6.25전쟁으로 또 다시 잿더미로 변한 조국의 재건에 매진했는데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인재의 양성이며, 그가 경험한 선진 미국의 교육체계는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인재였다고 평가했다. 이 학장이 1953년 인하대를 만났을 때는 조선인들이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의 이민지에 정착한지 50년이 되는 해였고, 해외 동포들이 고된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민족의 얼을 이어나가려는 교육사업으로 투여되어 민족 대학 인하대학교로 구성된 섭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원철 학장이 반석으로 기초를 쌓은 인하대학교는 개교 70주년이라는 성장과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도입부라며, 기술공학연구를 바탕으로 한 인재양성과 혁신연구는 대한민국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온 만큼 대담한 용기를 가진 젊은이들을 배출하겠으며, 학장님의 뜻을 이어가는 참된 스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박영득 원장(한국천문연구원)은 이원철 박사는 해방 후 국립중앙관상대를 설립해 초대 대장으로 재직하고, 한국의 천문 및 기상과 관련 인재를 키우고, 재반 제도를 확립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소원했던 천문대건립의 소원을 못이루고 영면했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1974년 대통령령으로 국립천문대가 발족, 1978년 소백산관측소 준공, 1985년 우주전파관측소 솔치, 1996년 보현산 천문대 준공, 1999년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출범되는 일련의 역사적, 사상적 관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06년 보현산천문대의 1.8미터 광학망원경으로 소행성을 발견해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로부터 승인을 받아 '이원철'이라고 명명했고, 한국천문연구원 본원에 '이원철 홀'을 개설해 그 뜻을 기린 결과 이제는 세계 천문학의 변방이 아닌 선도하는 조직이 으로 성장했고, 미래 우주시대를 이끌고자 전 구성원이 노력중이라고 강조했다. ○ 조규태 회장(서울YMCA)은 이원철 박사는 세계 열강의 침탈야욕으로 국운이 혼미하던 때인 1896년 8월 19일 당시 지명으로 한성부 남서 관통방 다동계, 즉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에서 우계이씨 이중억의 4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약력을 낭독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선린상업학교에서 수학하고, 1915년 연희전문학교 수리물리학과에 입학해 1회 졸업생이 된 후, 1922년 미국 엘비온 대학 이학사, 1923년 미국 미시간대학 이학석사, 1926년 미시간대학 이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는데 한국의 학술사적으로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이학박사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사학위는 독수리자리 에타별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맥동변광성임을 밝혀 우리 민족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대학과 YMCA르 오가며 천만학을 강의했고, 흥업구락부를 창립해 비밀독립운동을 벌인 건으로 일제경찰에 체포당하면서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이 박탈되고, 1948년에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으로 부임, 1954년 인하공과대학교 초대 학장으로 부임, 195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 합병기에 연세대학교로 발돋움함에 큰 공로를 세웠다고 밝혔다. 서울YMCA와는 청년시기부터 인연이 있어왔고, 1955년과 1960년 이사장을 두번 역임, 1961년까지는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고 밝혔다. 1960년에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고, 1961년에는 연세대학교 학교법인 이사장을 역임, 1963년 3월 14일 소천해 이날까지 60년이 지나고 있으며, 부인 김화순 여사가 고인의 뜻대로 용산구와 남양주의 토지와 주택 등을 기증하는 등 실천의 삶을 살았으며, 서울YMCA는 이 박사의 희생과 봉사라는 유지를 받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 연세대학교를 대표해 서승환 총장이 이상기 씨(이원철 박사 유가족 대표)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서 총장은 이원철 박사가 우리나라의 기상학과 천문학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후학양성과 사회봉사 등 다양한 공로를 기리며 이패 수여한다고 밝혔다. ○ 이상기 씨(이원철 박사 유가족 대표)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부친께서 할아버지는 매우 훌륭한 분이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에 따라 그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받았다면서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뜻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 기념강연회 제 2부 기념강연회는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가 '우남 이원철의 생애와 정신'을 주제 발제했고, 유장렬 센터장(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이 사회를 담당했다. ○ 유장렬 센터장은 과학기술인 중에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현저한 사람을 예우하는 '과학기술유공자예우 및 지원'을 하는 단체로서 이 법이 제정된 후 첫째로 이원철 박사를 2017년 지정한 바 있다고 밝혔다. 동 법률은 과학기술유공자를 예우 및 지원을 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과학기술인의 특성에 맞는 예우와 지원 제공의 제조적 틀을 갖추고 있으며, 유공자로 선정함으로서 후속 세대의 역할에 모델이 될 과학기술인 상을 제시하고, 일반에게 알리며, 과학기술자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예우와 지원체계를 확립, 전문성있는 지식나눔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는 자신은 故 이원철 박사의 직계 계승자요 마지막 직계 생존자라고 소개하고, 자신도 '나일성' 별이 지정되어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전 이원철 박사 50주기에도 이와 비슷한 강연 발제를 했다면서 당시는 인하공과대학의 설립을 주제삼았다면 오늘은 이원철 박사의 독수리 에타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설명했다. 이원철의 독수리 에타별에 대한 이해는 별의 특징 중 비변광과 변광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나 교수는 태양과 같이 항상 일정함을 유지하는 별은 비변광이라고 하고, 별의 부피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변광성 별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고래자리의 별을 본 사람과 못 본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1596년 고래자리 오미크론 별의 경우 변광별로 알려졌고, 구드리케에 의해 1743년에야 이 사실이 주목을 받으며 별의 주기성이 발견된 내력을 밝혔다. 이 별은 북극성 만큼 밝다가 어두워서 안보이는 주기적 특징이 있으며, 그 주기는 3백년에 달하며, 이제는 이런 류가 '미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천체에 많다고 알려져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이제는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맥동성'이 가설로서 샤플리에 의해 1915년 주장되지만 당시의 기술은 이런 어두운 별을 관측할 대형망원경이 귀했다는 한계가 있고, 그 맥동의 주기가 길면 한정된 망원경을 다수의 관측자가 교대로 사용해야하기에 연구주제가 되기도 어렵기에 맥동주기가 짧은 별을 선호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원철이 연구하게되었는데 그의 스승인 루퍼스가 연구과제로 허락해서 박사학위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학박사가 된 이원철은 바로 귀국해 연희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었는데 논문을 학술지에 수록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오랜 기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인데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과학동향을 알기도 어려운 근대시대에 포기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원철 박사는 굳이 힘들여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6년만에 학술지에 싣는 성실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원철 교수가 해방과 동란 후 기상대의 시초석을 쌓아가던 시기는 모든 것이 부족했는데 국가적으로 날씨를 일지로서 기록하는 것을 역서라고 하는데 조선역서와 광무역서, 1911년부터 민역역서 등이 발간되던 중이고, 이 박사가 기상대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45년에 시작해 역서 발간에는 9개월의 시간 밖에 없던 중인데도 발간을 시작했지만 당시 종이파동이 벌어진 상황이라 역서책의 크기나 분량이 형편 없다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형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 6.25전쟁의 발발했고, 당시 북한의 인민군은 남한의 요직자는 강제 납북해가는 중이었는데 여기에 안잡히기 위해 부인 김화순 여사와 도피생활을 하고, 극약을 음독하기도 하는 등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 전쟁 후에는 역서를 제작하는 연속적인 국가기간데이터를 수호한 공로가 크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천문학자로서 역서 발간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국가의 존망이 걸릴만큼 중요한 업무이며, 특히 당시 중국식 역서, 일제식 역서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이 한국식 독자적 역서 발간의 새 지평을 열은 공로가 크지만 일반인들은 그 중요성을 잘 이해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 박사의 연구주제였고, '이원철 별'은 소행성으로서 다른 것임을 설명했다. □ 기념사진전 이원철 박사와 가족, 직장, 사회 활동 등의 모습을 담은 기념 사진과 이 박사의 논문들 진본, 본인이 사용하던 천문학 계측장비 등을 서울YMCA회관 내 친교실에서 전시중이며, 향후 1개월간 전시할 예정이다. 초대형 사진 약 20점과 멀티미디어장비에서 투사회는 사닌 수백점으로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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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4
