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철벽 총리? 모욕과 능멸의 정치 두고 볼 수 없었다"
한덕수 "철벽 총리? 모욕과 능멸의 정치 두고 볼 수 없었다"
巨野에 작심 발언 한덕수 국무총리…의료 붕괴, 경제 폭망은 거짓
입법 독주, 괴담 선동 멈춰야…대법원까지 인정한 醫大 증원
정부 개혁 의지 믿고 협상해야
'한동훈과 격론'은 잘못된 보도
개혁의 어려움 절감하고 있어
尹·韓 충분히 소통할 수 있어
“요즘은 한동훈도 이재명도 아니고 한덕수 인기가 최고”라고 하자, 75세 노(老)총리가 “어이쿠!” 하며 손사래를 쳤다. 한덕수 총리는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 “미몽에서 깨어나시라” “정치의 힘은 모욕과 능멸에 있지 않다”고 호통쳐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뉴라이트 공세엔 레이건을 인용했다. “레프트(좌)와 라이트(우)는 없다. 오로지 국가를 잘되게 하느냐, 못되게 하느냐의 업(위) 또는 다운(아래)만 있다.”
응급 대란 없이 추석 연휴를 넘긴 한 총리를 서울 삼청동 공관에서 만났다. 두 번의 총리를 포함해 40년 공직 생활에서 언제가 전성기였느냐고 묻자 “평생동안 일을 제일 많이 하는 때는 지금”이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윤·한 갈등’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두 분은 충분히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 의료 개혁 안 하면 직무 유기
-차례는 지내셨나.
“공식적이고 완벽하게는 못 지냈다(웃음). 큰댁에 가야 하는데 올해는 비상 상황이라 전화만 드리고 (여기서) 기도했다.”
-큰 사고 없이 연휴가 지나갔다.
“우리 국민께서 대단하다고 느낀 시간이었다. 응급실 전문의와 간호사들, 마취하고 영상 찍어주는 분들까지 거의 매일 밤을 새우셨다. 국민들도 중증 환자, 난치병 환자들께 응급실을 양보해 주셔서 30% 이상 환자가 줄었다. 개업의 선생님들도 동참해 주셔서 병원 9000곳이 문을 열었다. 예년엔 3000곳이었다.”
-국민이 참고 견디는 데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의료 개혁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헌법 36조 3항을 보면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정부 보호를 받는다고 돼 있다. 10년, 15년 전부터 응급실 뺑뺑이 기사가 나왔고, 수술할 의사가 없어 환자가 끝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대로는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의료 개혁, 의료 정상화를 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다.”
-증원만 빼면 정부와 의료계가 생각하는 대안이 거의 같다. 그런데도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 건 정부가 의사 수만 늘린 뒤 다른 약속은 지키지 않을 거라는 불신 때문 아닐까?
“과거 사례에 비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대로 해보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예산을 투입할 때는 기회를 주셔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하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이 없다. 수가 조정, 공정한 보상만 갖고 해결할 생각도 없다. 의료 사고 안전망까지 포함해 그동안 의료계가 제안해 온 것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개혁안을 지난 8월 발표했고, 시범 사업에 들어간다. 10월부터는 성과가 나올 것이다.”
-대정부 질문 때 의료 대란의 첫째 책임이 전공의들에게 있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백혜련 의원은 ‘전공의가 가장 큰 책임이란 거냐’고 연거푸 물었지만 나는 ‘첫번째 책임’이라고 답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왜냐.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공익적 차원에서 의대 증원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다 인정했는데도 대다수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았다.”
-의료진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끝까지 추적해 엄벌하겠다고 했지만, 의료계는 그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결정을 조리돌림하며 모욕 주고 비난하는 것은 묵인할 수 없는 범죄다. 정부가 양보할 수 없다.”
-’의료 개혁을 하지 않은 과거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하셨다.
“노무현 정부 때 제가 경제부총리를 하면서 의료 시스템을 고치려고 했는데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졌다. 당시 우리 의료비 지출은 GDP의 5.6%이고, 미국은 16%였다. 다들 5.6%를 가지고도 세계 최고 의료 수준을 유지한다며 환호했지만, 나는 그 고통을 의사들이 부담하고 있으니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개혁되지 않았다. 의대 정원만 해도 김대중 정부 때 의약 분업을 하면서 350명을 축소했다. 그때 줄이지 않았다면 2025년에 6000명의 새로운 의사가 배출되고, 2035년까지 1만명이 나올 수 있었다. 정부가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제때 이행하지 않으면 훗날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른다.”
◇ 한동훈, 자기 정치 할 사람 아냐
-연휴 직전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한동훈 대표와 증원 유예를 두고 격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제가 한동훈 대표와 굉장히 친하다. 2년을 같이 국무위원으로 활동했고, 그분이 일하는 방식, 내공, 전달력,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본다. 누가 어떻게 해서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분위기에서 마음속 얘기를 나눴다. 당정협의회에서 못 할 말이 뭐가 있나. 큰 소리가 났다? 아규(언쟁)를 했다? 둘 다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한 대표가 자기 정치를 위해 의료 대란을 이용한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인품이나 내공으로 볼 때 그럴 사람이 아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저라도 얘기할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가?
“대인이시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아서?
“국가냐, 인기냐 했을 때 (대통령은) 당연히 국가이고 국민일 것이다. 지금은 한미 FTA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지만 FTA를 추진할 당시엔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그때 노 대통령이 각료들 앞에서 ‘내가 진짜 외롭다’ 하시더라.”
-윤 대통령도 외롭다고 하던가.
