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 제90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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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月南) 이상재 선생 제90주기 추모식

신부적 세계관 및 당대 철학은 기독교로 연결 논의
기사입력 2017.04.0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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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그리스도교 특유의 신앙과 사랑, 긍휼함의 정신을 발휘함으로서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을 마음속에 기리는 행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보훈처와 서천군, 종로구청의 후원과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와 서울YMCA의 주최로 지난 3월 29일 서울YMCA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출신문중인 한산이씨대종친회와 한산이씨진사공종중의 협찬과 적극적 참여 및 협진해운과 종로사, 한국교회신문, 광명중앙교회 등도 함께 협찬하는 등 정부와 종교, 기업, 어린 학생들도 참여하는 등 나이와 계층을 초월해 추모하는 시간이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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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총재 서울YMCA 이사장은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알 수 없는 세계열강의 침탈야욕과 정쟁으로 고난 받았던 1900년대에 선교와 교육, 계몽, 애국, 구국운동 등을 실천하며 우리겨례의 앞길을 밝히셨고, 이에 이 자리에 모인 신앙안의 후손들은 그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되새긴다고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월남 선생께서는 기독정신을 근간으로 흩어진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노력을 기울이셨고,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활동, 헤이그 밀사를 도움, 3.1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신간회활동 등 몸소 애국운동과 독립운동을 수행함으로서 민족애의 표본이되셨던 실천성을 본받겠다는 다짐을 했다. 복잡다난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한국인들의 생각과 사고를 하나로 아우를 지도력이 필요한 지금 월남 선생님의 시대정신이 구현되며, 후세들이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용기를 본받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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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복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대표회장은 1927년 3월 29일 월남 선생님의 소천은 우리 민족에게 큰 슬픔이었다면서 그럼에도 선생님은 가셨으나 의로운 기상과 강직함으로 당시 어려움에 빠졌던 민족에게 함께 협력해 극복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서울YMCA와 한산이씨 대종회, 조선일보, 선생님의 후손들과 사회의 각계 각층이 참여하여 세운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모범을 보이신 길을 따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조선 말기에 닥친 민족고난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로 남아있지만 시대적 역경의 상황에서 굳건히 애국, 애족하신 그 정신을 우리는 민족의 사표로 삼아 계승발전해 평안을 이 세상에 가져오도록 노력하자고 이상복 대표회장은 촉구했다.
▲구남진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서거 90주기를 맞아 선생님께서 남기신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 한번 기린다면서 애국애족을 실천하고, 평생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영전에 명복을 빈다고 추모사를 통해 밝혔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민족의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갈등, 북한의 무력도발과 더불어 국내에는 세대와 지역, 이념의 갈등이 상존하고있어 이 때 월남 선생님의 통찰과 혜안, 나라사랑 정신을 후대가 본받을 사표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공규 유족대표는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후손으로서 감히 월남 선생님의 고귀한 삶을 충분히 실천한다고 자부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할아버님의 직계자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인사를 통해 밝혔다. 특히 선생님의 묘소가 한산에서 경기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로 천묘된 이래 서울YMCA를 중심으로 기념사업회와 사회각계의 후원과 지지가 있어왔음을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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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추모식은 유시범 서울YMCA 본부장의 진행과 원종남 서울YMCA이사의 추모기도, 김재환 청년Y클럽 자원지도자 회장의 추모시낭독, 참석자들의 헌화 등으로 진행되었고, 사전행사로 YMCA소녀합창단이 '이상재 선생 찬가'와 '어느 봄날', YMCA여성합창단은 헨델의 '할렐루야'와 모짜르트의 '아그너스 데이'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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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학술세미나는 류금주 박사(서울장로회신학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이상재 선생이 민족역사의 위치와 의의에 대한 거시적 관점과 기독교의 사상과 세계관, 한국사에서의 의미, 인류의 문명사적인 부분에서의 의미, 체육계의 발전에 입장에서의 의의 등 구체적 논의와 조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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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 박사(백석대학교 석좌교수,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이상재: 그 역사적 위치'라는 제목으로 특별기조연설을 했다. 이상재 선생의 개인적 성격은 올 곧았고, 혜안이 있었는데 주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YMCA의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되었다는 전제를 했다. 