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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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 교수는 6.25 한국전과 한국교회의 상관관계를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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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박사(왼쪽)가 사회, 민경배 교수(오른쪽)가 발제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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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교수, 명예원장 민경배 교수, 이하 한교사)은 창립 25주년을 맞아 기념예배와 6.25 한국전쟁 관련 세미나를 지난 6월 9일 은진교회당에서 개최했다.

 

민경배 교수(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교회사)는 '6.25 실록(實錄)'이라는 주제로 제 280회 발표회 발제를 담당했다.

 

민경배 교수는 한국전(戰) 즉, 6.25는 한국인들의 삶을 급격히 바꿔놓은 사건이었지만 올해 달력을 볼 때 과거와는 달리 6월 25일을 특별하게 표시해 놓은 경우가 별로 없었다며, 한국인들이 공산사상과의 대치점에서 경각심이 느슨해진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성은 과거에 한국교회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선수교회라고 묘사한 일이 있을 정도로 한국과 6.25를 둘러싸고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북 출신인 민경배 교수가 남한행 배를 탑승한 때는 1948년 4월 2일이었고, 바로 다음날에 제주의 4.3사건이 벌어졌으며, 당시 한국의 대통령 이승만은 10월 19일에 여수에서 제주를 진압하라고 하니 반란이 벌어졌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반란군은 대부분 지리산으로 들어갔고, 이것을 진압하면서 희생된 생명은 다수이지만 몇 몇 문학가들에 의해 진압군은 가해자인 것처럼 인상이 굳어진 부분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간의 갈등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있지만 남한에서는 일제시대에 부유층이자 식자층 자녀들이 일본유학을 하며 공산주의나 니힐리즘을 첨단 사상인냥 읇조리는 유행이 벌어졌는데 척결대상인 부르주아 인텔리 계층이 공산주의자들이 된 상황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1930년대 통계에 공산주의지도자 중 남한에 3백명, 북한에 45명 정도로 분포했다고 밝혔다. 공산주의는 반제투쟁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으며, 기독교를 반제투쟁의 도구로서 인식하는 특징이 있는데 해방과 한국동란 정국에서 수많은 목사 등 기독교인 유력인사들이 공산주의자로서 남한의 적화활동에 매진하다가 상당수는 숙청당하거나 출세한 일들이 횡횡했기에 그리스도인의 6.25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은 심각하게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북한은 3.8선으로 나뉘어서 분단된 상황이어서 통일에 대한 꿈을 누구나 꾸지만 정치적으로 대한민국의 반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또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붙는 지점으로서 온갖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에 이것을 피하고자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직시하고, 통일이라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이 중요하다면서 무엇보다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적으로 한반도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몰리는 곳이기에 선교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요충지로서 역할을 오히려 하고있다는 것을 더 주목하는 학술활동을 펼치라고 주문했다.

 

동 세미나는 유지수 박사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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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정치와 선교의 완충지 및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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