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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에 기피... 저연차 교사로 채워지는 강남·서초 초등학교
- 학부모 민원에 기피... 저연차 교사로 채워지는 강남·서초 초등학교 서울 강남구 한 초등학교 A 교사는 작년 임용 합격 후 곧장 이 학교로 배치받았다. 사는 곳은 동작구인데, 멀리 배치된 것이다. 그는 요즘 매일 강남을 벗어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 때문이다. 최근 한 학부모는 “어떤 애가 우리 애한테 운동장 우레탄 알갱이 두 개를 던졌다. 생활 지도해달라”는 민원을 받았다. 어떤 학부모는 “피구하면서 어떤 아이가 고의로 우리 애한테 공을 던졌으니 사과받아야겠다”고 항의했다. A씨는 “내 잘못도 아닌데 학부모가 전화로 화낼까 봐, 아동 학대로 신고할까 봐 매일 불안하다”고 했다. 서울 강남·서초 지역 초등학교가 저연차 교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학부모 민원과 과밀 학급에 지친 교사들이 떠난 빈자리를 신규 교사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들을 붙잡아두려고 강남·서초 지역 초등 교사들은 5년이 아닌 10년간 일해야 타 지역으로 나갈 수 있도록 최근 규정까지 바꿨다. 16일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경력별 초등교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경력 5년 미만 초등교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남구(20.7%)와 서초구(18.6%)였다. 이는 25개 자치구 평균(10.9%)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작년 3월 서울 신규 초등교사 113명 중 44명(39%)이 강남·서초에 배치됐다. 교사들이 강남 근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 민원’이다. 재작년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접수된 민원은 2508건으로, 서울 11개 교육지원청 중 가장 많았다. 강남 초등 교사 B씨는 “우리 애가 대표로 계주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왜 안 시켜주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교사 C씨는 “학부모가 ‘나는 전세가 아닌 자가로 살고 있으니, 우리 애를 더 신경 써달라’는 민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값이 비싼 강남에 많은 돈을 들여 이사 온 만큼 자녀를 잘 챙겨 달라는 취지인데, 모든 학생을 챙겨야 하는 교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민원이다. “남편이 변호사인데,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서 압박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업무가 많은 것도 교사들이 강남을 기피하는 한 이유다. 강남·서초 지역은 학급당 30명이 넘는 과밀 학급이 많다. 종로학원이 지난해 전국 229개 시군구의 초등학생 전출입 현황을 분석했더니, 강남구의 순유입 학생이 2575명으로 1위였다. 순유입은 전입 학생 수에서 전학 등으로 빠져나간 학생을 뺀 수치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강남·서초 초등교사 전출 규정을 바꿨다. 원래 강남·서초 관내 학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교사는 다른 지역 학교로 옮겨야 하는데, 이걸 10년으로 늘렸다. 과거엔 강남 지역이 학생들 생활 지도가 편해 근무 선호지였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있었다. 바뀐 규정은 2028년 3월 적용된다. 힘든 일이 몰리다 보니 교직을 떠나는 저연차 교사도 늘고 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의 ‘최근 5년간 국·공립 초·중·고 퇴직 교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퇴직한 경력 10년 미만 교사는 607명이었다. 2020년 459명에서 2021년 463명, 2022년 526명, 2023년 566명으로 꾸준히 늘다 작년 처음 600명을 넘긴 것이다. 정성국 의원은 “교사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민원 처리 방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학부모의 무분별한 악성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교권 회복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선 강남 일대를 신규 교사들이 채우는 문제, 저연차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상이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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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에 기피... 저연차 교사로 채워지는 강남·서초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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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민석, 사단법인 운영경력 누락… ‘공적 자금 운용’ 검증 회피 의혹
- [단독]김민석, 사단법인 운영경력 누락… ‘공적 자금 운용’ 검증 회피 의혹 5년간 1억 기부금·市 보조금…올해 1월 배우자가 법인 해산 김민석(사진)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에서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과 기부금 등을 받으며 과거 운영했던 ‘비영리 사단법인’ 경력을 누락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해당 법인은 최근 5년간 약 1억 원의 기부금을 받으며 운영됐는데 올해 1월 돌연 폐쇄됐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공적 자금 운용과 관련한 경력을 뺀 데 대해 검증 회피의 목적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을 보면 김 후보자가 지난 2001년 설립한 사단법인 ‘아이 공유 프로보노 코리아’(프로보노) 경력과 관련 서류가 누락돼 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후보자는 직업·학력·경력 관련 사항을 밝혀야 한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국회 등 주요 경력 위주로 작성하면서 그 내용은 빠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문화일보가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입수한 ‘공익법인 결산서류’에 따르면 프로보노는 2020~2024년 5년 동안 모두 기부금 9659만7848원을 받았다. 2020년 2553만3000원, 2021년 2979만6849원, 2022년 1746만3000원, 2023년 1439만7000원, 2024년 940만8000원 등이다. 