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작가] 임은희 작가…캔버스에 ‘자아성찰·치유’ 메시지 담아
국내외展·그룹展·각종 아트페어 참여 등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
▲임은희 작가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전시작품 'Angstblüte (앙스트블뤼테) 91.0x116.8cm 캔버스에 오일' 옆에서 카메라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다.
[화제의 작가] 임은희 작가…캔버스에 ‘자아성찰·치유’ 메시지 담아
국내외展·그룹展·각종 아트페어 참여 등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
들어가며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T.S. 엘리어트 詩 ‘황무지(荒蕪地)’ 도입부.
봄이란 계절은 온갖 만물이 소생하고, 꽃을 피우면서 우리들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그런데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T.S. 엘리어트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인 4월을 ‘잔인한’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은희 작가가 자신의 전시 작품 사이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엷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다
커다란 눈에 담긴 사회를 향한 불안, 자아성찰 통한 극복의 메시지
임은희(Lim, Eun-Hee) 서양화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7월31일부터 8월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2024 ‘제15회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 정기전』의 일환 중 개인부스展으로 마련되었다.
임 작가의 전시 작품 8점의 공통 주제는 ’꽃‘이다. 임 작가의 부스 중앙에 전시된 커다란 잎의 중심에 피어난 옅은 초록색의 잎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자주색 잎들의 작은 꽃 속에 숨은 굳게 입다문 소녀의 유난스럽게 커다란 눈이 관객의 시선을 비끌어 매면서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50호 크기의 작품 『Angstblüte-91.0×116.8cm oil on canvas』제목 그대로 이해한다면 ’불안(공포)의 꽃‘이다.
꽃을 통해서 아름다움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작가는 ’불안‘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걸까?
꽃은 보는 즐거움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장미·한련화·매화·복숭아꽃·동백꽃 등은 영양학적으로도 도움이 돼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하는 꽃도 있지만, 반면에 철쭉꽃·은방울꽃·동의나물꽃·애기똥풀꽃·투구꽃 등은 흔하고 예쁘지만 독성이 있어 식용이 불가한 꽃도 있다. 임 작가는 그같은 걸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한 걸까?
“불안과 혼란함이 가득할 때 나는 자연을 찾습니다. 자연 속에 몸을 숨기고 내 안에서 자라나는 현재의 감정과 과거의 기억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기억은 늘 불완전하고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기억과 감정이 정리되는 과정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자연의 선과 색, 움직임을 통히 이미지로 표현합니다”-임은희 작가 노트 도입부.
작가는 구체적으로 불안과 혼란함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은 채 자연을 찾는다. 그건 단지 작가 자신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각기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내적· 외적인 불협화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작품 ’Angstblüte(앙스트블뤼테)‘의 커다란 눈은 삶의 불안함과 혼란함에서 벗어나고자 찾은 자연 속에 핀 꽃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향해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향한 불신이 빚은 불안’으로 인해 누군가를 탓하기에 앞서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들여볼 줄 알아야 한다는 자아성찰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가 설파했던 “대체로 불안이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중심이 흔들리기 때문에 생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임 작가는 “동식물 모두 존재의 숨김과 드러냄의 두 가지 생존전략을 가진다. 나의 작업 속 인물 또한 숨김과 드러냄의 두 가지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한다”며 “꽃 속에 숨어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몸에서 풀과 꽃이 자라나 전체를 덮기도 한다. 보호색으로 몸을 바꾸고 꽃 속에 숨어 자연이 주는 안정감을 느낀다. 자연은 내면을 성찰하기에 좋은 곳이면서, 바깥은 탐색하고 소통하기에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한마디로 각기 다른 크기의 무수한 잎들이 ’보호색으로 몸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동화 내지는 동질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지름길은 곧 자연의 변이와도 같은 사회 구성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임은희 작가가 자신의 작품 옆에서 팔장을 낀 자세로 바깥 날씨와 걸맞는 환한 웃음을 웃고 있다.
캔버스를 채운 다양한 색채와 눈(眼)
임 작가가 작품에 변화를 주기 위한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전시 작품『꿈꾸는 고양이; 91.0×116.8cm』를 제외한 『Green Shades, 72.7×90.9cm oil on canvas』,『Purple Shades 72.7×90.9cm oil on canvas』, 『Blue Wave; 60.6×72.7cm Acrylic on canvas』에 등장하는 눈은 공통으로 여성의 눈인데, 그 눈 모양이 동서양으로 나눈 점이 인상적이다. ’Angstblüte(앙스트블뤼테-불안·공포의 꽃)‘·’Blue wave(푸른 파도)‘의 눈은 나어린 소녀의 눈으로 거의 같지만, ’Green Shades(초록색 그늘)‘· ’Purple Shades(보라색 그늘)‘에서는 성인의 눈에 약간 다른 동양적인 이미지로 구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임 작가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저명한 예술 평론가이자 작가이자 소묘 및 수채화 화가로도 활동했으며, 사회사상가로 이름을 떨쳤던 존 러스킨이 “나는 이것을 색상이라 부를 수 없다. 이것은 큰불이다. 첫 번째는 횃불, 그리고 에메랄드”고 했던 생동·성장·새로운 인생 부활을 뜻하는 초록색 담쟁이넝쿨로 채운 ’Green Shades‘ 속 여성의 눈과 마주치는 관객 중에는 어쩌면 한 편의 詩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누님. / 눈물 겨웁습니다.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속에 / 다수굿이 젖어있는 붉고 흰 목화 꽃은 / 누님. / 누님이 피우섰지요?