  • 사단법인 한미협회,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 개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사단법인 한미협회(회장 최중경)’ 초청 연설을 하고있다.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정기총회를 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필립 골드버그 대사에게 공로패와 기념품을 수여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미협회,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 개최 연설회에 앞서 정기총회… 2023년 활동 계획 및 예산안 등 다뤄 최중경 회장,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 두 차례 소개…‘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 개최 치하 사단법인 한미협회(회장 최중경 박사)는 6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 오키드 룸에서 열린 ‘2023년도 정기총회’에 이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를 개최했다. 정기총회는 최중경 회장 주재로 진행됐다. 정기총회 안건으로는 1.2022년 사업실적 및 결산보고의 건, 2. 신규회원 소개, 3. 임원선임, 4. 2023년 활동 계획 및 예산안 등을 상정해 동의와 제청으로 통과시켰다. 최중경 회장은 신규회원 영입을 위해 개인회원과 법인회원에 대해 세밀히 심사하여 협회 회원자격을 부여했고, 이날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후 소개시켰다. 최 회장은 특별히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에 대해서는 두 번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여 소개했고, 매년 1월13일 미국의 국가기념일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지난 1월27일 남산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를 치하했다. ▲박을술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명예대회장(사진 왼쪽부터),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2023년 사단법인 한미협회 정기총회에서 아키바 토르(Akiva Tor) 주한 이스라엘 대사(왼쪽부터),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김 제임스 사단법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대표이사, 박을술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 명예대회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기총회 폐회 후에는 오찬이 이어졌고, 오후 1시에 최중경 회장의 환영사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미동맹의 발전과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대한민국은 미국의 파트너(동반자)이자 미국 등 우방국의 리더라고 단언하며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경제와 국방전략과 외교등을 설명하며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동맹 강화가 매우 중요하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의 나라임을 강조했다. 한편 이상기후로 뉴욕에 폭설사태에 있었던 한국인 방문자와 미국 가정에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한미간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한미동맹만큼이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미 간 두 나라 국민들이 우정을 나누는 미래로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김치의 날과 한복의 날이 제정되어 미국에서 기념하는 등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도 치하했다.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박상원 박사는 필립 골드버그 대사에게 지난 1월27일 개최되었던 ‘제1회 대한민국 미주 한인의 날 기념대회’에 축사를 보내 대독하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참석하고 싶었으나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는데, 내년 기념대회에 다시 초청해 주면 꼭 참석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는 사단법인 한미협회와 세계한인재단 등이 주최했고, 최중경 박사와 박을술 박사가 명예대회장을 맡았다.<기사 및 사진 제공: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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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7
  •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 진순기 무궁화중앙회장에 임명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21일 서초포럼에서 열린 조찬자리에서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 및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이 민병근 성균관대 교수(모자쓴 이)에게 일본 지부 회장 회장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 진순기 무궁화중앙회장에 임명 박 총회장, 서초 포럼에서 ‘미주한인과 한인사회의 비전’ 제하 기조연설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 일본 지부 회장에 민병근 교수(성균관대) 임명 세계한인재단(상임대표 총회장 박상원 박사)이 본보에 박 총회장의 최근 활동을 전해왔다. 세계한인재단이 본보에 보낸 23일자 메일에 따르면, 박 총회장은 지난 1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가진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유인학 전 국회의원·제16회 세계한인의 날 조직위원장과 정영숙 한식 명인에게 공로상을 시상하고 감사장과 임명장을 수여했다.(본보 10월16일자 보도) 박상원 총회장은 특히 세계한인재단 마산회장으로 봉사해온 진순기 회장을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으로 임명했는데, 21일 서초포럼 제156회 행사장에서 박상원 총회장이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아울러 이날 키노트 스피커(기조연설자)로 ‘미주한인과 미주한인사회의 비전’ 제하의 강연을 했다. 이보다 앞서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은 민병근 교수(성균관대)를 서초포럼 일본 지부 회장으로 임명하는 임명장을 수여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21일 오전 제156차 서초포럼에서 ‘미주한인과 미주한인사회의 비전’ 제하의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 위 아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오른쪽 두번 째)이 서초포럼 일본 회장으로 임명된 민병근 성대 교수(오른쪽)와 김학우 세계한인재단 총감독(왼쪽 끝) 등과 21일 오전 제156차 서초포럼이 진행될 입구에서 잠시 카메라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다. ▲나경원 전의원(왼쪽부터)이 제156차 서초포럼 현장에서 박상원 세계한인재단총회장, 서초포럼 일본 지부 회장 민병근 성균관대 교수(모자쓴 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총회장이 제156차 서초포럼 현장에 서나경원 전의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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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2022-10-24
  • 사회학사의 발전과 주체성을 추구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푸른역사 출판사)」 4권을 완간한 기념으로 종로목요서평에서 사회학사에 대한 발제를 했다. 정수복 박사(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 박사)는 한국에 1946년 서울대학교에 사회과학과가 설립된 이래 사회과학분야가 70여 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동 분야의 시초와 발전사, 연구와 성과 등을 담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를 순차적으로 출간해 최근 4권으로서 완간했다. 종로목요서평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푸른역사 출판사)」 4권의 완간을 기념해 지난 6월 23일 동 서적의 서평을 진행했으며, 4권 전체를 서평 대상으로 해야하지만 시간적인 한계로 인해 1, 2권을 주요하게다뤘다. 저자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를 1권 '한국사회학과 세계사회학', 2권 아카데믹사회학의 계보학, 3권 비판사회학의 계보학, 4권 역사사회학의 계보학 등으로 순차적으로 출간했으며, 이날 토론회의 주 발제에서는 사회학에 관련한 세계 및 한국적인 현황을 설명, 하고 아카데믹사회학을 주로 설명하는 한편 비판사회학에 대한 개괄과 최근 완간한 역사사회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김기봉 교수는 사회를 담당했다. 김기봉 교수(경기대학교)는 발제회 사회를 담당했다. ▲ 정수복 박사는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학위의 취득과 귀국 후 '프랑스 사회학의 지성사'라는 글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사회학연구계파들과 교류를 하면서 한국사회학사를 연구할 필요를 느껴 현재까지 주력했다고 한다. 학문의 세계는 계보와 전통이 없으면 세월이 흘러도 학계 전체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이 빈약하기 마련이며, 한국사회학의 경우 역사가 70년에 달하지만 학계의 구성원들이 공유할 지적 자산은 빈약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학자가 쓴 고전이나 필독서가 없다는 것이 그러한 반증이며, 이제라도 한국사회학의 역사에서 중요 인물과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해 공유자산을 만들 필요가 있고, 한국사회학의 역사 연구를 통해 동 학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조명하며 미래로 나갈 방향마저 가늠할 수 있게 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한국사회학의 역사를 기록한 작업이 기존에 있었지만 특정한 시기나 학자들에 국한한 연구가 많았고, 그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통사론적으로 연구는 없었기에 이번에 출간한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로서 부족하나마 기존 연구와 구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사회학이 70년 되었지만 대학에서 개설된 사회학과들이 서양사회학의 역사를 가르침에 치중한 나머지 한국사회학의 역사는 등한시 한 느낌이며, 선대 사회학자들이 한국사회학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후대에게 서양사회학을 추종하고 모방하게 하는 학문적 풍토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저자는 3세대 사회학자로 자임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학의 기초돌을 놓은 1세대로 이상백, 이만갑, 배용광, 이효재, 이해영으로 보고, 정형화한 2세대를 최재석, 김경동, 한완상, 신용하, 김진균, 박영신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바, 초창기와 현재 젊은 층의 중간에 낀 자신이 한국사회사학의 통사를 기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는 대부분 한국사회사학의 역사를 다룬 문헌들은 학계 내부를 전공분야별로 구분해 연구주제의 변화나 논문 및 저서의 증감 등을 양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서 시기별로 어떤 사회학적 연구가 있었는지에 대한 도움을 주지만 학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는 도움을 못주는 맹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계를 지적인 흐름을 기준으로 구분해 아카데믹 사회학과 비판사회학, 역사사회학 등으로 구분해 4권의 책을 엮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지성사적인 3가지 흐름의 구분은 각각의 흐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부터 발전과정 중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사회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을 분석적으로 정리하고, 그들의 연구주제가 개인의 삶과 그가 속했던 시대적 분위기까지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되었다는 평가다. 1~4권에는 11명의 주요 한국 주요사회학자들의 삶과 연구주제, 연구방법론, 주장하는 사상 등등이 기술되어있다. 1권에는 세계와 한국사회학의 개괄, 2권은 아카데믹사회학자로 구분되는 이상백, 배용광, 이만갑, 이해영, 김경동을 기술, 3권에는 비판사회학자로 구분된 이효재, 한완상, 김진균 등, 4권은 역사사회학자로 구분된 최재석, 신용하, 박영신 등을 다뤘는데 누락된 사회학자들이 있고, 신예학자들도 많이 있지만 지면이나 시기 등에 대한 한계가 있기에 별도의 연구들이 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회학의 계보에서 아카데믹사회학이 주류사회학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동료사회학자를 청중으로 해 (연구방법론이나 지향점 등)전문적인 학술지식을 생산하는 전문가 중심의 사회학이나 주류사회학이 영구불변의 객관적 진리는 아니므로 그같은 전제들을 상대화해서 성찰 및 비판하는 비주류사회학으로서 비판사회학(실상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을 공론화해 비평하는)이 성찰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역사사회학은 사회학 자체가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진보하는 기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으로서 역사학적인 학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에 주력한 분야라고 한다. 