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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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첫 아시아계 장관, 그가 '한국'에 되돌아오기까지[BOOK]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플뢰르 펠르랭 지음

 

"지금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한국은 나를 거부한 나라, 나를 사랑하고 가슴에 품어야 했지만 어두운 골목길 모퉁이에 내버린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어떻게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애정에 감동할 수 있었겠는가."

 

프롤로그에 이렇게 쓴 이 책의 저자 플뢰르 펠르랭이 2012년 프랑스 올랑드 행정부에서 처음 장관에 임명됐을 때, 한국 언론이 그를 주목한 이유는 하나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입양아 출신이란 점이었다. 이듬해 첫 한국 공식방문에서 그가 처음 받은 기자들의 질문도 한국인이라 느끼는지, 프랑스인이라고 느끼는 지였다고 한다. 기대와 달리 그는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뚜렷이 내세웠다.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생후 6개월쯤,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이 프랑스 가정에 입양돼 자랐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한국은 내 정신세계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있었다. 나는 프랑스에서 완전히 동화해서 살았고 정체성 문제나 애정 결핍을 전혀 겪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내 주위의 몇몇 사람이 그랬듯 나도 생물학적 뿌리를 찾으려고 했을지 모른다."

 

이 책은 당시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던 그의 생각을 포함해 어린 시절부터의 삶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사실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아시아계 최초로 장관에 임용된 데다, 명문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그의 이력은 누가봐도 똑똑하고 자신만만한 엘리트를 떠올리게 한다.

 

한데 그는 이런 학교 시절에 '가면증후군'을 겪거나 '내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느낌'으로 살았노라고 들려준다. 섣부른 추측처럼 피부색 때문은 아니었다. 가족의 살뜰한 애정과 뒷받침 속에 자란 그이지만, 이 명문 학교의 다른 학생들처럼 부유층에다 대대로 엘리트 집안은 아니었다. 사회적 계층 차이를 실감한 그의 경험은 엘리트층의 다양성 개선을 위한 '21세기 클럽'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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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2015년 프랑스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으로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모습. [중앙포토]

 

책에는 한층 내밀한 이야기도 담았다. 그에게 입양은 결코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특히 그 불편함은 "다른 입양아가 입양을 매개로 나와 공통점을 찾으려 할 때는 더 심해진다"고 썼다. 그는 이런 내면에 자리한 정서를 에두르지 않고 '수치심'이라고, "잘못된 경로로 세상에 진입한 사람이라는 부끄러움, 부모가 원하지 않은 열등한 사람이라는 수치심, 키우기 힘들어 내다버린 짐승처럼 운명에 맡겨진 사람이라는 부끄러움"이라고 담담히 털어놓는다.

 

한국에 대한 그의 시선은 책 곳곳에서 때로는 아프도록 매섭게 다가온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두고 "개인의 ''가 아니라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기 전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 세계로 입양 보낸 아이들을 향한 집단적 죄의식 형태로 나를 생각하는 것"이라거나, 그가 장관에 임명될 무렵 "한국의 한 여성 국회의원은 필리핀 이민자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심지어 괴롭힘을 당한 일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는 지적은 특히 예리하다.

 

책에는 반전이 있다. 그는 2016년 장관에서 퇴임한 이후 오히려 한국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는 네이버의 제안을 받고 투자회사를 창업하게 된 과정, 이를 통해 한국을 한결 다양하게 접한 경험, 또 무혐의로 판명되기까지 프랑스에서 공직자 윤리 관련 지난한 조사를 받은 과정도 상세히 밝혔다.

 

이제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장관 임명이 그토록 큰 관심을 불렀던 이유를 한국의 현대사를 통해 헤아린다. 그는 "내 운명은 한국이 겪은 운명과 비슷하다"며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문화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한국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드러낸다. 책에 그가 쓴 대로, 한국에서 그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인 듯 싶다. 그의 담대하고 진솔한 시선은 책에 아직 담기지 않은 그의 미래 행보를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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