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닥쳐도 한국교회는 희망을 노래
민경배 박사, 1930년대 초기 한국교회 행태 발제
▲ 민경배 박사는 주 발제를 담당했다.
▲ 유지수 박사는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부 박사, 이하 한교사)은 지난 6월 5일 서현교회당에서 개최된 제 315회 월례세미나에 민경배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를 주 발제자로 초청해 1930년대 한국교회의 성도와 교회가 사회와 신앙을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토의했다. 사회는 유지수 박사(민경배 이사장의 제자)가 담당했다.
민경배 박사는 '1930녀대 초기: 한국교회 계시록(啓示錄)'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민 박사는 한국의 1930년대 초기는 세계 각국들도 무서운 공황기를 거치는 중이었지만 이 때 한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로서 고통을 당하는 중이었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을 말하는 계시록적인 노력을 했고, 이는 한국 근대사의 기념비적 전환기였다고 강조했다.
1930년대 초기의 세계는 일본제국이 세계대전에 발을 담그면서 아시아에 진출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고의로 유조구사건(1930년 9월 18일)과 노구교사건(1937년 7월 7일)을 일으켜서 전쟁이시작되고, 이후 1941년 태평양전쟁과 세계 제 2차 대전에 적극 개입하면서 승승장구함으로서 일본의 신문에는 "전쟁하니까 되네"라며 무력을 적극 사용하는 기조 속에서 작은 나라 일본이 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시작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경제공황이 진행중이었는데 1930년~1933년간 미국에서는 9천개의 은행이 파산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양자강 대홍수(1931년)가 발생해 콜레라의 대유행으로 3백만명 이상의 사망(비공식적으로는 10배 이상 추정), 이재민은 4천만 명이 밠생해 농경지와 식량의 손실과 기아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나찌정권(1933년)으로 6백만 명의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은 국제연합 탈퇴(1933년)와 일제 사상통제(1934년), 황도파 청년장교들 구데타(1936년) 등이 발생했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은 소련과 맥시코,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이태리, 바티칸 등이 참전해 2차 대전 직전까지 지속하는 등 혼란기였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당시 매일 일간신문에는 기아와 아사가 주로 등장했는데 동아일보는 국민들이 풀뿌리와 소나무껍질로 연명하고, 이마저도 나무의 주인들은 못 벗기게 막아서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 직전에 있다는 표현도 흔했다고 한다. 당시 전체 가정 약 2백 6십만 호 중 지주는 8만 1천 호, 소작인은 2백 5십 9만호로서 소작인이 96.9%에 달하도록 대부분의 인구가 극빈층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한국은 사회도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허부주의적인 사회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데 '황성 옛 터(1932년)'라는 노래는 월색만 고요하다, 폐허의 설운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채만식, 1934년)'이라는 소설에는 무기력한 인텔리들이 언급, '폐허(오상순 참여한 문예동인지, 10934년)'에 폐허주의자 등이 주제가 되는 등 퇴폐주의적이ㅏ고 허무주의적인 말초적 환락을 추구하는 세대가 언급되던 비극을 설명했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공산당들은 일제식민시대였지만 항일보다는 항미제활동을 벌이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며 박해했다는 것이다. 일제가 지도급공산주의자를 조사했더니 남한(전라도 중심)에 3백명, 북한에 45명, 해외에 130명으로 조사했고, 남측의 공산주의자 대개는 일본 유학파로서 부유층이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책 정도는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인텔리라는 이미지를 가졌다면서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하는 공산사상이 한국에서는 특이한 방법으로 전래되었다고 민 박사는 분석했다.
민경배 박사는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심한 신앙으로 한국사회에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거대 동력이자 섬광으로서 계시록적인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인들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부르던 찬송가를 1930년대 채규엽이 리메이크해 대중가요로 만들었던 것을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가사의 교회의 노래로 바꿔서 부름으로서 절망적 현실을 살면서도 희망적인 노래를 부르는 격려와 전진의 유전자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남국혁(1931년)은 '기독교의 제 3전기'에서 역사는 교권시대를 지나 성경시대, 성령시대로 흐르기 마련인데 이 2ㅔ 3전기의 사도는 조선의 기독자들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교신(1934년)은 한국은 인류역사에 큰 공헌을 할 활무대(마당)이며, 한국의 지도는 대륙을 머리에 걸버진 채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형상이라고 표현해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1931년대에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어 오나',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주소서',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 오라',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등을 부르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밝은 미래를 간구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한국교회가 갈라진 역사를 보면 서로를 빨갱이와 우익으로 매도했던 일과 6.25 한국전쟁으로 인했던 것이 시초이며, 과거와 달리 요즘의 교회가 찬송가 대신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을 지적하고, 찬송가는 내용상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며, 전세계의 교회가 한 지체가 되어 통일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체계인데 이것을 되살리자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의 목사들은 먹을 것이 없고, 식민지 상태였는데 선교사들에게 '세계의 문제 세미나'를 개최해 달라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거국적인 신앙이 있었고, 미국 남북의 감리교가 한국에서는 통합하는 교리를 선언하는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본위의 신앙이 아닌 우주적인 신앙을 갖고있었고, 그러한 희망과 평화를 추구했던 그런 모습들을 1백여년 전부터 가졌기에 현재 한국의 다양한 위기가 있겠지만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약속하신 미래의 세계로 가려는 노력을 해야하며, 한국교회학사학회의 연구도 그 같은 차원에서 진행할 필요를 제시했다.
<공동취재: 한국교회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