공익법인 등에 기부금을 낸 개인 및 법인은 소득세 및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인사청문회 검증 대상에 포함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김 후보자가 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지난 2014년 프로보노는 서울시 보조금 1500만 원을 받았다. 2017년에는 보조금 1200만 원이 프로보노에 지급됐다. 추 의원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한 법인 경력을 빼둔 것은 검증 회피의 목적이 아닌가”라며 “법인 폐쇄 시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김 후보자는 2001년 이 법인을 설립하고 2004년 2월까지 이사장을 맡은 데 이어 2009년 7월~2012년 7월, 2013년 7월~2016년 7월 이사로 활동했다. 그 후에는 김 후보자 배우자 이모(53) 씨가 2018년부터 이사로 이름을 올려 운영권 등을 행사했다. 이 씨는 지난해 청산인 자격으로 이 법인 해산 절차를 밟아 올해 1월 마무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보노는 김 후보자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했다. 김 후보자가 과거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정치인으로부터 4000만 원을 빌렸지만 아직까지 이를 갚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2018년 4월 11일, 23일 각 2차례씩 강모 씨에게 총 4차례 4000만 원을 빌렸다. 강 씨는 2008년 김 후보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당시 김 후보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3명 중 1명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현재까지 김 후보자가 갚은 금액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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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민석, 사단법인 운영경력 누락… ‘공적 자금 운용’ 검증 회피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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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광화문서 파이널 유세... "6월3일 진실이 거짓에 승리할 것"
- 金, 광화문서 파이널 유세... "6월3일 진실이 거짓에 승리할 것"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2일 제주도에서 시작해 부산·대구·대전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국토 종주(縱走) 유세’를 펼쳤다. 하루에 약 650km를 이동하며 막판 지지세 결집에 나선 것이다. 김 후보는 이번 대선을 ‘진실과 거짓의 싸움’으로 규정하며 “정직한 대통령,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4·3 사건 희생자들에게 참배한 뒤 제주 시내에서 유세를 했다. 김 후보는 최근 불거진 ‘짐 로저스 이재명 지지 진위(眞僞)’ 논란에 대해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국제적인 거짓말쟁이로 이름을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가 이 후보 지지 뜻을 밝혔다고 민주당이 발표한 뒤, 로저스가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김 후보는 오후엔 육지로 건너와 부산역에서 유세를 한 뒤 KTX를 타고 이동하며 대구역·대전역 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차례로 유세를 했다. 김 후보는 부산 유세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내일(대선 날)은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날, 선이 악을 이기는 날”이라며 “국민을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짓 없는 정정당당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 소중한 한 표로 이재명 괴물 총통 독재의 출현을 막아 달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날도 “똑바로 사는 사람이 대통령 가족이 돼야 한다”고 했다. 김 후보는 제주 유세에선 “(이 후보 가족은) 아빠는 재판을 5개 받고 있고, 아내는 법인카드로 유죄판결을 받고, 아들은 상습 도박부터 욕설을 인터넷상에 하는 온 범죄자 가족”이라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되겠느냐”고 했다. 김 후보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진전을 보지 못한 것과 관련해 “(단일화가 안 될 경우) 이준석 후보를 찍으면 이재명 후보만 도와주게 된다. 김문수를 찍으면 김문수가 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서울시청 앞 유세에는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나와 김 후보 지지 연설을 했다. 이 상임고문이 지난 2일 김 후보 지지를 공식화한 뒤, 유세장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이 고문은 “김 후보는 신념에 따라 살아왔고, 권력을 탐하지 않고 서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일을 제대로 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앞 유세에는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나경원 의원, 양향자 전 의원 등 김 후보의 경선 경쟁자들이 함께 연단에 올라 김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청계천 복원 20주년 행사에 붉은색 점퍼 차림으로 참석해 “살림을 정직하게 잘할 지도자가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김기현·유영하 의원 등과 함께 울산 장생포 문화단지를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며 “국민께서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며, 현명하게 투표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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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광화문서 파이널 유세... "6월3일 진실이 거짓에 승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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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검사 탄핵' 안동완 서울고검 검사도 사의 표명
