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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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총장 김용학) 음악대학(학장 강무림)은 1917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에서 채플시간에 찬송가와 합창을 가르친 것으로 시작된 음악교육이 100 여년을 지났으며, 1955년 종교음악과가 신설된 이래 대한민국과 세계 음악에 기여해온 사실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세음악100 심포지엄'을 '지나간 100년 다가올 100년'이라는 주제로 지난 11월 20일 연세대학교 음대강당에서 오후 1시에 세미나, 오후 7시 30분에 음악회로서 개최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김용학 연세대학교 총장은 연세대와 음악의 관계에 대해서 구한말 미국인선교사 베커 부인으로부터 연희전문이 개교하면서 시작되었다면서 당시 연세의 음악은 찬송으로, 때로는 합창으로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며 시작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를 선보이게 되었고, 종합예술인 오페라 또는 연고전의 뜨거운 응원가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고, 연세음악대학을 중심으로 서양음악의 수용이 이 땅에 이뤄졌던 것이 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미래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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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무림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장이 인사말을 담당했다.

강무림 음악대학장은 "음악은 예술 중에서 가장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고 100년 전 연희전문시절에 밝히 김영환 선생의 교육내용은 연세대학교가 창립 134주년을 맞고, 음악대학이 64주년을 맞은 지금 떠 오른다면서 연희전문에서 음악교육의 시작된지 100주년이 헤아리는 역사를 통해 볼 때 그간 많은 교육과정과 전공과정을 통해 우수한 졸업생을 음악인으로서 배출했던 역사와 전통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하겠다고 인사말을 밝혔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 실시된 동 행사는 지속적으로 매년 진행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밝히기도 했다.
여은희 음악대학동총회장은 학생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며 시작한 연세의 음악교육은 반세기를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음악계를 대표하는 수 많은 연주자를 배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면서 여기에 헌신해주신 연세대학교의 동문들과 교수, 학생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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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일 음악연구소장은 연세음악의 도입으로 한국 서양음악의 영향을 설명했다.

신동일 음악대학 음악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소개됨은 서양선교사들의 선교시기와 일치하며, 연세동산에서는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고등교육과 음악교육도 시작했다는 점에서 연세대학교에서 근대음악의 효시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인사말을 통해 평가했다.

▲ 제 1부 심포지엄 '연세음악 100년의 비상(飛上): 1914~1954.

심포지엄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윤주용 홀에서 개최했다.
개회사 및 사회는 권오연 박사(연세대학교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 축사는 강무림 학장(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환영사는 신동일 소장(연세대학교 음악연구원) 등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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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연 박사는 사회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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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씨는 연희전문학교의 음악과정을 설명했다.

박선영 씨(연세대학원)는 '연희전문학교의 음악교육-학제와 행정을 중심으로'를 발제했다. 연희전문학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5년 한국에 입국 한 후 설립했으며,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강의하고, 1887년에는 벽지선교를 시작했고, 새문안교회와 기독교서회를 창설,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해 성서이ㅡ 번역사업 주관, 1900년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한 바 있음을 설명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94년에 117곡의 찬송가가 수록된 '찬양가'를 출간하는 등 교회음악에 기여했던 부분을 밝혔다. 제중원이 1886년 개교 후 여기서 물리와 화학을 강의하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7년 미국 해외선교본부의 웰스 회장에게 서울 중심가에 큰 학교를 설립하기를 소망한다며 대학설립의 꿈을 들어냈고, 1888년에는 의료선교사 헤론과 함께 미국 공사를 통해 조선 정부에 한국 젊은이들을 위한 대학설립을 청원했지만 거부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65년 고아 두명을 데리고 고아학당을 열고, 이것은 중등교육기관인 경신학교로 발전, 대학을 세우기 위한 학무구조를 조정하여 사립학교령에 따른 대학과를 가진 기관으로 등록했지만 비정기적으로 운영되었고, 무엇보다 동료선교사들의 반대와 일제의 훼방이 동반되었다고 밝혔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초교파적 종합대학설립을 추진, '조선기독교대학(Chosun Christian College)'으로 명칭을 정하고 1915년 4월에 개교하고자 했고, 타자기회사를 운영하는 언더우드의 형이 보내준 5만 2천 달러로 창천리(현재 연세대 부지)에 29만 평의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일제는 1915년 3월 개정사립학교 규칙과 전문학교령을 공표하고, 정교분리를 내세워 종교교육은 금지하는 등 방해를 했고 결국 4년제 종합대학교가 아닌 전문대학으로 개교, 연희전문학교가 1915년 4월에 개교했다고 설명했다. 1917년까지는 정식건물이 미비해 종로의 서울YMCA빌딩에서 연희전문학교의 수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연희전문의 설립를 주도한 인사들은 '사람의 평화'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고, 기독교와 한국은 상충될 수 있는 가치였지만 한국인들에게 서양학문을 도입해줘 부강한 한민족으로 만들려는 언더우드의 가치는 일제시대에 나라잃은 슬픔을 교육으로서 치유해주는 가치로서 빛을 바랬고, 음악교육 역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힘을 주고, 단결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희전문 초기에는 음악과는 없었고, 음악부만 존재했지만 문과와 신과에 음악 및 교회음악으로 교과목을 개설, 원하는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던 중 1920과 21년에 이사회에서 음악과설치를 논의, 1928년에는 연희전문의 종합대로서 승격운동과 연동되어 음악과 설치를 추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온 여정을 소개하고, 음악과는 없었지만 대학 내에서의 교육차원을 넘어 당시 한국의 서양음악의 장으로서 사회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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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형주 박사는 연희전문학교가 배출한 음악인사들을 설명했다.