존 모트(J. R. Mott)는 선생에 대해 용감하고, 강직하며, 쾌활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했으며, 당대에 좌우갈등이 격화될 때 이상재 선생의 융화적인 성격은 좌우합작을 이끌어내는 친화력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국가적으로는 신사유람단원으로서 일본을 다녀왔고, 미국공사관 2등 서기관으로 워싱턴DC에서 근무하는 국가적인 존재였으며,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YMCA 총무, 조선교육협회, 민립대학 설립기성회, 창문사, 소년척후단 총재, 조선일보 사장 등을 거치며 민간에서 대국민적인 역할도 수행하는 폭넓은 활동을 펼친 주요인사였다는 등의 설명을 했다. 이상재 선생의 개인적인 그리스도교신앙은 세상의 변혁자로서 역할을 한 YMCA로 인해 불타올랐다는 측면에서 전체적인 조직과 신앙, 이웃들과의 접경선의 거점으로서 활약한 것임을 민 박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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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구 박사(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 교수, 월남시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는 '이상재의 기독교 사상과 세계관, 한국사적 의미'에 대한 강연을 했으며, 이상재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신진엘리트들은 한국 민족주의의 양대 계보중 하나였던 기호계 민족주의 그룹을 형성했고, 이들은 해방 후 한국정치의 주역이되었는데 이들은 월남이 이상으로 삼았던 한국이 공정과 공평의, 도덕적 품격을 발휘할 수 있어야하는 유토피아적 '하나님 나라 사상'을 이어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개인과 단체, 국가는 동일한 권리를 갖고있으며, 서로 도우며 착취하지 말아야한다는 인시긍ㄹ 갖고있었음을 설명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당위적 독립을 넘어 향후 자유와 민권이 중시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위 성취와 동일국가 권리의식을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로 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월남 선생은 만민공동회에서의 과격주장과 박영효 역모사건 연류로 한성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기독교에 입문했으며, 근대 사회체제의 근간사상의 발현은 하나님으로부터이기에 이는 도덕성으로 나타나 부여받은 그 권리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도 해당되어 서로간에 착취를 하지 말아야하고, 심지어 한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탈하는 행위는 역사의 주재인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것이라는 '신부적 세계관'을 갖게되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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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 교수(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는 '월남 이상재: 문명충돌과 이념충돌의 전선에서'라는 제목이 발제를 통해 역사를 관찰 할 때 역사진보의 지표들(남녀평등의 진보, 과학기술 발전, 군주정치에서 민주정치로 변환 등)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면서 월남을 둘러싼 교과서기술을 보완해야함을 주장했다. 월남 선생 당시는 동아시아 전체가 근대화 시기로서 조선의 경우에도 열강들과 관련한 문명권의 충돌서술과 1920년대 월남 선생이 조선일보 사장과 민립대 창학과 관련 신간회 등의 활동에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월남 선생은 조선의 독립에 있어 주권독립의 입장에 있었기에 독립협회 활동을 하신 것이며, 전제군주정에서 민주정치 시대로 가야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 교과서에서는 그런 표현들이 없고, 오히려 친미주의자라는 식의 기술과 신간회 활동관련해 공산주의라는 식의 설명이 보이는데 사실은 당시 조선의 상황이 국력이 부족해 타국의 도움이 필요하며, 대상은 미국을 활용하자는 측면이고, 공산주의라는 식은 당시 신간회 활동과 관해서 프랑스 사회주의계열의 방향을 우리 교과서는 러시아식 공산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느낌이 있기에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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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우 교수(중앙대학교 스포츠과학부)는 '월남 이상재의 민족주의적 체육운동 전개와 사회적 영향'이라는 주제를 통해 월남 선생은 자신이 스포츠를 좋아했고, 특히 야구를 좋아해 한국으로 도입하는 등의 공로가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1924년 대한체육회의 전신 단체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한 한국스포츠의 거목이었다고 밝혔다. 월남 선생은 스포츠에 관해서 기본적으로 지덕체(知悳體)가 온전히 좋아지는 전인적인 스포츠여야한다는 전인사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야구의 관객동원력은 오락은 물론 모금에 유리하다는 혜안이 있었고, 조선일보 사장 시절에 스포츠대회를 주최하거나 후원해 유명한 국내리그를 만들어내고, 국제경기도 성사시켜 국제화된 스포츠의 시발점으로 삼는 등 사회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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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교수(관동대학교)는 김명구 교수의 발제에 대해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이미 해방정국에 한민당의 강령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부각시켜 한국 정치사상의 역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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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정 박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김명섭 교수의 발제에 대해 매우 동감한다고 밝히고, 1920년대 이념충돌의 최전선에 위치한 월남 선생의 역할에 대한 한국사교과서의 서술과 현황, 문제점, 대안을 제시함에 의미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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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낙현 전임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은 김재우 교수의 발제에 대해 월남 이상재 선생의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체육운동전개와 사회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 연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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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원 박사(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2부순서의 전체적인 진행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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