역사사회학은 한국의 사회학이 서구 사회학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찾아 재구성하며 한국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즉, 역사서술은 우리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가야하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나름의 서사가 있어야 하고, 그 서사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 국가, 글로벌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비로서 역사사회학적인 성과물이 나올 것이고, 그 성과물은 서로간에 공유됨으로서 빛을 발할 것이기에 「한국사회학의 지성사」가 쓰여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공유의 장으로서 학술장에서는 참가 주체간에 우애와 협력 뿐 아니라 경쟁과 갈등이 벌어질 것인데 이 모든 것은 학문의 발전상 필요한 것들이고 다만 학계 내에서 연구자원의 공정배분과 업적에 대한 공정한 보상들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백영 교수가 토론을 담당했다. ▲ 김백영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는 한국 사회학자나 전세계 사회학자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대작이며, 1946년 사회학과가 창설된 이래 75년간 축적된 한국사회학의 역사와 관련한 역사정리가 일부 있어왔지만 이 책의 저자 정수복 박사처럼 한국사회학계 전체의 흐름을 총망라한 작업은 없어왔는데 이처럼 정리한 것은 난제중의 난제였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발생한 것으로 대단한 사회학적 공로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가 사회학계를 3가지로 구분한 것은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태생적으로 해외로부터 이식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몰역사성을 띤 주변부 사회과학의 분과처럼 보이기도하고, 인문학과 근친관계라고 볼 만큼 타 학문과의 경계가 매우 낮음으로서 구별이 어렵고, 현대 한국근대화의 압축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노출되는 학문이라는 특징이 있기에 이전에는 누구도 정리를 실행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을 했다. 저자가 한국사회학을 아카데믹과 비판, 역사 등으로 구분해 11명의 주요인물을 다뤘는데 그 비중이 5:3:3으로 배분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수의 비중을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1천 명: 233명: 극소수 등 대단히 차이가 있어서 오해도 있을 수 있지만 마치 삼국연이에서 최약체인 蜀(촉)나라를 정통으로 세워 대등하게 대입시킨 모습이 연상되며, 그럼으로서 한국사회학의 계보학을 역동적으로 설득력있게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가 파리에서 돌아와 한국대학에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사회학자요 작가로서 구도자적인 집필활동을 펼쳐왔는데 이미 그는 수 많은 연구서와 대중서를 공개했고, 특히 2007년에 「한국인이 문화적 문법」이라는 책에서 한국 근대성과 한국사회의 문화적 코드라는 공통어를 사용해 학문분과들 사이의 장벽, 학계와 비학술계의 장벽, 보혁의 장벽 등을 뛰어넘었던 모습을 이미 보았다고 밝혔다. 이 책은 세계 사회학의 역사와 지형도 속에서 한국 사회학의 100년 계보학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서술의 형식이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의 역사를 가용해 1, 2차 자료를 총망라해 객관적인 기술을 이어가는 성과가 있었지만 사회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제도적으로 구분이 쉽지 않아 복잡한 국내 지성사의 영향관계를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워 보이며 1권의 경우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의 사회변동과 사회학전개의 양상을 모두 담아 충분히 입체적으로 다루는 방식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사실 이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한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 저서의 연구대상시기를 90년대 중반 정도까지로 한정되어있기에 이에 대한 향후 보완도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 이황직 교수가 토론을 담당했다. ▲ 이황직 교수(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1~4권은 한국의 해방 이후 주요 사회학자 11명의 학문과 삶을 통해 한국 사회학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낸 최초의 서울이라면서 한국 사회학이 7십여 년의 역사를 지님에도 학문적 정체성이 약하고, 내세울 이론 전통도 없는 상황에 해외의 이론적이고 제도적인 도입에 중시하고, 별다른 학문적 논쟁보다는 형식적인 토론만 오가는 학술 풍토에 대한 성찰로 평가하고, 그 성찰은 실천을 전제 해야 하며, 한국 사회학의 전통을 수립하려면 과거 한국 사회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수복 저자는 위와 같은 배경으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지성사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했다. 저술물이 지성사라는 형식을 취한 것이 궁금하다며, 사실 역사를 저술함에는 제도 성립사나 사상사, 논쟁사, 분과사 등으로 가능한데 저자는 11인의 사회학자들을 다룸으로서 지성사라는 형식을 택했는데 한국 사회학의 주체를 밝히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학사가 역사의 주체가 있는 역사서술이 되어서 주체적이려면 주체자들의 저서와 논문을 내한 논의가 필수이기 때문이며, 특히 사회학이라는 제도의 설계자 이상배이 과학적 사회학을 한국 사회학의 지향점으로 설정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지성사의 서술은 사상형성의 구조적 제약보다 이에 대응할 예외적 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더 강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성사 2권에서는 아카데믹 사회학을 다루면서 주류 사회학자들이 당대 정치와 경제적 요구에 직접 부응하는 실증적 조사연구와 보수적 해석에 치우친 나머지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적 사회개입의 역할에 미진한 추세를 설명하고, 정수복 저자가 우리사회에 대한 성찰을 않는 주류사회학에 대해 비판적 견지가 보인다고 밝혔다. 지성사 주체자 선정에 있어 연구의 범위의 적합성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안보였으나 오히려 한국 사회학사의 삼분체계(아카데믹, 비판, 역사)를 제시함으로서 사회학의 한 분과로서 역사사회학을 독립된 범주로 제시할 수있는 단초를 마련함과이 방식은 향후 한국적 사회학 이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는 틀이되었다는 평가를 했다. 아쉬운 점은 여러 한계점이 있겠지만 조선 후기, 구한말, 식민시기 등에 대한 연구를 향후에 진행해야할 필요를 제시했다. ▲ 종합토론이 발제 후 진행되었다. ▲김명구 소장이 인사말을 담당했다. 김명구 박사(월남시민문화연구소장)는 인사말씀을 담당했으며, 연세대학교에서 민경배 교수에게 교회사를 지도 받을 때 교회사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사회학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박영신 교수의 방식과 매우 비슷했던 과거를 설명했다. 정수복 박사는 사람으로서 한정된 시간과 지혜를 사용해 이같은 저술을 남기는 작업은 마치 목사님 같은 종교인의 삶처럼 헌신을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로서 작가로서 정 박사는 매일 각 3시간 가량씩 오전에는 읽어야 할 책을 도서관과 집에서 읽고, 오후에는 인터넷 등 각종 서신을 통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저녁에는 체력단련 및 원고작성(최소한 4페이지 이상) 등을 꾸준히 함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고있다고 밝혔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7-11
  • 권오주 박사,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
    ▲세계한인재단 권오주 총재(왼쪽 두번 째)와 박상원 총회장(오른쪽 끝)이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김성만 지도 목사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성만 지도목사, 권오주 총재, 민병근 교수, 박상원 총회장.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사진 오른쪽부터)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권오주 박사,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 박상원 총회장, 민병근 교수· 공상정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에 임명장 수여 권오주 박사가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했다. 권 박사는 5일 오전 11시30분에 서울 종로구 소재 경복궁 식당 관훈점에서 세계한인재단 임원들을 초청한 가운데 총재 취임 오찬 모임을 마련했다. 박상원 박사(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모임에서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시지만,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재단 활동 역시 활발하지 못했다”며 “이제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왕성한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시점에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로 취임하신 권오주 박사께서 임원 여러분과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에 따라 오늘 모임이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은 김성만 세계한인재단 지도목사의 개회 선언에 이어 오찬 기도, 권오주 박사의 세계한인재단 총재 취임사 순으로 이어졌다. . 권오주 총재는 취임사에서 “그동안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을 중심으로 봉사해온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한 토대위에서 견고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세계한인재단을 통해서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만방에 드높이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세계한인재단 2대 총재로서 임원 여러분 및 회원들과 함께 재단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 총재는 “나의 이름이 오주인데 우리 부모님이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뜻을 펼치도록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설명한데 이어 “지난 날 미국·일본·유럽·남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지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던 적이 있다. 때로는 그 나라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만한 한인이 없는 경우 한인 선교사나 하나님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분들에게 선교비용 지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서 봉사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덧붙였다.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사진 오른쪽부터)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상임대표 총회장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민병근 교수(성균관대학교)를 임명한 후 임명장을 수여했으며,세계한인재단 올림픽후원회 홍보위원에 화교 3세 출신으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공상정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사진 오른쪽부터)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7-07