지형주 박사(연세대학교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는 '연희전문 음악가들'이라는 발제를 통해 연희전문에서 음악교육을 시작했고, 이끈 주요인물로서 선교사 부인과 선교사, 한국인교수, 세브란스전문학교의 교수 등으로 소개했다. 베커 부인은 연전에서 최초의 음악교육이 이뤄지던 1914년부터 1940년 귀국할 때까지 오르간과 피아노, 성악, 채플 반주, 가창, 관현악단 지도 등 다양한 음악교육을 실시했다며 연전의 음악을 위해 매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점을 설명했다. 루퍼스 머드 부인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비판 한 루퍼스 교수가 1917년 귀국함에 따라 루퍼스 부인도 2년 밖에는 기여하지 못했지만 연전 최초의 양악 밴드를 조직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로즈 부인은 관현악단과 합창단, 밴드를 지도하며 오케스트라를 크게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연희전문의 한국인교수는 변성옥, 백남석, 백우용 등이 선교사 부인들의 음악교육을 도운 초창기 한국인 교사로 활동했으며, 변성옥은 음악수업을 도우며 기숙사 사감의 역할을 했고, 백남석은 영문과 교수임에도 음악부장을 담당했고, 백우용은 연전에서의 재직은 1년이지만 한국인 최초 군악대장 출신으로서 양악부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혔다. 김영환은 연전의 초기 사회적으로는 음악가는 무조건 풍악쟁이정도로 치부되던 문화였던 상황을 거스르면서 민중과 민족을 위한 계몽으로서의 음악의 반열에 도달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현재명은 김영환의 뒤를 이어 연전음악을 최고의 위상으로 올렸고, 성악과 기악, 관현악 등 모든 음악교육을 총괄, 음악도서관 건립도 추진했다고 한다. 연전음악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수백명에 이른다면서 이들 중 홍난파의 조카인 홍재유, 홍은유, 홍성유, 홍지유 등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유명했고, 연전의 교수인 박태준의 형인 박태원이 연전음악가였고, 윤기성은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의 동생이며, 동생 윤성덕은 사의 찬미를 반주하는 등 많은 인사가 배출되었음을 밝혔다. 지 박사는 이외에도 수많은 음악계 인사를 소개했지만 연전의 음악을 통해 한국에서 선교사의 부인들이 음악수업을 실시했다는 것은 천운이며, 외국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한국인 1세 음악가들이 연전에서 음악부가 없이도 김영환이나 현제명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음악활동을 펼치고 전문가들을 양성했음은 지난 1백년의 한국음악사에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른 흔적이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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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상춘 박사는 연희전문학교가 서양음악을 도입함으로서 항일의식을 돋우는 한편 문화의 진보도 이뤘음을 설명했다.

연상춘 박사(연세대학교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는 연희전문에서 서양음악을 도입한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 도입기의 초장기를 구성한다는 특징이 있음을 설명했다. 이 때 음악가로서 활약함은 날라리 패나 풍악쟁이처럼 천시받는 상황이었기에 연전 음악부는 당시 통념을 넘어서야하는 과제를 수행했다는 설명을 했다. 연전이 생겨나는 시기 자체가 음악활동을 활발히 하는 지역이 있었고, 이것은 학교의 홍보에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운영상으로 합주와 관현악, 합장 등 각 분야에 동일한 구성원들이 중복해 수행했다는 점은 학생 자체가 상당한 실력이 있었다는 것이어서 모집된 학생들 상호간에 서로 배움의 기회도 컸다는 부분을 밝혔다. 연전음악부는 수업 만큼이나 전국단위의 순회공연을 중시함으로서 음악에 대한 자세나 경험도 함께 늘어날 뿐 아니라 연주활동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으로서 사회적 역할이 컸다는 설명이다.
1936년 조선 7대 총독 미나미는 내선일체(조선인과 일본인은 하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황국식민화를 밀어붙였지만 연전음악부의 활동으로 정책에는 지장이 초래돼는 등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당시 국민들은 연주시에 기본적으로 박수를 쳐야한다는 것도 모르는 문화적 무지까지도 가르치는 등의 계몽의 역할을 수행하는 등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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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부 음악회 'A Centennial Concert of Yonsei Music'

음악회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오후 7시 30분에 개최되었다.
유범석 교수(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부교수)의 편곡으로 멘델슨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 G마이너 25번 곡과  베토벤 심포니 9번 D마이너 125번곡이 연주되었다.
이홍석 교수(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가 작곡 및 편곡한 연세의 노래, 연세찬가, 영원하라 연세 등이 연주되었다.
이날 주요 출연진은 윤승업 지휘자(연세음대 졸업, 충남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한영란 피아노연주자(연세대학교 교수), 나경혜 소프라노(연세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 장현주 메조 소프라노(연세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 국윤종 테너(연세대학교 졸업), 양준모 바리톤(현세대학교 졸업) 등이다.
특히 연세대학교 동문 오케스트라와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합창단 등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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