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차별금지법안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차별금지법안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사입력 2020.08.20 18: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김정회 교수.JPG
 
▲김정회 박사(저자)
 실정법이 지배하는 법(강제적 정의)의 영역에서는 법적 권리와 의무가 사람들을 규율한다. 그런데 실정법으로 규율되어야 할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사정상 아직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른바 정의(자발적 정의)의 영역으로, 이 영역에서는 정의의 원리, 다시 말해 자연적 권리와 의무, 책무, 연대 의무와 같은 자발적인 도덕적 권리와 의무가 공동체를 규율하는 규범이 된다. 한편 법과 정의의 원리로도 규율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이러한 영역을 호의 또는 선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는 윤리적 실천이나 종교적 헌신이 사람들을 규율하게 된다.” (천종호, 천종호 판사의 선-정의-, 두란노, 2020, p.22)
 
1.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특히 개인의 자유를 사회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계약된 관계를 통해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법은 그러한 질서의 산물이다.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민주사회의 질서가 법치로만 이루어질 때 오히려 가장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요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법은 반드시 징벌을 동반한다. 법은 강제적인 수단이다. 강제적으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법이 만들어질 때 법의 취지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그래서 한계가 있다. 법을 통해서 만들어질 질서가 과연 개인과 사회를 바르게 해 줄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법을 제정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수많은 토론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러야 법이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로서 수용될 수 있다.
질서를 만드는 것은 법으로써만 아니라 개인의 윤리, 사회적 상식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법을 통해서도 사회를 이해하지만 보통은 상식을 통해서 이해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사회적 상식과 통념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민주주의는 법으로 통치하지만 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민주사회의 질서는 개인의 자유, 사회적 상식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2. 최근 정의당을 비롯한 몇몇 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발의는 본격적인 논쟁을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특히 성소수자의 차별을 규정한 내용은 한국기독교계를 논쟁의 한복판으로 끌어 놓았다. 복음주의를 추구해 온 대다수의 교회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 법안은 무엇이 문제일까 기독교에서는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를 성적지향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법안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의 법률인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나온다. 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닌데도 어떻게 이런 법안을 낼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제안 이유를 주장했다.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역에서 차별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차별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적절한 구제수단이 미비하여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ㆍ예방하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 이념을 실현하고, 실효적인 차별구제수단들을 도입하여 차별피해자의 다수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속하고 실질적인 구제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많은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있고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법을 제안할 때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실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당위성이 전제되어야만 법안의 목적과 실효성이 명료해서 징벌의 여부를 다룰 때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법안에서는 어떤 차별의 피해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최소한의 설명도 없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혼란을 야기해서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는 법의 시급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위성을 찾을 수 없다.
또한 차별금지법의 목적이 모든 영역에서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헌법은 평등을 명시하지만 그 평등이 기계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제나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평등은 모든 것이 동등한 것이 아니다. 존재와 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서의 평등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로운 인간사회는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된다. 차별은 개인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데서 오기 때문이다.
평등을 강제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불가능하고 많은 부작용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산주의 국가 실험이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었을 때 인간화가 무너지고 평등은 국가의 시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강력한 국가의 힘과 강제력에 의한 평등이다. 국가가 평등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드러난 것이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영역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개인의 의식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시민 사회의 상식이 이를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획일주의로 나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3.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은 사회적 통념으로 정립된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기분에 의해서 결정된다. 처벌이 한쪽의 주장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법안이 추구하는 평등과 거리가 멀다. 개인에 대한 폭력과 비하의 발언 등은 이미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어쩌면 법안을 하나 더 만들기보다는 기존 법안의 대상을 보다 명료하게 함으로써 시민사회가 인식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 나가는 것은 평등을 이루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사회가 보다 인격적이고 건강함을 추구하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질서를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윤리성과 인격을 갖춘 인간화를 이루고 그런 인간화를 이루어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4. 이 법안에서 성적지향을 말하면서 성을 세가지로 명시해 놓았다.
2(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
......
4. “성적지향이란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등 감정적·호의적·성적으로 깊이 이끌릴 수 있고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을 수 있는 개인의 가능성을 말한다.
5. “성별정체성이란 자신의 성별에 관한 인식 혹은 표현을 말하며,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타인이 인지하는 성이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 상황을 포함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성의 분류를 여성, 남성, 그 외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아직 한번도 보편적인 성(sex)의 구분을 바꾼 적이 없다. 소위 젠더(Gender)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성을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조항을 넣은 이유는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인식적 성의식을 보편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성적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자연 세계와 동떨어지는 것은 생명윤리를 주장하는 소위 진보의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은 생명윤리와 연관되는 생물학적 성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분류할 수 없는 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도 없고 용어도 없다. 남녀 화장실을 나누는 이유는 생물적 구분으로 서로 다른 생리적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남녀를 나누는 것이 무조건 차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 국가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 현상이 드문 국가 중의 하나이다. 다만 개인 인식의 문제가 있다. 흑인에 대한 혐오적인 발언들이다. 그것도 21세기 들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5. 성적지향이란 말도 보편성이 아니라 주관성을 전제로 한다. 내가 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말이다. 개인의 자유는 보편적 질서 안에서 이루어질 때 누릴 수 있다. 사회 윤리 질서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성적자유의 쟁취가 가져올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과연 개인에게 무의미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을 성적관계로 해석하고 대상화하려는 인식의 산물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인식이 아니다.
성적인 문제를 법이 간섭하고 있는 것이 되어 버렸다. 동성애, 양성애 등 성적 취향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혐오가 되고 차별이 된다면 어느 누가 윤리를 말할 수 있을까 윤리는 해야할 것도 말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이 민주사회에서 합당한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기독교가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법안이 우리 사회의 시급한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보편적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사회, 국가라는 틀에서 이 법안을 살펴보아야 하고 어떤 사회질서를 만들어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신부적 인간론(Imago Dei)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하고 사회에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서구사회를 반면고사 삼는다면 우리가 이 논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어떤 가치인지를 논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PEOPLE NEWS & thepeoplenewsinc.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