- '첫 검사 탄핵' 안동완 서울고검 검사도 사의 표명 현직 검사로는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됐던 안동완(54·사법연수원 32기) 서울고검 검사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안 검사는 최근 일신상의 이유로 법무부에 사직 의사를 전달했다. 안 검사는 부산지검 2차장검사였던 2023년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한 의혹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현직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30일 헌재는 안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안 검사는 직무에 복귀했지만, 탄핵소추 등 일련의 과정에서 겪은 고초를 언급하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검사와 마찬가지로 탄핵소추됐다가 헌재의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서울중앙지검 이창수(54·30기) 지검장, 조상원(53·32기) 4차장검사도 동반 사직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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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검사 탄핵' 안동완 서울고검 검사도 사의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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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 활동 보폭 넓힌다”…「극단 ‘흥’」 창단
- “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 활동 보폭 넓힌다”…「극단 ‘흥’」 창단 낭독극 「아, 나혜석!」, 7월17일 「제11회 끌림전」에서 첫 공연 (사)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이하 세미협으로 표기. 회장 여운미) 산하에 문화사랑 「극단 ‘흥’」이 새롭게 창단되었다. ‘세미협’은 2012년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승인받은 비영리단체로 매년 공모전(4월 한국창작문화예술대전), 정기전(7월 ‘끌림전’) 및 10월 아트챌린저 개최를 통해 전업작가 및 신진 작가를 발굴과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과 홍보 채널 ‘세미협TV’을 통해 작가들에게 미디어 노출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극단 ‘흥’」은 열정적으로 활동 중인 배우들과 미술인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졌으며, 창단과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무대가『제11회 끌림展(세미연 정기전. 7월17일 오후 3시)』에서 선보이게 될 낭독극 「아, 나혜석!」이다. 나혜석, 시대를 너무 앞서 간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전업작가 여성의 권익 부르짖은 페미니스트…이혼·정신장애 반신불수로 파란만장한 생 마감 무연고자 처리, 무덤은 없지만 작품은 남아…수원 ‘나혜석 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에 눈길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고 뛰어난 시인이었다. 일본 유학을 하고 온 신여성이었고 여성의 권익을 부르짖은 페미니스트였다. 오빠의 친구로 6년여 동안 사랑을 고백한 상처한 변호사로 일본 정부의 외교관 대우를 받고 있던 김우영(金雨英, 1886~1958)과 결혼, 3남1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던 중 부부 동반 유럽 여행길에 오른 것이 그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당시 세계 화단에 야수파 열풍이 불어 파리에 온 김에 그 화풍을 배우고 가겠다고 나혜석이 간청하자 김우영은 허락하고는 자신은 법률 공부를 하러 독일로 떠난다. 나혜석은 파리에서 약 8개월간 머무르면서 야수파 화가 비시에르(1888∼1964)의 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다. 그 무렵 유럽을 순방 중이던 친일 귀족으로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린((崔麟, 1878~1958)과 만나 파리에서 밀회를 나눴다. 나혜석은 나중에 조선에 온 김우영이 목격자의 증언을 제시하며 이혼을 요구하자 당당하게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며 “호감을 좀 갖고서 데이트 몇 번 한 정도였지 별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끝내 아이들도 못 만나게 하고 위자료도 주지 않고 이혼을 당하고 말았다. 1930년 남편과 이혼한 뒤에는 그림에만 몰두하였고, 1933년에는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설립하였다. 가자! 파리로. /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 죽으련다. /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 과거와 현재 공(空)인 나는 미래로 가자. 사남매 아해들아! /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나혜석 시 ‘외로움과 싸우다 객사하다’ 전문.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세계 여성 시인선」. 아티초크 2016년 간행. 39면.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최린에게 정조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욱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찬 나혜석은 당시의 "사회제도와 잘못된 도덕과 법률과 인습"에 대항하는 격렬한 저항이 담긴 시를 썼다. 자신을 과도기의 선각자로, 또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로 간주했다. 1935년「신생활에 들면서」(『삼천리』)를 발표하고 1936년에 소설 「현숙」을, 1937년에는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였다. 