  •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 박상원 세인트미션대학교 총장 ▲ 백석균 세인트미션대학교 교수 ▲ 백석균 교수 부부 ▲ 세인트미션대학교 교수취임식 순서위원들과 백석균 교수 가족, 친지 국제대체의학협회 이사장 백석균 씨가 미국 세인트미션대학교(총장 박상원 박사)의 교수로 초빙되어 지난 3월 22일 서울한방진흥센터 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취임했다. 박상원 총장은 백석균 교수를 교수로 초빙함으로 인해 그가 40년간 쌓아온 동양의학지식과 대체의학지식을 전세계의 모든 인류를 위해 더욱 크게 쓰이게된 점을 축하했다. 백석균 교수를 세인트미션대학교로 모시게 된 점은 분명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박 총장이 책임지고있는 세계한인재단의 건강관리위원회 회장으로도 모시게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 각지의 한인들에게 건강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있으며, 가깝게는 박 총장이 대한노인회가 발행하는 '혜인시대'라는 신문과 연관되어 활동하고있는만큼 동 신문에 백 교수의 건강칼럼을 정기적으로 수록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밝혔다. 백석균 교수는 한국 한약재의 70%를 유통하고있는 서울 약령시장에 발을 디딘 25세 때부터 현재까지 약 39년간 쉬지 않고 연구와 임상활동을 매진해왔던 역사에 이제는 세인트미션대학교의 교수로서 주어진 기회에 전세계 사람들의 건강에 일조할 수 있게되었으므로 최선을 다 하겠다고 취임사를 밝혔다. 사람이 건강해지는 방법에는 의식주 모두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그것을 주관하는 주부들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여성들을 향한 건강교육분야, 어머니들의 식생활개선분야 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매진하겠다며, 이런 기회를 준 학교당국에 감사를 밝혔다. 려용덕 세인트미션대학교 대학원장은 예사를 통해 미국대학교의 체계와 운영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밝히고, 백석균 교수가 연구한 동양의학과 대체의학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이롭게할 도구로서 잘 쓰이고, 후학들을 양성함에도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남욱진 교수(희랍어 전공)는 개회기도, 윤대혁 세계한인재단 차세대후원회장은 백석균 교수의 의학적 및 학술적 성과에 대한 설명을 했다. 백석균 교수는 중국 연변대학교의학원 졸업(중의사 취득), 질병없는 사회만들기운동본부 이사장, 국제대체의학협회 이사장, 세계한인재단 건강관리위원회 회장, 국제 자연치유 푸드전문가 협회장, 국국 고의서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건강정책위원, 한국의과학연구원 발효 명장, 아이스하키팀 하이원 팀닥터, 국제 체형관리사,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평가위원, 주식회사 블루월드 대표이사 등의 경력을 갖고있다고 한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3-22

실시간 한국 기사

  • 국가기간산업 한국천문학 발전 공로
    ▲ 나일성 교수(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故 이원철 박사의 마지막 남은 생존 제자로서 이날 주제강연을 통해 이 박사의 업적이 현재 한국과 세계 과학계와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 이상기 씨(고 이원철 박사의 손자, 왼쪽으로부터 첫번 째)와 조규태 서울YMCA 회장(넷 째), 김인복 서울YMCA 이사장 등 주요 인사들이 유품과 사진전을 돌아보고있다. ▲ 이원철 박사가 생존시에 완성했던 다양한 논문들의 실물이다. 주최측은 실제본을 대여해 약 10일간 전시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페이드 변광성인 독수리자리 에타'를 연구해 지난 1926년 이학박사학위를 미국 미시건주립대학에서 취득하고, 귀국해 한국 천문학의 기틀부터 발전까지를 감당했던 故 우남 이원철 박사의 제 60주기 추모식이 진행되었고, 우 박사가 연관 맺었던 과학기관 및 시민단체의 후배들이 그 뜻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했다. 기상청(기상청장 유희동)과 서울YMCA(이사장 김인복), 연세대학교(총장 서승환), 인하대학교(총장 조명우), 한국천문연구원(원장 박영득) 등의 주최로 지난 3월 14일 서울YMCA '우남 이원철 홀'에서 다수의 주요관계자가 모인 가운데 '우남 이원철 박사 제 60주기 추모기념식'을 개최했다. 故 이원철 박사(1896~1963)는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수물과를 1916년 졸업하고, 1922년 미국 엘비온대학교 학사학위, 1923년 미시건주립대학교에서 천문학 석사학위, 1926년 미시건주립대학교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인 독수리자리 에타를 연구'하여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으로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 및 이사장, 서울YMCA 이사 및 이사장, 1945년 경성측우소를 시작으로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 1954년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 등을 거쳤으며, 한국천문연구원은 故 이원철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1974년 대통령령으로 국립천문대(현 한국천문연구원)가 설립된 인연 등으로 추도회 자리에 함께 모였다. 특히 서울YMCA와 이 박사의 인연은 1935년 이사직을 감당하기 시작해 동회가 운영하던 영창학교 강사로서 청소년들을 지도했고, 1951년에는 부이사장, 1955년에는 이사장, 1958년에는 대한YMCA연맹 부회장 등을 감당하면서 수 십년간의 인연을 이어왔고, 사후인 1976년 유족 김화순 여사로 하여금 금곡리 임야 36,000여 평과 용산구의 대지 170평과 건물 68평을 기증함으로서 사회봉사실천의 모범을 보여줬으며, 이에 서울YMCA는 종로 회관의 대강당을 '우남 이원철 홀'로 명명해 지속적으로 그 유지를 받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날 추모기념식과 기념사진전이 개최되었고, 우남 이원철 박사의 유일한 생존 제자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가 추모강연회 발제를 담당하면서 이원철 박사의 천문학적 연구를 설명하고 한국천문학계를 위한 발전노력이 어떤 영향을 현재 끼쳤는지를 조명함으로서 이날 참석자들에게 많은 감명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 추모기념식 우남 이원철 박사 제 60주기 추모기념식은 정애리 교수(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 유희동 기상청장은 우남 이원철 박사의 서거 60주기를 기리며, 그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온 후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며 감회를 밝혔다. 이 박사는 천문학자였지만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의 기상 분야에서 처음 가는 길을 걸었고, 우리 후배들이 그 뒤를 따를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길을 닦아주셨다고 동영상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해방 후 신설된 국립중앙관상대장을 맡아 전문인력 양성과 기상업무체계구축 등 기초과학발전에 초석을 세웠고, 기상 분야의 선구자로서 우리를 위해 최고의 열정과 시간 및 재증을 기부해주신 점 이 박사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안전한 삶이 없었을 것이라며, 떠나 가신지 60년이 된 지금도 그 가르침을 되 새기며 자란 후학들이 기상 과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를 세계 기상 선도국으로 만드는 중 이기에 후배들로서 그 뜻을 가장 기리는 방법은 항상 국민을 생각하고, 예보역량 등 관련 기술 향상에 힘을 모아 세계 최고의 기상 서비스로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인복 이사장(서울YMCA)은 창립 120주년을 맞는 서울YMCA는 독립운동단체요 민족운동단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서 대일 항쟁시기에 YMCA활동자들 대부분이 민족지도자였으며, 우남 이원철 박사도 YMCA운동을 통해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한 대표적 YMCA인물로서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체포될 정도로 애국 애족의 정신이 투철했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1948년 초대 기상대장으로 취임해 조선총독부시절부터 내려오던 기상대라는 명칭을 '국립중앙관상대'로 변경했으며, 특히 서울YMCA 재건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한국전시기에 파괴된 회관을 되살리던 중 재차 이사장에 선임되어 지속적으로 봉사한 것은 서울YMCA의 재건이 민족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이원철 박사가 남긴 얼은 지금 서울YMCA 운동의 맥 안에 살아있다며 현재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 서승환 총장(연세대학교)은 연세대학교와 YMCA, 이원철 박사는 대단한 인연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을 흔히 연희전문으로 알지만 사실은 1915년 봄 조선기독대학이라는 명칭으로 현재 종로의 서울YMCA회관을 임차해 학교를 열었으며, 조선총독부는 대학이라는 명칭을 빼고 연희전문학교로 인가했으나 조선기독대학은 문학과와 신학과, 상과, 수학급 물리학 등 다양한 학부를 설치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추구해오던 중이었고, 이원철 박사는 개교 첫 해 들어온 61명의 학생의 일원으로서 졸업 후 2년간 모교의 수학강사를 하다가 미국에서 1926년 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일제 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임에도 귀국해 연희전문학교 최초의 동문교수로서 교육활동을 한 실천가였다고 설명했다. 이원철 박사는 그의 활동기가 우리에게 민족사적인 비극이자 극빈의 시대였지만 대한민국이 과학적으로 뒤떨어지는 쓰라림을 우려하면서도 과학만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일반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건전한 과학을 추구했고, 과학의 발전이 전부는 아니지만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 속에 이처럼 과학의 안내자가 되셨기에 천문학과 기상학 분야 뿐 아니라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과 연구가 이뤄지도록 발전하는 중이고, 이 박사와 같은 기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 조명우 총장(인하대학교)은 이원철 박사는 1953년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을 감당했다면서 일제 강점기에도 꿋굿히 학문연마와 후학양성에 매진해 해방 조국의 초석을 닦는 중이었으나 6.25전쟁으로 또 다시 잿더미로 변한 조국의 재건에 매진했는데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인재의 양성이며, 그가 경험한 선진 미국의 교육체계는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인재였다고 평가했다. 이 학장이 1953년 인하대를 만났을 때는 조선인들이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의 이민지에 정착한지 50년이 되는 해였고, 해외 동포들이 고된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민족의 얼을 이어나가려는 교육사업으로 투여되어 민족 대학 인하대학교로 구성된 섭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원철 학장이 반석으로 기초를 쌓은 인하대학교는 개교 70주년이라는 성장과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도입부라며, 기술공학연구를 바탕으로 한 인재양성과 혁신연구는 대한민국 발전에 원동력이 되어온 만큼 대담한 용기를 가진 젊은이들을 배출하겠으며, 학장님의 뜻을 이어가는 참된 스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박영득 원장(한국천문연구원)은 이원철 박사는 해방 후 국립중앙관상대를 설립해 초대 대장으로 재직하고, 한국의 천문 및 기상과 관련 인재를 키우고, 재반 제도를 확립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소원했던 천문대건립의 소원을 못이루고 영면했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1974년 대통령령으로 국립천문대가 발족, 1978년 소백산관측소 준공, 1985년 우주전파관측소 솔치, 1996년 보현산 천문대 준공, 1999년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출범되는 일련의 역사적, 사상적 관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06년 보현산천문대의 1.8미터 광학망원경으로 소행성을 발견해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로부터 승인을 받아 '이원철'이라고 명명했고, 한국천문연구원 본원에 '이원철 홀'을 개설해 그 뜻을 기린 결과 이제는 세계 천문학의 변방이 아닌 선도하는 조직이 으로 성장했고, 미래 우주시대를 이끌고자 전 구성원이 노력중이라고 강조했다. ○ 조규태 회장(서울YMCA)은 이원철 박사는 세계 열강의 침탈야욕으로 국운이 혼미하던 때인 1896년 8월 19일 당시 지명으로 한성부 남서 관통방 다동계, 즉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에서 우계이씨 이중억의 4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약력을 낭독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선린상업학교에서 수학하고, 1915년 연희전문학교 수리물리학과에 입학해 1회 졸업생이 된 후, 1922년 미국 엘비온 대학 이학사, 1923년 미국 미시간대학 이학석사, 1926년 미시간대학 이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는데 한국의 학술사적으로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이학박사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사학위는 독수리자리 에타별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맥동변광성임을 밝혀 우리 민족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대학과 YMCA르 오가며 천만학을 강의했고, 흥업구락부를 창립해 비밀독립운동을 벌인 건으로 일제경찰에 체포당하면서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이 박탈되고, 1948년에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으로 부임, 1954년 인하공과대학교 초대 학장으로 부임, 1957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의 합병기에 연세대학교로 발돋움함에 큰 공로를 세웠다고 밝혔다. 