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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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준 한신대학교 교수는 츠빙글리의 경제사상에 대한 발제를 담당했다.

 

김유준 교수(한신대학교 겸임교수)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권평 교수, 명예원장 민경배 교수)이 개최하는 제 282회 월례발표회에서 '츠빙글리의 경제사상 연구'를 지난 8월 11일 발제했다.

 

권평 원장(평택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동 발표회에서 김 교수는 교회사연구에서 츠빙글리에 대한 경제사상사 연구분야에서 칼빈의 것에 비하면 덜 부각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개혁교회의 뿌리가 츠빙글리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는 교회개혁가이면서도 취리히시의회 의원으로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교회개혁의 물결이 5백년 전에 유럽에 불었지만 츠빙글리로 인해 교회개혁과 동시에 사회개혁이 진행된 것을 알 수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취리히시의 당시 경제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경제적인 양극화로 인해 스위스의 많은 청년들이 용병으로 나가서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는 현실이어서 경제일반적으로 노동에 의한 것이 아닌 전쟁으로 인해 생계를이어가는 기이한 상황인데다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돈을 갈취하는 경우고 많았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사람들이 삶이 국가보다는 도시위주로 이뤄지는 상황이었고, 문화적으로는 독일어권이었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너 높아서 루터보다는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는 1519년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봉사활동 중 병을 얻을 정도로 좋은 심성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고, 병에서 나아가며 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은 세상의 권력보다 선행한다는 점들을 깨닫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상을 펼쳐갔다고 한다.

그의 개혁은 1~3차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회를 거듭할 수록 개혁의 강도는 세어져가며, 이윽고 67개조문을 만들고, 성상을 모두 제거하고, 성만찬의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특징적으로 교회개혁과 동시에 현실정치에도 참여함으로서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개혁에 주력한 것과 대비해서 설명했다.


츠빙글리는 사유재산은 하나님께서 이웃사랑을 위해 나누고, 공유하기 위해 빌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고, 노동의 가치도 건전한 양심의 결과물로서 신성한 것이기에 사회복지적인 제도의 도입을 강조함으로서 교회와 사회 양측에서 개혁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고리대금업도 과거에는 수백퍼센트의 이자율을 갖고있었지만 5%로 한정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용병제도를 통한 연금제도를 금지했는데 이 연금은 현재의 것처럼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전해 벌어온 돈을 갈취하는 방식을 규제한 것인데 당시 여타의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가톨릭의 교리에만 주력해 싸우던 것에서 발전해 교황의 돈줄기를 막아놓은 구체적 개혁에 해당한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정의(Justice)에 대한 개념도 하나님의 정의가 가장 높은 가치이며, 인간적인 정의는 상대적이고, 부차적인것에 불과하기에 모든 일을 하나님의 정의 관점에서 개혁을 실시하되 점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선조가 이뤄놓은 모범적인 것은 계승하는 방식이어야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츠빙글리의 경제사상은 현재에도 불의한 경제체제의 절대관을 부정해야하며, 점진적인 개혁이어야하고, 개혁을 할 때 교회개혁과 동시에 사회개혁도 추구해야한다는 측면을 갖고있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주장인 친환경적인 인간활동과도 연계된다고 김유준 교수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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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빙글리의 정당한 경제 및 점진적 개혁 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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