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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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독교사회운동 온라인 보존
    ▲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이 NCCK아카이브 사용법을 시연했다. ▲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1백주년을 기념함 보다는 반성과 미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규무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사진 왼쪽)은 김종생 NCCK총무(사진 오른쪽)에게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이순자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가운데)가 동행했다. 1924년 9월 24일 설립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이하 NCCK)'가 오는 9월 24일이면 설립 100주년을 맞게된다. NCCK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해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성도들의 삶은 물론 실천적인 부분에서 한국 개신교는 선교와 교육, 문화, 구제, 의료, 민주화, 인권, 통일,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했던 모습들을 담은 다양한 자료들을 데이터화시켜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해 모든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 문화관광부의 후원으로 진행했던 온라인 아카이브에 수록된 자료는 총 24,798건(문서는 23,398건 및 사진그림류는 1,400건)이 수록되어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는 지난 6월 27일 NCCK가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더라운지에서 오픈 기념식을 갖음으로서 공식적으로 온라인에서 공개되었다. NCCK는 수년 전 동 사업을 준비하기 전 에큐메니칼사역(교회연합)을 진행해오면서 축적된 수 많은 자료들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한규무 박사)에 제공해 분류 가공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후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사업의 방향이 확대되었고, 이후에 설립된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및 IT기술을 제공한 아카이브랩 등의 관련기관들과의 협조체제를 가져오는 등 전체적으로는 2019년부터 약 6년간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한국교회가 이 땅에 함께 지낸 역사가 매우 길며, 신앙은 물론 한국인들을 위한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아직도 세상과의 소통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아카이브 개소식을 갖음으로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나눔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열렸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32년 NCCK는 사회신조를 발표하면서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일을 각오했던 일도 있다면서 NCCK의 백주년을 맞는 지금 미래를 위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의 아카이브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의 이야기를 듣자면 한국교회가 성찰이 없이는 새 백년을 맞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면서 뼈아픈 반성을 기반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백주년 선언을 준비중이기에 한국교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봉사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종생 NCCK 총무는 아카이브를 사용해 1972년 전국신자운동을 검색해보니 NCCK가 지난 25회 총회에서 적극 노력해야한다는 결의를 했던 것을 불과 5분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처럼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함에 큰 도움을 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아카이브랩,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등에게 감사하며, 이에 대한 감사패 시상을 할 예정임을 밝혔다. 안교성 목사(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는 NCCK 아카이브는 한국교회의 지난 1백년간의 사역을 모두에게 알리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이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원활한 활용과 유지보수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야 한다고 평가하는 발제를 담당했다.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는 컴퓨터를 사용해 아카이브의 사용을 설명하는 시연회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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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7-01
  • 1백 주년 행사 및 사업 11월까지 계속
    ▲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사진 오른쪽)가 창립 100주년 사업을 설명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가 1924년 9월 24일 한국에서 출범한지 올해로 1백주년을 맞이하며, 이를 위한 각종 기념예배와 기념행사, 문화사업, 컨퍼런스 등이 6월부터 11월 기념대회까지 매월 진행된다고 한다. NCCK는 1백주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지난 6월 27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종생 총무는 NCCK 백주년 사업을 위해 수년 전부터 준비하는 중이며, 일부는 진행중인 사업도 있다면서 6월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개설을 하고, 7월은 100주년 축하 인터뷰 영상 공개, 8월은 100주년 기념 기독교 사회선언 정책 협의회 개최, 9월 20~22일은 국제컨퍼런스, 22일은 기념예배, 24일은 기념일 행사 및 CBS에 의뢰해서 제작중인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다큐멘터리' 방영, 10월은 말 경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와 2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년사'의 출판 및 기념회, 11월 18일은 기념대회와 100주년 기념 기독교 사회선언 발표 등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김 총무는 지난 NCCK는 세계교회의 선교와 일치운동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창립된 한국교회 최초이 에큐메니칼협의체라고 소개하고,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와 기독교단체, 세계교회와 연대해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치면서 노동과 여성, 아동, 장애인, 도시빈민, 산업화, 민주화, 인권, 통일, 평화, 생태 등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사회운동을 주도 또는 참여했다고 밝혔다. NCCK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이 땅에 사랑과 정의를 기초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있다고 김 총무는 밝히고, 그간 가난한 자와 억울한 자, 눌린 자, 소외 당하는 자 등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기념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한해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사회를 향한 선교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NCCK는 지난 1백년간의 여정을 담은 각종 자료들을 기독교의 사회운동사 차원에서 정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에 디지털 형태로 수록했는데 이를 지난 6월 27일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10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는 오는 9월 20~22일간 한신대학교와 라마다 바이 윈덤 서울 동대문에서 연속해 진행하며, 여기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총무를 비롯해 아시아기독교협의회나 북미 지역 주요 교단, 독일 개신교협의회 등 주요 파트너들 200여명이 참석하는 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100주년 기념예배'는 오는 9월 22일 오후 4시 경 연동교회당(종로 5가)에서 개최하며 예배의 기획 준비는 최진봉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가 담당하고, 국제컨퍼런스에 참여한 인원들이 참석하며,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모집한 '100인 합창단'이 합창곡을 담당한다고 한다. 동 합창단은 그동안 NCCK와 함께 해온 운동의 동지와 회원교단, 시민사회계열단체 관련자 등으로 구성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NCCK의 유관기관이자 언론사인 기독교방송(CBS)에 제작을 의뢰했으며, 지난 1백년의 역사를 반추하고,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의 현실 등을 담을 예정며, 오는 9월 24일 무렵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100주년 기념 축하 인터뷰'는 NCCK 총무와 회장, 회원교단 회장과 총무, 각 위원회 위원장, 관련자, 직원, 현장 관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담아 10분 이내의 영상클립을 약 30건을 제작해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전 3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년사'의 출판기념식은 오는 10월 22일 오후 2시 정동제일교회당에서 개최하며, 2019년부터 출판중인 '한국교회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전 20권)'은 올해 내 완간된다고 한다.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는 15명의 집필진이 노력 중이며, 1권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권 해방부터 민주화 및 산업화, 3권 민주화 이행기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고 한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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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죄와 율법과 의는 모두 예수의 관점으로
    ▲ 유선화 작가는 「로마서, 오직 믿음으로 이르는 하나님의 의(길과 생명 출판)」을 출간했다. 유선화 작가는 「로마서, 오직 믿음으로 이르는 하나님의 의(길과 생명 출판)」를 출간함으로서 죄를 지어 죽을 수 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았으며, 복음으로 거듭 난 이후로는 과거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과 동행해야한다는 내용을 최근 밝혔다. 지난 해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길과 생명 출판)」를 출간한 유선화 작가는 이에 대한 이해를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온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한 잣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연달아 로마서를 출간해 이방인들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자녀라는 점을 분석해냈다. 요한계시록을 다룰 때 기독교계의 연구자들이 오역을 우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유 작가는 계시록의 모든 장과 절을 표시하고, 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해석함으로서 모든 구절을 해설했기에 신뢰성있는 방식의 해설이 가능했는데 이번 로마서를 쓰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모든 구절과 성경이 최초에 작성되었을 때 사용한 원어를 대조함으로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신뢰성을 가져도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로마서는 한 마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라고 단언하고, 이번 저작의 모든 글쓰기를 예수님과 복음에 중점을 두고 풀어갔다. 로마서는 의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성경이라고 밝힌 저자는 율법과 하나님의 의,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동일하게 이르는 믿음의 의, 아담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두 결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죄와 율법과 육신의 문제,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르는 방ㅂ버,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의 섭리와 비밀 등을 말씀하고있으며, 여기서 바울 사도는 구약의 말씀으로 그 비밀을 어떻게 논리정연히 다루고 있고, 우리가 믿고 따라야하는 방향은 무엇인지를 기술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저자는 특별히 로마서는 죄와 율법, 의를 주제로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게되었다며,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일방적 주권을 통한 선택적 예정은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예정 및 이에 따른 믿음의 선택으로 인한 구원을 설명했다. 죄에 대해서 로마서 7장은 속 사람이 아닌 육신에게서 발생하는 점이 구별해 죄은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하며, 8장에는 거룩하게된 의로운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함을 조명했다. 저자는 로마서가 율법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주목하고, 그 역할과 성도에 대한 적용점을 설명했다. 