서울YMCA와는 청년시기부터 인연이 있어왔고, 1955년과 1960년 이사장을 두번 역임, 1961년까지는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고 밝혔다. 1960년에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되고, 1961년에는 연세대학교 학교법인 이사장을 역임, 1963년 3월 14일 소천해 이날까지 60년이 지나고 있으며, 부인 김화순 여사가 고인의 뜻대로 용산구와 남양주의 토지와 주택 등을 기증하는 등 실천의 삶을 살았으며, 서울YMCA는 이 박사의 희생과 봉사라는 유지를 받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 연세대학교를 대표해 서승환 총장이 이상기 씨(이원철 박사 유가족 대표)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서 총장은 이원철 박사가 우리나라의 기상학과 천문학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후학양성과 사회봉사 등 다양한 공로를 기리며 이패 수여한다고 밝혔다. ○ 이상기 씨(이원철 박사 유가족 대표)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부친께서 할아버지는 매우 훌륭한 분이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에 따라 그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받았다면서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뜻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 기념강연회 제 2부 기념강연회는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가 '우남 이원철의 생애와 정신'을 주제 발제했고, 유장렬 센터장(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이 사회를 담당했다. ○ 유장렬 센터장은 과학기술인 중에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현저한 사람을 예우하는 '과학기술유공자예우 및 지원'을 하는 단체로서 이 법이 제정된 후 첫째로 이원철 박사를 2017년 지정한 바 있다고 밝혔다. 동 법률은 과학기술유공자를 예우 및 지원을 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과학기술인의 특성에 맞는 예우와 지원 제공의 제조적 틀을 갖추고 있으며, 유공자로 선정함으로서 후속 세대의 역할에 모델이 될 과학기술인 상을 제시하고, 일반에게 알리며, 과학기술자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예우와 지원체계를 확립, 전문성있는 지식나눔에 적극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나일성 명예교수(연세대학교)는 자신은 故 이원철 박사의 직계 계승자요 마지막 직계 생존자라고 소개하고, 자신도 '나일성' 별이 지정되어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 전 이원철 박사 50주기에도 이와 비슷한 강연 발제를 했다면서 당시는 인하공과대학의 설립을 주제삼았다면 오늘은 이원철 박사의 독수리 에타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설명했다. 이원철의 독수리 에타별에 대한 이해는 별의 특징 중 비변광과 변광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나 교수는 태양과 같이 항상 일정함을 유지하는 별은 비변광이라고 하고, 별의 부피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변광성 별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고래자리의 별을 본 사람과 못 본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1596년 고래자리 오미크론 별의 경우 변광별로 알려졌고, 구드리케에 의해 1743년에야 이 사실이 주목을 받으며 별의 주기성이 발견된 내력을 밝혔다. 이 별은 북극성 만큼 밝다가 어두워서 안보이는 주기적 특징이 있으며, 그 주기는 3백년에 달하며, 이제는 이런 류가 '미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천체에 많다고 알려져 기정사실이 되었으며, 이제는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맥동성'이 가설로서 샤플리에 의해 1915년 주장되지만 당시의 기술은 이런 어두운 별을 관측할 대형망원경이 귀했다는 한계가 있고, 그 맥동의 주기가 길면 한정된 망원경을 다수의 관측자가 교대로 사용해야하기에 연구주제가 되기도 어렵기에 맥동주기가 짧은 별을 선호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원철이 연구하게되었는데 그의 스승인 루퍼스가 연구과제로 허락해서 박사학위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학박사가 된 이원철은 바로 귀국해 연희전문학교의 교수가 되었는데 논문을 학술지에 수록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오랜 기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인데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과학동향을 알기도 어려운 근대시대에 포기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이원철 박사는 굳이 힘들여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6년만에 학술지에 싣는 성실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원철 교수가 해방과 동란 후 기상대의 시초석을 쌓아가던 시기는 모든 것이 부족했는데 국가적으로 날씨를 일지로서 기록하는 것을 역서라고 하는데 조선역서와 광무역서, 1911년부터 민역역서 등이 발간되던 중이고, 이 박사가 기상대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45년에 시작해 역서 발간에는 9개월의 시간 밖에 없던 중인데도 발간을 시작했지만 당시 종이파동이 벌어진 상황이라 역서책의 크기나 분량이 형편 없다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형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 6.25전쟁의 발발했고, 당시 북한의 인민군은 남한의 요직자는 강제 납북해가는 중이었는데 여기에 안잡히기 위해 부인 김화순 여사와 도피생활을 하고, 극약을 음독하기도 하는 등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 전쟁 후에는 역서를 제작하는 연속적인 국가기간데이터를 수호한 공로가 크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천문학자로서 역서 발간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국가의 존망이 걸릴만큼 중요한 업무이며, 특히 당시 중국식 역서, 일제식 역서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이 한국식 독자적 역서 발간의 새 지평을 열은 공로가 크지만 일반인들은 그 중요성을 잘 이해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 박사의 연구주제였고, '이원철 별'은 소행성으로서 다른 것임을 설명했다. □ 기념사진전 이원철 박사와 가족, 직장, 사회 활동 등의 모습을 담은 기념 사진과 이 박사의 논문들 진본, 본인이 사용하던 천문학 계측장비 등을 서울YMCA회관 내 친교실에서 전시중이며, 향후 1개월간 전시할 예정이다. 초대형 사진 약 20점과 멀티미디어장비에서 투사회는 사닌 수백점으로 구성되어있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3-04-14
  • 사단법인 한미협회,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 개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사단법인 한미협회(회장 최중경)’ 초청 연설을 하고있다.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정기총회를 사회를 진행하고 있다.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필립 골드버그 대사에게 공로패와 기념품을 수여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미협회,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 개최 연설회에 앞서 정기총회… 2023년 활동 계획 및 예산안 등 다뤄 최중경 회장,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 두 차례 소개…‘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 개최 치하 사단법인 한미협회(회장 최중경 박사)는 6일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 오키드 룸에서 열린 ‘2023년도 정기총회’에 이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초청 오찬 연설회를 개최했다. 정기총회는 최중경 회장 주재로 진행됐다. 정기총회 안건으로는 1.2022년 사업실적 및 결산보고의 건, 2. 신규회원 소개, 3. 임원선임, 4. 2023년 활동 계획 및 예산안 등을 상정해 동의와 제청으로 통과시켰다. 최중경 회장은 신규회원 영입을 위해 개인회원과 법인회원에 대해 세밀히 심사하여 협회 회원자격을 부여했고, 이날 참석자들을 일일이 호명,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후 소개시켰다. 최 회장은 특별히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에 대해서는 두 번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여 소개했고, 매년 1월13일 미국의 국가기념일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지난 1월27일 남산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를 치하했다. ▲박을술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명예대회장(사진 왼쪽부터),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최중경 사단법인 한미협회 회장이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2023년 사단법인 한미협회 정기총회에서 아키바 토르(Akiva Tor) 주한 이스라엘 대사(왼쪽부터),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김 제임스 사단법인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대표이사, 박을술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 명예대회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기총회 폐회 후에는 오찬이 이어졌고, 오후 1시에 최중경 회장의 환영사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미동맹의 발전과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대한민국은 미국의 파트너(동반자)이자 미국 등 우방국의 리더라고 단언하며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경제와 국방전략과 외교등을 설명하며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동맹 강화가 매우 중요하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의 나라임을 강조했다. 한편 이상기후로 뉴욕에 폭설사태에 있었던 한국인 방문자와 미국 가정에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한미간 민간교류의 중요성을 한미동맹만큼이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미 간 두 나라 국민들이 우정을 나누는 미래로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김치의 날과 한복의 날이 제정되어 미국에서 기념하는 등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도 치하했다.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 박상원 박사는 필립 골드버그 대사에게 지난 1월27일 개최되었던 ‘제1회 대한민국 미주 한인의 날 기념대회’에 축사를 보내 대독하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참석하고 싶었으나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는데, 내년 기념대회에 다시 초청해 주면 꼭 참석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제1회 대한민국 미주한인의 날 기념대회’는 사단법인 한미협회와 세계한인재단 등이 주최했고, 최중경 박사와 박을술 박사가 명예대회장을 맡았다.<기사 및 사진 제공: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3-02-07
