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二笑) 박진영 서양화가, 첫 국내 ‘그림 일기 전(展)’
서초동 ‘구띠 갤러리’서 11월7일까지 전시…자신의 진솔한 이야기 화폭에 담아
▲이소 박진영 작가가 작품 '구름과 파도 2019'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의 작품 핑크 공주의 탄생 2017(90.5 x 72.85cm, 캔버스에 유채)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의 작품 이상의 날개를 읽고 2020(162 x 130cm, 캔버스에 유채)
이소(二笑) 박진영 서양화가, 첫 국내 ‘그림 일기 전(展)’
서초동 ‘구띠 갤러리’서 11월7일까지 전시…자신의 진솔한 이야기 화폭에 담아
과거에 받은 아픔의 상처 극복, 희망을 노래한 작품 ‘인상적’
기하학적이고 서정적인 연작 추상화, 마치 이상(李箱)의 단편 ‘날개’를 읽는 느낌
이소(二笑) 박진영 서양화가 자신의 이름을 딴 ‘그림일기 展’이 19일부터 11월7일까지 서초구 구띠 갤러리(서울 서초구 서초대로38길 15)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뉴욕 등 미국 서부와 동부에서 활동했던 작가가 거의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본국에서 갖는 첫 전시회이다.
박 작가는 21일 오후 4시 주최 측 ㈜다래아(대표 김다래)·주관 측 (사)코아스페이스 관계자와 이은미 전시기획자를 비롯한 화가들과 하객 등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전시회 오프닝 이벤트를 가졌다.
박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튜트(SFAI)를 졸업했다. 그가 졸업한 학교는 사진작가 언셀 애덤스, 이모젠 커닝엄, 도로시아 랭, 애니 레이보비츠와 아티스트 마크 로스코, 캐서린 오피, 케힌데 와일리, 그리고 영화감독 캐스린 비겔로우를 배출했다. 이 학교엔 1931년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국보급 벽화가 있는 대학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의 작품 지문2(89.5 x 120.5cm, 2001/캔버스에 Epoxy와 유채)
그러면 미술계 쪽은 어떨까? 미국의 화가이자 추상적 표현주의 1세대의 선구적인 인물 중 한 명인 클리퍼드 스틸, 마크 로스코와 기하학적이고 서정적인 추상화의 광범위한 시리즈와 오션 파크 그림으로 알려진 리처드 디벤콘과 로널드 ‘론’ 데이비스 등은 비단 미국 화단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작가들을 배출했는데, 안타깝게도 개교 151년 만인 지난 2021년 7월15일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 흡수되면서 폐교했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가 작품 A tudy of colors(193.5 x 112 cm, 2001/캔버스에 유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시간이 그림을 낳고 쌓아져 가는 그림을 보며 남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인지하였다. 나의 그림에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존재한다. 그곳에는 나의 삶 역시 공존하기에...현재의 붓으로 과거를 치유하며, 미래를 꿈꾸듯이 그렇게 한 그림을 기다린다.”-이소(二笑) 박진영 작가 노트
박 작가의 전시 작품 주조를 이루는 색조는 그린(Green)과 블루(Blue)이다.
또한 그의 전시 작품 곳곳에는 작가 노트에서도 언급한 ‘남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상징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이룬 점이 눈에 뜨인다. 이밖에 지문, 연구, 옥(玉)과 관련한 연작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박 작가의 ‘그림일기 展’ 도록(都錄)에 담긴 작품 설명에 따르면, 그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크게 배신을 당했'던 것을 알수 있고, 그때 느꼈던 자신의 심정을 ‘폭발에 대처하는 분화구 2016(53X45.6cm /캔버스에 아크릴)’에 담았다. 분화구가 폭발하는 것은 작게 그렸지만, 자기 정신세계의 피폐화가 더 컸다는 의미에서 하늘을 뒤덮은 깊고 두꺼운 블루와 그린으로 작품의 전체를 채색한 것으로 짐작컨데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가 연작화 지문2(89.5 x 120.5cm, 2001/캔버스에 Epoxy와 유채)와 지문1(122.5X122.5cm 2000) 사이에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그 배신의 늪에서 벗어나 지금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는 배경의 절대적인 존재는 작가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즉 “내 딸은 핑크색을 무척 좋아했었다. 핑크공주의 탄생이었다“고 고백한 ‘핑크공주의 탄생 2017(90.5X72.8cm 캔버스에 유채)에는 화려한 핑크빛 드레스 차림의 딸의 모습과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순간과 그 딸이 성장해서 맞이하게 될 말을 탄 왕자로 상징되는 사람과의 밝은 미래가 펼쳐지기를 염원하는 아버지의 딸을 향한 사랑을 듬뿍 담았다. 그리고 “내 딸의 모습을 참사랑의 느낌으로 그렸다”고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리는 ‘Lovely my daughter 2020(53X72.6cm 캔버스에 유채)는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이며, 상쾌하고 깔끔한 느낌과 시각적인 시원함을 어필하는 그린 칼라에, 차분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신뢰의 컬러로 일컫는 블루에 막힘없이 유연하게 흐르는 물길처럼 딸의 미래도 그처럼 밝기를 갈망하는 ’딸 바보‘인 작가의 무한한 부성애를 표출하고 있다. 이때 박 작가는 자신의 생애에 처음으로 웃음다운 웃음(一笑)을 웃었던 것 같다.
독자는 박 작가가 화가 이전에 진솔한 인간성을 소유한 인물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작가 노트에 적은 내용처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과거의 족적과 현주소를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작가의 작품 ’이상의 날개를 읽고 2020(162X130cm)‘는 마치 작가의 SFAI 대선배인 추상적 표현주의 1세대의 기하학적이고 서정적인 추상화의 선구적인 인물 중 한 명인 클리퍼드 스틸, 마크 로스코, 리처드 디벤콘과 로널드 ‘론’ 데이비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한 편의 그림을 통해 이상(李箱)의 단편소설 ‘날개’ 속의 주인공인 ‘나’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내용 전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중략)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이상(이상(李箱, 1910~1937) 단편소설 ’날개‘ 끝부분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의 작품 숲속의 폭포(112.5 x 162cm, 2021 / 합판에 유채)
작가는 배신의 깊은 상처로 인해 마치 모든 이들을 거부한 채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의 딕셔너리를 넘기듯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사랑하는 딸을 얻은 기쁨으로 인해 그동안 사회 구성원들을 외면하며 살았던 옷을 던져 버리고 ‘희망과 야심’이라는 날개를 달고 밝은 미래를 향해서(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틈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는 자신을 보면서, 작가는 그의 아호 이소(二笑)처럼, 입가에 그 생애에 기억에 남을 두 번 째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작품 제작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가 작품 선녀탕(162 x 112cm, 2022 / 합판에 유채)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가 작품 Color Factory 2023(162 x 112.5cm, 2022 / 합판에 Epoxy 유채-오른쪽 사진)와 Jade Brick(/162 x 112.5cm, 2022/합판에 Wax와 유채) 사이에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비로운 미지의 이야기, 그리고 화면 속에 드러나는 존재론적 사유들과 의문들의 계속되는 활약에 더없이 기대‘(김영준 비평, 전 부산시립대미술관, 헌대미술관 학예연구사)하게 만들고, ’현실 위에 든든히 서 있는 그의 이성과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의 의지가 빚어낼 또 다른 성취들이, 미래를 앞당겨 사는 사람들에게 깊이 사랑받게 되기를 기도‘(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소(二笑) 박진영 작가의 작품 ‘여인들의 소풍80.5 x 117cm, 2022/ 합판에 Wax와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