나혜석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1935년 서울의 조선관 전시장에서 가졌던 「근작 소품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나혜석은 이혼 이후 아이들을 볼 수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1937년 암자를 전전하면서 연명하다가 1948년 이혼과 정신 장애, 반신불수의 비극 속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서울 자혜병원 무연고자로 발견된 한 구의 시체가 바로 나혜석의 최후였다. 그녀는 무덤 조차 없지만 자신이 그린 작품을 남긴 채 자신이 태어났던 경기도 수원시의 문화예술회관, 효원공원, 야외 음악당 등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진 곳에 화판과 화구를 들고 서서, 다소곧이 앉아서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나혜석 거리’를 오가는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세미연 산하 문화사랑 『극단 ‘흥’』 창단 낭독극 아, 나혜석!」배역 여운미 회장(연출·해설), 나혜석 役(남희숙·김자숙), 김우영 役(김재학) 최린 役(김대진), 백남순 役(신정수) … 배우·미술인들의 협업, 작품 완성도 높여 9월 ‘답십리 미디어 아트센터’서 공식 공연 계획 주최 측은 “이 낭독극은 나혜석의 예술 세계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졌던 인간 나혜석의 고뇌와 분투, 이혼 후 사회적 매장, 여성의 지위에 대한 치열한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간다”며 “특히 이번 공연은 미술인과 연극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융합적 구성으로, 예술인의 복합적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묻는 형식의 실험이 돋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 낭독극에는 여운미(세미연 회장. 연출·해설), 남희주·김자숙(나혜석 役), 김재학(김우영 役), 김대진(최린 役) 등 경험 많은 배우들이 참여, 관객에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게 하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맹훈련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백남순(白南舜, 1904-1994) 역을 연기할 신장수 연기자도 주목 받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백남순은 나혜석과 함께 일제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서양화가로 두 화가 모두 도쿄의 여자미술학교(女子美術學校; 죠시비) 서양화과 선과보통과에서 유학한 동문이지만, 둘 사이에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주최측은 “낭독극 『아 나혜석!』은 예술 마을 그리다(박찬빈 감독), 소단샘(김명호 단장), 동대문연극협회(온성균 회장), 국아트네트워크(임만택 회장) 등 지역 예술 단체들의 협조로 작품이 완성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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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 활동 보폭 넓힌다”…「극단 ‘흥’」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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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장진호 전투 영웅 故 리차드 캐리 중장에게 감사장 수여
-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장진호 전투 영웅 리차드 캐리 중장에게 감사장 수여 ‘제75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美세인트미션大 총장 박상원 미국 측 준비위원장에게 전달 국가유공자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회장 김정규)는 2025년 5월 23일 오전 11시에 서울시 강서구 강서로 소재 호국보훈회관에서 『제75주년 장진호 전투長津湖戰鬪 기념식 행사(제10회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6.25한국전쟁 장진호전투영웅 리차드 에드워드 캐리(Richard Edward Carey : 1928~2025) 중장(에게 감사장을 추모행사 미국측 준비위원장 박상원 박사에게 전달했다. 주최 측은 “리차드 캐리 장군 감사장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적도 없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하여 1950년 6.25 한국 전쟁에 참전하셨고 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켰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졌다며 장군님의 공헌을 기리기 위하여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14만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감사장을 드린다”고 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6.25한국전쟁 시 미 해병 제1사단이 북한지역 개마고원 일대 장진호 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중공군을 궤멸시키고, 북한 주민 10만여 명을 흥남에서 철수시켜 자유를 찾게 한 인도주의 정신을 구현한 전투였다. 이에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는 2016년부터 장진호 전투에서 산화한 전투영웅들을 추모하기 위해 기념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는 제75주년 장진호전투기념식 행사를 주최하며 6.25한국전쟁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행사(제10회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식) 미국 측 준비위원장에 세인트미션대학교 총장 박상원 박사를 위촉했다. 리차드 에드워드 캐리 중장은 인천·원산 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횡성 탈환 등 6·25전쟁의 굵직한 전투를 겪은 미 해병대의 전쟁 영웅이다. 