퉁기면 울릴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 바윗돌도 모다 바스라저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여서 /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여서 / 질갱이 풀 지슴ㅅ길을 오르내리며 / 허리 굽흐리고 피우섰지요?-서정주 시 목화(木花) 전문
임 작가의 담쟁이넝쿨 속 여인의 눈은 험난한 삶을 헤쳐간 우리네 누이이자,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한 한국 어머니의 강인한 힘을 상징하는 회상의 눈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넘실대는 파도를 마치 식물 잎으로 형상화한 작품 ’Blue wave‘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여명기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가 “다른 모든 색을 뛰어넘는 빛나고 아름답고 완벽한 색”이라고 갈파했던 파란색으로 채웠다. 마치 만화 캐릭터 속 어린이의 커다란 눈은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의 눈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 작가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믿음과 회개의 색깔이자, 죽음과 환생이라는 생명의 영원한 순환을 상징하는 보라색 위주의 아시아계 성인의 눈을 그린 작품 ’Purple Shades‘에 대해서 “부드러운 검붉은 털과 구불구불 퍼져나가는 곡선은 화면을 열정으로 가득 채운다. 줄기를 꺾으면 짙은 마젠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맨드라미는 색감과 형태 모두 강인함과 뜨거움이 느껴진다. 맨드라미 뒤에 욕망을 숨긴 채 무표정하거나, 또는 욕망의 맨드라미 가면을 쓴 인물은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반복되는 구불구불한 꽃잎의 형태는 새로운 선의 리듬과 색의 감각을 만들어 내며 작업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주변에는 고양이·강아지 등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보살피며 무한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 동물 가운데 하나인 고양이가 하트 모양의 꽃을 담고 유영(游泳)한다. 그 고양이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의 꽃들이 덩어리를 이룬 채 떠돌아 다닌다.
임 작가의 작품 ’꿈꾸는 고양이‘는 관람객을 향해서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 다분히 교훈이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자, 이쯤에서 임 작가의 작품 속 불안은 어디에 기인하는지,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는 넘치는 정보와 SNS에 의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노출하고 또한 타인을 들여다보는 삶을 살고 있다. 비교와 인정 결핍 그리고 미래의 성취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또 다른 이름의 욕망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정리와 해소를 위해서는 타인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닌 나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먼저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 ‘숨어있기 좋은 곳’ 시리즈는 자연 속에 안전하게 몸을 숨긴 자기 모습을 깊이 들여다 보며, 그 안의 감정과 욕망을 인지하여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과정이다“-임은희 작가 노트 부분.
▲임은희 작가가 자신의 작품 'Angstblüte' 옆에 서 있다.
나가며
임 작가는 출품작 8편의 연작화 ‘숨어 있기 좋은 곳’의 주제는 ‘현대인의 불안’으로, 꽃이나 식물 사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우리들의 내면에 잠재된 정신세계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다.
임 작가는 관객을 향해 ”나의 작업 속 인물은 식물로 위장하여 자연 안에 안전하게 숨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정리하여 단순화된 색감과 부드러운 선의 리듬으로 평안함을 전한다. 긴장하지 않는 내면의 집중력으로 자연과 교감하여 식물과 동물과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자연은 인간을 치유한다“고 말한다.
시인 T.S. 엘리어트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인 4월을 ‘잔인한’하다고 표현한 건 겨우내 언 땅을 뚫어야 어린싹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내부적 역량과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돼 창조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쩌면 추억이나 욕망이 거세된 한겨울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임 작가의 ‘숨어 있기 좋은 곳’은 역설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드러내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외면에 드러난 것보다는 내면에 잠재된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자연동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작가는 상명대학교 미술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임 작가의 경력은 아래와 같다.
△개인전 6회
-2024 갤러리 라메르(서울)
-2023 갤러리 발트(용인)
-2018 삼청동 사차원(서울)
-2002 비주얼 갤러리 고도(서울)
-1999 대림 화랑(서울)
-1998 종로 갤러리(서울)
△해외전 및 그룹전
-2024 잠비아 봉사 후원전(용인 갤러리 발트)
-2024 홍화연지/ 산리 갤러리(양평)
-2023 ‘Friends’ 갤러리 팔트 기획, 뉴욕 코스모스 갤러리
-2023 크리스마스 특별전(용인 갤러리 발트)
-2023 굿모닝 화랑미술제(서울 신상 갤러리)
-2023 ‘in Nature/부천 시청역 갤러리(부천시 문화예술과 지원)
2021-2022 삼원미술협회 정기전(서울 마루 아트센터)
2022 ’설레인 꽃/심곡천 네모 갤러리(부천시 문화예술과 지원)
그 외 단체전 및 해외전 다수
△아트페어
-2024 FOCUS Art fair(뉴욕)
-2024 월드 아트 엑스포(코엑스)
-2023 서울 아트 쇼(코엑스)
-2023 홈 테이블 데코 페어(코엑스)
-2023 경주 아트페어(경주 화백 컨벤션 센터)
-2023 대구 블루 아트페어(EXCO)
-2023 뱅크아트페어(SETEC)
-2023 The GIAF(호텔 신라)
-2023 홈테이블 데코 페어(BEX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