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의 경계서 몸부림치는 여인… 두 명의 '헤다'가 온다
사회의 억압서 자유 찾는 '여성 햄릿'… 5월 명동예술극장·LG아트센터 공연

生死의 경계서 몸부림치는 여인… 두 명의 '헤다'가 온다
사회의 억압서 자유 찾는 '여성 햄릿'… 5월 명동예술극장·LG아트센터 공연
우리 연극 무대에 이런 ‘빅뱅’은 없었다.
오는 5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라 할 이영애와 이혜영, 두 사람이 같은 연극으로 서로 다른 무대에 오른다. 1891년 독일 뮌헨 초연 때부터 수많은 논쟁과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던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헤다 가블러’(이하 ‘헤다’·키워드). 이영애에겐 32년 만의 연극 무대, 이혜영에겐 2012년에 이어 13년 만의 재연(再演)이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이혜영의 ‘헤다’는 대표적 여성 연출가인 국립극단 박정희 예술감독이,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하는 이영애의 ‘헤다’는 연극 ‘키리에’로 2023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은 중견 연출가 전인철이 연출한다. 명품 컨템퍼러리 공연에 특화된 LG아트센터와 한국 연극의 성지(聖地) 명동예술극장이라는 두 극장의 상징성에 연출과 배우의 서로 다른 해석과 색깔까지, 관객의 심장은 두 ‘헤다’를 향한 기대로 벌써 두근댄다.
◇국립극단·LG아트센터의 ‘진심’
국립극단과 LG아트센터에 이번 연극의 의미는 각별하다. 박정희 예술감독에게 ‘헤다’는 국립극단 레퍼토리 확장을 위해 관객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해 엄선한 ‘Pick(픽) 시리즈’ 개시 작품이자, 지난해 4월 취임 후 첫 직접 연출작. LG아트센터는 지난해 세계 공연계 스타 연출가 사이먼 스톤의 독창적 각색·연출과 전도연·박해수 주연으로 대극장 연극 붐을 이끌었던 ‘벚꽃동산’ 이후 두 번째로 직접 제작하는 블록버스터 연극이자 개관 25주년 기념 공연이다. 극장도 연출도 배우도, 진심을 다해 꼭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지금 왜 다시 ‘헤다 가블러’인가
두 작품 모두 희곡 속 옛 노르웨이 상류사회의 성 역할과 계급 구조가 작동하는 이야기의 틀은 유지하되, 시대를 특정하지 않는 세팅으로 보다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계획. 박 감독은 ‘헤다’에 대해 “살고 싶은 욕망과 죽고 싶은 욕망, 그 사이의 경계를 걷는 여자”라고 했다. “헤다는 진정한 ‘나’ 없이 껍데기 같은 역할만 남은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나 열망을 되찾으려 발버둥 치다 추락하는 사람이에요.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겁니다.”
전 연출은 “이번 ‘헤다’는 사회적 배경보다 개인의 선택에 초점이 맞춰져, 헤다는 억압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갈등의 산물로 묘사될 것”이라며 “지금의 관객을 위해 대사를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변형하고 다른 인물들도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하게 해 긴장감을 높였다”고 했다.
◇이혜영의 ‘헤다’, 이영애의 ‘헤다’
‘헤다’는 입센의 여성 인물 중 가장 논쟁적이며 여배우의 역량이 캐릭터 그 자체의 품격과 설득력을 결정짓는 작품. 박 감독은 “이혜영은 어떤 연출가도 반길 배우이고,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정갈한 ‘헤다’ 그 자체로서 현존이 강한 배우”라고 했다. “어떤 면에선 지적이고 어떤 면에선 동물적이면서 원초적인, 한 가지로 딱 규정하기 어려운 매력의 배우죠. 스스로 한 인물 안에 다른 이미지를 창조하거나, 연출이 캐릭터에 입히는 복잡다단한 레이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그걸 다 아는 느낌이랄까요?”
전 연출은 “원작에서 헤다의 행동은 암시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자기 파괴적 충동은 섬세하게 드러나지만, 이영애 배우의 헤다는 욕망과 분노를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부조리를 알고 차가운 유머와 들끓는 분노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대한 경멸을 가진 한 여성의 냉소적인 코미디를 이영애 배우를 통해 보게 될 거예요. 그녀의 갈등과 절망은 더 강렬하며, 현대적 시각에서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강조되는 작품이 될 겁니다. 원작에서 헤다를 비추는 ‘거울’로만 존재했던 주변 인물들까지 각자의 독립적인 욕망을 드러내 대규모의 동시적 불협화음이 존재하는 연극으로 만들려 합니다.”
국립극단 박정희 예술감독과 이혜영의 ‘헤다’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5월 8일~6월 1일, 연출가 전인철과 이영애의 ‘헤다’는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5월 7일~6월 8일까지 공연된다.
☞헤다 가블러 : ‘현대 연극의 아버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이 1890년 발표한 대표작.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 심리를 깊이 있게 다뤄 ‘여성 햄릿’으로도 불린다. 고귀한 군인 가문 출신으로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 주인공 ‘헤다’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 하지만 그 내면엔 불안과 욕망, 파괴적 본성이 꿈틀대는 입체적 인물이다. ‘시대를 앞서간 이상적 현대 여성’이라는 평가부터, 악녀, 변종, 괴물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논란과 해석을 낳아온 캐릭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