바울 당시에는 할레를 비롯한 율법적 행위가 사람을 의롭게 함는 것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이 의롭게한다는 점을 가르쳐야했을 것이라면서 로마서의 가치가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설명했고, 이는 율법과 믿음에 대한 로마서의 이해인데 이 부분도 조명했다고 한다.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복음의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이고, 칭의라기 보다는 오직 믿음으로서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학적 관점상 '칭의'라는 것보다 저자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믿음이 생기고 구원 받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즉 피조물의 관점에서 살펴본 부분들은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다. 그리스도와 연합된자로서 죄와 율법, 육신에 관한 내용도 다뤘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났고, 새로운 피조물임에도 지속적인 죄의 발생으로 인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로마서 7장에는 '내 속에 거하는 죄'라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 조차 여전히 죄인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기도 하지만 저자는 죄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한다는 주장이 수록되어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인데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새 생명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인데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로마서 6장 11절), 지체를 몸의 사욕인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서 육신으로는 죄를 섬기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과 삶에 적용할 방법이 동 저서에 자세히 수록되어있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7-01
  • 그리스도교는 韓·日·中 및 전 세계의 핵심
    ▲ 민경배 박사가 발제를 담당했다. ▲ 직전원장 권평 박사가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이하 한교사)은 민경배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한일관계사 서론'의 강연을 맡겼고, 민 박사는 향후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국가와 전 세계의 모든 역사와 정치, 문화 등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경배 박사는 지난 6월 6일 진행된 한교사 월례발표회에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했던 1900년대 일본에서는 군벌세력과 문벌세력이 주도권을 다투던 시기 였다면서 이 때 조선을 통치함에 있어 군대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더니 가능성이 보인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일본을 근대화시킨 세력은 군벌과 문벌이었으며, 전자는 야마가다 아리또모가 대표적 인물이었고, 후자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이토는 조선을 다스릴 총독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인물로서 조선을 합병하는 것을 반대했던 인물이며, 최대한의 자치권을 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수 차례 가연한 바 있으며, 이날은 이토가 조선의 이현 왕세자를 모셔다가 좋은 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좋은 학교를 다니도록 주선한 인물이었지만 안중근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일본인 주류의 뿌리가 한국민족 출신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설명을 했다. 일본의 50대 천황 '간부덴노(황무천황)'의 모친이 백제 공주였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뉴스위크 2002년 3월 18일자의 보도를 제시하고, 백제 공주의 피가 천황가에 있다는 것은 한국인으로 볼 수도 있다는 평가를 했다. 임진왜란(1592년 발발)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한중일 3국의 관계를 재 정립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전란 당시 일본은 한국인 약 10만명을 데려갔는데 이들은 유능하거나 인물이 출중한 여성 등 당대 제일의 엘리트들이었는데 만약 무능했다면 잡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후손들이 일본의 근대화를 일으킨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구주 후꾸오까의 사쯔마와 조슈의 출신자들이 일본의 근대화를 주동했는데 야마가다 아리또모와 총리를 거친 이토 히로부미와 사또 에이사쿠 및 아베신조와 기시 노브스께 등이 모두 사쯔마파라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의 경우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본인이 한국계임을 고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국력이 증대되자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이 때 전후에 활약한 사람이 일본 외무상인 도고 시게나리가 있었고, 이 또한 사쯔마 출신자였다는 점을 들어 한국교회사와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함에 있어 한국적 상황도 중요하지만 일본이나 중국 등의 주변국에 얽힌 이야기들도 동등하게 다뤄야 입체적인 연구가 되고, 인류사회와 그리스도교를 위한 기여자가 되는 방식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제 치하 시절 성탄절을 맞으면 성탄절 전야에 교회마다 성극을 공연했는데 대부분은 아기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닌 출애굽 이야기를 다뤘다고 한다. 당시 모든 교회가 모세의 홍해 건넘을 다룬 것은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이야기 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민족해방을 염원한 애국적인 사건들이었다고 분석했다. 김장호 씨가 1918년 자유주의신학적으로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은 사실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한 것을 두고 민 박사는 민족 반역적인 발언이라고 평가하고, 당시 한국장로교회는 그를 즉각적으로 처단했다고 밝혔다. 윌리암 커가 김장호의 배경이었다고 민 박사는 설명했는데 북장로교는 그를 즉각 잘라냈지만 이후 일본정부가 채용해 경성제국대에서 성경을 가르치도록 배려했다고 밝혔다. 커는 이후 한국 동란 시절 맥아더 밑에 들어가 한국군종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게 되는데 그의 인생을 볼 때 비판받을 일도 있지만 그리스도교를 위해 기여한 일들도 많기에 역사연구자는 역사를 접할 때 단편적이거나 표면적인 것만 보지 말고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내용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조선에서 한일간에 정미조약이 비준 될 때인 1907년은 왕은 그대로 두되 모든 행정은 일본인이 주도하는 이른바 나라가 망한 시기였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전국적 조직인 교단을 확립했는데 독노회 문서의 첫장은 "천하 만국에 복음을 전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며, 처참하게 나라가 망한 순간에도 한국교회는 세계만국기를 걸었고, 세계복음을 언급하는 현실을 초월하는 정신세계, 신앙세계를 가졌었다고 설명했다. 맥아더 장군이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미드웨이호에서 항복조인식을 할 때 전 일본국민들에게 했던 연설은 "오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이다"라고 밝혔고, 파레드 자카리는 8개의 박사학위 소지자였는데 "앞으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다"라고 했고, 일본 최고의 직장으로 일컬어져 수재가 모이는 산께이신문의 신입사원들이 전세계를 유랑하고 써낸 보고서에 역시 "앞으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라는 내용으로 논문집을 만들고, 시바 료따로(일본 최고의 문학가, 사상가)는 "세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유와 인권, 정의의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증거를 민경배 박사는 제시하고, 한교사 안에서 만나는 모든 회원들은 이 같은 학술적인 생각은 갖되, 우선은 서로간의 교통과 친교에 매진해 상호간에 협력과 도움을 주는 관계를 지속하자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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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2
  • 교회사학과 복음 위한 27년
    ▲ 류금주 원장이 설교를 담당했다. ▲ 김동석 부원장이 사회를 담당했다. ▲ 민경배 명예원장이 축도를 담당했다. ▲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 27주년을 기념해 학술지인 '교회사학'을출간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이 지난 6월 6일 창립 27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가졌으며, 설립 이래로 매월 빠지지 않고 진행했던 월례학술발표회를 303회로 진행하기도 했다. 창립기념예배는 부원장 김동석 목사의 인도로 진행되었다. 류금주 목사(원장)는 이날 '뜻을 반납하러 오신 예수'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태복음 26장 42~46절 말씀을 근거로 진행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던 창세기 시절에 첫 사람인 아담과 그의 처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원죄가 들어왔지만 예수로 인해 그 죄가 사해짐을 받았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순서를 담당했다. 류 목사는 오늘 말씀의 성경본문에는 십자가 처형을 앞둔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죽음 이후의 상황을 고통스러워한 나머지 이를 회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이후 하나님이 뜻대로 해달라는 요청을 하던 때라고 설명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던 때 하와에게 접근한 마귀 루시엘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루시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탐냈던 일로 인해 심판을 받았던 즉,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을 뜻을 세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시엘 자신이 심판받았던 똑같은 상황에 사람을 끌어들여 빠뜨리려는 시도이며, 두가지 사건의 핵심은 하나님 처럼 되려 했다는 것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이전에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만 있었지만 이후에는 모든 사람 각자가 뜻을 세우고,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이라는 설명을 류 목사는 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뜻을 하나님께 반납한다는 것은 즉, 예수가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뜻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은 사람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뜻을 반납하는 것이 그의 공생애의 요약인데 이 본문이전에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사망 후 음부에서 마귀에게 희롱당하는 것이 싫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류 목사는 피흘림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며, 외적으로는 십자가에서 피흘렸고, 내적으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상황으로 볼 때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께서 어떤 이유가 되었던 십자가를 지시지 않는다면 구세주로서 오신다고 오랬동안 예언되었던 것들이 이뤄지지 않게 됨으로 모두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류 목사는 밝혔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아담으로 인해 생긴 뜻(사람의)을 하나님께 반납하신 것인데 이것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한다고 설명했다. 그 고통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공동체의 모두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우리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27주년을 맞이하며 향후 그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류금주 목사는 강조했다. 개회예배는 민경배 목사의 축도, 정용 목사의 기도, 박수현 전도사의 반주 등으로 진행되었다. '교회사학' 제 18권 제 1호에는 '20세기 초의 글로벌 정치상황과 한반도의 기독교 경험(김동석)'과 '기독교는 한국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류금주)', '일제하 한국 기독교회와 공산주의 관계사(민경배)', '곽안련 선교사 생애 연구(정용)', '서북계와 기청계(조점숙)', '20대 청년 만우 송찬근의 삶과 사상(주재용)', '칼 귀츨라프 선교활동지에 대한 고찰(최태성)', '나와 민경배 박사님(박정규)', '청암 박정규 박사의 정류 이상근 학술상 수상 기념문집에 대한 서평(이상웅)' 등의 연구논문과 에세이 등이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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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2
