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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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박사는 '20세기 초의 글로벌 정치 상황과 한반도의 기독교 경험'을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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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훈 박사는 주 발제에 대한 토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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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 박사는 사회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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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고대시대는 물론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세상 간에 상호적 영향력을 매우 크게 끼쳐왔던 것이 분명하다는 전제 아래 특히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 전래된 구한말부터 근세,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영향력을 미쳐왔기 때문에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과 세상사에 대한 끝없는 공부와 봉사, 실천의 자세를 가져야한다는 주장을 김동석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부원장, 믿힘연구원 원장)가 강조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은 제 301회 월례발표회의 주 발제자로 김동석 박사를 초빙해 '20세기 초의 글로벌 정치 상황과 한반도의 기독교 경험'을 주제로 지난 4월 11일 서현교회당에서 논의했다. 토론순서는 송훈 박사, 사회는 정용 박사가 담당했다.

 

▲ 김동석 박사는 '20세기 초의 글로벌 정치 상황과 한반도의 기독교 경험'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에 대한 발제를 했다. 

기독교적 혹은 교회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했던 일들이 역사라는 장에서 많지는 않았지만 몇 몇 중요한 인물들에게서 그 활동이 발견되기에 논의는 해야 하며, 동 주제에 대한 '신앙교육'차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기독교와 정치의 역사적 경험

이스라엘의 경우, 역사 중 통일국가를 이룬 기간은 사울 왕과 다윗 왕, 솔로몬 왕 때까지이며,이후로는 독립국가를 이룸에 실패하던 중 B.C 142년 하스모니안 왕조가 유일했고, 이외에 거의 1천 년 간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았지 독립국인 적이 없다고 김 박사는 분석 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의 신화를 꿈꾸며 '메시야'사상을 이어 오던 중 로마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초인을 기다렸는데 그는 메시야 예수였다는 것은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다리던 그 초인 예수는 정치적 해방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라는 신앙적 가르침을 전파했고, 정치적 처형을 당했음에도 이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유대를 넘어 전세계인들을 향한 메시지가 되었고, 로마의 정식 종교가 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멸망 후 기독교는 위기와 혼란을 겪지만 당시에 종교적이거나 정치적, 지식인이라는 이미지를 지닌 교황이 극복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기독교는 중세시대에 '종교적 형식'을 완성해가며 영향력이 커지는데  A.D 12C 전 후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동로마의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들이 서방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고, 종교적인 학문을 연구하던 대학들은 인문주의자가 되어 문예부흥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후 계몽주의자들의 근본이 되었고, 종교개혁 전통보다는 문예부흥의 전통을 선호하는 상황으로 변모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1530년대 영국 헨리 8세는 로마교회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기독교회(성공회)를 수립하는 종교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행위를 실시했고, 잉글랜드에서는 국교로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인 장로교를 국교 또는 보편적 신앙으로 따르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발하는 순수 신앙주의자들인 급진적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대항해 시대 무렵 유럽의 국가들은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부터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치는 동안 종교적 활동인 '선교'를 실시함으로서 세계적인 활동을 벌였고, 가톨릭교회는 1200년대부터 선교를 실시, 이를 본 개신교는 18세기부터 선교를 실시해 19세기에 한국선교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 기독교계의 선교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나타났다는 특징이 있는데 당대 일련의 강대국들이 국제 패권을 장악하려는 각축의 상황이었고, 피식민지는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시아의 인도와 중국, 대만 등이었으며, 두 가지를 모두 수행자는 대다수가 강대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서양을 침략을 돕는 세력이라는 평가를 피식민지인들에게 받기도 했다고 김 박사는 분석했다.

