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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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 노래’ ‘농무신경림 시인 별세

 

농무가난한 사랑 노래등을 쓴 신경림 시인(본명 신응식)22일 별세했다. 향년 89.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영문과 2학년 재학 중인 1956년 시 낮달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낙향해 한동안 농사를 짓는 등 긴 공백기를 갖다 1965년 상경해 농촌의 정서를 듬뿍 담아낸 대표작 농무1973년 발표했다. 그의 생애 첫 시집으로 2년 뒤 창비시선’ 1권으로 나왔다. 한창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1970년대 문단을 휩쓸던 모더니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농촌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농무10만 권 넘게 팔리며 창비시선이 지속적으로 발간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어 새재’(1979), ‘달 넘세’(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노래’(1988), ‘’(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목계장터’(1999), ‘’(2002), ‘신경림 시전집’(2004), ‘낙타’(2008) 등의 시집을 펴냈다. 이 중 농무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등이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됐다. 농촌에서 삶의 현장에 기반해 농민의 고달픔과 의지를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생전 타인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고인은 한일 문학교류에도 적극 나섰다. 2015년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6개월간 주고받은 대시를 엮어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했다.

 

어린 시절 일화를 비롯해 절친이던 천상병, 김관식 시인과의 에피소드 등을 담은 에세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2009)를 남겼다.

 

고인은 1974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제2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 회장과 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공동의장을 지냈다. 2001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한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뽑힐 것은 뽑혀야 한다

그리하여 빈 들판을 어둠만이 덮을 때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죽음만이 머무를 때

비로소 보게 되리라 들판 끝을 붉게 물들이는 빛을

절망의 끝에서 불끈 솟는 높고 큰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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