  •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 진순기 무궁화중앙회장에 임명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21일 서초포럼에서 열린 조찬자리에서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 및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이 민병근 성균관대 교수(모자쓴 이)에게 일본 지부 회장 회장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 진순기 무궁화중앙회장에 임명 박 총회장, 서초 포럼에서 ‘미주한인과 한인사회의 비전’ 제하 기조연설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 일본 지부 회장에 민병근 교수(성균관대) 임명 세계한인재단(상임대표 총회장 박상원 박사)이 본보에 박 총회장의 최근 활동을 전해왔다. 세계한인재단이 본보에 보낸 23일자 메일에 따르면, 박 총회장은 지난 14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가진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유인학 전 국회의원·제16회 세계한인의 날 조직위원장과 정영숙 한식 명인에게 공로상을 시상하고 감사장과 임명장을 수여했다.(본보 10월16일자 보도) 박상원 총회장은 특히 세계한인재단 마산회장으로 봉사해온 진순기 회장을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으로 임명했는데, 21일 서초포럼 제156회 행사장에서 박상원 총회장이 진순기 세계한인재단 무궁화중앙회 회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박 회장은 아울러 이날 키노트 스피커(기조연설자)로 ‘미주한인과 미주한인사회의 비전’ 제하의 강연을 했다. 이보다 앞서 서초포럼 권기덕 회장은 민병근 교수(성균관대)를 서초포럼 일본 지부 회장으로 임명하는 임명장을 수여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이 21일 오전 제156차 서초포럼에서 ‘미주한인과 미주한인사회의 비전’ 제하의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 위 아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오른쪽 두번 째)이 서초포럼 일본 회장으로 임명된 민병근 성대 교수(오른쪽)와 김학우 세계한인재단 총감독(왼쪽 끝) 등과 21일 오전 제156차 서초포럼이 진행될 입구에서 잠시 카메라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다. ▲나경원 전의원(왼쪽부터)이 제156차 서초포럼 현장에서 박상원 세계한인재단총회장, 서초포럼 일본 지부 회장 민병근 성균관대 교수(모자쓴 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세계한인재단총회장이 제156차 서초포럼 현장에 서나경원 전의원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10-24
  • 한국 민족과 함께 한 서울YMCA 사명 강조
    조규태 서울YMCA회장(법학박사)은 서울YMCA 제 27대 회장으로 지난 2020년 9월 1일 취임했다. 조규태 박사가 취임 한 이래 펜데믹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서울YMCA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있어 주인공을 오늘 인터뷰 해서 독자 제위께 소개합니다. 질문1: 취임 2주년을 축하드리며 먼저 서울YMCA에 대해 한국의 국민들은 대부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울YMCA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규태 회장: 다양하게 스펙트럼화된 YMCA운동영역으로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YMCA운동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문도 가질 수 있겠지만 시민, 청소년, 사회체육, 평생교육, 사회복지 등을 모두 아우르는 기본 정신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 간다는 기독교사회운동체라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YMCA가 우리민족의 역사적 굽잇길을 헤쳐왔다라는 명백한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열강이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야욕으로 각축을 벌이던 1896년 7월 독립협회가 창립되었으나 만민공동회를 통해 국정개혁 등을 요구하는 과정에 친일 보부상조직인 황국협회의 농간으로 1898년 12월 급기야 강제 해산되게 됩니다. 독립협회의 뒤를 이어 개화자강 조직체로 창립된 것이 바로 우리 서울YMCA, 당시 명칭으로는 황성기독교청년회입니다. 민족운동단체답게 창립 초기에 을사늑약반대, 고종양위반대, 일진회와의 대결 등 민족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1906년 일본 동경에 한국YMCA인 재일본한국YMCA를 창립하여 1919년에 2.8독립선언을 결행, 조선은 자주독립국임을 만방에 포효하였습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재일유학생들 350여 명이 급거 귀국, 전국적인 3.1운동의 동력이 되었으며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 16명, 그 중 박희도, 이필주,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이갑성, 박동완, 양전백, 이승훈 이상 9명이 우리 서울YMCA의 인사였습니다. 항일기 전국체육대전, 농촌운동, 비밀결사 등을 통해 대한독립의 기틀을 다졌으며 민족단결의 구심점이었다라는 말씀을 특별히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2: 임기를 시작할 때 서울YMCA의 상황은 어떠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어떤 각오를 갖고 시작하셨는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조규태 회장: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코로나 정국이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그리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악조건이었지만 코로나팔이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은 짧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년간의 뒤안길을 돌아다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주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취임 2주년을 맞이하여 스피치 컬렉션, 조규태 서울YMCA회장 연설문집 「1,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발간했는데 수록된 연설문이 무려 70여개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사명은 어떤 조건에라도 쉴 수 없는 일입니다. 재정적으로만 보더라도 코로나 정국에서 발생한 손실을 다 메꾸진 못했지만 올해부터 적자를 만회하는 형국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치자면 지난 2021년 4월 21일 ‘고양국제청소년문화센터’를 개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아무리 코로나라는 장벽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결행했습니다. 시온산 작은 성소에서 흐른 물줄기가 광야를 옥토로 만들고 썩은 물을 정화시키는 그런 역사였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양국제청소년문화센터’의 개관은 곧 언약의 물줄기였다 이렇게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의 꿈이 자라는 요람으로, 이렇게 자라난 청소년들이 또 성인이 되어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함께 어우러질 때 인종, 연령, 성별을 초월한 문화플랫폼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할 것입니다. 질문3: 서울YMCA가 창립 120주년을 넘어 2백 주년을 향해 달려갈 텐데 새로운 1백년을 맞는 서울YMCA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조규태 회장: 근세 철학자 칼 힐티(Carl Hilty, 1833-1909)는 ‘인간 생애의 최대의 날은 자기의 역사적 사명, 신이 지상에서 자기를 어떤 목적에 쓰려고 하는지를 자각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만든 목적이 있고 그 피조물은 그 목적 안에서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서울YMCA를 창립도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청년들의 영적, 정신적 조건의 개선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하나님 주신 사명은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조금도 변할 수 없는 지상명령입니다. 다만 YMCA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고 YMCA운동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목적과 구별되는 수단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 YMCA는 다양한 영역의 YMCA운동을 펼쳐 가고 프로그램들을 가동시킵니다. 여기에는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지나 온 100년 동안의 여건과 앞으로 펼쳐질 100년의 여건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얼핏 보아도 AI(Artificial Intelligence) - 제4차 산업혁명시대, 메타버스(Meta Verse), ESG 가치실현, 재난사회안전망 구축 등등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아젠다(Agenda)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YMCA가 찾아내야 하는 많은 운동과제나 프로그램들은 청년들의 영적, 정신적 조건의 개선과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적과 수단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새로운 100년을 향한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YMCA 창립 초기에 구형된 바로 그 목적, 그 사명입니다. 그 목적, 그 사명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질문4: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특히 취임 프로젝트인 Just Love, 사랑실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조규태 회장: YMCA운동의 아이덴티티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사회운동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취임 프로젝트로 YMCA운동의 도약과 전진을 위한 「사명, “Just Love” 사랑실천 프로젝트」를 진수시켰습니다. “All We Need is Love”, 서울YMCA 창립 세 번째 희년을 향한 운동과제입니다. “Just Love” 실천프로젝트를 위하여 5대 중점 추진전략을 선정해 보았고 저는 이를 성경에 나와 있는 「5병 2어」에서 「5병」이라고 명명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시민사회에, 그리고 대한민국사회에 나아가 세계의 형제들에게 먹여야 할 보리떡입니다. 첫째 예수사랑, 주님사랑, 둘째 신체사랑, 영혼사랑, 셋째 형제사랑, 이웃사랑, 넷째 역사사랑, 미래사랑, 다섯째 민족사랑, 세계사랑입니다. 다만 추진전략별 구체적인 운동과제 중에는 특별히 시민운동적 차원에서 전개해야 할 「5병」에 대비한 「2어」가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말씀 중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2어」로 선정, YMCA운동에 접목 시켜가고 있습니다. 주춧돌과 디딤돌을 함께 놓는다는 심정으로 이 모든 프로젝트를 함의한 생명‧평화를 위해 이미 말씀드린 메타버스(Meta Verse)라든가, ESG 크리에이터 팩토리 기반조성이라든가, 재난 안전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진수시켰습니다. 질문5: 어려웠을 때 취임하셨고 기독교사회운동체로서 전문사역자들의 영성이 중요한데 개인의 신앙생활과 실무지도력들의 신앙증진을 위한 노력은 기울이시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조규태 회장: 천지창조 이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해 가십니다. 그것도 소수를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뽑을 때도 소수를 들어 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뽑을 때 주님의 선택기준은 남다릅니다. 빈부귀천, 학력의 높고 낮음 관계 없이 인텔리나 탁월한 자 보다 믿음 좋은 자를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YMCA운동의 사역자에게는 신앙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심부름꾼, 섬기는 자, 종이라는 의미의 사역자 정체성을 상당히 중요시 여깁니다. 늘 하나님과 일대일 대화와 소통할 준비를 갖추려 노력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새벽기도라 생각하고 새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갖가지 문제가 실타래 풀리듯 한꺼번에 해결되는 역사를 체험한 적도 있습니다. 직원월요기도회라든가, 신앙강좌라든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사역자들의 신앙훈련을 시키고 있고 제가 담당하는 다양한 교육에서도 꼭 기독성과 결부시키며 설명을 이어갑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9-27
