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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의 이해는 입장따라 달랐다

홍성표 박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에 기고
기사입력 2019.12.2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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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표 박사가 윤동주의 문학을 연구하는 '동주산책길발굴기획단'에서 강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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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박사(연세대학교 학풍연구소 전문연구원)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발행하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 68집에 '기독교 학교 학생들의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연희전문학교 학생회를 중심으로'를 기고했다. 홍 박사는 기고를 통해 1926년 무렵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의 노선을 선택했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대의 기류가 생겨나던 시기였는데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에서도 그 같은 움직임이 일어난 결과 6.10만세운동까지 불러일으켰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사상과 활동으로서 벌어진 일이었고, 오히려 당시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등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공존했었던 현상이었음을 밝혔다.
한국사회에 사회주의사상이 소개된 것은 1910년대부터였고, 여타 다양한 사상이 소개되었지만 3.1운동을 거치면서 1920년대 초반에 마르크스주의가 식민지 조선에서 운동과 사상의 두 측면에서 현실적 주류로 등장, 사회주의 지식인과 청년들은 민족해방운동의 이념으로 수용하는 순간 반기독교운동을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기독교사회주의는 일제 식민통치의 경제적 수탈의 부당함을 비롯 사회주의의 반기독교운동으로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식민 조선과 교회가 기독교적 방식으로 나가야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있다.
연전 학생의 사회주의와의 만남은 사회주의 반기독교운동 및 기독교사회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전의 학생들은 학문적으로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사회주의의 기독교비판을 수용하고 기독교정신에 기반한 조선사회의 개조를 촉구하고, 1921년에 조직적 형태를 갖춘 연전 기독학생청년회는 사악과 암흑의 수단으로 이용하던 기독교를 정의와 광명의 원상대로 회복시켜 '전 사회를 기독 정신화'하자는 입장이었다고 언급했다.
연전학생들의 기독교적 개혁의 열망은 점차 민족해방운동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바뀌어서 기독교적 사회주의 시각이 아닌 사회주의 자체를 보는 관심으로 기울어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음을 주장했다.
연전의 학생단체는 기존에는 기독학생청년회였지만 1923년 학생회의 창립을 가결했는데 당대 숭실고 이화 등 그리스도교학교들은 기독학생청년회가 주도하던 것과는 달랐고, 학생회가 창립되어서 좀더 자치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주변의 사회 자체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처럼 연전에서도 학생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갔다는 설명이다.
연전의 학생들은 당시 조선 기독교가 날로 심각해지는 식민지 조선의 문제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 못한다며 실망했고, 자체 발행지인 '연희'의 지면을 통해 볼 때 기독교관련 글이 줄고 사회주의에 관련된 기사가 늘어갔다는 현실을 밝혔다
연전의 학생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았으나 사회주의 사상 및 이론을 참고해 민족문제를 해결하자는 진보적 민족의식의 발로로 사회주의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기 시작했고, 당시 학문으로서 사회주의를 수용한 학교분위기 속에서 교수의 글이 주를 이루다가 나중에는 학생의 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경향이었음을 밝혔다.
조선과학연구회는 1925년 창립되어 해체되기 전까지 조선공산당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6.10만세운동을 비롯한 192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단체였는데 여기에 연전의 학생들이 창립시에 많은 관여가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사상의 연구 및 보급을 통해 식민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또 사상통일에 의한 학생계의 단결을 촉구하는 단체로서 사회주의 계열의 학생 외에도 진보적 민족의식의 학생들도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역시나 사회주의 사상 및 이론을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주의였다.
1926년 4월 순종의 승하 후 학생들은 3.1운동 같은 만세운동을 일으키려 했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5월부터 만세운동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추진하고 통동계와 연대를 이룬 상태에서 천도교 구파세력 등과 민족통일전선을 결성 만세운동을 추진하던 중 주요인사들이 6월 6일 일경에게 체포되어 좌절했음에도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통동계와 연대해 독자적으로 6.10만세운동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연전에서는 이순탁, 백남운 등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를 채용해 학문적인 사회주의사상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은 이것을 넘어 기독교주의에 근거해 조선의 개조를 주장하던 중 한계를 느끼고, 민족해방을 수단으로 사회주의사상을 적극 수용해 학교당국이 금지한 '정치'활동까지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희 학교당국은 순수한 사회주의 연구는 인정하나 이와 연관한 학생운동은 용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홍 박사는 연전의 학생들이 기독교인이었기에 기독교우선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전제로 한 민족운도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 기독교주의가 목적달성에 미진하기에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민족운동의 실천을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적 전도나 기독교국가화가 아닌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전학생들의 이같은 민족운동은 기독교가 사회주의와 서로를 배척, 대립하는 관계라고 보는 보통의 시각이 아니라 실제로는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인과 사회주의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학 위한 공존과 협력의 사례로서 의미가 깊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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