  •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참석자들이 창립대회 직후 예배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립대회 직후 행사장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40여명 참석…공동 발기인에 20개 교단 소속 120명 참여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모임인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이하. 기평넷, Korean Ecumenical Peace Network)가 5월22일 워싱턴 디씨 소재 연합감리교 예배실에서 창립되었다. 이날 창립예배와 총회에는40여명이 참여했으며 공동 발기인에는20개 교단 소속120명이 참여했다. 북미 한인 기독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대회장 김정호 목사(UMC)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환영사에서 김정호 목사(UMC)는"남북 관계가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의 시작이 참 귀하다."고 밝히고"우리가 그동안 평화에 많이 목말랐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조국 한반도 평화의 그날이 오면 오늘의 이 모임이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는 겨자씨 만한 기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창립을 환영했다. 예배는 김대호 목사(PCUSA), 손태환 목사(PCUSA), 정영민 목사(RCA), 조동호 박사(퀸즈대) 등 연합 찬양팀의 인도로 힘차게 시작되었다. 이어 조원태 목사(PCUSA)의 사회와 김기리 신부(성공회) 박상희 목사(기장)의 축도로 이어졌고, 김정호 목사(UMC)가"다시 또 우물파는 사람들" (창세기26:12-35)을 주제로 설교했다. 이어서 발제 순서에서는 김충성 목사(제자회)가'북미 에큐메니칼 평화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김진양 목사(UMC)는'북미 기독교 평화네트워크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김충성 목사는60년대 창립된 ‘북미기독학자회’와70년대 창립된 ‘미주 목요기도회’가 한국의 민주화, 인권, 평화통일 운동과 연대하여 기도하고 행동했던 역사를 소개했다. 김진양 목사는"북미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삼았으며 평화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밝히고"분단79주년을 맞이하는 조국이 미, 중의 패권경쟁과 핵무기 및 군비경쟁, 군사훈련 등으로 인해 대결과 갈등이 더욱 심화된 이 시기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연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진행된 총회에서는 정관과 창립선언문을 통과시켰고 초대 회장에 김정호 목사(UMC), 초대 사무총장에 조원태 목사(PCUSA)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창립 발기인120명의 이름으로 작성된 창립 선언문에서는"그동안 기독교인들로서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사명을 우리가 잘 감당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다짐한다"고 밝혔다. "하나, 우리는 북과 남 정부가 이전의 평화통일 정책으로 돌아가 대화와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미국과 기타 강대국이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대화와 정책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교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위한 연대와 협력을 이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기평넷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에서 기도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며, 다양한 교단과 학계 그리고 단체들과 연대하여 평화를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불어 기평넷은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한120명을 평화용사300명으로 확대할 것이며, 제2차 총회는 내년4월에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열기로 결정하였다. ▲초대사무총장 조원태 목사(PUCSA)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여자들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참여자들이 연방하원 Bill Foster 의원 사무실에 찾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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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5-29

실시간 종교 기사

  • 조선 황제가 인정한 조선 선교
    ▲ 이용호 감독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한국선교 140주년을 축하하고, 향후 선교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 태동화 선교국 총무는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선교사 2,400여명은 세계 80개국에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유은식 목사는 고종 황제의 선교윤허는 조선의 부국강병의 방법으로서 황제가 주도한 결정이었음을 밝혔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감독회장 이철 목사, 이하 기감)는 2024년 7월 2일은 미국 감리교회의 매클래이선교사가 1884년 7월 2일 고종황제로부터 학교설립이나 병원설립 등 조선의 선교를 윤허받은지 140년 째 되는 날이라며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대회'를 중앙교회(이형노 담임목사 시무, 기감)당에서 개최했다. 유은식 목사(제물포문화아카이브 & 역사와뉴미디어선교연구소 대표)는 수십년간 동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해온 학자요, 금번 행사를 준비한 입장에서 고종 황제가 감리교측에 선교를 윤허한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유 목사는 140년 전의 선교윤허는 당시 조선이 주변 열강들에게 무너질 위기감이 팽배했던 시기로서 국왕에 취임하면서 부국강병의 길을 모색하던 중 미국 감리교의 매클래이 선교사를 만나 병원과 학교의 설립을 제안받았지만 실제로는 국왕이 주도적인 결정에 의한 윤허였다는 의미가 크며, 시기적으로 1884년 9월 20일 입국한 장로교의 알렌 선교사보다 빨랐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고종 황제는 윤치호의 일기에 따르면 1884년 7월 2일 미국인의 병원과 학교설립, 전신부서 설립 등을 허락하셨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이에 앞서 당시의 조선은 1800년대 후 약 60년간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부패로 인해 백성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1875년에는 일본과 운양호사건(1875년)`으로 인해 강제개항을 하고, 일본에 수신사(1875년)를 보내는 등 굴욕을 겪던 중이었는데 1차 수신사, 2차 수신사를 보냈던 고종은 김기수(1차 단장)와 김홍집(2차 단장)가 서구문명을 수용하고, 미국의 수호조약 등을 이끌어내야한다는 보고를 청취한 결과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통리기무아문(전권을 지닌 행정부)을 설치하고, 개방을 추진했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고종 황제는 보빙사절단(정사 민영익(閔泳翊), 부사 홍영식(洪英植), 종사관 서광범(徐光範), 그리고 수행원 유길준(兪吉濬)과 변수(邊燧), 고영철(高永喆), 무관 최경석(崔景錫) · 현흥택(玄興澤) 등이 임명)을 미국에 파송했고, 미국에서 사절단을 만나 조선의 사정을 청취한 가우처 목사(교육학박사)는 재한 선교사인 매클래이 선교사에게 조선에 입국해 학교와 병원 설립 가능성을 타진해보라고 촉구, 1884년 6월 24일에 입국 후 30일에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제안서를 제출함으로서 7월 2일 국왕의 윤허를 받았다고 한다. 기감은 고종의 결단으로 미국 감리교의 선교를 허락함으로 인해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해 병원과 학교를 설립, 인재 양성과 민족지도자를 배출함으로서 조선의 개화와 독립, 발전을 이룸으로서 오늘의 한국교회가 방방 곡곡에 세워지고, 2024년 현재 미래의 140년 그리스도교 선교를 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대회는 가우처기념교회인 중앙교회에서 열렸으며, 수백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역사 프레젠테이션, 예배, 음악회 등으로 진행되었다. 1부 사진전시회 및 역사 프레젠테이션은 홍석민 목사(선교국 국내선교부장)의 인도, 이용원 감독 등 주요인사들의 테이프 절단식, 유은식 목사(제물포문화아카이브 대표)의 사진 및 역사설명 등으로 진행되었다. 2부 기념예배는 홍석민 목사의 사회와 이용원 감독(선교국위원장, 서울연회)의 설교, 태동화 목사(선교국 총무)의 환영사, 유은식 목사의 선교윤허 동영상 설명, 채성기 감독의 축사, 신경하 감독의 축도 등으로 진행되었다. 오르간은 허성윤 권사(중앙교회), 감사기도에 오수철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 강동화 권사(청장년회 전국연합회장), 서종순 장로(교회학교 전국연합회장), 조금석 장로(장로회 서울연회연합회장) 등이 감당했고, 성경봉독은 박찬수 감리사(종로지방회), 특별찬양 크로체(소프라노 지희경, 테너 문제성, 반주 이웅희) 등이 담당했다. 이용원 감독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라는 제하의 설교를 통해 선교의 시작을 성경에서 살피면 안디옥교회였던 것이 알 수 있다며 한국교회의 출발에 대해 대부분이 1885년 부활절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로 입국하면서라고 기념하지만 한국선교의 출발점은 고종 황제가 미국 감리교의 매클래이 선교사에게 1884년 7월 2일 병원과 학교를 설립을 허락받은 일 부터라고 밝히고, 혹자는 거기에 선교라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선교의 물결이 들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고종의 선교 윤허시기 한국의 사회는 주변 열강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던 희망이 없던 시기였지만 기독교가 전래돼면서 희망의 불빛이 보인 것이며, 한국선교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이고, 안디옥교회가 이름 없이 선교거점이 되었다면 지금의 한국교회 한국감리교가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들어 앞으로도 선교에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태동화 목사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선교를 장기간 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지만 짧은 기간의 사역에도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줬다면서 현재 교단에는 2,400여 명의 선교사가 전세계 80개국에서 선교를 담당하는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다면서 고종 황제의 윤허 140주년을 통해 계속 복음사역을 감당하자고 밝혔다. 고종 황제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최선을 다해 노력한 한 국왕이었다면서 그 방향에 미국 감리회의 매클래이 선교사와의 만남으로 시너지가 형성되어 봉사 했듯이, 한국 감리교는 다시 세상을 향한 빛이되고, 소망이 되려는 복음적인 노력을 감 당하자고 강조했다. 3부 감사찬양제는 쉐퍼즈콰이어(단장 김학중 목사, 전 경기연회 감독)이 담당했으며, 동 찬양대는 기감 소속 목회자들로 구성되어 지난 2011년부터 활동해왔다고 한다. 레파토리는 쉐퍼즈 합창(쉐퍼즈 송, 여리고성의 전투, 기드온의 300용사 등), 쉐퍼즈 앙상블(담대하라), 서진성 생명의 양식, 나승준 세상을 사는 지혜 등 11곡이 연주되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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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한국기독교사회운동 온라인 보존
    ▲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이 NCCK아카이브 사용법을 시연했다. ▲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1백주년을 기념함 보다는 반성과 미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규무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사진 왼쪽)은 김종생 NCCK총무(사진 오른쪽)에게 감사패를 수여받았다. 이순자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사진 가운데)가 동행했다. 1924년 9월 24일 설립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종생, 이하 NCCK)'가 오는 9월 24일이면 설립 100주년을 맞게된다. NCCK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국인들과 함께 해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온 성도들의 삶은 물론 실천적인 부분에서 한국 개신교는 선교와 교육, 문화, 구제, 의료, 민주화, 인권, 통일,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에 기여했던 모습들을 담은 다양한 자료들을 데이터화시켜 온라인 아카이브에 저장해 모든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대통령 윤석열) 문화관광부의 후원으로 진행했던 온라인 아카이브에 수록된 자료는 총 24,798건(문서는 23,398건 및 사진그림류는 1,400건)이 수록되어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는 지난 6월 27일 NCCK가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더라운지에서 오픈 기념식을 갖음으로서 공식적으로 온라인에서 공개되었다. NCCK는 수년 전 동 사업을 준비하기 전 에큐메니칼사역(교회연합)을 진행해오면서 축적된 수 많은 자료들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한규무 박사)에 제공해 분류 가공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이후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사업의 방향이 확대되었고, 이후에 설립된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및 IT기술을 제공한 아카이브랩 등의 관련기관들과의 협조체제를 가져오는 등 전체적으로는 2019년부터 약 6년간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김학중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위원장)는 한국교회가 이 땅에 함께 지낸 역사가 매우 길며, 신앙은 물론 한국인들을 위한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아직도 세상과의 소통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번 아카이브 개소식을 갖음으로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나눔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열렸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32년 NCCK는 사회신조를 발표하면서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일을 각오했던 일도 있다면서 NCCK의 백주년을 맞는 지금 미래를 위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의 아카이브가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의 이야기를 듣자면 한국교회가 성찰이 없이는 새 백년을 맞기 어렵다는 판단이라면서 뼈아픈 반성을 기반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백주년 선언을 준비중이기에 한국교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봉사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종생 NCCK 총무는 아카이브를 사용해 1972년 전국신자운동을 검색해보니 NCCK가 지난 25회 총회에서 적극 노력해야한다는 결의를 했던 것을 불과 5분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처럼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함에 큰 도움을 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아카이브랩,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등에게 감사하며, 이에 대한 감사패 시상을 할 예정임을 밝혔다. 안교성 목사(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는 NCCK 아카이브는 한국교회의 지난 1백년간의 사역을 모두에게 알리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이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원활한 활용과 유지보수의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야 한다고 평가하는 발제를 담당했다. 김신약 목사(NCCK100주년기념사업특별위원회 연구원)는 컴퓨터를 사용해 아카이브의 사용을 설명하는 시연회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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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1백 주년 행사 및 사업 11월까지 계속
