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포에 언더우드 선교사 기념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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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에 언더우드 선교사 기념비 건립

김포상징건립추진위, 30일 걸포중앙공원 준공식
기사입력 2018.03.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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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선교사기념비 준공식, 3월 30일

언더우드 선교사가 말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직접 전한 지역으로 알려진 김포지역에 1894년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알려진 이래 복음화와 애국, 애족 운동이 현재의 자부심으로 이어져 언더우드선교사기념비를 김포시근대역사문화상징조형물추진위원회(위원장 김진수 목사)가 오는 3월 30일 걸포중앙공원에 준공식을 갖음으로서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포시근대역사문화상징조형물추진위원회(이하 김포문화상징조형건립추진위)는 지난 13일 김포시청(유영록 김포시장)에서 기념비건립준공식을 추진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고, 기념비의 머리돌과 기금후원자 머리돌 표기 등에 대한 안건을 다루고, 준공식 행사는 김포시와 김포상징건립추진위가 공동주최하고, 김포시기독교총연합회(회장 임재호 목사)와 김포시역사문화유산보존회(최영철 회장)가 후원해 약 5백여 명의 김포시민을 초청해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김포지역에 그리스도교의 전래와 영향, 역사적으로 검증

김포상징건립추진위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김포지역에 복음을 구한말에 실시함으로서 지역 내에 복음화와 융숭한 문화저 발전, 조선독립을 위한 애국애족 활동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검증하고, 이를 토론하는 과정을 지난 3월 5일 김포시청 강당에서 가졌다.
'언더우드 선교사 기념비건립 학술심포지움-개신교, 김포 근대화에 초석을 세우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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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록 김포시장은 한강뱃길을 되살리는 등의 상생과 화해를 주장했다. 

유영록 김포시 시장은 김포시에 언더우드 기념비가 세우게 된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 수년간 김포시의 지역교회들이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소감을 밝히고, 언더우드 목사님이 김포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오던 때는 대한민국(문재인 대통령)이 분단되기 전이어서 김포지역 포구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가 많았던 것이 지금은 어렵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가 북한을 방문함으로서 통일을 희망할 수 있는 이 때 심포지엄이 개최되는 것도 영광스러운 것이고, 오는 3월 30일에는 걸포중앙공원에 언더우드 기념비의 건립식이 진행 되기 전에 열리는 의미있는 역사적 행사라고 밝혔다. 또한 이런 노력이 시발점이 되어 김포지역의 한강하구가 평화의 물길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1부 행사는 강신진 목사(김포시기독교총연합회 총무가 사회를 담당하고, 개회인사는 추진위원장 김진수 목사(김포새누리교회), 축사는 임재호 목사(김포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최영철 회장(김포시역사문화보존회) 등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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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형 박사가 세미나 진행을 맡았다.

2부 심포지엄은 정운형 박사(연세대학교  연세학풍연구소 연구원)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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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가 발제하는 모습

김진수 목사(김포상징건립추진위 위원장, 김포3.1만세운동연구소 소장)는 '김포 최초 개신교회의 설립년도'에 대해서 발제를 이어갔고, 김포지역에 최초 교회가 세워진 것은 장로교 김포읍교회인데 설립연도에 대해서 1894년과 1896년, 1897년 등 사료에 따라서 주장이 갈라지고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그동안 김포지역 최초 개신교인 김포읍교회의 설립을 1894년으로 알려졌지만 동 교회의 당회록(김포읍교회 설립 50주년 기념식을 1947년 5월 11일에 개최한다고 기록한 결정을 역산하면)과 언더우드 선교사의 전도보고서(미국 선교본부에 동 지역에 20여 가구가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을 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시기) 등 문헌을 통해 볼 때 1897년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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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표 박사가 논찬하는 모습

홍성표 박사(연세대학교  연세학풍연구소 연구원)는 논찬을 통해 사기의 기록에 따라 김포읍교회의 설립을 1897년, 성립은 복음이 적극적으로 전파되는 1894으로 보는 것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밝히고, 특히 중요한 점은 해당시기는 조선말 우리 민족이 일본에 의해 위기를 겪을 때인데 근대문명으로서 전파된 그리스도교와 김포지역의 주민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 근대화의 실천적 대안으로 모색하고, 결과적으로 자력으로 예배당을 설립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주민세력은 내부적역량으로 승화되어 1919년 오라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한 종교의 주도가 아닌 김포지역민들이 공로였고,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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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 연구원이 발제하는 모습

김은정 연구원(연세대학교 교회사 박사수료)은 김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근대 개신교의 유입과 생활세계 발제를 통해 김포지역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시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로서 강화와 통진 지역은 대중이 모여 장시로 연결되었고, 혼인관계가 빈번하며, 애국계몽기의 대중행사가 활발한 곳인데 통진지역의 이런 변화는 개신교의 간접적 영향과 강화도에 활발한 학교설립의 영향과 개화된 유교지식인 때문으로 봤다. 김포지역민들은 서구적 평등의 삶과 인권증진의 삶 등을 사는 그리스도교를 동경해왔으며, 기독교를 통해 봉건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전도를 하고, 사회적으로 차치단체를 만드는 기폭제가 되는 등 기독교의 영향력이 전도의 차원을 넘어 사회봉사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는 등 김포지역에는 기독교의 전래로 복음과 사회발전이 이뤄졌음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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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표 박사가 논찬하는 모습

홍승표 박사(감리교신학대학교 외래교수)는 논찬을 통해 김포지역의 의변과 기독교의 관련성, 여성선교사들에 대한 연구, 지역사회에서 신자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견인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을 제시했다.
정운형 박사(연세대학교  연세학풍연구소 연구원)는 근대지역의 기록물활용 방안에 대한 발제에서 동 지역의 송마리교회와 누산리교회, 김포읍교회 등의 당회록이나 제직회록 등을 보다 면밀히 연구함으로서 한국의 근세사자료로서 가치를 높일 필요를 제시하고, 이는 근대 앓이를 하던 당대의 자로로서 종교문서라고 할지라도 사회성을 담보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기념과 상징만으로서의 조형물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접근의 용이성 외에도 정기학술발표회나 기념행사, 연구 및 관광코스로서 연계를 하고 DB로서 구축,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정기학술행사를 개최함으로서 자긍심을 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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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철 박사가 문화재로서 다뤄질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

최영철 박사(경동대 교수, 경기도 문화재위원)는 위와 같은 역사자료들은 도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이 있는데 여기서는 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이 어려모로 유리하다면서 이 자료들은 설립 당시의 교회의 당회록들이고, 그 기관들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1910~1950년대의 사안으로서 등록문화재 또는 근대유산 등에 지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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