“외로워도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니다(웃음).”
-윤 대통령은 국민보다 부인이 먼저라는 비판을 듣는데.
“정부의 일은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대통령께서 기자회견 하실 때 사과도 하셨다. 그 정도면 국민께서 이해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지.”
-쌍특검법 등 매번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도 힘들 것 같다.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의무다. 입법 독주, 헌법과 법률 위반, 다수를 이용해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폭거를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법안들이 있다면 저는 계속해서 대통령께 재의 요구를 하시라고 건의할 생각이다.””
-벌써 스무 번이 넘었다는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거부권을 635번 행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81번, 트루먼 대통령은 250번, 레이건 대통령은 78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지율은 여전히 낮다.
“외교 복원, 재정 건전화, 법치 회복, 포퓰리즘 정책의 정상화 등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국민께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고 있다.”
◇ ‘일본 총리’라는 말엔 웃음만
-한덕수 총리가 달라졌다고 한다. 대정부 질문 때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국정을 국민께 제대로 알리기가 참 쉽지 않다. 제가 주미 대사를 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1년 4~5개월 동안 의료 개혁을 위해 전국을 다니며 설득하는 모습을 봤다. 그럼에도 의료 개혁의 내용을 아는 국민은 16%에 불과했다. 그래서 저는 국정 질의를 국민이 국가 정책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 여기고 한 말씀이라도 더 드리려고 노력한다. 소위 지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답변했다.”
-우리 사회가 반지성적인가?
“오죽했으면 ‘선택적 진실’이란 말이 나왔겠나. ‘계엄령’ 같은 괴담과 가짜 뉴스의 폐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도 광산’ 건으로 ‘일본 총리’란 말도 들으셨다.
“제가 국회 3분의 2 찬성을 받아 임명된 총리다(웃음).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논란 때부터 저를 일본 총리라고 비난했던 민주당은 100만 수산인을 뒤흔든 괴담과 선동에 대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도 광산 건도, 정부는 강제 동원된 분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일했는지 제대로 전시하라 요구했고, 일본은 (강제 노동 사실과 함께) 당시 자기네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졌던 생각도 함께 전시한 거다. 우리가 이건 빼고 저것만 실으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 전체를 보여줘야 하는데”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지표가 차고 넘친다고 해서 설전도 벌어졌다. ‘배추가 한우보다 비싸다’는데 경제가 좋아진 게 맞나?
“우리 물가는 윤석열 정부 출범 한 달 전인 2022년 4월 4.8% 오르기 시작해 6.3%까지 갔다가 지금은 2%까지 내려왔다. 문제는 소비 품목 중 안정화되지 않은 것들인데, 그게 사과였다가 대파였고, 지금은 배추가 된 것이다. 그런데 배추는 대관령 같은 고랭지에서 많이 생산되면 가격이 또 떨어진다. 축산물 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가. 아직 민생에 온기가 미치지 않아 안타깝지만 우리 경제가 좋아진다는 국제적 기준이 넘치는 건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일본과 한국이 인플레를 가장 빨리 극복하고 있다고 했고, 경상수지 흑자도 355억달러에서 올해 770억달러로 늘었다. 고용률도 15~64세는 69.8%, 25~29세 청년 고용률은 73%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의 국제 신용평가가 일본보다 두 등급 높아졌고,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67개국 중 20위로 작년보다 8계단 상승해 역대 최고 순위에 올랐는데 ‘폭망’이라 공격하는 게 옳은가.”
-부동산 가격 상승도 우려된다.
“서울과 수도권의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그간 관망하던 실수요자들이 매수에 참여하게 된 것을 주원인으로 보고 있다. 서울 그린벨트 등 신규 택지 확보, 재건축 절차의 간소화 등 주택 공급을 늘려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임종석의 ‘두 국가론’으로 시끄럽다.
“김정은이 바꾸니 우리도 바꾸자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없는 것이다. 헌법 3조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적혀 있다.”
◇ 75세 체력의 비결은?
-4월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표명했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나?
“관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할 때부터 무슨 일을 그냥 적당히 해본 적이 없다.”
-새벽 5시면 업무를 시작한다던데, 일중독이신가?
“환자가 자기 병을 알 수 있나(웃음)?”
-새만금 잼버리 사태 때 화장실 변기 닦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그렇게라도 해서 참가자 수만 명이 화장실이 깨끗해졌다고 느낀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다.”
-엑스포 유치전 때 아프리카 순방을 3박 7일로 다녀오고도 공항에서 정부 청사로 바로 출근해 다들 놀랐다더라.
“마흔 살 때부터 수영을 했다. 의사들도 일생동안 할 운동이 있다면 수영이라고 하더라. 음식은 된장찌개, 삼겹살 등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쉴 땐 뭘 하시나?
“이코노미스트지와 파이낸셜타임스를 읽는다. 대처, 레이건, 오바마 연설 보는 것도 좋아하고.”
-서민들과 새벽 첫 출근 버스를 타고, 방학중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등 민생 현장에 있던 총리 모습이 좋더라.
“지적 장애인들이 고용돼 일하는 현장도 감동적이었다. 어딜 가나 우리 국민의 저력을 느낀다.”
-총리를 두 번 하셨다. 40년 공직에 전성기, 혹은 뮤즈 시절이 있었다면?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만 내 평생에 일을 제일 많이 하는 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웃음).”
:한덕수
1949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 관세청·경제기획원·상공부 등에서 일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상산업부 차관을, 김대중 대통령실에서 경제수석비서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윤석열 정부의 총리로 2년 5개월째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