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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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가요무대 1000회째 특집을 맞아 한국을 찾았던 원로 여가수 송민도./박성서 평론가 제공 

 

원로 여가수 송민도 LA서 별세, 향년 100청실홍실’ '카츄사의 노래' ‘나 하나의 사랑등으로 사랑 받아

 

나 하나의 사랑’ ‘고향초’ ‘청실홍실등 히트곡으로 사랑받은 원로 여가수 송민도가 지난 28일 밤 미국 LA 소재 호스피스 병동에서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일 박성서 평론가에 따르면 송민도는 지난달 28일 오후9(현지시간) 미국 LA에 위치한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971년 미국으로 이주한 고인은 몇해 전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해왔으며 사흘전쯤 건강이 악화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송민도는 결혼 후인 194724세의 나이에 중앙방송국(KBS) 전속 가수 모집에 응시했다. 당시로는 아이를 둔 주부가 가수에 도전한다는 것이 무척 이례적이었지만 남편이 먼저 제안해 용기를 냈다.

 

1923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안남도 삼화보통학교와 서울 이화고녀(현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결혼 후인 194724세 나이에 중앙방송국(KBS) 1기 전속가수로 발탁됐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아이가 있는 주부 출신 여가수로 데뷔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6.25전쟁 직전 낸 데뷔곡 고향초는 특히 전란의 비운과 맞는 애절한 가사와 음색으로 인기를 끌었고,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당시 음반사가 송민도가 남자 같다며 송민숙이란 이름으로 고인에게 알리지 않고 이 노래를 발매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후 고인은 전쟁 중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중 많은 이가 고향초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서야 데뷔곡이 인기를 끈 사실을 알았고, 자신의 곡이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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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국군의 서울 수복 이후 북진 경로를 따라 위문 공연을 펼쳤고, 휴전 이후에도 활발한 가수 활동을 이어갔다. 1960년대 영화 카츄샤의 주제가 카츄샤의 노래’, ‘목숨을 걸어놓고’, ‘여옥의 노래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1971년 가요계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 정착했다. 이후 2006KBS ‘가요무대’ 1000회 특집 출연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것이 그의 마지막 귀국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가요무대제작진은 오는 4월 그의 100번째 생일에 맞춰 송민도 100세 특집방영을 논의 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작스런 별세 소식으로 추모 무대를 다시 꾸릴 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서 평론가는 송민도는 그 당시 여성스러운 미성만을 강조하던 가요계 관례를 깨고 허스키한 음색으로 다양한 리듬의 곡들에 도전했다“1940~50년대 한국 가요사에서 개성의 시대를 처음 연 인물이라고 평했다.

 

유족으로는 1970년대 그룹 드래곤스의 키보디스트로 활약했던 막내아들 서동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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