    ▲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사진 오른쪽)가 창립 100주년 사업을 설명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가 1924년 9월 24일 한국에서 출범한지 올해로 1백주년을 맞이하며, 이를 위한 각종 기념예배와 기념행사, 문화사업, 컨퍼런스 등이 6월부터 11월 기념대회까지 매월 진행된다고 한다. NCCK는 1백주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지난 6월 27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종생 총무는 NCCK 백주년 사업을 위해 수년 전부터 준비하는 중이며, 일부는 진행중인 사업도 있다면서 6월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개설을 하고, 7월은 100주년 축하 인터뷰 영상 공개, 8월은 100주년 기념 기독교 사회선언 정책 협의회 개최, 9월 20~22일은 국제컨퍼런스, 22일은 기념예배, 24일은 기념일 행사 및 CBS에 의뢰해서 제작중인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다큐멘터리' 방영, 10월은 말 경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와 2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년사'의 출판 및 기념회, 11월 18일은 기념대회와 100주년 기념 기독교 사회선언 발표 등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김 총무는 지난 NCCK는 세계교회의 선교와 일치운동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창립된 한국교회 최초이 에큐메니칼협의체라고 소개하고,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와 기독교단체, 세계교회와 연대해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치면서 노동과 여성, 아동, 장애인, 도시빈민, 산업화, 민주화, 인권, 통일, 평화, 생태 등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사회운동을 주도 또는 참여했다고 밝혔다. NCCK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이 땅에 사랑과 정의를 기초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있다고 김 총무는 밝히고, 그간 가난한 자와 억울한 자, 눌린 자, 소외 당하는 자 등을 보호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이를 기념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한해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사회를 향한 선교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NCCK는 지난 1백년간의 여정을 담은 각종 자료들을 기독교의 사회운동사 차원에서 정리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아카이브'에 디지털 형태로 수록했는데 이를 지난 6월 27일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100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는 오는 9월 20~22일간 한신대학교와 라마다 바이 윈덤 서울 동대문에서 연속해 진행하며, 여기에는 세계교회협의회 총무를 비롯해 아시아기독교협의회나 북미 지역 주요 교단, 독일 개신교협의회 등 주요 파트너들 200여명이 참석하는 규모로 진행할 예정이다. '100주년 기념예배'는 오는 9월 22일 오후 4시 경 연동교회당(종로 5가)에서 개최하며 예배의 기획 준비는 최진봉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가 담당하고, 국제컨퍼런스에 참여한 인원들이 참석하며, 100주년을 기리는 의미로 모집한 '100인 합창단'이 합창곡을 담당한다고 한다. 동 합창단은 그동안 NCCK와 함께 해온 운동의 동지와 회원교단, 시민사회계열단체 관련자 등으로 구성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NCCK의 유관기관이자 언론사인 기독교방송(CBS)에 제작을 의뢰했으며, 지난 1백년의 역사를 반추하고, 오늘날 에큐메니칼 운동의 현실 등을 담을 예정며, 오는 9월 24일 무렵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100주년 기념 축하 인터뷰'는 NCCK 총무와 회장, 회원교단 회장과 총무, 각 위원회 위원장, 관련자, 직원, 현장 관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담아 10분 이내의 영상클립을 약 30건을 제작해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전 3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년사'의 출판기념식은 오는 10월 22일 오후 2시 정동제일교회당에서 개최하며, 2019년부터 출판중인 '한국교회기독교사회운동사 자료집(전 20권)'은 올해 내 완간된다고 한다. 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는 15명의 집필진이 노력 중이며, 1권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2권 해방부터 민주화 및 산업화, 3권 민주화 이행기부터 현재까지를 다룬다고 한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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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죄와 율법과 의는 모두 예수의 관점으로
    ▲ 유선화 작가는 「로마서, 오직 믿음으로 이르는 하나님의 의(길과 생명 출판)」을 출간했다. 유선화 작가는 「로마서, 오직 믿음으로 이르는 하나님의 의(길과 생명 출판)」를 출간함으로서 죄를 지어 죽을 수 밖에 없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았으며, 복음으로 거듭 난 이후로는 과거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과 동행해야한다는 내용을 최근 밝혔다. 지난 해 「요한계시록,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길과 생명 출판)」를 출간한 유선화 작가는 이에 대한 이해를 미지의 세계처럼 여겨온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한 잣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으며, 연달아 로마서를 출간해 이방인들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자녀라는 점을 분석해냈다. 요한계시록을 다룰 때 기독교계의 연구자들이 오역을 우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유 작가는 계시록의 모든 장과 절을 표시하고, 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해석함으로서 모든 구절을 해설했기에 신뢰성있는 방식의 해설이 가능했는데 이번 로마서를 쓰면서도 같은 방식으로 모든 구절과 성경이 최초에 작성되었을 때 사용한 원어를 대조함으로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신뢰성을 가져도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로마서는 한 마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라고 단언하고, 이번 저작의 모든 글쓰기를 예수님과 복음에 중점을 두고 풀어갔다. 로마서는 의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성경이라고 밝힌 저자는 율법과 하나님의 의,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동일하게 이르는 믿음의 의, 아담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두 결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죄와 율법과 육신의 문제,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르는 방ㅂ버,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의 섭리와 비밀 등을 말씀하고있으며, 여기서 바울 사도는 구약의 말씀으로 그 비밀을 어떻게 논리정연히 다루고 있고, 우리가 믿고 따라야하는 방향은 무엇인지를 기술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저자는 특별히 로마서는 죄와 율법, 의를 주제로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게되었다며,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일방적 주권을 통한 선택적 예정은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예정 및 이에 따른 믿음의 선택으로 인한 구원을 설명했다. 죄에 대해서 로마서 7장은 속 사람이 아닌 육신에게서 발생하는 점이 구별해 죄은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하며, 8장에는 거룩하게된 의로운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함을 조명했다. 저자는 로마서가 율법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주목하고, 그 역할과 성도에 대한 적용점을 설명했다. 바울 당시에는 할레를 비롯한 율법적 행위가 사람을 의롭게 함는 것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이 의롭게한다는 점을 가르쳐야했을 것이라면서 로마서의 가치가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설명했고, 이는 율법과 믿음에 대한 로마서의 이해인데 이 부분도 조명했다고 한다.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복음의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이고, 칭의라기 보다는 오직 믿음으로서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학적 관점상 '칭의'라는 것보다 저자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믿음이 생기고 구원 받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즉 피조물의 관점에서 살펴본 부분들은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다. 그리스도와 연합된자로서 죄와 율법, 육신에 관한 내용도 다뤘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났고, 새로운 피조물임에도 지속적인 죄의 발생으로 인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로마서 7장에는 '내 속에 거하는 죄'라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 조차 여전히 죄인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기도 하지만 저자는 죄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야한다는 주장이 수록되어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인데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새 생명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인데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로마서 6장 11절), 지체를 몸의 사욕인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서 육신으로는 죄를 섬기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과 삶에 적용할 방법이 동 저서에 자세히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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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7-01
  • 한국교회사 연구 기틀 개척 공로