  • 사회학사의 발전과 주체성을 추구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푸른역사 출판사)」 4권을 완간한 기념으로 종로목요서평에서 사회학사에 대한 발제를 했다. 정수복 박사(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사회학 박사)는 한국에 1946년 서울대학교에 사회과학과가 설립된 이래 사회과학분야가 70여 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고, 동 분야의 시초와 발전사, 연구와 성과 등을 담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를 순차적으로 출간해 최근 4권으로서 완간했다. 종로목요서평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푸른역사 출판사)」 4권의 완간을 기념해 지난 6월 23일 동 서적의 서평을 진행했으며, 4권 전체를 서평 대상으로 해야하지만 시간적인 한계로 인해 1, 2권을 주요하게다뤘다. 저자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를 1권 '한국사회학과 세계사회학', 2권 아카데믹사회학의 계보학, 3권 비판사회학의 계보학, 4권 역사사회학의 계보학 등으로 순차적으로 출간했으며, 이날 토론회의 주 발제에서는 사회학에 관련한 세계 및 한국적인 현황을 설명, 하고 아카데믹사회학을 주로 설명하는 한편 비판사회학에 대한 개괄과 최근 완간한 역사사회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김기봉 교수는 사회를 담당했다. 김기봉 교수(경기대학교)는 발제회 사회를 담당했다. ▲ 정수복 박사는 1989년 프랑스에서 사회학박사학위의 취득과 귀국 후 '프랑스 사회학의 지성사'라는 글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사회학연구계파들과 교류를 하면서 한국사회학사를 연구할 필요를 느껴 현재까지 주력했다고 한다. 학문의 세계는 계보와 전통이 없으면 세월이 흘러도 학계 전체가 공유하는 지적 자산이 빈약하기 마련이며, 한국사회학의 경우 역사가 70년에 달하지만 학계의 구성원들이 공유할 지적 자산은 빈약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학자가 쓴 고전이나 필독서가 없다는 것이 그러한 반증이며, 이제라도 한국사회학의 역사에서 중요 인물과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해 공유자산을 만들 필요가 있고, 한국사회학의 역사 연구를 통해 동 학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조명하며 미래로 나갈 방향마저 가늠할 수 있게 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한국사회학의 역사를 기록한 작업이 기존에 있었지만 특정한 시기나 학자들에 국한한 연구가 많았고, 그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통사론적으로 연구는 없었기에 이번에 출간한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로서 부족하나마 기존 연구와 구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사회학이 70년 되었지만 대학에서 개설된 사회학과들이 서양사회학의 역사를 가르침에 치중한 나머지 한국사회학의 역사는 등한시 한 느낌이며, 선대 사회학자들이 한국사회학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후대에게 서양사회학을 추종하고 모방하게 하는 학문적 풍토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저자는 3세대 사회학자로 자임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학의 기초돌을 놓은 1세대로 이상백, 이만갑, 배용광, 이효재, 이해영으로 보고, 정형화한 2세대를 최재석, 김경동, 한완상, 신용하, 김진균, 박영신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 바, 초창기와 현재 젊은 층의 중간에 낀 자신이 한국사회사학의 통사를 기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는 대부분 한국사회사학의 역사를 다룬 문헌들은 학계 내부를 전공분야별로 구분해 연구주제의 변화나 논문 및 저서의 증감 등을 양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서 시기별로 어떤 사회학적 연구가 있었는지에 대한 도움을 주지만 학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는 도움을 못주는 맹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학계를 지적인 흐름을 기준으로 구분해 아카데믹 사회학과 비판사회학, 역사사회학 등으로 구분해 4권의 책을 엮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지성사적인 3가지 흐름의 구분은 각각의 흐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부터 발전과정 중 중요한 역할을 한 대표적 사회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을 분석적으로 정리하고, 그들의 연구주제가 개인의 삶과 그가 속했던 시대적 분위기까지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되었다는 평가다. 1~4권에는 11명의 주요 한국 주요사회학자들의 삶과 연구주제, 연구방법론, 주장하는 사상 등등이 기술되어있다. 1권에는 세계와 한국사회학의 개괄, 2권은 아카데믹사회학자로 구분되는 이상백, 배용광, 이만갑, 이해영, 김경동을 기술, 3권에는 비판사회학자로 구분된 이효재, 한완상, 김진균 등, 4권은 역사사회학자로 구분된 최재석, 신용하, 박영신 등을 다뤘는데 누락된 사회학자들이 있고, 신예학자들도 많이 있지만 지면이나 시기 등에 대한 한계가 있기에 별도의 연구들이 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회학의 계보에서 아카데믹사회학이 주류사회학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동료사회학자를 청중으로 해 (연구방법론이나 지향점 등)전문적인 학술지식을 생산하는 전문가 중심의 사회학이나 주류사회학이 영구불변의 객관적 진리는 아니므로 그같은 전제들을 상대화해서 성찰 및 비판하는 비주류사회학으로서 비판사회학(실상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점들을 공론화해 비평하는)이 성찰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역사사회학은 사회학 자체가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진보하는 기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으로서 역사학적인 학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에 주력한 분야라고 한다. 역사사회학은 한국의 사회학이 서구 사회학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찾아 재구성하며 한국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즉, 역사서술은 우리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혹은 가야하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나름의 서사가 있어야 하고, 그 서사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 국가, 글로벌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비로서 역사사회학적인 성과물이 나올 것이고, 그 성과물은 서로간에 공유됨으로서 빛을 발할 것이기에 「한국사회학의 지성사」가 쓰여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공유의 장으로서 학술장에서는 참가 주체간에 우애와 협력 뿐 아니라 경쟁과 갈등이 벌어질 것인데 이 모든 것은 학문의 발전상 필요한 것들이고 다만 학계 내에서 연구자원의 공정배분과 업적에 대한 공정한 보상들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백영 교수가 토론을 담당했다. ▲ 김백영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는 한국 사회학자나 전세계 사회학자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대작이며, 1946년 사회학과가 창설된 이래 75년간 축적된 한국사회학의 역사와 관련한 역사정리가 일부 있어왔지만 이 책의 저자 정수복 박사처럼 한국사회학계 전체의 흐름을 총망라한 작업은 없어왔는데 이처럼 정리한 것은 난제중의 난제였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발생한 것으로 대단한 사회학적 공로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가 사회학계를 3가지로 구분한 것은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태생적으로 해외로부터 이식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몰역사성을 띤 주변부 사회과학의 분과처럼 보이기도하고, 인문학과 근친관계라고 볼 만큼 타 학문과의 경계가 매우 낮음으로서 구별이 어렵고, 현대 한국근대화의 압축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노출되는 학문이라는 특징이 있기에 이전에는 누구도 정리를 실행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을 했다. 저자가 한국사회학을 아카데믹과 비판, 역사 등으로 구분해 11명의 주요인물을 다뤘는데 그 비중이 5:3:3으로 배분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수의 비중을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1천 명: 233명: 극소수 등 대단히 차이가 있어서 오해도 있을 수 있지만 마치 삼국연이에서 최약체인 蜀(촉)나라를 정통으로 세워 대등하게 대입시킨 모습이 연상되며, 그럼으로서 한국사회학의 계보학을 역동적으로 설득력있게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정수복 박사가 파리에서 돌아와 한국대학에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사회학자요 작가로서 구도자적인 집필활동을 펼쳐왔는데 이미 그는 수 많은 연구서와 대중서를 공개했고, 특히 2007년에 「한국인이 문화적 문법」이라는 책에서 한국 근대성과 한국사회의 문화적 코드라는 공통어를 사용해 학문분과들 사이의 장벽, 학계와 비학술계의 장벽, 보혁의 장벽 등을 뛰어넘었던 모습을 이미 보았다고 밝혔다. 이 책은 세계 사회학의 역사와 지형도 속에서 한국 사회학의 100년 계보학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서술의 형식이 대립과 갈등의 소용돌이의 역사를 가용해 1, 2차 자료를 총망라해 객관적인 기술을 이어가는 성과가 있었지만 사회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제도적으로 구분이 쉽지 않아 복잡한 국내 지성사의 영향관계를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워 보이며 1권의 경우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의 사회변동과 사회학전개의 양상을 모두 담아 충분히 입체적으로 다루는 방식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사실 이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한계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 저서의 연구대상시기를 90년대 중반 정도까지로 한정되어있기에 이에 대한 향후 보완도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 이황직 교수가 토론을 담당했다. ▲ 이황직 교수(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는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1~4권은 한국의 해방 이후 주요 사회학자 11명의 학문과 삶을 통해 한국 사회학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낸 최초의 서울이라면서 한국 사회학이 7십여 년의 역사를 지님에도 학문적 정체성이 약하고, 내세울 이론 전통도 없는 상황에 해외의 이론적이고 제도적인 도입에 중시하고, 별다른 학문적 논쟁보다는 형식적인 토론만 오가는 학술 풍토에 대한 성찰로 평가하고, 그 성찰은 실천을 전제 해야 하며, 한국 사회학의 전통을 수립하려면 과거 한국 사회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수복 저자는 위와 같은 배경으로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지성사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했다. 저술물이 지성사라는 형식을 취한 것이 궁금하다며, 사실 역사를 저술함에는 제도 성립사나 사상사, 논쟁사, 분과사 등으로 가능한데 저자는 11인의 사회학자들을 다룸으로서 지성사라는 형식을 택했는데 한국 사회학의 주체를 밝히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학사가 역사의 주체가 있는 역사서술이 되어서 주체적이려면 주체자들의 저서와 논문을 내한 논의가 필수이기 때문이며, 특히 사회학이라는 제도의 설계자 이상배이 과학적 사회학을 한국 사회학의 지향점으로 설정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지성사의 서술은 사상형성의 구조적 제약보다 이에 대응할 예외적 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더 강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성사 2권에서는 아카데믹 사회학을 다루면서 주류 사회학자들이 당대 정치와 경제적 요구에 직접 부응하는 실증적 조사연구와 보수적 해석에 치우친 나머지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적 사회개입의 역할에 미진한 추세를 설명하고, 정수복 저자가 우리사회에 대한 성찰을 않는 주류사회학에 대해 비판적 견지가 보인다고 밝혔다. 지성사 주체자 선정에 있어 연구의 범위의 적합성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안보였으나 오히려 한국 사회학사의 삼분체계(아카데믹, 비판, 역사)를 제시함으로서 사회학의 한 분과로서 역사사회학을 독립된 범주로 제시할 수있는 단초를 마련함과이 방식은 향후 한국적 사회학 이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는 틀이되었다는 평가를 했다. 아쉬운 점은 여러 한계점이 있겠지만 조선 후기, 구한말, 식민시기 등에 대한 연구를 향후에 진행해야할 필요를 제시했다. ▲ 종합토론이 발제 후 진행되었다. ▲김명구 소장이 인사말을 담당했다. 김명구 박사(월남시민문화연구소장)는 인사말씀을 담당했으며, 연세대학교에서 민경배 교수에게 교회사를 지도 받을 때 교회사연구의 방법론으로서 사회학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박영신 교수의 방식과 매우 비슷했던 과거를 설명했다. 정수복 박사는 사람으로서 한정된 시간과 지혜를 사용해 이같은 저술을 남기는 작업은 마치 목사님 같은 종교인의 삶처럼 헌신을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자로서 작가로서 정 박사는 매일 각 3시간 가량씩 오전에는 읽어야 할 책을 도서관과 집에서 읽고, 오후에는 인터넷 등 각종 서신을 통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저녁에는 체력단련 및 원고작성(최소한 4페이지 이상) 등을 꾸준히 함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고있다고 밝혔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7-11
