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카누에 몸 싣고 살리시海 파도와 맞서며 인디언部族 전통문화 ‘재현’
팬데믹 후 4년 만에 처음…1박2일 간 100마일 이상 되는 거리, 카누 100대 이상 참가
▲2023년 카누 여정의 마지막 구간에서 카누들이 상륙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실라 카누(Sila canoe)의 뱃머리가 알카이 해변(Alki Beach) 앞 바다의 실루엣으로 투영되고 있다.
▲2023년 카누 여정의 마지막 구간에서 카누 가족들이 알카이 해변(Alki Beach)에 상륙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패들이 줄을 서 있다.
화제:카누에 몸 싣고 살리시海 파도와 맞서며 인디언部族 전통문화 ‘재현’
팬데믹 후 4년 만에 처음…1박2일 간 100마일 이상 되는 거리, 카누 100대 이상 참가
튜라립 부족 지원 보트, 살리시海(TULALIP SUPPORT BOAT, Salish Sea)·시애틀, 워싱턴(김정태 기자)-일요일 아침 일찍(현지시간 30일) 숀 엣지(Shawn Edge)가 수온 60도의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빅 시스터(Big Sister)와 빅 브라더(Big Brother) 카누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카누들(canoes) 중 한 대를 실수로 보트(boat)라고 부른 것에 대한 벌과금을 지불하고 있었다.
튜라립 부족(Tulalip Tribes)의 카누 가족은 조상의 고속도로를 따라 알카이 비치(Alki Beach)의 모래사장까지 100마일이 넘는 여정의 마지막 구간인 머클슈트랜드(Muckleshootlands)로 가는 중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30일 오후 해변에서 머클슈트로 향하는 약 100대의 카누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카누 가족들은 오리건주 웜스프링스(Warm Springs)에서 가까운 마을에서 알래스카까지 이동하면서, 외부 해안과 살리시 해(Salish Sea) 해안에 마련된 정류장에 모여 공동체, 노래, 식사 및 이야기를 나누었다.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 이후 4년만에 갖는 첫 번째 여행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로의 귀환이었다.
튜라립 부족의 연장자 모니 오르도니아(Monie Ordonia)는 부족의 지원 보트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일단 물에 오르면 그때가 가장 기쁘디”며 "나는 연장자로 끌어당기는 사람이고, 이 젊은 세대들과 함께 우리 문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몇 시간의 수면과 노래를 시작하는 선장 앤드류 고빈(Andrew Gobin)의 편안한 리듬에 맞춰 튜라립 사람들은 하루를 쉬며 보낸 스콰미쉬(Suquamish) 해안에서 빅 시스터(Big Sister)와 빅 브라더(Big Brother) 카누를 신속하게 끌어냈다.
30명 이상의 카누 가족들이 29일(현지시간) 포트 매디슨 베이 해안(Port Madison Bay)에 있는 수콰미쉬의 깨어난 문화의 집(Suquamish’s House of Awakened Culture)에서 노래, 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등록했다. 약 10시간 만에 해가 지고 달빛이 풀밭에 늘어선 90대 이상의 카누를 비추자 퀴노 네이션(Quinault Nation)의 북소리와 목소리가 살리쉬 해(Salish Sea)를 가로질러 전달되었다. 아빠들은 딸들과 함께 문 밖에서 춤을 추었다. 아이들은 탁탁거리는 화덕 위에서 손을 녹였다.
수백 개의 텐트가 수콰미시(Suquamish) 땅을 가득 채웠고, 시애틀 추장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 듀와미시(Duwamish)와 수콰미시 지도자, 그리고 카누 가족이 곧 도착할 물 건너의 이름을 지었다.
“여기 고대 풍경과 관련된 노래와 이야기, 지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영적, 정신적 건강과 부족의 주권을 위해 그것들을 유지하고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족의 정박된 지원 보트에 타고 있던 레너드 포르스만 수콰미시 의장은 "이곳에는 고대 풍경과 관련된 노래와 이야기, 지명이 있다. 우리의 문화적, 영적, 정신적 건강과 부족의 주권을 위해서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튜라립 부족(Tulalip Tribe)의 카누 가족들이 그들 조상들의 고속도로를 통해 알카이 비치(Alki Beach)의 모래 기슭으로 향하는 100마일이 넘는 여정의 마지막 구간인 머클슈트랜드(Muckleshoot lands)로 가는 중이다.