그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출신으로 해군 항공대 후보생에 입교했으나 떨어지고 해병대 사병으로 입대해 상병까지 지내다가 1948년 OCS를 수료하고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 당시 제1해병사단 제1해병연대 3대대 화기중대장으로 인천 상륙 작전, 장진호 전투에 참가하며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1951년 전투 중 부상을 입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회복 후 패리스아일랜드 신병교육단 중대장으로 재직하다가 해군 항공 과정을 계속 지원했으며 1958년 수료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조종 경력을 시작했다. 1966년 중령 계급으로 남베트남에 파견되었고 다낭에 있는 제1해병항공단 참모장을 지냈다. 대령으로 진급 후 하와이에 있는 제24해병 항공전 대장을 맡았다. 1974년 준장으로 진급해 제1해병항공단 부단장에 취임했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이 사실상 철수하는 방향으로 가자 1975년 호머 D. 스미스, 도널드 위트 마이어 등과 함께 프리퀀트 윈드 작전를 지휘해 미국, 제3국의 국민과 남베트남인들의 탈출을 지원했다. 1976년 소장으로 진급하고 제2해병항공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해 콴티코 해병기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 직책을 마지막으로 1983년 예편했다. 고토리의 별(Star of Koto-ri)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낙동강까지 밀려났던 국군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연합군과 함께 반격에 성공하여 평양 너머까지 진격합니다.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하며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11월 27일, 함경남도 장진군 유담리에 진격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에게 공격받으면서 ‘장진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추운 전쟁터. 전사자보다 동사자가 더 많은 전투라고 불리는 장진호 전투의 과정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최저영하45°의지옥같은한파와눈보라. 그리고 수류탄을 들고 인해전술로 달려드는 중공군. 결국 10배에 달하는 적 병력에 포위되어 공격과 돌파, 후퇴를 반복하던 미 해병대는 장진군 고토리에 집결하여 퇴각을 준비했습니다. 12월 7일 밤, 미 해병대원들은 얼어붙은 몸을 비비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내일’뿐이었습니다. 영혼도 얼어붙는 혹한 속에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눈을 뜨면 얼어붙은 땅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중공군이 달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모두 죽을 것이라는 포기와 절망이 모두를 휘감았습니다. 그때 먹구름이 흩어지더니, 너무나도 밝은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차갑고 새카만 겨울밤, 그 별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별을 바라보는 모든 미 해병대원들은 갑자기 희망과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별이 밝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을 것이다. 그러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을 거야!’ 갑자기 떠오른 별 하나를 보며 아무 이유 없이 절망을 떨쳐버리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그 역사상 유명한 ‘흥남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의 별을 장진호 전투의 상징으로 삼아 ‘고토리의 별(Star of Koto-ri)’이라고 부릅니다. ☞장진호 전투(長津湖戰鬪)와 ‘고토리(古土里)의 별’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7일간 벌어진 처절한 후퇴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전사(戰史)의 ‘2대 동계전투’로 불린다. 당시 함경남도 장진군 일대에서 미군 제1해병사단 1만5000명은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다. 눈보라가 날리는 최저 영하 37도의 혹한을 이겨내는 가운데 피해도 막대했다. 미 해병 4500여명이 전사했고, 총 7500여명이 동상 등으로 부상했다. 장진호 전투 참전 생존자들은 스스로를 ‘초신퓨(Chosin Few·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라고 부른다. 이들은 당시 장진을 일본어 지도의 독음을 따 ‘초신’이라고 불렀다. 고토里에 주둔했던 제1해병사단과 미 육군 제7보병사단은 중공군에 포위되어 수적으로 크게 열세에 처해 있었으며,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다. 12월 7일 밤, 하가루里에서 온 유엔군 부대는 고토里를 돌파했고, 모든 부대는 바다로 향하는 돌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병대와 해군 전투기가 돌파구를 엄호하려면 맑은 날씨가 필요했지만, 눈보라가 몰아쳐 전투기들이 지상에 발이 묶일 위기에 처했다. 돌파 전날 밤, 내리는 눈 사이로 고토里 상공에 별 하나가 보였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전투기들은 새벽에 복귀했다. 중요한 교량 구간이 성공적으로 공중에 투하되었고, 황초령(푼칠린 고개)을 통한 돌파가 시작되었다. 이 빛나는 별은 곧 "고토里의 별"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7년 5월4일 미국 버지니아 주(州)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의 트라이앵글에 있는 미 해병대 박물관에서 장진호 전투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행사가 열렸다. 기념비는 8각 모양에 2m 높이이며, 꼭대기에 '고토리의 별' 장식을 올린 모습을 하고 있다. 8각의 각 면에는 고토리(古土里), 하갈우리(下碣隅里) 등 지역별로 이어진 장진호 전투 모습이 새겨져 있다. 특히 애초 미군은 장진(長津)을 일본식 표기인 '초신'으로 표기하려 했으나 한국 측의 노력으로 '장진(초신)'으로 변경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사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한반도 지도가 일본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던 탓에 현재까지도 '초신'으로 전해져 기록돼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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