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버리고 태평양 건넌 20세女…해리스 키워낸 엄마였다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자면, 카멀라 해리스를 키운 건 팔 할이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 해리스 박사(1938~2009)다. 해리스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사상 첫 여성이자 아시아계 후보로 출사표를 던지며 어머니 얘기를 꺼낸 까닭이다. 해리스 후보는 이날 "어머니가 매일 그립지만 지금 특히나 그립다"며 "오늘밤, 어머니가 (하늘에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모친은 2009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팔란 박사는 장녀 해리스에게 기대가 컸다. 이렇게 자주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너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자주 달게 될 거다. '최후'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라." 맡은 바를 책임지고 해내서, 뒤에 오는 후배들의 길도 잘 터주라는 당부다. 오는 11월 5일, 해리스가 최초 여성 아시아계 백악관 주인이 될지 결정된다.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뉴욕타임스(NYT)는 21일 "해리스가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의 여정에서 주인공은 어머니"라거나 "해리스 후보보다 그 어머니가 더 브랫(brat: 엉뚱하지만 쿨한 악동)"이라는 주장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딸 덕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고팔란 박사는 본인의 업적만으로도 큰 성취를 이룬 학자였다. 유방암 연구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의 부고를 다룬 2009년 2월 11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기사 첫머리는 "저명한 과학자이자 선생님, 인권 운동가였다"고 시작한다.
그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팔란 박사는 1958년, 갓 스물이 됐을 때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인도 남부 첸나이 지방에서 태어난 고팔란 박사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도의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위인 브라만 계급에서 태어난 덕이다. 19세에 대학 졸업장을 취득했을 정도로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그는 그러나 조국이 답답했다. 여성의 학업과 사회 진출의 장벽 때문이었다. 미국행을 결심한 그는 곧 UC 버클리에 입학하고 25세에 박사학위까지 받는다. NYT는 "1950년대 인도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난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자메이카 출신으로 흑인 첫 스탠퍼드대 종신교수로도 유명한 도널드 해리스와 학교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그렇게 해리스 후보와 여동생 마야 두 딸을 얻는다. 카멀라 후보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의미하며, 힌두교에서 행운과 부를 뜻하는 락슈미 여신의 별칭이기도 하다. 고팔란 박사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고팔란 박사는 1971년 이혼을 택한다. 해리스 후보는 7세였다. 해리스 후보는 자서전에서 "두 분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고팔란 박사는 홀로 두 딸을 양육한다. 해리스 후보는 일에 매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해리스 후보는 "어머니는 주말에도 연구실에 출근하곤 했다"며 "대신 우리를 돌봐주시던 아주머니의 집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곤 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해리스 후보에게 고팔란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남이 너를 규정하도록 두지 마라. 네가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보여줘." 해리스 후보는 이를 이번 대선 가도의 연설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고팔란 박사는 또 해리스 후보에게 "너는 코코넛 나무에서 별안간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역사와 환경을 주지하라는 당부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코넛은 어두운 피부의 이민계 미국인들을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이는 말이다. 아시아계를 때로 바나나에 빗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해리스 후보가 이를 인용해 말하면서, 소셜 미디어 등에선 해리스 후보와 코코넛 열매를 합성한 이미지와 밈(짤)이 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