그러나 한국만은 일본인이 침략했고, 서양인들이 선교를 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 국가와 식민을 한 국가는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 세계 정치 제도의 변화와 기독교

17세기 이전의 대부분 국가들은 군주제였고, 특징적으로는 연방 형태의 국가연합, 경제적으로는 '농노제'를 실시하는 봉건제도를 갖추었다가 '해상무역'으로 인해 서구 정치 제도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유럽의 중산층인 부르주아와 계몽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신분의 변화를 촉발했고, 중산층은 자본가 계급으로서 귀족중심의 사회가 변화해야 함을 주장,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 명예혁명 후 시민 또는 민중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18세기 이후 이 혁명들로 인해 시작한 민주주의체제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을 함으로서 통치체제의 변화가 도래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독일은 내륙국이었지만 식민지의 확장과 자원의 필요가 늘어나 기존 제국주의자들인 영국이나 프랑스, 네델란드, 스페인 등을 대적하기 위해 독일을 포함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과 삼각동맹을 체결해 식민지 확장을 통한 자원이동의 통로 확보를 추구해서 마찰을 빚게 되는데 이것이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라고 정의했다. 국가를 구분함에 있어 과거에는 개신교 정신과 가톨릭 정신을 기준 삼았다면 제 1차 세계대전부터는 정치적 및 경제적 이익을 기준으로 추구하는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했고, 일본이 이 승전국에 포함되면서 국제사회에 등장해 제국주의국이 되어서 한국을 점령하고 중국으로 진출하려는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39년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등이 삼국동맹을 체결해 제 2차 세계대전을 감행했고, 이에 반대하는 미국과 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가 연합국으로서 맞서 연합국이 승전국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소련을 중심으로 동유럽·아시아국가와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으로 양분해 냉전시대를 맞이했는데 이것은 패권을 장악하려는 강대국 간의 갈등이었으며, 이념을 통한 적대감은 한국전쟁을 통해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냉전이념갈등은 소련이 1991년 붕괴되면서 해소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반에서는 아직도 이념갈등 중이며, 북한과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의 갈등은 주변국인 중국과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이 엮여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독교는 유럽과 미국의 종교로서 존재하는 중이며, 중국과 북한은 종교자유를 운운하나 형식적인 기독교가 되기를 강요하거나 실제로는 탄압하고있는 것으로 보이며,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기독교복음화율은 매우 낮고, 대한민국은 천 만 명의 기독교인구를 가진 기독교적 국가의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 19C 말 20C 초 美英의 민주주의 

제국주의는 초기에 피지배국의 자원을 수탈해 상품을 생산하다가 산업혁명으로 과잉생산된 상품을 피지배국에 판매하므로 소비적 시장착취를 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고 김 박사는 평가했다. 영국으로부터 사람들이 이주한 미국에는 영국의 13개 식민지가 있었고, 여기 주민들은 본토의 차별에 반발해 독립전쟁을 수행, 전쟁에 승리한 미국은 왕을 대신 할 민주적 대통령제를 채택, 1백년 후 미국인들은 내한선교사로서 조선에 입국을 해 다양한 영향력을 주게된다고 밝혔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다양한 환경문제를 겪었는데 저임금 고노동, 아동방치, 공해, 도시의 빈곤화, 도시빈민의 증가 등 다양한 문제가 시작되고, 사회적으로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등장하는 시기에 명예혁명으로 의회민주주의국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당시 등장한 활동가들은 여성의 교육권을 주장하는 등 점차 중산층 여성들의 교육기회가 확대와 여성참정권의 목소리도 등장 했다고 한다. 교회가 소외된 어린이들을 모아 식사 제공과 성경공부를 하는 '교회학교'운동을 전개했고, 이것이 미국으로 전래되 복음전도를 위한 교회학교활동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독교는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적어도 1920년대까지는 미영 선교사들이 그 시대적 정신으로부터 부자유스러웠을 것기에 일본의 제국주의적 확장에 신앙적 대응을 충분히 못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기독교 선교를 통해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깨달음과 기독교적 신앙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 한일병합에서의 기독교

구한말 한국인들에게는 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군주제는 매우 익숙했을 것이며, 한일병합시기 조선 민중은 새로운 국가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을지라도 독립협회 세력들은 공화주의를 꿈꿨지만 아마도 실제로는 입헌군주제 정도였을 것으로 김 박사는 추측했다.