시애틀로 돌아가기
포인트 엘리엇 조약(Treaty of Point Elliott) 서명자들의 후손들은 1989년 시애틀에서 알카이 비치(Alki Beach)로 향하는 최초의 패들(Paddle)을 조직하여, 카누로 이 지역의 물을 항해하는 수백 년 된 전통을 부활시킨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튜라립에 있는 연방 아메리카 원주민 기숙학교(The federal Native American boarding school in Tulalip)의 생존자인 에밋 올리버(Emmett Oliver)가 이 학교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외부 해안과 살리시 해에서 온 수십 명의 카누 가족이 매년 여름 해안을 따라 여러 마을에 모였다.
올리버의 딸 메릴린 바드는 토요일(29일) 수콰미시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 지역 안팎의 전국에서 온 100대의 카누가 해안에 함께 도착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버지) 올리버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일요일(30일)에 그 꿈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끄는 약 100대의 카누가 알카이(Alki)로 가는 도중에 구불구불한 파도를 뚫고 가면서 실현되었다.
스위노미시(Swinomish) 젊은이들로 가득 찬 카누는 튜라립의 카누에 소리를 질렀으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멈췄을 때, 농담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그들은 곧 다른 카누보다 앞서 속도를 냈다.
지원 보트를 조종하는 사람들-어선, 부족 경찰 보트, 간식을 갖춘 레저 보트, 때때로 화장실과 카누를 끄는 사람들-은 격려의 말을 외쳤고, 팔이 피로해지자 종종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을 놀렸다.
튜라립 카누가 일요일(30일) 오후 알카이 해안에 도착했을 때, 루슈트시드Lushootseed 언어 교사인 나토샤 고빈(Natosha Gobin)은 승무원들에게 머클슈트(Muckleshoot)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도착 전 수십 척의 카누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언어로 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했다.
고빈은 "우리는 스두후브시입니다.(We are Sduhubš)"라며 "우리는 조상들이 준 선물을 가지고 함께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날 일찍, 그들이 수십 대의 카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머클슈트 지도자들은 그들을 환영했다.
▲트링깃 부족(Tlingit) 출신의 명인 조각가인 선장 웨인 프라이스는 두 팔을 들고 통나무 카누인 노스 타이드(North Tide)를 자원봉사자들이 해변으로 운반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첫 카누 여행을 기억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안에 올라 후안 데 푸카 해협(The Strait of Juan de Fuca)으로 진입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12시간 또는 그 이상 동안 거대한 파도와 싸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까운 그리고 먼 친척들과 느끼는 친밀감과 그들의 문화와 조상들과 느끼는 친밀감이었다.
머클슈트 부회장 도니 스티븐슨은 10년 전 퀴노(Quinault)로 갔던 첫 여행이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요일 알키에서 "그것이 내 삶에서 유산과 같은 것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 내 인생의 시작점이었고, 당신이 당신의 가족과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며 "당신이 물 위에 있을 때의 그 연결은 가시적인 것이고, 그것은 실제이다. 나는 내 조상들이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의 중심에서 그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카이 비치에서 대형 스트립 카누를 물에서 들고나온 후 모래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연방 정부가 요구하는 동화 시대에 노래, 춤, 기도를 공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세대가 있었다. 이제 여러 세대가 카누 문화와 여행을 통해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일부에게는 그 전통이 올해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그것을 실천해 왔다.
81세의 코위찬(Cowichan) 지도자 루스키임 찰리(Luschiim Charlie)는 3살 때부터 물 위에 있었다.
그는 토요일 아침(29일) 그의 딸 소냐 찰리가 손녀 벨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팽팽하고 단정하게 땋는 동안, 그는 손녀 벨라 옆의 수콰미쉬 깨어있는 문화의 집(Suquamish House of Awakened Culture) 밖의 벨라 옆에 앉아 있었다.
딸 소냐 찰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가 벨라의 나이쯤이었을 때, 머리 땋는 법을 배웠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흥에 겨운 표정과 함께 유연한 몸동작으로 북미 인디언 전통춤 포와우(powwow)를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