    ▲ 민경배 박사는 이날 토론회에 참여해 교회사학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총회장 정인찬 목사)와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은 제 3회 웨이크사이버신학포럼을 지난 5월 20일 CTS아트홀에서 '한국교회사에서 바라보는 역사신학자 민경배 박사'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민경배 박사는 1972년 한국기독교회사를 발간함으로서 한국교회사의 연구와 교육분야의 체제와 틀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이날 한국의 교회사 연구에 권위자로 평가 받고 있는 이상규 박사(전 고신대학교 부총장)와 박명수 박사(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류금주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원장) 등이 발제자로 초청되어 민경배 박사의 생애와 학문, 민족의 이해, 내연과 외연으로 구분한 교회사 서술구도 등을 거론했고, 대체로 한국교회사의 기초부터 성숙단계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 동의했다. ▲ 정인찬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은 토론회 주최자로서 이날 교회를 위한 좋은 대안이 되기를 기대했다. ▲ 정인찬 박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는 동 교단과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이 민경배 박사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하게 됨은 한국교회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일이라면서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복음전파에 획기적 기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좌로부터 박명수 박사, 민경배 박사, 류금주 박사, 이상규 박사. ▲ 이상규 박사는 생애와 학문의 개괄 발제를 담당했다. ▲ 이상규 박사는 '민경배 교수의 생애와 학문'을 주제로 발제했다. 이 박사는 민경배 박사는 스승인 백낙준 박사의 계보를 잇는 제 2세 학자라고 평가하고, 한국교회사 학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학자라고 정의했다. 그가 한국에서 교회사연구를 개척했고, 오늘날 교회사학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학자라면서 한국의 신학도와 목회자 중 민 박사의 책을 한 권이라고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는 1934년 6월 22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읍내리 212번지에서 출생했고, 그의 아호인 '솔래'는 송천리의 솔래(松川)에서 취한 것으로 유추했다. 민 박사는 해방 후 월남해 서울에 정착해 1952년 3월 중앙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20기로 입대해 종군했지만 부상으로 22개월 후 명예 제대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수학하며 1956년 3월 졸업 후 동 대학원에 진학해 1958년 3월 석사학위를 취득, 스코틀랜드 에버딘대학교 신학부에서 수학하며 마가렛 크리스티나 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동 대학원에 진학 1962년 5월 졸업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귀국한 민 박사는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해 신학대학원 과정에서 수학해 1965년 3월 졸업했고, 1967년 11월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이상규 박사는 설명했다. 민 박사는 목사안수 후 이미 교수가 되었지만 영국 런던대학교 신학부로 유학해 1969년 8월 졸업했는데 이 때 로버트 토마스 목사(Rev. Robert Jermain Thoma)를 연구해 조명(민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와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던 토마스 목사가 웨일즈 출신이며, 에딘버러대학교 뉴칼리지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순수한 선교의 열정으로 인한 순교였다는 점을 밝힘)했고, 귀국 후 연세대학교의 교수직을 감당하던 중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서 1984년 3월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민 교수가 1958년 3월 연세대학교에서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대학원 졸업과 동시 불과 24세의 나이로 부산 분교의 전임강사로 임용된 것이라고 밝혔다. 민 박사는 1958년~1999년 8월까지 41년간 교수직을 감당했고, 연세춘추 편집 및 주간, 교목실장, 기독교문화연구소장, 신학대학장 등 보직을 맡았다고 밝혔다. 1984년에 4년간 교무처장, 1988년 4년간 및 1994년 2년간 연합신학대학원장, 1999년 8월 연세대학교에서 정년으로 은퇴하며 명예교수로 추대, 2002년 3월 서울장신대학교 제 2대 총장으로 4년 후 2006년 퇴임,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되었고,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원장과 명예원장, 고문 등을 감당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노력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상규 박사는 「한국기독교회사」 및 「한국민족교회 형성사론」, 「교회와 민족」 등 50여 권의 저서, 「에큐메닉스」 등 7권의 역서, 1975년 3월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이 발간하는 「신학논단」에 '루터의 내적 발전과 그 신학적 계보'를 발표 한 이래 1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민경배 박사의 학문적 발자취를 설명했다. 민 박사는 백낙준 박사와 더불어 1966년에 '한국교회사학회'를 조직해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신학회로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고, 1993년에는 연세교회사학회를 조직해 이 모체를 통해 1997년 6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을 설립해 초대 원장을 거쳐 명예 원장 혹은 고문으로 지속적인 후학 양성에 주력 중이라고 밝혔다. 학회 활동 외에도 서울YMCA연맹 이사 혹은 부이사장으로 활동, 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 혹은 순교자기념사업회 등에 관여하거나 학술적 자문 활동, 해외 강연에서의 강좌, 국제학술회 참여 등의 다양한 활동을 수행함으로서 교회의 교사(doctor ecclesiae)로서 일생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민 박사의 교회사연구에 대해 한국교회사 분야를 넘어서는 영향력도 있었지만 특히 한국교회사의 전 영역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 및 개척했고, 국내외 각종 도서관이나 역사관, 고문서관를 섭렵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의 저술목록은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 선교, 예전, 인물, 기구, 교파, 민족 혹은 독립운동, 외교와 국제관계, 역사인식과 방법론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거나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연구되지 못했던 여러 분야를 선구적으로 연구했고, 한국교회의 기원부터 해방 이후 교회 현실의 문제까지 연구와 재 해석, 사실규명, 사실의 의미 석명 등을 진행했는데 예를 들면 민경배 박사가 연구했던 '로버트 토마스: 한국 초기 선교사의 한 유형과 동서 교섭의 문제' 등이 그러하다고 밝혔다. 한국 기독교의 시원을 서구형 기독교와 미국형의 교파형 선교로 설명하거나 역사환경과 신앙행태의 구조적 차이를 석명하는 역사지리학, 한국교회 찬송가사, 기독교 신앙과 민족문제에 대한 접근 등의 연구방법론은 모두 민경배 박사가 개척한 분야라고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 저 「교회와 민족」에 수록된 '한국 근대 문화와 기독교의 형태 및 그 영향범위'를 이 박사는 살피면서 기독교 접촉의 단계를 넘은 수용 및 토착화의 과정을 연구한 선구적 연구형태였고, 여기서 서북형(黃平道, 체제에서 소외된 서북지방 특유의 종교적 심정)과 기청형(畿淸, 京忠道, 유교 양반의 지식인 계층의 존왕적 충성)이라는 두가지 신앙 형태 혹은 수용 배경을 제시하고, 이것을 민족운동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했으며, 이런 구분은 이미 송창근과 김린서 등에서 보이지만 민 박사는 이를 실증적으로 체계적으로 도식화했다는 공로를 이 박사는 설명하면서 이런 분석의 틀 자체가 선구적 시론이었고, 후학들의 발전적 연구의 토대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 박사의 저술 「한국기독교회사」는 한국교회 역사 최초의 교본적 통사였으며, 여러 신학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는데 1968년 출간해, 1972년 증보판, 1982년 개정판, 1993년 증보판, 2007년 순한글판으로 발간되는 등 결국 690쪽의 대작으로 발전되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이런 류의 연구를 백낙준, 김양선, 정인과, 장정심, 변종호 등이 진행했지만 한국기독교회사의 체계적 통사로서는 볼 수 없었고, 민경배 교수의 것은 근대 이전의 기독교의 접촉부터 한국전쟁과 1960년대까지의 한국교회사에 대한 체계적 최초의 통사였다고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가 민족교회 또는 민족교회론을 주창함으로서 당대 주류였던 선교확장사에 대한 반대급부가 되어 논란이 되었고, 민족이라는 말에도 어감상 오해를 받았던 부분들이 있었다고 이상규 박사는 밝히고, 민 박사는 한국교회를 '민족교회'로, 한국교회사를 '민족교회형성사'로 인식함으로서 한국인 신앙공동체를 주체적으로 기술했다고 평가했다. 민 박사 이전의 기존 한국교회사의 연구는 '선교사적' 연구로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주체가 되고, 파송국의 자료를 의존한 역사기술이었지만 민 박사는 선교사 파송국 교회의 연장이 아닌 우리가 주체가 되어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민족교회사'로서 인식했고, 이는 새로운 연구접근방식이고 독창적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 박사의 '민족', '민족교회', '민족교회 형성론'은 배타적 민족주의나 문화민족주의, 혈통에 근거한 개념이 아니라 언어나 역사, 문화,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민족공동체로서의 교회이며, 역사와 고난을 함께 공유한 교회라는 점에서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민 박사는 각기 다른 선교부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어도 교파 중심의 교회가 아닌 민족공동체의 하나의 연합된 교회를 민족교회로 파악하고 있고, 탈 서양 선교사를 지향하되 친일로의 경도가 아니며, 친 동향을 지향하되 반 선교사로 경도되지 않는 성격이라고 이상규 박사는 평가했다. 민경배 박사의 교회관은 '신도들의 세계적인 공동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기독교회사는 그리스도라는 뚜렸한 역사상의 인물과 교회라는 신도들의 세계적인 공동체, 사(史)라는 현저한 개념들을 다루고 있으며,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도, 완전할 수도 없다는 명제 속에 어느 한 측에서 반대측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무리하며, 완전할 수가 없을 수 밖에 없는 특정 논리를 들이대며 교회분열을 일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고, 민 박사는 순결과 연합이라는 두 축의 선택상황이라면 연합에 더욱 의미를 둔 것이라고 이 박사는 밝혔다. 한국교회사를 다루며 '외연과 내연'이라는 신앙현상학을 개발해 역사연구의 틀을 제시한 것이 민경배 박사의 가장 특별한 공로라면서 그가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기간 동안 순수한 신앙의 행위가 결과적으로는 민족운동과 도덕운동, 사회변혁운동으로 나타나 한국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는 역사의 틀이라고 이 박사는 정의했다. 이 연구 틀은 한국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시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원리라고 했다. 그의 저서 「민족과 교회(1981년)」 등에 게재된 논문들에 '내연과 외연'이라는 상관구조를 해명하ㅁ녀서 1903~1907년 한국교회 부흥은 신앙의 내연 구도였고, 1919년 이래 민족독립운동으로 외연 되었으며, 또 다시 김익두나 이용도의 신앙부흥운동을 통해 내연화하고, 1935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적 전시체제 하에서 신사참배가 강요됨에 따라 마지막 저항으로 외연화 되는 구조인데 결과적으로 신앙운동이 민족운동의 동력이 되는 입체적인 해석방법이라고 이 박사는 일례를 들었다. 민경배 박사의 한국교회사 연구에서 내연과 외연의 현상학은 기독교인의 현존과 존재 양식, 사회 참여 양식에 대한 역사적 실례를 제시하고, 즉 그리스도인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신앙고백적 삶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사회변혁적 역할도 감당하게된다는 연구의 흐름이라고 이 박사는 설명했댜. 이 외연과 내연의 연구방법론은 현재도 민 박사의 제자들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에서 지속적으로 사용 및 적용하고 있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이상규 박사는 논문의 말미에 "우리가 배워하 할 것은 그의 저술이나 학문적 결실만은 아닐 것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 진리에 대한 확신, 후학들에 대한 애정,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으며, 실제 민경배 박사는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학술활동이 아닌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성도들이 모여 성경이 시키는 교제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지하고있다. ▲ 박명수 박사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발제를 담당했다. ▲ 박명수 박사는 '민경배 교수의 한국교회사학에 나타난 "민족" 이해'라는 제목의 발제를 담당했다. 박 박사는 민족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단어라고 전제하고, 민족 또는 민족주의는 한국적 상황에서 외세나 제국주의에 대칭되는 차원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공산좌경세력들이 미국을 향해 제국의 프레임으로 보고, 미국에서 온 서양 기독교 세력도 적대하려는 즉, 북한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현재까지 미국을 중심한 서구문화의 전달자로서 한국 문명화에 앞장서면서 조국의 근대화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겼던 것이라고 박 박사는 평가했다. 부정적 측면으로서 좌측의 민족주의세력이 볼 때 한국교회는 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큰 도전세력인 미국의 친미집단이자 반민족주의집단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 박사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원래는 개신교의 핵심 단어였다면서 기독교는 천주교와 달리 민족을 강조했는데 루터교가 독일민족주의와 손을 잡았고,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와 손을 잡는 한편 성경을 강조하느 개신교의 특징상 각국의 자국어성경을 사랑해서 개신교가 들어간 지역마다 민족의식이 함양되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민족은 한국적 상황에서도 우파의 단골개념으로서 빈부와 계급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개념으로서 서구제국주의에 맞서 국민을 단결시키는 용어라고 정의하고, 공산주의는 원래 민족을 부루주아의 용어로 이해하고, 무산의 노동자계급들이 주도하는 계급혁명의 완성을 진정한 해방이라고 주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좌익은 계급이라는 단어보다는 민족이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계급혁명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차제에 우리는 한국교회와 민족의 관계를 분명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민경배 박사의 저작들에 나타난 민족 개념은 현재 일부가 통용하는 반제국주의적 이념 중심의 민족주의가 아닌 서구 기독교와 힘을 합해 민족을 부강케 만드는 현실적 개념으로서의 열린 민족주의였다고 분석했다.