당시 서학에 대응한 '동학운동'은 국가의 대개조를 이루지는 못했고, 정부와 탐관오리의 척결 정도의 차원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며, 이 운동으로 인해 조정은 청나라와 일본에 도움을 요청해 청일전쟁이 발발해 일본이 한반도를 장악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삼일만세운동이 강력했지만 일본을 몰아내는 것은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서구의 민주주의와 동구의 볼세비키 혁명 등을 주동한 계층은 계몽주의적 사고를 하는 부르주아, 인텔리겐차들이었으며, 이들은 민중을 계몽하거나 선동할수 있는 설득력을 갖고있었는데 구한말의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럴만한 충분한 지식과 통일된 관점이 부족했고, 더 근본적으로 사회적 기득권층이 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삼일운동 후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 헌장 제 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해 공화제를 채택함으로서 '주권재민'의 공화제를 지향하는 정부를 꿈꾸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고 밝혔다.

◎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과 기독교

유럽 강국들이 피식민지를 무력통치와 자원수탈을 하다가 시장으로 다룬 것처럼 일본도 조선통치를 함에 있어 같은 방식을 채택했는데 일본을 내지로, 조선을 외지로 칭하면서 내선일체정책을 추진하는 중 조선인들에게 신민으로서 의무를 강요하고 일본인과는 차등되는 대우를 했으며, 중국진출전쟁준비를 하면서는 더욱 강화된 문화통치와 차별정책을 썼다고 한다. 당시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학교들이 설립되고, 여기서는 민족의식이 고취되는 등의 긍정적 효과도 동반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기존 제국들은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이를 제한하려는 마찰이 발생하는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다가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는 중에 '미국 등 연합국 하나님'과 '독일과 이탈리아의 하나님'간의 전쟁으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진영이 나뉘었다고 분석했다.

◎ 사회주의 사상과 기독교

삼일운동 이후 한반도에서는 서구유럽의 공화제 기반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공산주의 사상에 기반한 사회주의 정치제도를 각 각 추구하는 세력과의 대화와 갈등이 연출되는데 공산주의 사상에 담긴 반종교성에 대해 기독교는 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했고, 반공정서를 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교회는 미국의 정책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고, 미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적 특징을 받아들이는 편이었기에 미국의 반공주의와 반사회주의적 관점이 한국교회의 주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중요한 신앙의 교리로 반공을 택하는데 이는 19세기 말 등장한 공산주의에 대한 세계적 정신흐름을 기독교적으로 거부한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모든 사회는 지식인들이 사회적 지도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인데 그런 노력이 축적되면 사회적 변혁을 끌어낸다는 명제를 제시하고,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꾸준한 학습을 실시하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 목회자와 평신도 전문가들의 사상이 올바르게 발전 또는 퇴보하는 경우가 가능하다며,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친일파는 척결의 대상이지만 당대에 가장 훌륭한 지식인이고 정치인이었다는 측면은 그들의 생각이 시대의 발전과 퇴보를 결정하는 변화의 요소이며, 신념을 이유로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각자의 신념이 올바른지 그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송훈 박사(명지대학교 출강, 전문연구원)는 논찬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과 복음을  세상과 정치, 문화, 경제, 환경 등에 대해 모두 대응 가능하기에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송 박사는 미국이 20세기 초반 세계 최고의 사회의 진보를 이뤘는데 1920년대의 경우 전세계 공업생산량의 44%를 달성하고, 국민 5명당 자동차 1대를 소유해 이동의 자유를 누린 세게 최강국이었다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내리막을 겪었다고 평가했다. 산업혁명의 영광스러운 시기에 어두운 곳에서 가난한 자들, 소외받는 자들, 착취 당하던 자들과 함께 했던 기독교인의 성결운동과 사회복음운동이 빛을 발휘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한반도의 조선은 기독교와 정치권력, 정치적 이념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중이었다고 1920년대의 사회를 설명했다.