  • 권오주 박사,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
    ▲세계한인재단 권오주 총재(왼쪽 두번 째)와 박상원 총회장(오른쪽 끝)이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김성만 지도 목사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성만 지도목사, 권오주 총재, 민병근 교수, 박상원 총회장.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사진 오른쪽부터)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권오주 박사,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 박상원 총회장, 민병근 교수· 공상정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에 임명장 수여 권오주 박사가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에 취임했다. 권 박사는 5일 오전 11시30분에 서울 종로구 소재 경복궁 식당 관훈점에서 세계한인재단 임원들을 초청한 가운데 총재 취임 오찬 모임을 마련했다. 박상원 박사(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모임에서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시지만,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재단 활동 역시 활발하지 못했다”며 “이제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왕성한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시점에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로 취임하신 권오주 박사께서 임원 여러분과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뜻에 따라 오늘 모임이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은 김성만 세계한인재단 지도목사의 개회 선언에 이어 오찬 기도, 권오주 박사의 세계한인재단 총재 취임사 순으로 이어졌다. . 권오주 총재는 취임사에서 “그동안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총회장을 중심으로 봉사해온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한 토대위에서 견고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세계한인재단을 통해서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만방에 드높이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세계한인재단 2대 총재로서 임원 여러분 및 회원들과 함께 재단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 총재는 “나의 이름이 오주인데 우리 부모님이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뜻을 펼치도록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설명한데 이어 “지난 날 미국·일본·유럽·남미 등 여러 나라를 방문했는데, 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지도자들의 노고를 치하했던 적이 있다. 때로는 그 나라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만한 한인이 없는 경우 한인 선교사나 하나님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분들에게 선교비용 지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서 봉사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덧붙였다.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대 총재(사진 오른쪽부터)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임명된 민병근 교수,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상원 상임대표 총회장은 세계한인재단 한일미래협력단 회장에 민병근 교수(성균관대학교)를 임명한 후 임명장을 수여했으며,세계한인재단 올림픽후원회 홍보위원에 화교 3세 출신으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공상정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권오주 세계한인재단 제2사진 오른쪽부터)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총회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2-07-07
  •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 박상원 세인트미션대학교 총장 ▲ 백석균 세인트미션대학교 교수 ▲ 백석균 교수 부부 ▲ 세인트미션대학교 교수취임식 순서위원들과 백석균 교수 가족, 친지 국제대체의학협회 이사장 백석균 씨가 미국 세인트미션대학교(총장 박상원 박사)의 교수로 초빙되어 지난 3월 22일 서울한방진흥센터 강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취임했다. 박상원 총장은 백석균 교수를 교수로 초빙함으로 인해 그가 40년간 쌓아온 동양의학지식과 대체의학지식을 전세계의 모든 인류를 위해 더욱 크게 쓰이게된 점을 축하했다. 백석균 교수를 세인트미션대학교로 모시게 된 점은 분명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특히 박 총장이 책임지고있는 세계한인재단의 건강관리위원회 회장으로도 모시게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 각지의 한인들에게 건강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있으며, 가깝게는 박 총장이 대한노인회가 발행하는 '혜인시대'라는 신문과 연관되어 활동하고있는만큼 동 신문에 백 교수의 건강칼럼을 정기적으로 수록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밝혔다. 백석균 교수는 한국 한약재의 70%를 유통하고있는 서울 약령시장에 발을 디딘 25세 때부터 현재까지 약 39년간 쉬지 않고 연구와 임상활동을 매진해왔던 역사에 이제는 세인트미션대학교의 교수로서 주어진 기회에 전세계 사람들의 건강에 일조할 수 있게되었으므로 최선을 다 하겠다고 취임사를 밝혔다. 사람이 건강해지는 방법에는 의식주 모두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그것을 주관하는 주부들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여성들을 향한 건강교육분야, 어머니들의 식생활개선분야 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매진하겠다며, 이런 기회를 준 학교당국에 감사를 밝혔다. 려용덕 세인트미션대학교 대학원장은 예사를 통해 미국대학교의 체계와 운영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밝히고, 백석균 교수가 연구한 동양의학과 대체의학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이롭게할 도구로서 잘 쓰이고, 후학들을 양성함에도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남욱진 교수(희랍어 전공)는 개회기도, 윤대혁 세계한인재단 차세대후원회장은 백석균 교수의 의학적 및 학술적 성과에 대한 설명을 했다. 백석균 교수는 중국 연변대학교의학원 졸업(중의사 취득), 질병없는 사회만들기운동본부 이사장, 국제대체의학협회 이사장, 세계한인재단 건강관리위원회 회장, 국제 자연치유 푸드전문가 협회장, 국국 고의서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건강정책위원, 한국의과학연구원 발효 명장, 아이스하키팀 하이원 팀닥터, 국제 체형관리사,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평가위원, 주식회사 블루월드 대표이사 등의 경력을 갖고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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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2022-03-22
  • 홍순창(홍원표 삼성 SDS 대표이사 부친), 자랑스런 아버지 대상 수상
    제3회 인류효도회복계승대회 효도상 시상식에서 발표한 자랑스런 아버지 대상을박상원 박사 가족 일행이 2021년 10월 10일 홍순창 수상자 거주지 부천을 방문하고 “자랑스런 아버지 대상”패를 홍원표 삼성 SDS㈜ 대표이사 부친 홍순창 수상자에게 전달했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21-10-11
  • 세계한인재단 7주년·박용만 장군 91주기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상임대표 총회장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한인재단(상임대표 총회장 박상원)은 창립 7주년 기념식과 미주 한인 애국지사 박용만 장군 서거 91주년 추모기념식을 서울에 소재한 토박이별당에서 창립 7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동 기념식은 김두형 일본 오끼나와 회장의 후원으로 열렸다고 한다.미국에 세계 본부를 둔 민간단체인 세계한인재단은 7년 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해외 동포들을 위해서 제정된 10월5일 '세계한인의 날(Korean Day)'에 맞춰 창립, 기념식을 개최해 오고 있다고 한다.행사는 박상원 총회장의 사회로 세계한인재단 일본 오끼나와 김두형 회장의 개회기도에 이어 세인트미션대학교 고대종교대학원 대학원장 려용덕 상임고문의 박용만 장군을 소개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두형 일본 오끼나와 회장이 후원한 행사에는 가수 옥희 권사와 장계현 대표가 초청가수로 참석했다. 가수 옥희 권사는 세계한인재단 간증협회 여성 회원으로 동참한다고 주최측은 설명했다.박상원 총회장은 그룹사운드 원로인 조갑출 세계한인재단 상임고문과 김학우 총감독, 정용만 창원회장, 서점동 총무이사, 배경환 일본 교류협회장, 최영도 대외협력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함께 세계한인재단의 발전을 위해서 더욱 단합하기로 뜻을 모았다.한편 박상원 총회장은 “2020년 10월 10일 한국성씨총연합회와 '씨알의 날'에 백가성 대회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서 격조 높은 디너쇼 형식으로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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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7
  • 이화선 세계한인 여성경제협회 회장 골든스타 대상수상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의 섬유기업 (주)화선의 여성 경제인 이화선 CEO가 지난 3월7일 일반 사단법인 " 아시아.일본 우수기업가연맹에서 주관하는 ASIA GOLDEN STAR AWARD의 "마스터 대상" 을 수상했다. 이 마스터상 이외에 기업상,기업가상,상품상도 함께 수상, 4개부분에서 수상하여, (주) 화선의 섬유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예로운 상을 수여하기 위하여 일반 사단법인 "아시아.일본 우수기업가연맹" 의 대표이사장인 레이몬드 우 씨와 이사장인 미치바타 야스요 씨가 함께 "2018 대구 섬유 페어" 기간 중 대구를 직접 방문하여, 표창하며 이화선 CEO를 축하하였다. 한편 일반 사단법인 "아시아.일본 우수기업가연맹" 의 모든 회원사들과 아시아 각국의 VVIP, VIP 로열 패밀리 등이 참가하여 축하하는 자리에서 트로피와 상장을 수여하는 행사는 오는 11월21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다. 레이몬드 우 대표이사장은 이번 (주) 화선의 이화선 CEO의 마스터 대상 수상을 계기로 향후 한국의 견실한 중소기업과 기업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가기를 희망한다, 는 메시지도 전하였으며 3박4일간 대구에 머물며 대구에서 각 분야의 관계자들과 미팅도 진행하며, 긴밀히 상호 협력해 가기로 하였다.
    • 단체와 인물
    • 한국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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