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를 정리하는 차워에서 초기 한국교회사가 시도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보고서를 중심으로 선교 역사를 정리했는데 이 같은 입장에서 초기 한국개신교사를 총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백락준박사였고, 그는 교회사는 근본적으로 선교사라는 입장에서 한국개신교사를 정리했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는 한국교회사를 선교사가 아닌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서술하려는 최초의 학자이며, 복음을 전해준 자의 자료 뿐 아니라 복음을 받은 자의 자료도 분석 정리했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을 논할 때 선교사들이 한국 민족교회의 주체가 되기는 힘들다는 한계가 있고, 그들이 한국 민족의 고통을 이해하더라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박 박사의 평가다. 그렇다고 민 박가 선교사들을 배타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며,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 못하더라도 한국인의 편이지 일본제국주의의 편은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은 "탈서양종교사(脫西洋宗敎史)하되 친일로 경도(傾倒)되지 않고, 친동양(親東洋)하되 반선교사로 기울지 않는, 강력한 탈권(脫圈) 에너지가 참된 의미의 '조선 민족의 교회'를 형성 해 나가는 저력"을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밝혔다.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이 마치 기존의 선교사관에 대한 도전인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주된 비판의 대상은 소위 진보신학의 역사이해에 집중되어 있다는 평가를 했다. 민 박사의 저서 「교회와 민족(1982)」이 출판된 때 그 민족교회론이 활발히 전개되던 때는 한국 신학계에서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이 강하게 대두되던 때였고, 민 박사의 민족교회론은 그러한 주장들에 의구심을 들어냈다고 박 박사는 밝혔다. 한국교회사를 보는 시각 중 일부가 민중사적으로 보려는 것은 조선 말의 권력 체제에서 소외된 농민층의 저항이던 동학혁명의 계승운동으로 간주하려하고, 이는 한국기독교의 사명과 역사를 민중의 저항의 한계에서만 가치를 인정하려할 때 민중의 저항력 결속의 한 에너지에 기독교가 동원되었다는 식의 주객 전도의 왜곡이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측면이라고 제시했다. 민경배 박사의 민족은 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민족공동체이지 어떤 특정 계급을 배제하려나 지칭하려는 계급공동체가 아니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민 박사는 한국적 신학으로 한국교회사를 바라보려는 시각들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시각을 갖은 나머지 한국교회사가 선교사들에게 굴종된 역사이므로 무가치하고, 새롭게 한국인의 신학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초기 한국교회사는 무의한 잘못된 역사로 보여질 것을 우려하는 측면도 언급되었다. 박 박사는 민경배 박사에게 민족교회는 선교사와 대칭 개념이 아니며, 그는 교회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믿기에 교회론을 강조하는 이유도 되는데 그에게 교회는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성례전에 참여하는 보편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의 민족교회론은 보편교회와 대칭되는 개념을 갖고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편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어떻게 한국교회가 주체적으로 소화했는가를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신교는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미국 개신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선교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러한 고종은 이러한 당시 개신교의 선교사들을 등에 업고 조선 민족을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보호받으려고 했기에 한국 기독교를 서구 제국주의와 동일선상에 둠은 몰 이해한 일이라고 박 박사는 강조했다. 박 박사는 진보주의적 교회사가들 상당수는 선교사를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교회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보다는 제국의 침략을 발견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사실 당시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아닌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침략에서 조선을 지켜줄 세력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에 대해 민경배 교수는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가 기여했다는 입장인데 민족주의라는 서구적 개념은 국민 각자가 주인 대접을 받는 민주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개신교가 조선에 등장하면서부터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에 거대한 에너지로 봤다고 박 박사는 평가했다. 조선의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방법은 스스로 전도하고, 자립하며, 통치하는 네비어스 선교정책을 사용했고, 이것은 책임적 시민을 양성함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종교적인 것 외에도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경제 독립을 위한 실업교육에 앞섰는데 본래 자립적인 서북사람들은 기독교정신으로 무장해 민족산업을 형성함에 앞장 섰고, 이런 배경으로 근대적 의미의 시민의식을 진 민족운동을 벌일 수 있는 집단이 바로 개신교였고, 독노회를 1907년에 총회를 1912년에 조직함으로서 전국조직망을 갖춘 상태에서 3.1운동을 맞이해 전국적인 독립운동까지 기여했던 애국의식, 책임의식 등의 발로였다고 보는 것이 민경배 박사의 지론이었다고 박 박사는 평가하고, 민경배 박사의 민족교회는 체험적 신앙을 내연으로 해서 한국교회의 반경을 외연으로 확대해가는 복음주의적 교회임을 언급했다. ▲ 류금주 박사는 민경배 박사에게 교육받으며 습득한 교회사학 연구의 방법론을 설명했다. ▲ 류금주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 원장)는 민경배 박사의 직계 제자로서 그에게서 수학했던 역사연구방법론인 '민경배의 한국교회사 서울의 구도: 신앙 내연(內燃)-외연(外延)'을 발제했다. 민경배 박사의 교회사를 보는 시각에서 내연(燃)은 불탄다는 것이고, 외연(延)은 이어지진다는 뜻으로서 이는 곧 신앙이 안에서 불타면 그 에너지가 반드시 바깥으로 나오기 마련이라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민경배 박사는 1934년 생으로서 당시에는 일제 치하로 나라가 없던 시절이었고, 출생된 해의 한국교회는 선교 50주년이었으며, 한국전쟁 때는 공산정권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월남했고, 수도 서울에 정착해 교회와 조국의 근대화와 발전상을 모두 경험한 교회사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모두 경험한 교회사 박물관 급의 유능한 교회사학자라는 설명을 했다. 류 박사는 민경배 박사가 한국교회사학을 연구해 온 것은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로 개화기부터 근세, 현대까지 한국의 모든 역사와 문화, 학문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였음을 체험했고, 한국교회가 잘 됨으로서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 전세계에 밝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한국교회사를 연구함에 있어 복음과 교회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되었던 것이 큰 동기였다는 방향으로 발제를 이어갔다. 민 박사의 교회사에 대한 사상은 연세대학교에서 평생을 교회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게 했고, 한국교회사학연구원(초대원장 민경배, 이사장 박옥선)을 지난 1997년 6월 창립해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교회사학을 연구하고, 신앙과 교회사를 기반한 교제를 진행해오기도 했으며, 동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 3국의 교회사가들을 모아 '동북아시독교사학협의회'를 구성해 10년간 교류해오는 등 사명을 감당했다고 류 박사는 회고했다. 민경배 박사는 11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역사방법론을 지난 2018년 약 1년간 연구발표했다면서 동 방법론은 정량론, 내연외연과 신앙현상학, 신앙지리학, 실체론, 그림처럼 아름답다, 질문-에듀스, 전역사체계화, 입체론, 유기역사론, 역사-시기 완충론, 역사-등거리론 등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류 박사는 실체론에 대해 사크라멘토 곧 성례는 예수그리스도의 역사 통치의 역사내 지점으로서 역사는 허상이 아닌 예수께서 실재 임하셔서 다스린다는 실체를 말함이라고 설명했다. 역사-등거리론은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의 집행 장소로서 각 시대와 각 존재에 독자적 사명을 분여하심으로서 역사를 경륜해가시는 것이며, 사명 받은 존재는 자신의 영역에서 주어진 사명과 기업, 자산과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개념임을 설명했다. 한국교회사를 정리함에 백낙준 박사는 선교사관, 주재용 박사는 민중사관, 민경배 박사는 민족사관이라고 구분하고, 선교사관과 민중사관은 선교의 입장 또는 민중의 입장으로서 사관을 정해놓고 고찰하는 연역적 측면이 있고, 민경배 박사는 연구해보니 신앙과 함께 민족이 각 시대의 실체로 부각되었다는(1880~1960년대 한정) 귀납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류 박사는 분석했다. 정확히는 민경배 박사의 민족사관은 민족교회사관으로서 독자적인 것이 아닌 교회와의 관계에서 고찰되는 것이며, 그의 민족교회사관을 1960년까지 한정하는 이유는 그 '민족'이라는 말이 (특정 시대부터) 기독교회와 무관하게 사용되고, 용법 또한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교회사연구방법론에 수학적 단어인 '함수'라는 개념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류 박사는 이 역학 함수관계를 교회를 중심으로 4방향에서 선교사와 신앙, 일본, 민족, 초월적, 서양적, 동양적, 역사적 요소가 상반되게 위치하는 방식임을 설명했다. 즉 신앙은 초월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민족은 역사적 차원에서 이해, 친선교사는 반일을 전제하고, 친일을 포함한 동양적 기독교는 반선교사적 경향으로서 이를 요약하면 신앙과 민족이 상반되고, 선교사와 일본이 상반되는 방식으로 시간 내에서 교회와 신앙, 세상은 영향을 주고 받은 방식이라고 류 박사는 요약했다. 그 상호작용은 늘 교회와 민족은 한국사에서 초월적 신앙 차원에서도 묘하게 긍정적 교섭이 확인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내연과 외연의 상관관계에 있어 신앙이 안에서 불타오르면 자동적으로 바깥으로 영향이 이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신앙이 먼저 내면에서 불타오른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은 신앙의 영역이었지만 시기적으로 을사늑약의 주권상실 시기였고, 신앙 자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깥으로 번지는데 이 때 한국교회가 3.1운동을 주도하게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원점, 하나님께 대한 충성 그 자체는 역학상 결과적으로 일제의 국체에 대한 민족의 저항 에너지와 동일시되는 그런 관계라는 설명이다. 신앙의 현상학은 안에서 불타오른 신앙이 외연으로 번질 때 각자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현상화하는 것으로서 같은 신앙 에너지가 신앙운동자체로 발산도 하지만 때로는 도덕 운동, 민족 운동, 사회 변혁력으로 작동하는 것인데 故 주기철 목사는 독립운동을 외치던 사람은 아니었으나 신사참배를 반대함으로서 일본 제국의 핵심인 천황 숭배에 저항하고, 일본 정부의 국체에 정면 도전하는 '반일 민족주의자'로서 현상화한 그러한 관계라고 류 박사는 밝혔다. 민경배 박사의 역사관은 나무와 열매 중 나무가 우선하고, 신앙이 선행해야 실천이 이뤄지거나 안에서 신앙이 불타올라야 저절로 외부로 들어나거나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그 가지인 성도들이 자연히 열매를 맺는 내연과 외연의 구도, 직접성, 자동성 등은 지극히 성경적인 역사관이라고 류 박사는 밝혔다. 류금주 박사는 내연과 무관한 민족운동은 한국 교회사의 주류에서 사라졌고, 민족에 대한 주목이 1960년대까지로 한정한다고 해도 민경배 박사의 내연과 외연, 신앙의 현상학 등 다양한 교회사연구의 구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여전히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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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6-24
  • 그리스도교는 韓·日·中 및 전 세계의 핵심
