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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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배 박사는 이날 법인이사장으로 선임되었고, 한국교회의 계시록이라는 제목의 월례세미나 발제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이 고통스럽더라도 희망과 신앙을 주장해야하며, 그렇게 하면 이후 믿음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기에 한교사의 회원들은 최선을 다 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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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금주 원장은 설교를 통해 현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제시대에 독립을 간구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면서 신앙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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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영 박사는 정인과 목사의 손녀로서, 성악가로서 예배에 참석해 특송을 불렀고, 한교사가 정인과 목사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음에 협력하고 있으며, 일부의 회원들이 정 목사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을 나눴으며, 희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노력함에 대한 뜻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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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이하 한교사)은 민경배 박사(한교사 명예원장)를 초청해 '한국교회의 계시록'이라는 주제의 발제를 지난 1월 9일 서현교회당에서 열린 제 310회 월례발제회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민경배 박사는 한국의 교회사학자 및 연구자들이 회원으로서 모인 이 자리에서 세상에는 역사를 시작하는 사람과 지난 역사를 정리하는 사람 등 2가지의 부류가 존재한다며, 교회사학자는 후자에 속하며, 교회사학을 연구함은 학문적인 목적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부여한 복음의 사명을 완수하는 행위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수행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스도교의 정경인 성경을 만든 자는 다마스커스 황제인데 그는 권력 취득의 과정 중 137명을 살해한 자였에도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만들 기회를 주셨는지 의문을 제시했다.

민 박사는 복음이 수 천년간 지속적으로 전래되었으나 이 신앙이라는 것은 체계화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학은 학문으로 정립된 후 조직화를 위해 로마로 갔고, 1천 년 간 머물면서 기독교의 복음은 조직화 되었다고 설명했다.

1920년대 무렵 일본의 경우 걸출한 무교회주의자들이 많았고, 한국에서도 무교회주의자들이 대세를 점유한 것 같았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없어진 편이기에 교회는 반드시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과 목사(1888년 출생)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지만 일제시대에 탄압 속에서도 교회를 지켜냈다는 점에서는 한국교회에 큰 기여를 했다고 민 박사는 평가했다. 

일제시대에는 대동아전쟁을 준비하면서 교회의 종을 떼가고, 찬송가에 먹칠을 하는 일이 벌어졌어도 교회와 신앙을 위해 끝까지 버틴 조직화 된 교회의 성도들이 정미소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는 그런 노력으로 신앙이 현재까지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황제 찰스 3세는 즉위 후 처음으로 초청한 인사가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면서 황제는 윤동주의 시 '새벽이 올때까지'를 암송하던 사람인데 윤동주가 이 시를 작성하던 1941년은 일본인들의 통치로 인해 구한말이 암울했던 시기였지만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 게외다"라는 문장처럼 어려운 와중에 희망을 간구했던 그런 문화가 한국의 교회에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제시대 한국의 성탄절 전야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기념집회를 진행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벗어나 홍해를 건너는 내용의 연극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한국교회 최초의 자유주의신학자로 알려진 모 목사는 홍해사건이 기록된 성경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서 홍해를 건넌 것은 실제가 아닌 갈대밭을 건넌 것으로 묘사해 논란을 일으켰다면서 이 논란은 한국인들의 독립의지에 손상을 주는 그런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당시 일본의 신문은 "우리가 군사력으로 하니까 되네?", 이제 "그것으로 하자"고 하는 기사가 나왔고, 이를 실증하고자 군국주의적 통치가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역사에는 민비의 시해, 을사조약 등이 연달아 발생했던 중 알렌 선교사는 한국선교 25주년 기념사에서 "한국은 세계선교의 기수국가"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3.1운동이 벌어진 1919년에도 우리 교회의 상황은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기독교인은 한국인구의 1.5%에 불과했지만 독립운동과정에서 잡혀간 사람 중 50%에 달하는 애국자를 배출하는 등 한국교회는 한국독립운동의 인원 공급처였고, 당시 독립헌금을 한 사람들은 기생들도 포함되는데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였다고 했다.

1930년대는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전 세계가 경제공황의 상황이었는데 당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의 국내 기사에 거의 매일 사람들이 아사 한 내용이 단골기사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같은 시기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엄청나게 살해했는데 당시 일본에게 사망한 사람 숫자의 8배를 공산당이 살해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일제와는 안싸우고 기독교와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데 열중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한국 기독교는 학교와 병원, 고아원 등을 세워 국민들을 보살폈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유치원 하나 세운 것이 없고 오직 파괴하는 행위만 했다고 한다.

1930년대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공산당과 일제에게 엄청나게 죽임을 당하는 시기였지만 찬송가는 미래와 희망, 평화를 간구하며 교회를 지켰다고 민 박사는 강조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444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457장 겟세마네 동산의',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70장 피난처 있으니' 등의 찬송가를 작곡해 복음에 입각한 희망과 사랑을 한국인들과 나눔으로서 교회의 현실적인 고통이 있지만 미래를 위해 희망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1930년대 한국교회사적인 이정표라고 생각하고, 한교사의 학자들은 여기에 집중해 줄 것을 당부했고, 이것이 계시록과 같은 의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한국교회사학원 법인이사장에 민경배 박사가 선임되었고, 정인과 목사의 손녀인 정자영 박사가 개회예배의 축송순서를 담당했고, 세미나도 참석했으며, 본인이 성악가로서 과거에 한국교회 성도들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미래의 희망을 주장했다는 것은 큰 감명이요, 성악가로서 보람이라고 밝혔다.

류금주 원장은 이날 설교를 통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있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투쟁을 설명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을 간구해야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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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대에 희망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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