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25일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공연 장면. 남녀 주인공 제이 개츠비 역의 제레미 조던과 데이지 뷰캐넌 역의 이바 노블자다는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스타 배우들이다. /사진가 매슈 머피, 에반 짐머먼
‘美 영혼 개츠비’로 브로드웨이 진출한 한국인
신춘수 프로듀서가 만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美서 정식 개막
다시 조명이 밝아지자, 주인공 개츠비의 마지막 뒷모습을 검게 물들였던 무대 위 어둠이 한순간에 걷혔다. 관객들은 용수철 튕기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위대한 개츠비’(이하 ‘개츠비’)가 개막한 25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1763석 규모 브로드웨이극장을 가득 메운 현지 관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57) 대표는 현지 제작진과 3년여 준비한 ‘개츠비’를 이날 뉴욕 브로드웨이라는 거친 바다에 출항시켰다.
▲26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극장,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브로드웨이 개막 공연 뒤 커튼콜에서 이 작품의 단독 대표 제작자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관객과 창작진, 배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미국의 영혼’, 한국이 뮤지컬로
뮤지컬 ‘개츠비’는 1막에서 2막 중반까지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를 풍성한 빅 밴드 재즈풍 음악과 화려한 무대미술, 신나는 춤으로 풀어낸다. 1차 대전 후 경제적 호황과 풍요를 누렸지만, 동시에 부유층의 사치와 빈부 격차도 심했던 시대. 베일에 싸인 백만장자 개츠비의 호화로운 저택 파티 장면들은 눈과 귀에 압도적 자극을 선사한다. 개츠비와 옛 연인 데이지가 처음 재회하는 ‘차 한 잔만(Only Tea)’ 등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 문법을 적용한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반응했다. 2막 후반부에선 인물들 각자의 삶에 쌓여왔던 긴장이 폭발하며 비극적 결말을 향해 소용돌이친다. 불륜 끝에 버림받는 정비공의 아내가 부르는 ‘일방도로(One-Way Road)’, 데이지가 자신의 마지막 선택과 당대 여성들을 옭아맨 사회적 한계를 노래하는 ‘예쁘고 바보 같은 여자(Beautiful Little Fool)’는 가슴 절절하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25일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주인공 개츠비같은 신흥 부유층을 가리키는 노래 '뉴 머니(New Money)' 공연 장면. 원작의 화자인 '닉' 역 노아 리케츠와 '조던' 역 서맨사 폴리, 두 신인 배우의 춤과 호흡이 빛난다. /사진가 매슈 머피, 에반 짐머먼
뮤지컬 ‘개츠비’는 가장 미국적인 소설 ‘개츠비’<키워드>를 한국 제작자가 최초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신 대표는 지난 2021년 이 작품의 저작권이 풀리는 것에 대비해 2020년부터 미국 현지에서 창작진을 구성해 공연을 준비했다. 연출가 마크 브루니는 “‘개츠비’는 묘한 동시대성을 갖는다”며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막 빠져나온 지금의 모습은 스페인 독감에서 벗어나 산업과 기술 발달로 사회가 급변하던 1920년대와 닮은꼴”이라고 했다.
◇'뮤지컬 돈키호테’의 3전 4기
신 대표는 과거 ‘닥터 지바고’ 등 두 편을 브로드웨이 극장에 올렸다가 조기 종연한 경험이 있다. 그 덕분에 ‘뮤지컬계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지킬 &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 수많은 국내 흥행 뮤지컬을 만든 회사가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과거 시범 공연에서 멈춰야 했던 또 다른 작품까지 포함하면, 이번 ‘개츠비’는 그에게 ‘3전 4기’ 도전인 셈이다.
미국의 관객 평점 사이트인 ‘쇼 스코어’엔 벌써 550명이 참여해 평균 이상인 약 89%의 긍정 평가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주인공 개츠비 역의 배우 제러미 조던과 데이지 역 배우 이바 노블자다가 지금 뉴욕에서 가장 핫한 스타들이라는 것도 큰 강점. 다만, 현지의 일부 평론가들이 음악과 무대의 화려함과 가벼운 접근 방식이 원작의 문학적 깊이를 가렸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유보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25일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중 주인공 개츠비(제레미 조던)가 호수 건너편 옛 연인 데이지(이바 노블자다)가 사는 집의 녹색 불빛을 바라보는 장면. 압도적으로 화려한 무대 미술은 이 뮤지컬의 가장 뛰어난 볼거리 중 하나다. /사진가 매슈 머피, 에반 짐머먼
‘개츠비’는 작년 10월 말 뉴저지의 극장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 3주간 올렸던 시범 공연부터 성공적이었다. 객석 1200석이 전회 전석 매진됐을 정도. 이 성과를 바탕으로 브로드웨이 개막은 아예 미 공연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6월) 시상식을 앞두고 신작들이 개막하는 이른바 ‘토니 시즌’으로 앞당겼다. 우선 30일(현지 시각) 발표 예정인 토니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신 대표는 “작업 내내 저 혼자 한국 사람이었다. 외로웠지만 프로듀서로 또 개인으로 한번 더 성숙해지는 계기였다”고 했다. “프로듀서가 자리를 잡아야 한국의 더 많은 공연 인재들에게 기회가 갑니다. ‘개츠비’를 브로드웨이에서 오래 공연하고, 미국 국내 투어와 영국, 호주, 일본 등 해외 투어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대표작. 1차 대전에 참전하며 연인 ‘데이지’와 헤어졌지만 수수께끼의 백만장자가 돼 돌아온 ‘개츠비’가 옛사랑을 되찾으려 애쓰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스토리.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 빈부 격차,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환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흰 고래 모비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과 함께 미국의 본질을 들여다본 ‘위대한 미국 소설’(GAN)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