    ▲ 민경배 박사가 발제를 담당했다. ▲ 직전원장 권평 박사가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이하 한교사)은 민경배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한일관계사 서론'의 강연을 맡겼고, 민 박사는 향후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국가와 전 세계의 모든 역사와 정치, 문화 등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경배 박사는 지난 6월 6일 진행된 한교사 월례발표회에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했던 1900년대 일본에서는 군벌세력과 문벌세력이 주도권을 다투던 시기 였다면서 이 때 조선을 통치함에 있어 군대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더니 가능성이 보인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민 박사는 일본을 근대화시킨 세력은 군벌과 문벌이었으며, 전자는 야마가다 아리또모가 대표적 인물이었고, 후자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이토는 조선을 다스릴 총독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인물로서 조선을 합병하는 것을 반대했던 인물이며, 최대한의 자치권을 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수 차례 가연한 바 있으며, 이날은 이토가 조선의 이현 왕세자를 모셔다가 좋은 왕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좋은 학교를 다니도록 주선한 인물이었지만 안중근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민 박사는 일본인 주류의 뿌리가 한국민족 출신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설명을 했다. 일본의 50대 천황 '간부덴노(황무천황)'의 모친이 백제 공주였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뉴스위크 2002년 3월 18일자의 보도를 제시하고, 백제 공주의 피가 천황가에 있다는 것은 한국인으로 볼 수도 있다는 평가를 했다. 임진왜란(1592년 발발)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한중일 3국의 관계를 재 정립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전란 당시 일본은 한국인 약 10만명을 데려갔는데 이들은 유능하거나 인물이 출중한 여성 등 당대 제일의 엘리트들이었는데 만약 무능했다면 잡아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후손들이 일본의 근대화를 일으킨 사람들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구주 후꾸오까의 사쯔마와 조슈의 출신자들이 일본의 근대화를 주동했는데 야마가다 아리또모와 총리를 거친 이토 히로부미와 사또 에이사쿠 및 아베신조와 기시 노브스께 등이 모두 사쯔마파라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의 경우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본인이 한국계임을 고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국력이 증대되자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이 때 전후에 활약한 사람이 일본 외무상인 도고 시게나리가 있었고, 이 또한 사쯔마 출신자였다는 점을 들어 한국교회사와 한국 그리스도교를 연구함에 있어 한국적 상황도 중요하지만 일본이나 중국 등의 주변국에 얽힌 이야기들도 동등하게 다뤄야 입체적인 연구가 되고, 인류사회와 그리스도교를 위한 기여자가 되는 방식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제 치하 시절 성탄절을 맞으면 성탄절 전야에 교회마다 성극을 공연했는데 대부분은 아기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닌 출애굽 이야기를 다뤘다고 한다. 당시 모든 교회가 모세의 홍해 건넘을 다룬 것은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이야기 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민족해방을 염원한 애국적인 사건들이었다고 분석했다. 김장호 씨가 1918년 자유주의신학적으로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은 사실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한 것을 두고 민 박사는 민족 반역적인 발언이라고 평가하고, 당시 한국장로교회는 그를 즉각적으로 처단했다고 밝혔다. 윌리암 커가 김장호의 배경이었다고 민 박사는 설명했는데 북장로교는 그를 즉각 잘라냈지만 이후 일본정부가 채용해 경성제국대에서 성경을 가르치도록 배려했다고 밝혔다. 커는 이후 한국 동란 시절 맥아더 밑에 들어가 한국군종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게 되는데 그의 인생을 볼 때 비판받을 일도 있지만 그리스도교를 위해 기여한 일들도 많기에 역사연구자는 역사를 접할 때 단편적이거나 표면적인 것만 보지 말고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내용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조선에서 한일간에 정미조약이 비준 될 때인 1907년은 왕은 그대로 두되 모든 행정은 일본인이 주도하는 이른바 나라가 망한 시기였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전국적 조직인 교단을 확립했는데 독노회 문서의 첫장은 "천하 만국에 복음을 전한다"라고 언급되어 있다며, 처참하게 나라가 망한 순간에도 한국교회는 세계만국기를 걸었고, 세계복음을 언급하는 현실을 초월하는 정신세계, 신앙세계를 가졌었다고 설명했다. 맥아더 장군이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미드웨이호에서 항복조인식을 할 때 전 일본국민들에게 했던 연설은 "오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신학적이다"라고 밝혔고, 파레드 자카리는 8개의 박사학위 소지자였는데 "앞으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다"라고 했고, 일본 최고의 직장으로 일컬어져 수재가 모이는 산께이신문의 신입사원들이 전세계를 유랑하고 써낸 보고서에 역시 "앞으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라는 내용으로 논문집을 만들고, 시바 료따로(일본 최고의 문학가, 사상가)는 "세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자유와 인권, 정의의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증거를 민경배 박사는 제시하고, 한교사 안에서 만나는 모든 회원들은 이 같은 학술적인 생각은 갖되, 우선은 서로간의 교통과 친교에 매진해 상호간에 협력과 도움을 주는 관계를 지속하자고 강조했다. <한국교회신문 공동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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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2
  • 교회사학과 복음 위한 27년
    ▲ 류금주 원장이 설교를 담당했다. ▲ 김동석 부원장이 사회를 담당했다. ▲ 민경배 명예원장이 축도를 담당했다. ▲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창립 27주년을 기념해 학술지인 '교회사학'을출간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이 지난 6월 6일 창립 27주년을 기념하는 예배를 가졌으며, 설립 이래로 매월 빠지지 않고 진행했던 월례학술발표회를 303회로 진행하기도 했다. 창립기념예배는 부원장 김동석 목사의 인도로 진행되었다. 류금주 목사(원장)는 이날 '뜻을 반납하러 오신 예수'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태복음 26장 42~46절 말씀을 근거로 진행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던 창세기 시절에 첫 사람인 아담과 그의 처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원죄가 들어왔지만 예수로 인해 그 죄가 사해짐을 받았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순서를 담당했다. 류 목사는 오늘 말씀의 성경본문에는 십자가 처형을 앞둔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죽음 이후의 상황을 고통스러워한 나머지 이를 회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이후 하나님이 뜻대로 해달라는 요청을 하던 때라고 설명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던 때 하와에게 접근한 마귀 루시엘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루시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탐냈던 일로 인해 심판을 받았던 즉,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을 뜻을 세웠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시엘 자신이 심판받았던 똑같은 상황에 사람을 끌어들여 빠뜨리려는 시도이며, 두가지 사건의 핵심은 하나님 처럼 되려 했다는 것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이전에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만 있었지만 이후에는 모든 사람 각자가 뜻을 세우고, 죽음에 이르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이라는 설명을 류 목사는 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뜻을 하나님께 반납한다는 것은 즉, 예수가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뜻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은 사람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뜻을 반납하는 것이 그의 공생애의 요약인데 이 본문이전에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사망 후 음부에서 마귀에게 희롱당하는 것이 싫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류 목사는 피흘림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며, 외적으로는 십자가에서 피흘렸고, 내적으로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상황으로 볼 때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께서 어떤 이유가 되었던 십자가를 지시지 않는다면 구세주로서 오신다고 오랬동안 예언되었던 것들이 이뤄지지 않게 됨으로 모두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류 목사는 밝혔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아담으로 인해 생긴 뜻(사람의)을 하나님께 반납하신 것인데 이것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한다고 설명했다. 그 고통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공동체의 모두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우리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의 27주년을 맞이하며 향후 그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류금주 목사는 강조했다. 개회예배는 민경배 목사의 축도, 정용 목사의 기도, 박수현 전도사의 반주 등으로 진행되었다. '교회사학' 제 18권 제 1호에는 '20세기 초의 글로벌 정치상황과 한반도의 기독교 경험(김동석)'과 '기독교는 한국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류금주)', '일제하 한국 기독교회와 공산주의 관계사(민경배)', '곽안련 선교사 생애 연구(정용)', '서북계와 기청계(조점숙)', '20대 청년 만우 송찬근의 삶과 사상(주재용)', '칼 귀츨라프 선교활동지에 대한 고찰(최태성)', '나와 민경배 박사님(박정규)', '청암 박정규 박사의 정류 이상근 학술상 수상 기념문집에 대한 서평(이상웅)' 등의 연구논문과 에세이 등이 수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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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2
  •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참석자들이 창립대회 직후 예배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창립대회 직후 행사장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 워싱턴DC서 창립 총회 40여명 참석…공동 발기인에 20개 교단 소속 120명 참여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모임인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이하. 기평넷, Korean Ecumenical Peace Network)가 5월22일 워싱턴 디씨 소재 연합감리교 예배실에서 창립되었다. 이날 창립예배와 총회에는40여명이 참여했으며 공동 발기인에는20개 교단 소속120명이 참여했다. 북미 한인 기독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대회장 김정호 목사(UMC)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환영사에서 김정호 목사(UMC)는"남북 관계가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북미 기독교 평화 네트워크의 시작이 참 귀하다."고 밝히고"우리가 그동안 평화에 많이 목말랐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조국 한반도 평화의 그날이 오면 오늘의 이 모임이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는 겨자씨 만한 기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창립을 환영했다. 예배는 김대호 목사(PCUSA), 손태환 목사(PCUSA), 정영민 목사(RCA), 조동호 박사(퀸즈대) 등 연합 찬양팀의 인도로 힘차게 시작되었다. 이어 조원태 목사(PCUSA)의 사회와 김기리 신부(성공회) 박상희 목사(기장)의 축도로 이어졌고, 김정호 목사(UMC)가"다시 또 우물파는 사람들" (창세기26:12-35)을 주제로 설교했다. 이어서 발제 순서에서는 김충성 목사(제자회)가'북미 에큐메니칼 평화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김진양 목사(UMC)는'북미 기독교 평화네트워크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김충성 목사는60년대 창립된 ‘북미기독학자회’와70년대 창립된 ‘미주 목요기도회’가 한국의 민주화, 인권, 평화통일 운동과 연대하여 기도하고 행동했던 역사를 소개했다. 김진양 목사는"북미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삼았으며 평화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밝히고"분단79주년을 맞이하는 조국이 미, 중의 패권경쟁과 핵무기 및 군비경쟁, 군사훈련 등으로 인해 대결과 갈등이 더욱 심화된 이 시기에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연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진행된 총회에서는 정관과 창립선언문을 통과시켰고 초대 회장에 김정호 목사(UMC), 초대 사무총장에 조원태 목사(PCUSA)를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창립 발기인120명의 이름으로 작성된 창립 선언문에서는"그동안 기독교인들로서 정의와 평화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사명을 우리가 잘 감당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 다짐한다"고 밝혔다. "하나, 우리는 북과 남 정부가 이전의 평화통일 정책으로 돌아가 대화와 협력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미국과 기타 강대국이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조성하는 대화와 정책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 우리는 교단의 벽을 넘어 평화를 위한 연대와 협력을 이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기평넷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에서 기도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며, 다양한 교단과 학계 그리고 단체들과 연대하여 평화를 위해 애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불어 기평넷은 공동 발기인으로 참여한120명을 평화용사300명으로 확대할 것이며, 제2차 총회는 내년4월에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열기로 결정하였다. ▲초대사무총장 조원태 목사(PUCSA)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여자들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참여자들이 연방하원 Bill Foster 의원 사무실에 찾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화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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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9