김동석 박사가 이 시기 조선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자강을 이루려던 민족주의적인 기독교지도자들, 신사참배에 반대해 학원을 폐교한 선교사들, 공산주에 유물론에 맞선 반공주의 기독교인들, 기독교인이면서도 친일파였던 자들의 내선일체적인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이 추구한 기독교적인 신념이 무엇인지, 그 신념이 21세기 현재에는 무슨의미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송훈 박사는 이에 대해 정치와 기독교의 관계를 어떤 신념으로 구축함이 이 땅에 샬롬(평화)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강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교회사학자들은 남북전쟁 후 수포쿠스 재판을 거치며 복음주의자들이 당시의 상식에 기반한 현대주의와 성경 간의 균형을 맞출 전통의 신앙유산을 상실했음을 주제발제자가 지적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시대에 근본주의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우드로 윌슨과 월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같은 인물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종교지형에서 전통적 교회들이 탈 권위화와 쇠락이 이어졌다는 것은 교회권위가 지켜지는데 정치적 권력이 아닌 당대의 미국 문화와 전통적 신앙을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해야하는지 요구하는 사건이었다고 분석했다.

주제 발제자는 올바른 교회의 정치적 참여의 방식이 무엇인지, 어떤 신념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교회의 가치를 구현할지에 대한 과제를 던졌다고 밝혔다. 아쉽게도 김동석 박사는 한국의 현 세대의 문화가 교회에게 전쟁의 대상인지, 창조적 방식으로 이 사회를 거룩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련해 복음적 기독교인들이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살아갈 방법이나 차세대를 위한 교육의 방향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송훈 박사는 지적했다.

송훈 박사는 이에 빈센트 바코트(아브라함 카이퍼의 추종자)의 관점을 대안으로 소개했다.

바코트는 선과 악, 너와 나,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적 논리에 쉽게 매몰되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윤리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찬반이 아닌 복음에 기반한 대안적 접근을 시도하라는 권고를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바코트가 제시하는 선한 방식의 사회 변혁 방법은 애통함, 기대를 줄임, 고난을 감수함 등의 세가지 영역을 설명했다고 한다. 첫 째 애통함에 관해서 성경의 저자들과 선지자들이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짓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들도 간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적책임을 하려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의 저항은 항상 완강하기 때문에 절망보다는 애통하고, 인내함으로서 우리는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둘 째 기대를 조절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물론 세상을 당장이라도 변화시키실 수 있겠지만 종 종 우리는 인내하도록 요청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곧 대규모로 세계적 변혁이 일어날 것을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 변혁이 안 일어나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절망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제안했다. 인류의 역사는 꾸준한 진보로 인해 변화되었으며, 그 역사마저도 최종적으로는 종결자가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공적 책임을 감당하려면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공적 책임을 다 하고 그리스도를 닮는 변화를 추구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고난까지도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밝혔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행하기 위한 공적영역에서 의무를 다하는 자들은 고난이 따른다는 명제는 예수 또한 알고, 이를 가르치신다고 설명했다.

바코트는 개인적 신앙과 공공의 변화를 소개하면서 도르테 줼레(독일 신학자)를 소개했다고 한다. 도르테 줼레는 홀로코스트의 재앙이 유럽을 덮었을 때 "가스 냄세가 나지 않나요?"라고 질문해 교회 예배당에서 경건한 예배를 드렸던 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독가스로 쓰러져간 유대인의 아픔을 신경쓰는지를 지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기독교의 전통교리들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공적의미가 있음을 인식해야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주신 사명을 깨달아 수행할 제자로서 이땅에 정의를 선포하는 자들이 되야 한다는 것이 바코트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송훈 박사는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의 장은 권력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풀뿌리 운동이 현장이고, 거룩한 삶의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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