  • 한글 발전은 내한 선교사들의 공로
    ▲ 정용 박사는 발제를 담당했다. ▲ 고사무엘 목사는 토론을 담당했다. ▲ 송훈 박사는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은 제 302회 정기 월례발제회에 정용 박사(백석대학교 외래교수)를 초청해 발제를 맡김으로서 구한말 내한한 외국선교사들이 복음전파를 위해 한글을 익히고 사용하면서 한글문법을 확립하고, 외국어 성경책을 국문으로 번역, 한글사전의 출판, 한국 내 한글사용의 문화 정립하는 등 공로가 큼을 아는 기회로 삼았다. 사회는 송훈 박사, 발제는 정용 박사, 논찬은 고사무엘 목사 등이 순서를 담당했다. ▲ 정용 박사는 개화기 당시 한국어의연구는 뜻밖에도 한반도의 밖에서 이뤄졌다면서 연구자는 중국과 일본에 외교 또는 선교의 목적으로 체류하는 자들이 인근 국가였던 조선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훈민정음은 1443년 창제되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던 한문에 비해 언문 또는 반절로 격하되 한자의 보조수단 정도로 쓰이다가 1882년 로스-서상윤이 한글성서를 번역해서 기사회생했고, 1886년 헐버트의 한글 자강활동으로 대중화가 되었다고 밝혔다. 조선에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글은 비천해 아녀자나 쓰는 '암말' 취급을 받던 시기에 서양인들은 한국인들과 의사소통을 위한 연구에 공으 들였고,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워나가며 한국문법과 한국사전으로 정리했는데 정작 조선인 한국어선생들은 문법이나 영어의 체계를 몰랐던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내한 서양선교사들은 한국의 계몽과 근대화 과정에 헌신했고, 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익힘에 최선을 다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속했던 문화에서 생산된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함으로서 한글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고 정 박사는 분석했다. 정 박사는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한글을 연구하는 학회의 많은 학자들이 구 한말의 주한외국인 선교사들의 공로를 논문에 단지 몇 줄에 불과하게 기술함으로서 인정하는 편인데 초기 한국 기독교가 한글문화에 끼친 지대한 역할에 비하면 너무나 저평가 된 것이라며, 노고에 걸맞는 평가를 학계로부터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개항 전후의 서양 선교사들은 조선의 국민들이 신분계층에 따른 교육기회가 제한되었던 틀을 깨고, 교육의 대상을 크게 확장하기 위해 미션스쿨을 세웠지만 필요경비를 학습자가 부담하는 형태였기에 여전히 극빈층은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권서인이나 전도부인들이 쪽 복음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글을 먼저 깨우친 선교사가 편찬한 '초학언문'을 활용해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에 한글의 우수성을 먼저 알아본 선교사들이 큰 기여를 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글은 그 체계가 하늘과 구름, 바람, 사람과 같은 두, 세 음절의 단어어로 구성되고, 열 다섯개의 자음문자와 모음문자들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고, 1833년 7월 1일 발행된 Chinese Repository에 한글의 영어식 발음법이 세계 최초로 수록, 1932년 7월 25일 충청도 장고도와 도대도에 머물었던 찰스 구즐라프(Charles Gutzlaff)는 그해 11월 발행된 Chinese Repository에 조선어로는 발표 했고, 이 자료는 1833년 로버트 모리슨에 의해 한글의 영어식 발음법이 완성 되는 등 성과가 있었다고 정 박사는 밝혔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한국어를 익히거나 연구함에 따라 성과물들이 발견된다고 정 박사는 설명했다고 밝혔는데 로우니는 1866년 '한국어에 관한 소견'이라는 논고를 집필, 존 로스는 매킨타이어와 함께 1877년 '한국어 입문' 출간 해 차후 '조선어 법'으로 수정 보완 출판되어 이후에 내한 하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게일 등 주한 서양선교사들의 연구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로스는 1877년 한국어회화교재인 'Corean Primer'를 출간, 리델 신부는 1880년 '한불 자전', 1881년 '한국어 문법'을 출간, 달레 선교사는 1874년 '조선교회사' 서론에 조선어를 소개 했고, 언더우드 목사는 1890년 '한영문법', 1890녀 '한영자전'을 출판, 게일 선교사는 '텬로역정', '한영자전'을 이창직과 함께 번역, 스왈론은 1892~1898년 간 '한국학 휘보 Korean Repository'에 한국어교수법과 관련한 기고문을 게재, 베어드 선교사는 1893년 출간했던 '천로지귀'의 개역 수정판을 출간하거나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50가지 도움들'이라는 책의 서술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주한 선교사들의 한국어 학습전략은 언더우드의 '영한문법'에서 살피면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고,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50가지 도움들'에는 한국어를 귀로 들으면 입으로 재현하거나 한국인들의 생활에 동화될 것, 학습한 것을 밖에서 사용할 것 등의 실천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50가지 도움들'은 한국어 학습에 쉽게 입문하도록 도왔고, 여러 어휘를 쉽게 익히도록 구성, 다양한 상황에 응용하고, 학습자의 주도적 문법체계를 돕는 등의 특징이 있어 초기 개신교선교사들의 한국어 학습서로는 오랫 동안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베어드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발음을 규격화하려고 했으며, 출신지에 따른 발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어의 로마자화'표기법을 강조했다고도 한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동료였던 언더우드나 게일 선교사처럼 성경번역이나 문서사역은 안했지만 엄청난 분량의 서신을 남겼다고 한다. '마포삼열 자료집'에는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인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며 선교했던 경험들이 기록되어있기에 이를 주목해야한다고 정 박사는 강조했다. 한국어를 익힘에 오랜 기간이 사용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한국 장로회 선교회 규칙과 내규' 1901년판을 보면 신임 선교사들이 3년간 매년 시험을 치뤄야하며, 시험위원회는 시험 뿐 아니라 선교사들의 어학공부를 위한 지도를 해야하며, 새 선교사 어학교사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것, 위원회는 시험 결과는 매년 본부에 보고할 것, 신임선교사는 5년간 공부할 것 등으 규정했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고 한다. 마포삼열 선교사 서신을 통해 대부분의 수업에 토착어를 사용할 것, 선교사 출신 교사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한국어를 익히게 할 것, 수업이 토착적으로 이뤄지는 규칙을 정할 것 등을 주장했다는 등을 확인 할 수 있다고 한다. 정용 박사는 언어는 해당 문화를 발전 시키는 원동력이자 외부에 알리는 수단이기에 자체적으로 문화이며, 인류 사회 문화의 핵심이 되는 '말'과 '문자'로 표현할 만큼 중요함을 강조하고, 한글이 문자학적으로 세계 각 문자들 가운데 매우 독특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글은 2007년 UN 산하 세계지식재산기구 43차 총회에서 183개국 만장일치로 '국제특허 협력조약(PCT) 국제 공개어'로 채택되었다며,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야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다만 주한 선교사들의 한글에 대한 큰 공로는 그들의 교육행위 자체가 모두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 평가절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로는 한글교육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 논문을 연구하는 내내 한국어를 연구하는 전문학자들은 한글 발전에 기독교가 기여했던 것을 인정을 하긴 하지만 그들의 논문에 단지 몇 줄에 한정한 분량이며, 그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느낀다며, 이제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한국어 발전에 그리스도교가 기여했던 부분들을 적극 연구해 세상에 제시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 고사무엘 목사(전문연구원)는 논찬을 담당했다. 고 목사는 정용 박사가 제시한 조선 선교과정에서 주한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익히며 선교에 활용했고, 한국어의 기틀을 다짐과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부분들을 대다수 동의했다. 세계에는 많은 국가와 민족, 부족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말이 존재하지만 이들 중 고유한 각자의 글자를 갖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대부분 타 문화권의 글자를 차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에서는 고유의 말과 글자로 종교행위는 물론 학문활동까지 이뤄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상당수의 문화권에서 영문 알파벳을 차용해서 각 민족의 언어를 표기하지만 정확한 발음을 표기함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한글만은 표음문자이고, 한글이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세계 어떤 언어이든지 발음으로서 표현하는 우수성을 갖고있다고 밝혔다. 한국어와 한글의 우수성이라는 장점을 이제는 한국이 세계선교의 중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구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노력과 성과를 내던 모습을 본받아 세계 선교중심 국가가 되도록 노력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자고 촉구했다.
    • 종교
    • 종교 일반(해외, 국내)
    2024-05-17
  • 그리스도인 평판 위한 협력
    ▲ 김동석 목사(믿힘연구원 원장)는 그리스도인은 사역을 위해 협력해야함을 강조했다. ▲ 민경배 명예원장은 한국교회사 연구와 협력에 최선을 다 해줄 것을 강조했다. ▲ 류금주 원장은 한교사 27주년의 시작을 회상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 조점숙 목사는 1부 예배 사회를 담당했다. 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류금주 박사, 명예원장 민경배 박사, 이하 한교사)은 제 302회 월례발표회와 예배를 지난 5월 9일 서현교회당(이상화 목사 시무)에서 개최했으며, 김동석 목사(믿힘연구원 원장)가 '좋은 평판'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담당했다. ▲ 김동석 목사는 사도행전 11장 23~26절 말씀을 기초로 '좋은 평판'이라는 설교를 담당했다. 김 목사는 바울과 바나바가 활동하던 시기의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함으로서 교회가 성장하던 상황에 대한 설명을 했다. 성경 본문은 회당에서 유대인 외에도 비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를 믿게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는 당대에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안디옥교회에는 유월절이 지난 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남았는데 이들에게 음식 등을 제공하면서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했고, 바나바가 밭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는 등 헌신이 있었으며, 교회의 양적 성장으로 인해 동역자가 필요해진 바나바는 바울을 초청해 더욱 교회가 부흥 하는 등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평판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설명했다. 그 평판은 사람들로부터 멸시 또는 칭찬 받는 두가지 의미였겠지만 5천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해 현재 시각으로 봐도 대형교회의 범주에 드는 것이기에 평판이 좋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한국교회도 조선의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그리스도를 소개함으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줬고, 그리스도인들은 근세로부터 현재 까지 많은 역할을 해서 현재 한국인구의 20%에 달하는 사람들이 성도에 해당하는 이 때 안디옥에서 처럼 우리도 평판을 만들어감에 고민해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안디옥에서 비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 교세가 크게 증가했던 사실이 있으며, 이 상황을 바나바는 독점하지 않고 바울을 동역자로 초청해 협력했고, 결과적으로 바울이 현재의 그리스도교에서 기초척인 것들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교사도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단체로서 예수님의 이끄심을 기반으로 노력함으로 민경배 명예원장의 평판에 힘을 얻어 발전을 지속하는 중이지만 후배 학자들로서는 그 평판의 유지와 발전, 계승을 수행해야하는 과제가 있기에 이제는 중간 세대가 차세대를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직접적인 인재영입에 힘 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자고 촉구했다. ▲ 민경배 명예원장은 이날 모임이 한교사 창립 27주년을 겸해 모인 것을 축하하며, 기념 케익을 절단했다. 민 명예원장은 한국교회사학연구원이 시작하기 전에는 이와 같은 단체가 한국교회에 없었다면서 교회사를 연구하는 단체와 사람들로서 나름 복음적인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성공에 이름을 축하했다. 한교사는 모임의 목적이 학술보다는 연구자요 성도로서 서로 친교를 우선하고, 교육과 학술을 위한 노력도 겸하는 것이므로 앞으로도 지금까지 했던 것 처럼 협력하자고 촉구하고, 회원 확장을 위해 노력하기를 당부했다. 1부 예배의 사회와 기도는 조점숙 목사, 광고는 류금주 원장, 축도는 민경배 목사 등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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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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